< 수면 아래에서 오가는 것, 거래 (2) >
“···저랑 스캔들이 났다구요? 송하랑 저랑?”
농담이라면 재미없는데.
-그렇다니까! 예고도 없이 터져서 회사도 발칵 뒤집어졌어, 임마!
황당해서 몇 번을 확인했더니 김현조가 직접 보라며 URL 주소를 보내왔다. 클릭했더니 기사페이지가 뜬다. 몇 분 전에 등록된 기사였다.
[단독] 이송하, 매니저 정선우와 비밀 열애! 연예인-매니저 커플 탄생?
지랄이 풍년이다.
이니셜을 놓고 쓴 찌라시도, 추측성 기사도 아니었다. 떡하니 헤드라인에 이름을 갖다 박아놨다. 증거랍시고 나랑 이송하가 붙어있는 사진이라도 올렸나 했는데, 그런 것도 없다. 그냥 허무맹랑한 소설 몇 줄이었다.
나랑 이송하가 남몰래 사랑을, 젠장할, 사랑을 꽃피우고 있다는 소설.
스타 매니저 방송내용 중에서 이송하가 내 생일이나 취미 같은 사적인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던 부분. 내 등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달라붙었던 일 따위를 마치 우리 연애의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놨다.
“어떤 머저리가 이딴 걸 기사라고······.”
바로 바이라인을 확인했다.
데일리 팩트=최재문 기자.
젠장. 데일리 팩트. 집에 전화해서 인터뷰 요청을 했다는 그 언론사다. 왜 가족한테까지 귀찮게 굴고 야단인가 싶었는데 이런 엿 같은 기사를 쓰려고 그랬구나.
-홍보팀에서 수습하려고 애쓰는 중인데, 그래도 금방 퍼지겠지. 기자 연락받지 말고, 상대하지도 말고, 곧장 회사로 들어와. 송하도 스케줄 전부 캔슬하고 오라고 했어.
김현조가 앓는듯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야, 너 그런데 혹시···.
“혹시. 뭐요?”
-이 기사 말인데.
“이건 개소리죠. 기사가 아니라.”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더니 김현조의 목소리가 좀 가벼워진다.
바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테라스에서 나온 정혜성이 눈웃음을 흘리면서 다시 앞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게 울컥울컥 올라와서 식은 커피로 속을 식혔다. 앞에 있는 게 저 여자가 아니었다면. 파파라치가 아니었다면, 핸드폰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문제라도 생기셨어요? 통화하시는데 표정이 안 좋으시던데.”
“조금요. 그쪽은 좋은 일 생기셨나 봐요. 표정이 밝으신 거 보니까.”
되묻자 정혜성의 입꼬리가 샐쭉 올라간다.
“네. 새로 일이 들어와서요.”
“아, 일이요.”
“그보다, 저, 실장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망설이듯 말꼬리를 늘리며, 정혜성이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찰랑거리는 귀걸이 아래로 흰 목덜미가 훤히 드러났다. 달큼한 향수 냄새가 여기까지 풍겼다.
“실장님 혹시 애인 있으세요?”
“아뇨, 없어요. 바빠서.”
옆자리에 던져놓은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기자였다. 이제 정신없이 쏟아지겠지. 무음으로 바꾼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상황이 급해졌다. 장단 맞추면서 시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이 더 엿같이 굴러가면 나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패가 필요할 테니까. 예를 들어, 지금 간판 주인공감으로 거론되는 한류스타가 사실은 곧 터질 시한폭탄이다. 캐스팅하면 다 같이 좆되는 거다.
이런 고급정보와 증거 같은 거.
나는 입술을 살짝 핥고 물었다.
“정혜성 씨. 저도 하나 물어볼게요.”
“저도 애인 없어요.”
“그거 말고요.”
“아.”
멋쩍은 듯 눈을 깜빡거리는 정혜성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직업이 파파라치예요?”
*
빠르게 차를 몰아 회사로 돌아왔다. 불쾌한 시선들이 쏟아진다.
스캔들 진짠가. 정말 이송하랑 그렇고 그런 사인가. 진짜면 둘이 어디까지 갔을까. 그런 속사정이 궁금해 죽겠다는 시선들이다.
이미 온라인상엔 개소리가 판치고 있다.
홍보팀이 애쓴 덕분인지 데일리 팩트에서 올린 기사는 금방 내려갔는데, 네티즌들이 발 빠르게 캡처한 사진이 SNS에 넘쳐났다.
이송하와 내 이름은 한참 전에 포털 실검에 고정됐다. 망할 인터넷.
네티즌들이 난리니, 다른 언론사들도 해프닝 소식이랍시고 어뷰징 기사를 꾸역꾸역 토해내는 중이다. 어차피 총대는 데일리 팩트에서 맸고 고소를 당해도 거기부터 당할 테니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지.
나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걸었다.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면 피라냐 떼를 더 흥분시킬 뿐이니까.
5층 홍보팀 사무실은 콜센터가 따로 없었다.
“김 기자, 팩트는 무슨 팩트야. 지금 둘이 좀 핫하니까 이슈 몰이해보겠다고 쓴 소설 가지고. 금방 보도자료 나갈 테니까 괜히 시간 낭비, 인력 낭비 하지 마.”
“금방 보도자료 배포할 거예요. 네, 금방. 입장표명 들어갈 테니까···.”
홍보팀 박 팀장과 직원들은 한 손엔 마우스를, 한 손엔 전화기를 들고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테이블 쪽에서 김현조와 3팀장이 손짓했다. 둘 다 복잡한 표정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보도자료가 아직도 준비 안 된 거예요? 스캔들은 당사자 입장표명이 빠를수록 좋잖아요.”
물론 입장표명을 해서 헛소리라고 일축해도 네티즌들은 팩트다, 루머다, 갑론을박하면서 떠들겠지. 그래도 지금처럼 입 다물고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대응이 늦으면 소속사에서 사실확인이 지체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건 스캔들을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하고.
“보도자료는 아까 다 준비됐는데, 기다리는 중이야.”
“뭘 기다려요?”
김현조가 천장을 가리켰다.
“대표실에서 연락 올 때까지. 데일리 팩트에서 기사 쓴 그 양반, 지금 대표실에 들어가 있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데일리 팩트의 기자랑 백한성 대표가 할 얘기가 뭐가 있어서?
“왜요? 이게 대표님이 직접 나서실만한 사안은 아니잖아요. 허무맹랑한 헛소린데.”
“글쎄다.”
3팀장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데일리 팩트 쪽이랑 전화통화 잠깐 하시더니, 바로 약속 잡고 직접 만나시더라고. 법무팀도 들어간 거 보면 아무래도 데일리 팩트에서 정정보도를 내게 할 생각이신 거 같은데.“
“근데 정정보도 내겠어?”
김현조가 회의적인 투로 끼어들었다.
“언론사들이야 차라리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처먹으면 처먹었지, 정정보도는 절대 안 내려고 하잖아. 쪽팔린다고.”
코웃음을 친 김현조가 테이블 기둥을 걷어찼다.
“심심하면 소설 써서 연예인 물 먹이는 건 안 쪽팔린가. 여자 연예인한테 스캔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건데, 개새끼들.”
“송하는 왜 이렇게 안 와, 신입한테 전화 한번 해봐라.”
3팀장의 말에 부재중 통화와 문자메시지로 터져나갈 지경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지하 주차장에 막 도착했다는 대답을 듣고 기다리고 있을 때. 신입한테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실장님. 송하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습니다. 스캔들 기사 본 뒤부터 분위기가 시베리아 한복판이라, 말도 못 붙이겠습니다.
이송하가, 화가 많이 났다고?
신입이 알아채고 나한테 얘기할 정도면 티가 많이 난다는 건데.
나도 모르게 미간이 구겨졌다. 안 그래도 이송하한테 직접 전화해서 괜찮으냐고 묻고 싶은 걸 겨우 참던 중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나랑 둘이 통화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핸드폰을 꽉 쥐고 기다리길 잠시. 사무실 문이 열리고 이송하가 들어왔다. 얼굴에 금이 가고 얼음조각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서늘하게 굳어진 얼굴로. 왜 신입이 그런 문자를 보냈는지 알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건 화가 난 게 아니라···.
겁에 질린 것 같은데.
설마 그새 어디서 개소리를 들고 온 건 아니겠지. 나도 사람들의 시선에 불쾌감이 들 정도였는데, 연예인, 그것도 여자 연예인인 이송하한테는 훨씬 더 노골적일 거다.
아니면 혹시 온라인에서 질 나쁜 댓글을 봤나?
신입한테 핸드폰을 못하게 하라고 말해둘걸, 혀를 차며 물었다.
“많이 놀랐어?”
“조금요.”
이송하가 맞은편에 앉았다. 다른 때라면 당연히 내 옆에 앉았을 텐데.
스캔들 내용을 의식하는 건지, 김현조와 3팀장의 의심할까 봐 눈치를 살피는 건지. 나랑 눈도 안 마주친다.
오히려 그게 더 의심스럽게 보여서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금방 보도자료 나간다니까 괜찮아질 거야. 기자가 엮을 사람이 없어서 날 갖다 엮었나 본데, 뭐, 차라리 다행인 걸 수도 있지. 딴 연예인이랑 엮어놨으면 소속사가 두 개니까 입장표명도 배로 귀찮았을 거 아니야.”
농담하듯 웃었더니, 그제야 이송하가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3팀장이 나와 이송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내가 노파심 때문에 묻는데,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 없는 거 맞지?”
“네. 전부 헛소리라니까요.”
“네. 헛소리예요.”
내가 먼저 말했고, 이송하가 말꼬리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스캔들, 짚이는 것도 전혀 없고?”
“전혀 없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다.”
“맞아요. 날벼락이에요.”
이번에도 이송하가 뒤따라 말했다. 3팀장이 끄덕였다.
“혹시라도 발등 찍을 거 있으면 미리미리 말해. 이러다가 갑자기 파파라치 사진 같은 거 튀어나오면.”
“뭐가 있었어야 나오죠. 그럴 일 없습니다.”
입술을 달싹거리던 이송하가 한발 늦게 ‘없어요’하고 동조한다.
내가 덧붙였다.
“저번 성도원 씨 때처럼 조작사진 같은 건 만들기 쉽겠네요. 제가 워낙 송하랑 같이 있는 일이 많으니까, 카메라만 갖다 대면 투샷이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연예인 매니저가 붙어있는 거야 당연한 건데, 네가 송하랑 워낙 사이가 끈끈하니까 이런 해프닝이 생기나 보다. 안 그래도 내부에서도 위험한 거 아니냐는 얘기가 좀 있었거든.”
“끈끈한 건 맞는데 끈적끈적한 건 절대 아닙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일 없어요.”
웃으며 말했다. 이송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당분간은 조용히 있어. 조용히 종결되더라도 어쨌든 스캔들은 스캔들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파파라치가 붙을 수도 있으니까.”
김현조의 말에 3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2팀장 그 자식은 이때다 싶었는지 대표님한테 너 팀 옮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떠들고 갔다. 신 났더라, 아주.”
그래. 저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가장 엿 같은 상황.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회사 차원에서는 불안요소를 계속 내버려두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예상했었던 일인데도 이맛살이 확 찌푸려졌다.
2팀장, 언제고 그 양반한테는 엿을 아주 엿판째로 던져주고야 만다.
혀를 차며 이송하를 봤다. 무슨 생각 중인지, 엄청 심각한 얼굴이다.
사실, 최근 들어 가끔씩 이송하가 그런 쪽으로 의식될 때가 있었다. 시선이 가고. 무심결에 생각하게 되고. 이러다 일 나겠다고, 정신 바짝 차리자고 생각하면서도 쉽지가 않았는데.
그래도 이번 스캔들 때문에 정신은 확 들었다.
이번에는 켕기는 게 내 마음뿐이니까 이렇게 넘어가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나랑 이송하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면. 이 뒷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래를 보지 않아도 뻔하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했다.
“그냥 해프닝인데 뭘 그렇게까지 반응해요. 그럼 찔리는 거 같잖아요.”
“그건 그런데, 불안불안하다는 거지, 뭐.”
“제가 딴 여자랑 데이트라도 몇 번 해야지 안 되겠네요.”
내 말에 3팀장이랑 김현조가 가볍게 웃었다. 이번에야말로 의심의 잔재를 다 털어버린 얼굴이다.
“너 데이트할 여자는 있냐?”
“있죠. 시간이 없어서 문제지.”
“자식, 재주도 좋네. 어떤······.”
“대표님한테 연락 왔어요!”
박 팀장의 목소리가 3팀장의 말을 잘랐다.
사무실 안이 고요해졌다. 박 팀장이 짧은 통화를 끝마치자마자 김현조가 득달같이 물었다.
“어떻게 됐대요?”
“데일리 팩트에서 바로 정정보도 내기로 했대요! 그 사실 포함해서 2분 안에 보도자료 배포할 거에요!”
“정정보도 낸다구요? 웬일이래.”
“대표님이랑 얘기가 잘됐나 본데. 어쨌든 이제 좀 조용해지겠네.”
“그리고 송하. 송하야!”
박 팀장의 부름에, 어쩐지 울적하게 앉아있던 이송하가 고개를 들었다.
“네?”
“너 대표님이 잠깐 올라오라는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놓고, 힐끔 옆을 바라봤다.
이송하는 가만히 서서 전광판을 보고 있다.
“별거 없을 거야. 진짜 아무 일도 없었는데, 뭐. 앞으로는 스캔들 조심해라, 그리고 한동안은 연애하지 마라, 그런 당부나 좀 하시겠지. 혹시 다른 얘기 하시면 나한테···.”
“앞으론 절대로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이송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전 연애 안 해요. 성공할 때까지 계속 일만 할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간 이송하가 나를 마주 보고 계속 말했다.
“대표님한테 오빠 다른 팀으로 보내지 마시라고···.”
“얘기하면 괜히 더 의심받지. 그 문제는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나한테 맡기고, 너나 걱정하지 말고 올라 갔다 와. 기다릴 테니까.”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송하는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줄곧.
전광판의 숫자가 7층에서 멈추는 것까지 확인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저장해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고 신호가 끊기자마자 말했다.
“정혜성 씨. 우리 거래 좀 할까요?”
< 수면 아래에서 오가는 것, 거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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