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니저와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 궁합 (7) >
뭔가, 그게 왜 웃긴지 육하원칙을 들어 설명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긴데.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씬은 감정이입 하기가 어려울 거라는 거지. 생각해봐. 감정이입이 안되면 웃기고, 되면 또 그것대로 어색하고. 그렇지 않겠어?”
“생각해봤는데 안 어색해요. 저는 잘할 수 있을, 잘할 것 같아요.”
이송하가 자신만만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손으론 시나리오 하나를 만지작거리다 못해 찌그러뜨리고 있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길고 섬세한 속눈썹이 들릴 때마다 까만 눈동자가 내 입가나 눈가, 미간을 살짝살짝 훑고 떨어진다.
불현듯 위화감이 등골을 타고 달렸다.
나한테 유난히 친근하게 굴던 이송하의 모습이 차곡차곡 쌓이듯 떠오른다. 내가 눈치가 엄청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싸한데.
혹시, 만약에······ 살짝 떠볼까.
굳어있던 입가에 웃음을 올리며 물었다.
“송하야. 너 말이야, 혹시.”
“일인데 잘해야죠.”
이송하가 툭 끼어들었다.
“응?”
“전 어떤 씬이든 연기할 때는 집중 잘할 자신 있어요. 진짠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강조한다. 내 코앞까지 와서 양 뺨을 후려치던 싸한 느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가 지나치게 예민했나. 하긴,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앤데.
“아니, 네가 연기를 못할 거라는 게 아니라.”
“오빠도 하다 보면 집중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대본리딩은 꼭 해요. 레슨 선생님보다 오빠가 더 잘한단 말이에요. 연습 많이 해야 차기작도 잘되고 빨리 성공하죠.”
“어, 그래. 최선을 다해 볼게.”
내 말에 이송하가 살짝 웃고는 태연히 시나리오를 정리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 전에 말을 끝까지 못한 게 정말, 정말 천만다행이다. 그대로 떠보는 말을 했으면 두고두고 민망할 뻔했네.
목까지 꽉 차있던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론 괜한 생각하지 말자.
*
“어쩜 좋아, 송하 씨 입술 예술이다, 예술.”
“어떤 컬러를 얹어도 다 소화하네. 그죠, 실장님?”
호들갑을 떠는 아티스트한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진짜요? 다 어울려요?”
이송하가 눈동자만 기울여 내 쪽을 보며 물었다.
“어. 너한테 뭔들 안 어울리겠냐.”
립스틱을 묻힌 작은 브러쉬가 이송하의 입술을 문지른다. 몇 번이나 바르고 지우기를 반복하느라 색이 좀 짙어진 입술이 브러쉬에 밀려 움직인다. 바르기 쉽도록 살짝 벌리고 있는 입술 사이로······.
안 되겠다. 보지 말자.
화보 촬영세트를 둘러보는 척하며 이송하한테서 떨어졌다. 젠장. 이송하의 행동이나 말을 자꾸만 의식하게 된다. 환장할 노릇이다. 어제 이송하가 혹시 나를, 뭐, 어쨌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던 탓인가.
아니면 내가 봄을 타나. 테스토스테론이 시위라도 하는 건가.
“실장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데, 화보촬영 담당자가 다가왔다.
“립제품 컨셉이 식사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지속력이라, 음식 먹는 것도 좀 찍어야 하는데. 씹고 뱉으실 봉투 준비할까요?”
“아뇨. 필요 없습니다.”
“정말요? 여배우라 좀 걱정돼서요.”
“다른 여배우들은 몰라도 송하는 괜찮습니다.”
물론 스텝들의 걱정은 촬영을 재개하자마자 싹 증발됐다.
이송하는 바삭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닭 다리도, 치즈를 듬뿍 덮은 라자냐도,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햄버거도, 매번 첫 끼를 먹는 사람처럼 해치웠다.
참 맛있게도 먹는다. 난 왜 쟤가 먹는 걸 보면 이렇게 흐뭇할까.
“모델은 진짜 죽이는데, 저게 립스틱 화보야, 음식 화보야.”
“먹는 것까지 헉 소리 나네요. 내 애인이었으면 맨날 지갑 털어서 사다 먹일 텐데··· 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실장님. 그냥 해본 말이에요.”
헛소리를 지껄이던 헤어 팀 보조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다시 이송하를 쳐다봤다.
어느새 음식이 크림 파스타로 바뀌어있다. 파스타 면을 왕창 두른 포크가 입술 안으로 쏙 들어간다. 손가락이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더니, 혀가 나와서 손가락 끝을 날름 핥았다.
그것뿐인데. 심장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처럼 덜컥 멈추는 느낌이었다.
내가 미쳤나?
“으와, 깜짝이야. 방금 헉했다, 진짜.”
“방금 건 남녀노소 누구든 헉할 그림이었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저런 걸 보고 멀쩡한 게 비정상이긴 하지. 워낙에 예쁘고, 또 분위기가 내 취향인 애라서 전에도 가끔가다 심장이 덜컥덜컥할 때가 있었으니까. 금방 털어버리고 원상태로 돌아오기도 했고.
마음을 추스르고 나자 화보촬영이 끝났다.
화장품 브랜드 쪽과 화보촬영팀, 그 외의 스텝들과 두루두루 인사를 나눈 뒤 이송하를 데리고 돌아가려는데, 이송하가 파우치에 담긴 일곱 가지 립스틱을 보여주며 말했다.
“홍보용으로 써 달라길래 챙겼어요. 오빤 어떤 색깔이 제일 마음에 드세요?”
“나는 그, 세 번째로 발랐던 거.”
기억을 되새겼더니 목이 타서,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세 번째요, 아, 코랄 오르가즘.”
도로 뿜을 뻔했다.
“······코랄, 뭐?”
“화장품은 섹스어필 마케팅으로 이름을 이렇게 짓기도 해요.”
태연하게 대답한 이송하가 내가 얘기했던 세 번째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두어 번 문지른다. 말끔하게 지웠던 입술에 물이 든다. 입 끝이 보기 좋게 올라갔다.
“저도 이 색깔이 좋아요. 취향이 똑같나 봐요. 신기하다.”
환장하겠네.
기분 좋아 보이는 이송하를 앞세우고, 내 뺨을 철썩철썩 때렸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거 방심하고 있다간 일 나겠다.
*
파울이 된 기분이다.
그거, 월드컵 예언하는 문어.
“나 참, 우리 회사 사람들 할 짓 더럽게 없어. 잘될 것 같은 차기작 찍는 게 뭐 그리 볼거리라고 모여서 구경까지 하고 있냐?”
“그러는 너는 왜 왔는데?”
“내 배우가 쟤 어떤 작품 찍나 보고 참고하자고 등 떠밀어서 왔다.”
라운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빈다. 익히 얼굴을 아는 사람부터, 아예 일면식도 없는 사람까지 와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앞 테이블에는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들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누군가 힘내라며, 무슨 힘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물 바치듯 사준 음료수 캔이 세 개나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앞에 김현조와 3팀장, 그리고 본부장까지 앉아있다.
3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 골라봐.”
“제 인생에 이보다 불편한 순간이 없었는데요.”
“부담 갖지 말고 그냥 꽂힌 걸 찍어! 지금까지 네가 꽂혀서 안 된 거 있어? 이쯤 되면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봐도 된다.”
“더 부담되는데요.”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음료수 하나를 다 비우고 나서 손을 뻗었다.
기대, 불신, 흥미, 다양한 시선들이 내 손끝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나는 종이 더미 속에서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하나씩 골랐다. 손에 들린 종이뭉치가 무겁다.
최후의 순간이다. 이번에도 눈앞이 깜깜해질 기미는 없다.
치미는 아쉬움을 누르고, 손에 쥔 작품 두 개를 내려놓았다.
하나는 340억짜리 대규모 영화의 조연 롤.
다른 하나는 한중합작, 공중파 편성의 미니시리즈 주연 롤.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수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미래의 힌트 없이, 오롯하게 내 힘으로 선택한 작품들.
웅성거림이 커졌다. 내가 고른 작품 두 개는 바로 본부장 손에 들어갔다. 김현조가 날카로운 눈으로 표지를 훑었고, 3팀장이 확인하듯 물었다.
“저거? 진짜야? 저거 두 개?”
“네. 제가 보기엔 저 두 개가 제일 좋았습니다.”
내 말에 김현조가 훅,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뭐가요?”
“네가 또 전처럼 말도 안 되는 시놉 들이밀면서 이겁니다, 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 줄 아냐? 다행히 저거 두 작품 다 우리도 1순위, 2순위로 올리려던 거였어.”
하긴, 객관적으로 봐도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니까.
“이거 뭔가 엄청난 게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러니까. 느낌이 좋네.”
3팀장과 김현조가 말했다. 본부장이 일어나며 손에 든 작품을 흔들었다.
“이 두 개는 대표님이랑 나랑 아주 자세히 보겠어. 대표님도 복덩이가 이번엔 뭘 찍을지 궁금해하고 계시거든.”
그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젠 어떻게든 차기작을 성공시키는 일만 남았다.
***
W&U 매니지먼트사업부 3팀. 신입사원 이관우. 26세.
출근 첫날 사수인 정 실장, 정선우와의 첫 만남에서 그는 헛것을 봤다.
눈앞에 흉흉한 가시밭길이 쫙 깔리고 악마가 환영나팔을 부는.
정선우는 대면하자마자 이관우의 얼굴을 한참 쳐다봤다. 그리고는 앞으로 잘 해보자며 웃었다. 일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엎어놓고 채찍질을 할 것 같은 미소였다.
평탄한 회사생활을 위해, 이관우는 정선우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
인사차 들렸던 홍보팀은 정보의 홍수였다.
“선우 씨가 사수구나, 아이고. 첫인상 무서웠죠. 성격 나빠 보이죠?”
“······아닙니다.”
한발 늦게 나간 대답에 홍보팀 직원들이 짓궂게 부추겼다.
“에이, 나도 내 사수가 선우 씨였으면 첫날 엄청 심란했을 것 같은데.”
“난 퇴사도 고민했을걸. 어우, 심장에 안 좋아.”
“신 났다, 아주. 신입 그만 놀려.”
홍보팀 팀장이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선우 씨가 인상이 좀, 많이, 날카로워서 그렇지 괜찮은 사람이야. 위트도 있고. 넵튠 애들한테 하는 거 보면 자기 사람 챙기는 책임감도 있고. 할 때는 하는 행동력도 있고. 그리고 일단 능력이 좋잖아. 지금부터 잘 따라다니면 앞길이 8차선 도로처럼 쫙 열릴 수도 있어.”
이관우가 두 번째로 정보를 얻은 건 넵튠 멤버들로부터였다.
정선우가 잠깐 대기실을 비웠을 때, 임서영이 웃으며 말했다.
“신입 오빠랑 선우 오빠는 진짜, 느낌이 극과 극이에요.”
“그래요?”
“네. 동물로 따지면, 신입 오빠는 덩치는 큰데 눈이 축 처져서 엄청 순한 대형견 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럼 정 실장님은 무슨 동물인데요?”
그가 묻자 곳곳에서 제 할 일을 하던 멤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뱀.”
“뱀.”
“뱀.”
“햄스터.”
대기실 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임서영이 경악하며 펄펄 뛰었다.
“이송하 너 빤빤한 얼굴로 거짓말하지 마! 으아아, 소름 돋았잖아!”
“거짓말 아냐.”
“아니긴! 눈이 발가락에 붙었냐! 너 우리가 다 뱀이라고 하니까 혼자 다른 거 하려고 아무거나 말한 거지!”
“아닌데. 내가 보기에 닮았으면 닮은 거지.”
“웃기시네! 선우 오빠랑 햄스터랑 닮은 건 포유류라는 점밖에 없어!”
임서영이 양 팔뚝을 문지르며 소리쳤다. 이태희와 엘제이도 동조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햄스터는 좀.”
“야, 송하 너 눈알 좀 어떻게 해라. 빼서 씻어보던가. 심각하다, 그거. 아니면 금붕어 똥처럼 붙어 다니는 걸로도 부족해서, 아예 햄스터처럼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냐?”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던 이관우가 눈을 껌뻑였다.
넵튠 멤버 중에서도 이송하는 가장 말을 붙이기 힘든 멤버였다. 친화력이 부녀회장급인 임서영과 비교하면 이태희나 엘제이도 친근한 편은 아니지만, 이송하는 독보적이다.
안 그래도 사람 같지 않은 얼굴인데 표정변화도 드물다. 말수도 적고, 분위기까지 고요하고 서늘한 편이었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송하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선우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잠깐 사이 몇 개나 되는 표정이 떠오른다. 종래에는 웃기까지 했다.
이관우의 머릿속에 드라마틱한 의심이 떠올랐다.
혹시 둘이 그런 사인가, 하는 의심이.
하지만 그 의심은 다음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승합차를 타고 다른 촬영지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다른 일정이 있는 정선우 대신 김현조가 조수석에 앉았다. 정선우만큼은 아니지만 만만찮게 인상이 나쁜 김현조가 그에게 당부했다.
“가끔 현실이랑 드라마랑 구분 못 하는 물건들이 있는데, 절대 담당 연예인이랑 연애할 생각하지 마라. 들키면 모가지, 운이 억세게 좋아도 팀 이동이니까.”
김현조가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넵튠 멤버들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너희도 잊어먹지 말고.”
“알어, 알어! 그만 좀 해, 쫌! 매니저 오빠 바뀔 때마다 얘기하잖아!”
임서영이 서럽게 소리치자, 김현조가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이건 백번을 얘기해도 모자라. 더럽고 치사하면 더 뜨던가.”
“얼마나 떠야 하는데! 얼마나!”
“대표님한테 내 사생활에 상관 말라고 큰소리칠 수 있을 만큼.”
“우릴 평생 솔로통에 시달리게 할 셈이야!”
시끌벅적한 와중에 다른 멤버들도 한두 마디씩 보탰다. 이송하만 조용했다. 이관우는 힐끔 이송하를 살폈다. 창턱에 얹은 팔에 턱을 괴고 바깥을 쳐다보고 있다. 아몬드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으면서.
만약 정선우와 뭔가가 있는 사이라면 무언가 반응이 있을 법도 한데, 태연하기만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연애 얘기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는 표정이다.
이관우는 어젯밤 떠올렸던, 연예인과 매니저를 주인공으로 한 몇몇 드라마들을 지워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김현조의 말대로 드라마는 드라마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그 생각이 또다시 흔들린 건, 이튿날 오전의 일이었다.
회사에 딸린 헬스장에서 아침 운동을 마친 넵튠 멤버들이 기진맥진해서 늘어졌다. 이관우가 멤버들에게 이온음료를 한 병씩 돌렸을 때. 라커룸 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걔, 3팀 정선우, 손채영이랑도 친하대.”
“어디서 헛소리를 듣고 왔냐. 둘이 뭔 일 있어서 거의 웬수라던데.”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둘이 서로 핸드폰에 번호도 저장해놓고 편하게 통화하는 사이라더라. 손채영이 그 정도면 엄청 친한 거지.”
“진짜? 누가 그래?”
“둘이 통화하는 거 실시간으로 보고들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래. 그래서 2팀에서 손채영을 정선우한테 맡기려고······”
떠들면서 다가오던 남자들이 넵튠을 발견하곤 말을 삼켰다. 그들이 빠른 걸음으로 탈의실로 사라지자, 넵튠 멤버들이 남은 자리엔 침묵이 떠돌았다. 살갗을 사금파리에 문지르는 것처럼 따끔따끔한 침묵이.
이관우가 정선우 실장의 정보에 배우 손채영의 이름을 추가한 순간.
임서영이 힐끔 이송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건 진짜, 내가 들은 헛소문 중에 제일 근본 없는 헛소문이다. 선우 오빠가 손채영 얼마나 싫어하는데. 우리보다, 아니 송하 네가 싫어하는 거보다 더할걸?”
“그건 그래.”
다른 멤버들도 거들었지만, 분위기는 점점 더 기묘해졌다.
“에이, 찝찝하게! 그냥 선우 오빠한테 물어보고 털자!”
임서영을 시작으로 앞다퉈 일어난 멤버들이 밖으로 나갔다. 이송하도 맨 뒤에서 따라갔다. 오래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정선우는 헬스장 밖에 있는 계단에 서서 통화 중이었다.
“아, 지금 일어나셨어요? 냉장고 보면 먹을 거 있으니까 좀 챙겨 먹고 가세요. 어차피 촬영장 가서 먹는 건 도시락이나 김밥, 그런 걸 거 아니에요.”
멤버들이 우뚝 멈췄다.
정선우를 쳐다보는 얼굴들이 다들 이상했다. 뒤늦게 이쪽을 발견한 정선우가 곧장 전화를 끊었다. 그의 차가운 얼굴에 설핏 난감한 표정이 스쳤다. 그가 미간을 좁히며 다가왔다.
“무슨 생각들 하는 줄 알겠는데, 애인 아니야. 내가 이걸 왜 변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아니고, 그냥 배우야. 어젯밤에 시나리오 좀 같이 보다가 우리 집에서 잠들어서.”
그 말에 멤버들의 표정이 한층 더 해괴해졌다.
정선우가 별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너희가, 특히 송하가 신경 쓸 것 같아서 기회 봐서 제대로 얘기하려고 했는데. 사실 내가 배우 한 명을 더 맡게 됐거든.”
이관우는 저도 모르게 이송하를 돌아봤다. 그리고 목격했다.
고요하던 호수에 토네이도를 던져놓은 듯한, 그 격렬한 표정 변화를.
< 매니저와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 궁합 (7)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