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니저와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 궁합 (3) >
“이송하, 야, 야, 이 이송하가 그 이송하냐? 영상통화 할 거야? 지금?”
내 핸드폰 화면을 본 김태웅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옆의 사촌 동생도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진동하는 핸드폰을 쳐다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신호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어. 미안, 전화 한 통만 받고 다시 얘기하자.”
“받아, 받아. 그리고 내 생일선물도 미리 좀 받자, 형.”
“우리가 언제부터 생일선물 챙겼냐.”
턱을 괸 손으로 입가의 상처를 가리고, 전화를 받았다.
화면이 이송하 얼굴로 가득 찬다. 걱정에 흠뻑 젖은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이며 내 얼굴을 살핀다. 그걸 보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무덤덤한 애가 이렇게 걱정하는 거. 내가 어디 다쳤을까 봐.
얼굴이 멀쩡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이송하가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오빠, 괜찮으세요?
“괜찮지, 그럼.”
-봐봐, 얼굴은 멀쩡해도 몸은 걸레짝이 됐을 수도 있어!
-어디 깁스한 거 아니야?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핸드폰 화면이 흔들린다.
임서영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이태희와 엘제이도.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뜯어보고 있다. 뒤쪽 배경을 보니 회사 연습실이었다. 단체연습하러 회사에 갔다가 내 얘기를 듣고, 이송하가 대표로 연락했나 보다.
“몸뚱이 멀쩡하고 깁스도 없어. 대체 무슨 얘길 들었길래 이래?”
-건영 오빠랑 둘이 싸웠는데 오빠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면서요! 회사에 소문 다 났어요!
“누가 두들겨 맞아. 스친 거야, 스친 거.”
퇴근할 때 직원들이 내 입술 찢어진 걸 봤나? 내가 모르는 사이 회사 안에 어떤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거지. 하여튼 배신자 그놈은 마지막까지 도움이 안 된다.
이태희가 흥분한 임서영을 진정시키며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두 사람이 싸웠다지, 둘 다 오늘 회사에 출근도 안 했다지. 스케줄도 현조 오빠가 대신한다고 해서 어디 많이 다쳐서 못 움직이는 건가 했어요.
“실장님이 자세히 얘기해줄 거야. 전화로 하기엔 사연이 길다. 스케줄 못 가는 건 못 움직여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볼일이 있어서 그런거고.”
-볼일이요? 어어, 근데 오빠 지금 어디······ 누구세요?
임서영이 눈을 깜빡였다. 시선이 나를 빗겨간다. 오른쪽을 보니 뺨을 붉힌 곰 한 마리가 앞발을 맞잡은 채 기웃거리고 있다. 애들 시선이 모이자, 김태웅이 입을 벙긋벙긋 하다가 냅다 쭈그려 앉는다. 귓등이 벌겋다.
“아, 이건 내···.”
-잠깐!
느닷없이 임서영이 소리쳤다. 흡사 적병을 발견한 파수꾼의 눈빛이다.
-지금 9시 방향에 여자 얼굴이 보였는데?
왼쪽에서 멍하니 화면을 훔쳐보던 사촌 동생이 헉, 하고 주저앉는다. 나란히 뭐하는 거야, 대체. 그렇게 티 나게들 숨으면 내가 꼭, 은밀하게 이상한 만남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아니나다를까, 화면에 보이는 애들 표정이 이상야릇해진다.
“정확히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하지 마. 친구 동생이야.”
-우린 오빠 다친 줄 알고 식겁했는데, 오빠는 친구 여동생이랑!
“아니야.”
-소개팅!
“아니라고.”
-아니라면 증거를 대봐요!
“친구가 일 문제로 부탁해서, 아니, 그런데 내가 왜 증거를 대냐.”
말하다 말고 기가 막혀서 애들 얼굴을 쭉 봤다.
이마에 충격이라고 쓰여있는 임서영은 말할 것도 없고, 엘제이도 눈초리가 영 떨떠름하다. 심지어 이태희마저도.
그리고 이송하는, 다른 애들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통화 화면이 멈춘 줄 알았을 거다. 아까부터 혼자 정지화면이다.
임서영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게, 그니까, 우리가 지금 연애할 때가 아닐 텐데! 연애금지잖아요!
“안되는 건 너희고, 나는 돼. 내가 연예인도 아니···.”
-아, 안돼요.
이송하가 불쑥 말했다. 고개까지 저어가면서.
“왜 안돼?”
내 물음에 이송하가 당황한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얘가 이렇게 표정관리 안 되는 건 또 오랜만이네. 몇 초 동안 이송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임서영이 합세했다.
-어어, 왜냐면, 오빠가 연애하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무슨 헛소리야.”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임서영 헛소리도 우습지만, 그 헛소리가 맞는 말이라는 듯 옆에서 맞아요, 안돼요, 무너져요, 하고 열심히 추임새를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이송하는 더 기가 차다.
엘제이와 이태희는 옆에서 말리기는커녕 재밌다는 듯 구경하고 있다.
횡설수설하던 임서영이 확 터뜨리듯 소리쳤다.
-으아아, 몰라요, 어쨌든 오빠 뺏기는 느낌이란 말이에요!
“뭐? 야, 잠깐. 잠깐만.”
어느샌가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애들 목소리 때문인지, 스텝 몇 명이 멈춰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개인적인 대화를 이어가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이 얘기는 만나서 다시 하자.”
통화를 대충 끊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양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김태웅과 사촌 동생이 그제야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애들한테 친구라고 소개도 못 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꾸 뺨이 간질간질하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입 끝이 위로 올라가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김태웅이 멍하니 날 내려보다가 말했다.
“이 개새끼야.”
“뭐, 임마?”
“문득 네가 했던 개소리가 다시 떠올라서. 뭐, 재입대했다고 생각해? 어디로 재입대하면 저런, 저런 분들이 있냐, 새꺄.”
놈이 허탈한 얼굴로 도로 앞자리에 앉았다.
“방금 그게 평상시 대화냐? 너 그러고 살아? 그러고 일하면서 월급 받고 차까지 받냐? 와, 진짜······ 근데 넌 저런 얼굴이 넷이나 눈앞에 있는데 말도 잘하더라, 엄청난 새끼.”
“그럼 입 있는데 말로 하지 수화로 하냐.”
“근데 연예인은 다 그러냐? CG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생겼냐.”
김태웅이 옆자리에 앉은 사촌 동생을 빤히 쳐다본다.
“야, 이 등신아. 센터? 세엔터?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백 프로 사기다.”
“뭐?”
“네가 저런 애들 사이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봐라. 인어공주들 사이에 낀 꼴뚜기지, 그게. 그 대표라는 사람,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그 말에 사촌 동생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진짜 바본 줄 알아? 사기면 나한테 돈 뜯어가려고 하지, 돈 들여서 앨범 내주겠다고 하겠어? 그 회사에 이미 데뷔한 걸그룹도 있어, 국내에선 무명이어도 중국이랑 필리핀 쪽에 진출해서 활동하는 중이란 말이야. 그리고 나도 카메라 마사지 받으면 아까 걔, 걔들 정도는 될걸!”
“안돼, 등신아. 꿈꾸고 앉았네.”
두 사람이 욕설로 치고받는 동안 나는 사촌 동생한테 건네받은 명함을 살폈다. 멀쩡한 곳이라면 좋겠지만, 낙관적인 생각만 하기엔 지난 육 개월간 더러운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연예기획사로 등록된 국내 회사만 천칠백 개가 넘는다, 미등록된 불법회사까지 따지면 더 많고. 그리고 그중에는 간판만 연예기획사고 뒤로는 에스코트 서비스 같은 일을 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먼저 홍보팀 박 팀장과 박우정 기자한테 아는 게 있는지부터 물어봤다. 다음으로 그 회사에서 데뷔했다는 걸그룹 자료를 뒤져보던 중. 예상보다 빨리 메시지가 날아온다. 그것도 두 사람한테서 동시에.
나는 메시지를 쭉 읽고 혀를 찼다.
“음. 동생. 그 회사 말이야. 내가 좀 물어봤는데.”
“네!”
으르렁거리던 사촌 동생이 곧바로 날 쳐다본다.
“어때요? 괜찮은 데 맞다 그러죠? 네?”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한 눈이 나를 재촉한다. 러브콜을 받았다고 들떠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한 꺼풀 들춰보니 그 아래에는 불안과 걱정이 가득했다. 제발 괜찮은 곳이라고 말해달라는 듯한 절박함도.
시선을 돌리니 김태웅도 어느새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
입맛이 쓰다.
소문이 더러운 회사였다. 나이 때문에 데뷔가 절박해진 이십 대 연습생들을 모아서 섹시 콘셉트로 싱글 앨범을 내준다. 앨범은 그걸로 끝이다. 한국 걸그룹이라는 간판만 달고 이후로는 중국 클럽을 돌면서 돈을 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소문으로만 퍼져 있지만, 그 소문 중 하나만 사실이어도 여긴 상종도 하면 안 될 회사다.
가능한 한 다듬어서 말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사촌 동생은 섹시 콘셉트에 중국 클럽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이미 얼굴이 백지장이었다.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서러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야, 똥 덩어리 피한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좀 약해졌는지, 김태웅이 위로 비슷한 말을 했을 때.
“대표, 죽여버릴 거야, 개새끼! 친구들이랑 엄마한테 나 진짜 연예인 된다고 엄청 큰소리쳐놨는데! 쪽팔리게!”
“뭐, 야, 너는 지금 쪽팔······.”
예상을 깨부수는 반응이다. 김태웅은 목덜미에 핏대까지 섰다. 놈이 뒷목을 잡거나 말거나, 사촌 동생은 애절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암사자다.
“저기요, 실장님. 아니, 오빠. W&U에는 연습생 더 안 구해요?”
“응. 안 구해.”
“그럼 신인배우로, 바로 프로필 뽑을 수 있는데!”
“염병하네! 네 머리통이나 뽑아! 내가 이런 거 때문에······!”
폭발한 김태웅이 사촌 동생의 뒷덜미를 붙들고 흔들었다. 동생 쪽도 지지 않고 맞서 싸운다. 나한테까지 스텝들의 시선이 쏟아진다. 차에 들어가서 싸우라고 키를 던져주고 나서야 주위가 좀 조용해졌다.
이걸 잘 끝났다고 해야 하나.
나는 촬영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태웅은 덜떨어진 사촌 동생 때문에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했지만, 사실 이곳에 온 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새로운 씬 촬영을 준비하는 스텝들 사이. 내 눈은 단번에 남조윤을 찾아냈다. 물기 없이 메마른 표정으로 레일까는 걸 돕는 중이었다. 차 안에서 식혔던 이마에 또다시 땀이 맺혀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옆에서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돌아보니 이목구비가 뚜렷뚜렷한,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가 날 보고 웃고 있었다.
“네?”
“친구 동생분이요. 연기자보다 연예인을 하고 싶어하는 케이스라, 오디션 몇 번 떨어지고 나면 포기할 걸요. 끝까지 붙어있는 건 결국 연기 좋아하는 사람들뿐이거든요.”
‘저처럼’이라고 자신하는 표정이다. 남자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뭐··· 아무리 연기가 좋아도, 안 되는 걸 계속 붙들고 있는 건 그것대로 문제지만. 미래가 안 보이면 미련 버리고 먹고살 길을 찾아야지.”
남자의 시선이 남조윤에게 머물렀다가 내게로 돌아온다.
“신인배우 이성현입니다. W&U 실장님이라길래 눈도장 찍으려구요.”
이어서 자기 PR이 줄줄 나온다. 지금 상업영화에 대사 있는 단역으로 출연 중이라느니, 신중하게 소속사를 찾는 중이라느니. 그리고 연기보고 괜찮으면 연락 달라고 프로필처럼 만든 명함까지 내민다.
남자의 말대로, 나는 감독의 허락을 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봤다.
얼마쯤 지났을까. 등 뒤의 인기척이 내 정신을 깨웠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냐.”
김태웅이 진 빠진 얼굴로 다가왔다. 날 따라 시선을 옮긴 놈이 작게 감탄했다.
“야, 저 사람은 진짜 딱 봐도 연예인 같다.”
“누구?”
“저 사람, 줄무늬 티셔츠.”
녀석이 턱짓한 사람은 이성현이었다. 솔직히 그렇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 저기서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이성현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인 거겠지.
그런데 정작 내 눈이 따라가는 건 주인공이 아니라 상대역이다.
“상대역은 어때 보이냐? 남조윤 씨.”
“네 취향? 뭐, 잘하는 거 같은데? 근데 시선은 주인공한테 더 간다.”
역시 내 눈에만 콩깍지가 쓰였나 보다. 그리고 그 콩깍지는 점점 더 두꺼워지는 중이다. 남조윤이 연기하는 걸 보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생각했던 게, 이젠 실체를 가지고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안타깝고, 아쉽고, 답답해서.
저것보다 더 잘 어울릴만한 배역이 있을 텐데. 저 분위기와 연기를 훨씬 더 잘 살려줄 수 있는 그런 배역. 머릿속에서는 내가 최근에 봤던 수많은 시나리오와 배역들이 쭉쭉 스쳐 간다.
환장하겠네.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고개를 저어봐도 충동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좋아,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건 이송하 차기작이다. 차기작이 성공할지 망할지 확신할 수 없는, 살얼음판 위를 달리는 상황이라고.
이런 때에 신인배우한테 눈길이 가다니. 안되지. 안되고말고.
그리고 아까우면 뭐 어쩔거야. 내가 남조윤한테 프로필을 받는다고 해도, 회사에서 계약을 진행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신인급 배우는 2팀에서 관리하니까 결국은 2팀장한테 프로필이 올라갈 텐데. 그 양반이 내가 추천한 신인을 고운 눈으로 봐줄까도 의문이고.
소속사 문제로 시달렸던 사람을 괜히 또 들쑤시는 꼴이 될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 덕분에 성공한다는 걸 알고 시작했던 이송하와는 다르다. 이번엔 아무것도 없다. 나중에 저 사람이 배우로서 성공할 거라는 확신도. 희망을 걸어볼 만한 작은 힌트조차 없다.
그런데도, 그런 걸 다 아는데도······ 저 배우가 너무 탐난다.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젠장, 이걸 어떡해야 되지?
< 매니저와 연예인에게 중요한 것, 궁합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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