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02화 (102/218)

< 급물살을 타고 출렁이는 (6) >

김현조는 퀭한 눈으로 회의실 근처를 서성거렸다. 두 사람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쯤 지났을까. 굳게 닫힌 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소리조차 없었다.

3팀장이 발끝으로 김현조의 오금을 툭 치며 킬킬거렸다.

“얌마, 넌 뭘 그렇게 기웃거리고 있어? 새끼들 물가에 내놨냐? 쟤들 네가 낳았어? 하긴, 육 개월 동안 네가 키우기는 했지. 역시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아, 형! 시답잖은 소리 좀 하지 마. 안 그래도 어수선한데.”

“어수선할 게 뭐 있어. 나잇값 못하고 사고나 치고 다니는 놈들도 아니고, 저 두 놈인데 별일 있겠어?”

“그렇긴 한데······ 그냥 노파심이야, 노파심.”

김현조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노파심이요? 김 실장님 무슨 걱정거리 있어요?”

홍보팀 박 팀장이 다가오며 물었다. 두 눈에 의구심이 가득했다.

“넵튠이 트로피까지 가져왔는데 깨춤을 춰야지, 웬 걱정이에요?”

“선우랑 건영이, 두 놈 교통정리 때문에요.”

“아하.”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은 듯,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교통정리에 대해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때였다. 말하는 와중에도 회의실 쪽을 신경 쓰던 김현조가 멈칫했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질질 새나오고 있었다.

그는 회의실 쪽으로 두어 걸음 다가갔다. 소리가 좀 더 확실해졌다. 두꺼운 문 때문에 거의 뭉개져 들리긴 했지만, 굳이 알아들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말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 이거 누가 웃는 소리 맞지?”

“그런 거 같은데? 저놈들 할 얘기가 저렇게 막, 웃을 얘기냐?”

“박장대소 수준인데요? 무슨 얘기 중인지 짐작도 안 되네.”

세 사람은 똑같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문틈으로는 웃음소리가, 그것도 한 사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삐져나오는 중이었다. 듣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오묘해졌다.

박 팀장이 입술을 핥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옆에 붙은 회의실 말이에요. 이거.”

손이 두 사람이 들어간 회의실 옆에 붙은 빈 회의실을 가리켰다.

“벽에 붙은 암막 블라인드 안쪽에 유리문으로 연결돼 있어서, 그거 살짝 열어놓으면 무슨 얘기하는지 들리긴 할 텐데요. ······그냥 그렇다구요.”

“아무리 그래도 남 얘기를. 별일 아닐 거야.”

손사래를 치던 3팀장이, 이내 닫힌 문을 힐끔 바라봤다.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커지기까지 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기엔 좀 이상하긴 했다.

세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별일 아니긴 할 텐데, 그냥 왜 저러는 건지만······.”

잠시 후, 그들은 조용히 옆쪽에 붙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

꽤 볼만했다.

아니, 사실은 엄청나게 볼만한 광경이다. 배신자의 저 얼굴 말이다.

본인 예상을 빗나간 상황. 그것도 아주 단단히 빗나간 상황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얼굴. 가증스러운 웃음 따위는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저 얼굴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뭐, 너 지금, 뭐라고······.”

“개새끼, 이 자식아. 개새끼.”

더듬거리던 놈이 아예 말을 잃었다. 문득 유쾌한 충동이 솟구친다.

나는 싱글싱글 웃다가 상체를 놈 쪽으로 불쑥 기울이며 말했다.

“야. 욕 좀 해봐.”

“뭐?”

“내가 그런 취향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너한테 욕까지 먹으면 이백 프로 실감 날 것 같아서 그래. 네가 진짜로 개새끼였다는 게. 그러니까 다 까발린 마당에 내숭 그만 떨고, 너도 욕 좀 해보라고.”

내 말이 이어질수록 배신자의 표정이 휙휙 바뀌었다. 맙소사. 그 표정변화는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관객이 나뿐인 게 아쉽다. 보면 입 벌리고 감탄할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나는 느긋하게 턱을 괴며 말했다.

“뭐, 여태껏 나만큼 기분 나쁘고 재수 없는 놈을 본 적이 없다고? 나야말로 내 평생에 너만큼 겉 다르고 속 다른 놈은 처음이다.”

“너······.”

“매일매일 긴장상태로 지내는 게 얼마나 스트레슨지 아냐?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분명 기회만 되면 내 뒤통수를 칠 놈인데, 가식을 벗을 생각을 안 하니까. 하긴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있었다면 넌 벌써 내 뒤통수치고도 남았을 거야. 그지?”

배신자의 얼굴이 확 굳어진다.

“만약에 이번에 내가 태희 자작곡이 잘될 것 같다고 너한테 먼저 들려줬으면, 넌 그걸 가로챘을 거야. 그래놓고 나한테 태연하게 ‘미안하긴 한데, 기회를 안 잡을 순 없잖아.’라고 했겠지. 넌 그런 놈이니까. 안 그래?”

사람 좋은 최건영, 바른생활 청년 최건영은 없다. 배신자의 얼굴이 불쾌함과 짜증으로 얼룩졌다. 와, 누군가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는데, 그 시선이 이렇게 흥분될 줄이야.

배신자가 탐색하듯이 물었다.

“너, 고등학교 어디 나왔어?”

너무 뜬금없어서 다시 웃음이 튀어나왔다.

“너랑 같은 데는 아닐걸? 왜, 그때는 내숭 떠는 재주가 지금보단 부족했냐? 하긴 그때부터 이랬으면 더럽게 소름 끼치긴 했겠다. 될성부른 소시오패스 떡잎도 아니고.”

낄낄거리며 말했더니 배신자의 눈빛이 더 사나워진다. 조금만 더 긁으면 테이블을 뒤집고 한 대 칠 것 같다. 물론 기대하는 바다.

“그럼 뭐야, 너 내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세상에 눈치 빠른 게 너 혼자냐?”

배신자가 확연하게 비틀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실력이 좋거든. 네 말대로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으로 사는 게 내 가장 큰 취미생활이라. 그런데 넵튠 애들, 실장, 팀장, 회사 사람들 아무도 눈치 못 챈 걸 너 혼자서, 그것도 낱낱이 눈치챘다고?”

놈이 제 입으로 시커먼 속마음을 게워낸다. 그럴수록 놈과의 대화가, 이걸 아직 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시간이 점점 더 즐거워지고 있다.

배신자가 가늘어진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내 속내를 캐내겠다는 듯이.

“글쎄, 못 믿겠는데. 누구한테 뭘 들은 게 아니고서야······.”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나 본데.

나야말로 놈의 속내를 더 파 보고 싶어졌다. 다른 때면 몰라도 지금은 삽이 푹푹 들어갈 것 같거든.

제 입으로 실력이 좋네, 가식이 취미생활이네, 태연하게 떠들어댔지만, 속으론 여전히 동요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놈의 표정과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나는 게 증거다.

“누구한테 들었는지가 뭐 중요해? 왜, 네 본색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면 앞으로 이 바닥에서 취미 생활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필까 봐 걱정되냐? 그럼 더 잘 숨기지 그랬어. 원래 비밀이라는 건 두 명만 알아도 금방 세 명, 네 명이 되는···.”

“누구야?”

놈이 짜증스럽게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순간.

불현듯 이름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배신자와 세트로 한동안 나를 찜찜하게 만들었던 이름이. 나는 슬쩍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어디 오랜만에 낚싯대를 좀 던져볼까.

이런 경우, 나야 아니어도 본전이고. 만에 하나 맞으면.

“사이먼 리.”

“······!”

이렇게 예상 밖의 대어가 걸리기도 하니까.

배신자의 턱에 힘이 꽈악 들어간다. 잠깐 흔들리던 눈빛이 아주 흉흉해지더니, 텅 빈 허공을 노려본다. 그곳에 사이먼 리가 있다면 당장 목이라도 조를 것처럼.

그러니까, 보자. 사이먼 리는 저놈의 본성을 알고 있다는 거지.

의심하긴 했다. 저놈이라면 사이먼 리를 설득해서 곡을 받아오는 그 과정에 뭔가 수작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넵튠에게 곡을 준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예능 지원사격에 프로모션 활동까지 도와준 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적극적이었으니까. 그래서 사이먼 리를 유심히 살피기도 했었는데. 그 어떤 낌새도, 증거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거 생각보다 훨씬 멍청한 놈이었네.”

배신자가 씹듯이 말했다.

“나한테는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리더니. 나는 더러운 비밀까지 지켜줬는데, 입단속 하나 제대로 못 하고 내 얘기를 함부로 떠들고 다녀?”

이쯤 되면 만선이다, 만선.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더러운 비밀을 지켜줬다. 저놈이 사이먼 리의 약점을 잡고 협박했다는 얘긴데.

나야 동기니까 뒤통수를 치는데 부담이 적다고 쳐도, 사이먼 리쯤 되는 양반한테까지 협박이라. 저놈 저거 생각보다 더 크게 될 놈이네. 될성부른 떡잎 수준이 아니라 벌써 시커먼 잎사귀가 무성하다.

배신자가 날 쳐다보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너 재주 좋다. 사이먼 리도 잃을 게 많아서 제법 입조심을 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입을 연 거야? 술이라도 퍼먹였어?”

“내가 좀, 재주가 좋긴 하지.”

“그런데 그 재주로 증거까지는 못 만들었나 보네.”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뱀처럼 가늘어진다.

“누구나 믿을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 벌써 위에 얘기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아까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던데. 김현조도, 팀장도.”

“음. 모르시지, 아직.”

“어차피 사이먼 리는 내 전화 한 통이면 입 꽉 닫을 거고. 네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들든 백 프로 믿게 하긴 어려울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그런 짓을 할 것처럼 보이는 놈은 아니잖아?”

배신자가 짐짓 선하게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네가 그런 짓을 할 놈처럼은 안 보이지.”

“나야 뭐, 늦든 빠르든 결국 이 팀에서 나갈 거고. 그 사이에 네 소문을 더럽게 만들어놓는 건 나한텐 일도 아냐. 내가 먼저 생각했던 걸 너한테 가로채였다든가, 사실 줄곧 너한테 무시당해왔다든가. 너처럼 유명세를 타고 있는 놈은 이런 소문이 더 빨리 퍼지거든. 재밌잖아.”

놈이 생각만 해도 기껍다는 듯 입꼬리를 길게 찢었다.

기가 찬다, 기가 차. 악질적이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심보다.

팀에 남는다면 바로 밑에서 날 환장하게 했을 거고. 만약 내가 반대해서 팀을 옮긴다면, 내가 쫓아내서 정든 넵튠 애들하고 헤어지게 됐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도 남을 놈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중학교 2학년 때도 저 정도로 인격에 결함 있는 놈은 못 봤는데. 나이 다 처먹고 사회에 나와서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구나.

“대놓고 날 이간질해서 엿을 먹이겠다? 그동안 난 가만히 있겠냐?”

내 말에 배신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지금 동기한테 승진까지 밀린 불쌍한 놈이잖아. 홍보팀 직원도 그렇고, 김현조도 그렇고, 나 쳐다보는 표정 못 봤어? 아까 말했잖아, 난 실력 좋다니까. 이 정도 어드밴티지면 충분히 사람들이 내 말에 더 귀 기울이도록 만들 수······.”

“아, 어드밴티지. 이런 거?”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내 움직임을 쫓아오던 배신자의 시선이, 내가 꺼낸 것을 보곤 멈칫한다.

나는 보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마이크가 떠 있는 화면. 그 아래는 녹음 시간이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종료버튼을 누르자 녹음파일이 자동으로 저장된다.

“어디 보자, 녹음 잘됐나.”

파일을 클릭하고 스크롤 바를 끝쪽으로 옮겼다. 고해성사 뺨치는 배신자의 양심고백이 줄줄 흘러나온다. 공유버튼을 눌러 인터넷 드라이브에 저장하면서 말했다.

“음질 괜찮네. 요즘 스마트폰 쓸만하다니까.”

“너, 이······!”

배신자가 벌떡 일어났다. 이번엔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뭘 그렇게 놀래. 난 취미생활이 녹음이잖아. 몰랐냐?”

“이 새끼가!”

“네 입에서 욕이 나오니까 왜 이렇게 짜릿하냐. 근데 새끼가지고 되겠어? 내가 이 파일을 홍보팀에도 돌리고, 실장님, 팀장님한테도, 아니 그냥 회사 연락망 보고 단체문자 쏠까? 왜, 실수로 그럴 수도 있잖아.”

“너 그거 당장 안 지워!”

테이블을 세게 제친 놈이 단숨에 다가와 내 멱살을 붙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놈의 얼굴.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 다급하고, 열 받은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약 먹었냐? 이걸 지우게. 안 그래도 실장님이나 팀장님이나, 죄다 너보고 착한 놈이니 어쩌니, 칭찬만 해대는 통에 고구마 한 박스를 처먹은 느낌이었는데. 이거 듣고 나면 다 같이 뒷목 잡고 넘어가실걸? 청심환이라도 같이 준비해야 하나.”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보지 말고 그냥 쳐, 개새끼야. 주먹질로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왔다. 턱이 홱 돌아가고 난 다음에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빌어먹을, 혀 깨물었잖아.

발에 영혼을 실어서 배신자의 배를 걷어찼다. 놈이 테이블과 함께 주르륵 밀려난다. 함께 떠밀린 의자가 우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날 노려보는 눈빛에 불똥이 튄다.

“이런 씨발 새끼가······!”

험악하게 달려든 놈이 다시 내 멱살을 붙들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때. 쿵쿵,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뭔가를 세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벽 같은 것.

한쪽 벽을 덮고 있는 암막 블라인드 가장자리가 뭐에 떠밀린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 틈으로 여자 것으로 보이는 가느다란 팔 하나가 불쑥 나왔다. 팔이 블라인드를 위로 쭉 올렸다.

팔의 주인은, 황당한 표정을 한 박 팀장이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유리문 너머로 김현조와 3팀장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3팀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개판이구만.”

< 급물살을 타고 출렁이는 (6)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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