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98화 (98/218)

< 급물살을 타고 출렁이는 (2) >

넵튠의 대기실은 복도 중간쯤에 있었다. 문을 열었더니, 그 안은 신세계였다.

“넓다! 내방보다도 넓어!”

“여기 우리 대기실 맞아? 이름표 잘못 붙은 거 아니야?”

임서영은 여기선 실컷 안무연습을 해도 되겠다며 들떴고, 이태희와 이송하도 푹신해 보이는 소파를 차지하고 흡족해했다. 엘제이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가더니 진짜 우리 대기실이 맞는지 확인하고 왔다.

작년에 썼던 닭장하고 비교하면 여긴 5성 호텔이나 마찬가지다. 컴백 주에 받은 대기실도 이 방의 절반 크기였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이놈의 연예계 바닥은, 진짜 인기가 다다.

“오빠, 여기 진짜 우리가 단독으로 쓰는 거예요? 우, 우리가 급이 이만큼 높아졌나?”

“뭐, 그런 것도 조금 있겠지만 아무래도 오늘 1위 후보라.”

삽시간에 대기실 분위기가 오묘해진다. 이쪽저쪽 눈치를 보던 임서영이 나풀나풀한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 저는 진짜 기대 하나도 안 하고 왔어요. 데뷔하고 2년 동안 언제 해체되나 마음 졸이기만 하다가, 지금 1위 후보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복을 두드려 맞은 일인데요! 음원 1위도 했잖아요! 지금 제 마음속은 평화 그 자체예요, 오빠!”

아니, 너 지금 엄청 동요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묻지도 않았는데 중얼중얼 떠들던 임서영이 돌연 고개를 홱 돌린다.

“태희 언니, 언니도 기대 안 하지?”

“응.”

이태희가 눈을 반쯤 감은 채 대답했다.

“이송하, 너도 기대 안 하지?”

“안 해.”

간식 바구니를 뒤지던 이송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생각하는데, 이 팀원들은 대체로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인데 임서영 혼자 4인분만큼의 유난을 떨어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임서영이 마지막으로 화장대 의자에 앉아서 꼰 다리를 까딱거리는 엘제이를 쳐다봤다. 임서영이 입을 떼기도 전에 엘제이가 선수를 쳤다.

“여기 지금 기대하는 사람 너밖에 없어.”

“아, 아니거든?”

“웃기네. 너 어젯밤에 부모님이랑 친척들한테 문자투표 꼭 하라고 전화하는 거 다 들었거든. 1위 했을 때 소감 멘트도 달달 외우고 있더구만. 벽 얇아서 다 들려, 멍청아.”

임서영의 뺨이 순식간에 벌게진다.

“야! 진짜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1위 되면 머릿속에 아무 생각 안 날 거란 말이야! 생방으로 나가는 건데 미리 외워놔야 바보짓 안 하고 할 말 다하지!”

“거봐라, 기대하고 있구만, 뭘.”

엘제이가 입꼬리를 삭 올리며 웃는다. 울컥한 얼굴로 입만 벙끗거리던 임서영이 소파 아래에 철퍼덕 앉아서 내 다리에 매달린다. 동아줄을 붙잡는 얼굴로.

정서불안증세가 또 도졌나 보다. 어째 오래 버틴다 했지.

“으아아, 오빠, 어떡하죠? 저요, 진짜 기대 안 하려고 했는데요!”

“그래, 그래.”

“문자투표는 무조건 팬덤 싸움이니까 가망 없는 것도 알고. 가망 없는 거에 기대하면 실망만 큰 것도 아는데. 근데 자꾸 1위 트로피가 생각나요! 사실 어젯밤에 숙소 거실에 트로피 장식하는 꿈도 꿨어요!”

양손에 와락 얼굴을 묻더니, 그대로 소파에 머리를 쿵쿵 박는다.

“오빠가 옆에 없었으면 지금쯤 제정신도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보다 더?

이러다 또 똥멍청이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둥근 어깨를 두드렸다.

“기대 좀 하는 게 뭐 어때서. 나도 기대해.”

“······오빠두요?”

“부담가지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조금의 가능성은 있는 거니까.”

혹시나 지난번 음원 순위 때처럼 내 눈치를 보고 더 부담을 가질까 봐, 재빨리 덧붙이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형이랑 형수님한테 투표 좀 해달라고 했는데, 뭘. 네쌍둥이한테 이참에 핸드폰을 사줄까, 그럼 네 표가 더 생기는 건데, 하는 생각도 했다.”

진심으로.

“오빠도 기대했다가 저희 1위 못하면······.”

“그럼 밤에 술이나 한잔 해야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반쯤 녹은 젤리 같이 흐물거리던 임서영이 점점 원상태로 돌아온다. 임서영이 엉금엉금 소파 옆자리에 앉았을 때. 이송하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저도 사실 좀 기대했어요. 혹시 모르니까.”

“너도?”

임서영이 고개를 홱 돌린다.

“진짜야? 1위 못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 얼굴인데?”

“내 얼굴은 원래 이래.”

“그건 그렇지. 너도 기대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눈을 깜빡이며, 임서영이 이태희를 힐끔 본다. 푹 기대앉아서 가느다란 목을 주무르던 이태희가 입을 열었다.

“나도······ 조금은.”

“언니도?”

“내가 만든 노랜데 기대가 아예 안 된다면 거짓말이지. 1위 후보에서 떨어지면, 나도 뭐 술이나 한 병 하고.”

그러면서 이태희가 내 쪽을 보고 슬쩍 웃는다. 난 분명 한잔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다른 애들의 속내를 듣고 난 임서영은 이제야말로 평화가 찾아온 모양이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엘제이를 쳐다본다. 여전히 다리를 꼰 채로, 엘제이가 말했다.

“너도 기대···.”

“안 해.”

“그래, 넌 그럴 거 같았어.”

임서영이 가는 눈으로 툴툴거린다. 팔짱까지 끼고 우리를 쭉 돌아본 엘제이가 혀를 찬다.

“그래서, 이 방에서 김칫국 안 마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오늘 밤 분위기 끝내주겠네.”

“1위 후보 올라간 거 축하해요! 거의 3년 만에 된 거 아니에요?”

“진짜 대기만성형의 아이콘이네. 축하해, 넵튠!”

“축하드려요, 매니저님!”

인사하러 들어간 대기실마다 축하한다는 멘트가 쏟아졌다.

가수들도 출연자들도 더 이상은 넵튠을 중고신인 취급하지 않았고, 연예부 기자들은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질문을 던졌다. 슈가캣하고 엮인 질문들을.

애들한테 일일이 대답하게 했다간 몇 시간도 안 돼서 단독 타이틀을 붙이고 포털 연예란에 뜨겠지. 트래픽을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헤드라인은 덤이고.

“오늘 애들이 1위 후보에 오른 걸로 너무 긴장을 해서, 인터뷰할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하죠.”

애들을 뒤로 보내며 말했더니, 이번엔 기자가 나한테 코멘트를 달라고 들러붙는다. 기삿거리에 목마른 기자들한테는 나도 연예인처럼 보이나 보다.

기자들에게서 벗어나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 넵튠! 이랑 정 매니저님. 지금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목에 인터컴 헤드셋을 낀 피디가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1위 후보 두 팀이 MC석에서 멘트 주고받는 거요. 한번 맞춰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게 사전녹화로 따는 게 아니라 생방이라서.”

“네, 괜찮습니다.”

슈가캣 멤버들 얼굴 보는 건 별로 안 괜찮지만.

“슈가, BYG 쪽이 인원수가 더 많으니까 그쪽 대기실로 갈게요.”

피디가 서글서글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안내했다.

BYG와 슈가캣의 이름이 같이 쓰여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 방보다도 두 배는 큰 대기실이 드러난다.

화장대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슈가캣 멤버들도.

“어, BYG 분들 어디 갔어요?”

피디가 두리번거리며 묻자, 슈가캣 실장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죄송합니다, 피디님. 잠깐 기자랑 인터뷰 좀 하고 온다고······.”

“제가 넵튠 데려올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어디로 갔는데요?”

슈가캣 실장과 피디가 BYG를 찾아온다고 나가자, 넓은 대기실에 남은 건 우리와 슈가캣 멤버들뿐이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카메라가 있는지부터 살폈다. 다행히 없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서로 인사나 나눌 사이도 아니라, 애들과 함께 빈 소파에 앉았다. 넵튠, 아니 임서영을 비꼬지 않으면 죽는 불치병에 걸린 듯한 한샛별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서영아, 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지?”

“나? 난 지금 22년 평생에 제일 운 좋은 시긴 거 같은데. 왜?”

임서영이 어깨를 으쓱한다.

신기한 게, 얘는 슈가캣 앞에서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 앞에선 슬쩍 내리쳐도 깨지는 바가지라면, 지금은 단단한 솥단지 같달까.

한샛별이 눈을 깜빡거리며 계속 말했다.

“아니, 내 말은, 정말정말 운이 좋아서 음원 1위 찍었는데, 하필 경쟁 상대가 우리라서 음방 1위는 물 건너갔잖아. 그러니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혓바닥은 짧아도 말은 바른말로 해야지.”

엘제이가 여유롭게 소파에 기대며 끼어들었다.

“내가 지난번에 얘기 안 했나? 우리 경쟁 상대는 BYG지. 문에도 너희 이름보다 BYG 이름이 위에 있던데?”

“선배니까 그렇지! 근데 넌 왜 자꾸 우리 얘기하는데 끼어들어?”

“아, 그게 얘기야? 난 헛소린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하곤, 엘제이가 임서영과 나를 번갈아 보며 덧붙였다.

“여기 보는 사람도 없고 카메라도 없어요.”

“응. 알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송하가 쥐여주는 초콜릿을 까먹으면서.

엘제이 입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줄줄 나와서 귀가 즐겁다.

쓸데없이 유명한 매니저가 내뱉었다간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는 말들이지만, 똑같은 걸그룹 애들이 서로 주고받는 거야 밖으로 새나갈 걱정도 없고.

엘제이가 슈가캣 멤버들을 하나하나 보며 말했다.

“이참에 궁금한 거나 물어보자. 너흰 왜 그렇게 쟬 싫어하냐? 내가 3년 넘게 봤는데, 저게 어디서 원한사고 다닐만한 재주는 없는데?”

그 말에 임서영도 슬쩍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침묵을 끊고, 슈가캣 중 가장 아니꼬운 표정을 한 멤버가 말했다.

“쟤 하는 짓이 좀, 그렇잖아. 잘난 척 쩔고, 눈치도 없고. 다들 자꾸 데뷔 엎어져서 초조해 하는데 혼자 천하태평, 저는 우리랑 달라서 언제든 데뷔할 자신 있다는 것처럼.”

저건 말에 가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혓바닥이 칼이다. 이러다 가벼운 말다툼으로 안 끝날 것 같아서 멈추려는데, 임서영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슈가캣 멤버들에게 말했다.

“내가 언제 그랬어? 나는 다들 불안해하니까 나라도······.”

“그게 잘난척하는 거지. 너 센터라고, 노래도, 춤도, 우리 중에 제일 낫다고 맨날 우리 눈 아래로 봤잖아. 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도 지금 좀 그렇겠다? 준 대로 받는다더니.”

슈가캣 멤버가 넵튠 애들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거긴 비주얼 센터도 따로 있고, 작사 작곡하는 리드보컬도 있고, 실력, 뭐, 좀 좋은 래퍼도 있고. 다들 팀 해체하고 솔로 활동해도 될 멤버들인데 넌 다 어중간해서 거기선 댄스 말곤 내세울 게 없겠······.”

“더 들을 필요 없겠다, 서영아. 귀만 따갑지.”

임서영 얼굴이 뻣뻣해지길래 혀를 차며 일어났다. 한참 떠들던 슈가캣 멤버가 흠칫 놀라서 쪼그라들었다가, 금방 뭐요, 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동안도 밉살맞다, 밉살맞다 했지만.

정말 구정물을 확 뒤집어씌웠으면 좋겠다.

“너희는 남의 식구한테 뭐 그리 관심이 많아?”

“······그냥 서영이 걱정돼서 한 말인데요?”

“안 해도 돼. 여기서 하고 있으니까.”

잠자코 있던 이태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나직하게 혀를 차더니, 임서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팀에 있는 동안 힘들었겠다.”

진심으로 동감한다. 저 영혼의 쌍둥이들 사이에 있었으면 속이 썩어 문드러졌겠다. 임서영이 저것들과 함께 데뷔하지 않고 넵튠 멤버가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옆에서 이송하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였으면 뭐 집어 던졌을지도 몰라.”

눈빛이 날카로워진 슈가캣 멤버들이 다시 시끄러운 소리를 내려던 때. 엘제이가 테이블 다리를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질투했다는 말을 길게도 얘기하네.”

“뭐? 아니, 그게 아니라 쟤가······!”

임서영을 홱 봤던 한샛별이 다시 엘제이를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근데 누가 보면 너 서영이랑 되게 친한 줄 알겠다? 넌 우리가 말하는 거 이해되지 않아? 너도 쟤 별로 안 좋아하잖아.”

“내가?”

시종일관 느긋하던 엘제이가 그 말에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래, 티 다 나거든? 딱 봐도 싫어하는 거 다 보이던데?”

“별 헛소리 다 듣겠네. 눈알이나 갈아 끼워.”

“너······!”

그때, BYG 멤버들이 도착했는지 대기실 문 너머에서 떠들썩한 소음이 뭉개져 넘어온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직전, 한샛별이 웃는 얼굴로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어쨌든 간에, 오늘 1위는 우리가 할 거니까 너희는 생방송 문자투표 없는 IBC 음방을 노려봐. 아 참, 거긴 사전투푠가? 1위하고 싶으면 그냥 우리 음방 활동 접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네.”

관객석에서 귀청을 찢는 함성이 터졌다.

무대 좌측에 있는 MC석. 두 명의 MC를 사이에 두고 넵튠과 슈가캣, 그리고 BYG 멤버들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정해진 멘트를 주고받는다. 젠장. BYG 팬들의 비명 때문에 넵튠 애들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무대 아래, 끄트머리 팬석에 모여있는 넵튠 팬들에게로 다가갔다. 다른 보이그룹들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그래도 넵튠을 응원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팬들이라

“매니저님! 투표하셨어요?”

나를 알아차린 팬들이 놀라서 수군거린다. 낯이 꽤 익은 몇몇이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당연히 했지. 너희는?”

“저흰 아까 다했고, 넷상에서도 첫 1위 후보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데 까진 다 해보자고 빡시게 노력하고 있어요!”

“팬 페이지랑 음원 사이트 리뷰란에서도 투표 독려하는 중이에요! 대체! 왜! 남팬들은 문자투표의 중요성을 모르냐구요! 음방 1위를 하느냐 마느냐가 그 한 표에 달려있는데!”

하도 자주 봐서 내가 활동 닉네임까지 외운 여자애, 먹송하가 발을 구르며 외쳤다. 어쨌든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를 들어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드륵드륵 울린다. 꺼내보니 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김현조와 홍보팀을 비롯한 회사 직원들도 투표를 넣었다는 메시지다. 기대 안 한다고 했어도 다들 본방은 챙기고 있나 보다.

MC석의 짧은 멘트가 끝난 다음, 바로 넵튠의 무대가 이어졌다.

아까 일 때문에 다들 험악한 분위기였는데, 갈 곳 없는 에너지를 무대에 쏟아붓나 보다. 오늘따라 유난히 열정적이다. 우리 팬석의 팬들뿐 아니라 다른 관객들도 저마다 응원 도구를 흔들며 환호했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 즈음엔 애들도 속이 좀 시원해진 표정들이었다.

이십여 분을 고요한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마지막 1위 확정 클로징을 앞두었을 때 다시 무대로 나왔다.

슈가캣과 BYG는 이미 무대에 올라가 MC 옆에 딱 붙어있다. 그 뒤로 오늘 출연했던 다른 솔로 가수와 아이돌 그룹들이 우글우글 모여든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이송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1위 했으면 좋겠다.”

“그러게.”

이태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주변에 들리지 않을 크기로 몇 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1위를 하면, 슈가캣 멤버들이 머리를 싸매고 앓아누울 테니, 문안전화를 꼭 하자고. 영상통화로.

마지막으로 기대 따윈 안 한다던 엘제이까지 던지듯이 말했다.

“1위 하면, 내가 트로피 들고 그 머저리들 앞에서 탭댄스 춘다.”

그리고 마침내, 애들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다른 관계자 스텝들과 함께 서서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를 쳐다봤다. 높이 치솟은 지미집 카메라가 넵튠 애들 머리 위를 맴돈다. 무대 뒤쪽 LED 화면에 애들의 클로즈업 컷이 떠올랐다.

러닝타임이 촉박한지, MC가 지체없이 큐카드를 읽었다.

[생방송 K팝 콘서트 차트 1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넵튠과 슈가캣, 1위의 영광은 어느 팀에게 돌아갈지 점수 발표해주세요!]

출연자들이 비치던 LED 화면이 점수합산 CG로 전환된다.

디지털 음원 점수, 음반 점수, 방송 점수, 생방송 문자투표 점수. 가장 아랫줄에 큼지막하게 떠 있는 총점까지. 공개홀 안을 메아리치는 함성 속에서 점수가 한 칸씩 나타났다.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할 생각이었는데, 못하겠다. 네자릿수 숫자가 따로따로 흩어져서 돌아다닌다. 결국엔 집어치우고 CG만 뚫어지도록 응시했다.

숨 막힐 만큼 느린 몇 초가 지나가고, 총점에 점수가 떠오른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뜬 애들이 내 쪽을 홱 돌아봤다.

< 급물살을 타고 출렁이는 (2)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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