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부터 우리는 (3) >
“태희야!”
다급하게 소리쳤다.
몸이 기우뚱한다고 느낀 순간, 나는 아래로 추락했다.
“······미래를 보게 될 겁니······ 선우 씨?”
차가운 바닥에 허벅지가 닿고, 함께 넘어진 의자에 짓눌린 발목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 외의 다른 고통은 없었다. 나는 물속에 처박혀있다가 꺼내진 사람처럼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다.
신촌 거리가 아니다.
비명이 터지고, 사람들이 우왕좌왕 흩어지던 그 거리가 아니었다. 내가 있는 곳은 보랏빛 조명이 깔린 독방이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전에 내가 초능력을 고르기 위해 들어갔었던 그 방.
뭐지?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황해서 거친 숨만 가다듬고 있는데 배 피디가 주춤 일어났다.
“어, 지금 그거 연기하신 거예요?”
송유진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거들었다.
“피디님, 우리가 설정한 미래 예지 방식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아까우니까 이건 좀 살려봐요. 실감 났잖아요. 오늘 컨셉이 스릴러인 줄 알았네.”
“좋긴 좋았지? 그럼······.”
배 피디가 넘어진 의자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선우 씨, 방금 미래가 보였어요? 어떤 미래였어요?”
어떤 미래였냐고?
생수 트럭에 부딪혀서 바닥을 구르던 여자의 모습이 선하다. 비명은 귓속에서 메아리치고, 이송하와 어린 아기를 덮치던 트럭을 봤을 때는 숨이 턱 막혔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태희가 뒤에서 나를 밀쳤는데. 그리고 트럭이 우리를 한꺼번에······.
그 뒤로 어떻게 됐지?
아니, 그보다 그 모든 게······ 현실이 아니었다고?
VJ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서 문이 열린다. 후문 주차장으로 나가니, 웅성거리는 스텝들과 출연자용 승합차 두 대가 보인다. 모두가 내가 한 번씩 봤던 것들이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내 발이 주차장의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있다. 제대로 땅을 걷고 있구나. 바닥이 출렁출렁한 느낌이었는데.
검은 승합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익숙한 인사 후에 황재현이 물어왔다.
“너도 카드 골랐지? 무슨 능력이야?”
“······미래 예지요. 혹시······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세요?”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아까 들었으니까.
“아, 미래 예지 능력자는 다른 사람 능력도 다 알 수 있나?”
“그런가 보지. 근데 인상을 어떻게, 좀 풀어봐요. 컨셉이 과한데?”
“배 피디가 또 이상한 거 시켰구만.”
웃고 떠드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게 들린다.
참았던 숨을 내뱉고,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내 기억 속에 있는 일이 그대로 벌어지고 있다. 내가 본 게, 그걸 봤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게 앞으로 일어날 미래라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형태가 달랐다.
노이즈도 없었고, 20여 년 후도 아니었고, 내 의지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지. 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미래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도 미래를 보았다기보다는, 마치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다.
왜지? 왜 지금까지와는 달랐던 거지?
안개가 가득 낀 머릿속에서 실마리를 찾다가, 문득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이태희가 내 등을 밀쳤지만 가느다란 팔뚝에서 나온 힘은 보잘것없었다. 아마 다음 순간 모두 트럭에 부딪혔을 거다.
나도 다쳤겠지. 어쩌면 심각한 상태까지 갔을지도 모르고.
혹시 그거 때문인가?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큰 사고가 닥치기 때문에 미래를 보는 방식도 달랐던 건가? 추측일 뿐이지만, 당장 떠오르는 거라곤 그 정도뿐이다.
그때, 차 문을 열고 이태희가 올라탔다. 나를 밀쳤던 이태희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 순간,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야, 너는 대체 왜······!”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가, 멈칫했다. 실수할 뻔했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태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뭐요?”
“너희 매니저 미래 예지자래. 아까부터 뭐가 자꾸 보이나 봐. 저건 롤플레잉의 경지를 넘어섰어, 표정 리얼한 것 좀 봐. 주원아, 뭐하냐, 너도 게스트한테 지지 말고 분발하란 말이야!”
“형이나 잘해요. 난 지금 감정 잡는 중이야.”
황재현과 임주원이 말을 주고받는 푸는 사이, 이태희가 앞좌석 쪽으로 몸을 숙였다.
“미래에 저한테 무슨 일 생겨요?”
“어······ 오늘 무슨 일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조심해.”
“알았어요.”
색소가 옅은 갈색 눈이 가늘게 휘어진다.
다음으로 아역배우 송유리와 이송하가 연달아 탑승했다. 이송하가 최면술사를 골랐다며 네임펜을 쥐고 내 이마를 곁눈질했고, 임주원과 송유리가 소속사 이적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배 피디가 나한테 주사위가 담긴 박스를 들이밀었다.
주사위를 손에 들었을 때 잠깐,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빨간색 주사위의 스티커를 벗긴 순간 사라졌다.
“초능력자 팀은······.”
한 시간 후에, 신촌 길거리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미션을 수행한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태희와 이송하를 바라봤다. 둘 다 한 시간 후 그곳에서 자기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지금까지 미래를 보고 현재를 바꿔야겠다고 느낀 순간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가장 절실했다.
미친 척하고 못 가겠다고 할까? 사정이 있다거나, 몸이 안 좋다고 쓰러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다거나. 그렇게 하면 사건에 휘말리지는 않을 텐데.
복잡한 머릿속으로, 난장판이나 다름없던 광경이 떠오른다.
밖에서 배 피디가 얼른 출발하라며 창문을 두드렸다. 입술을 깨물며 일단 시동을 걸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는 동안 어떻게든 머리를 짜봐야겠다.
어떻게 해야 가장 나은 방법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
기억 속의 광경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웃고 떠들며 이벤트 행사를 즐기는 커플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가족들. 사고가 터지기 전의 신촌 도로는 지극히 평화롭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가득하다.
잠시 후에 이곳으로 트럭이 난입할 예정이니 피하라고 소리치는 걸로 모든 일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카메라까지 있는 상황이다. 사건이 벌어진 뒤에 내 인생을 덮쳐올 폭풍을 계산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배 피디가 미션지를 나눠주기 전에 말을 꺼냈다.
“피디님,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저기 유플렉스 건물이요.”
“그래요. 근데 서두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연구원 팀도 이쪽 위치 알아내서 오는 중이라니까.”
이송하와 이태희에게 제작진들과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해놓고 뛰듯이 걸음을 옮겼다. 물론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돌아올 생각은 없다.
저곳은 사건장소와 꽤 떨어진 곳이니 나도 안심이고, 다섯 명이나 되는 연예인이 흩어지지 않고 한 자리에 머물러있으면 시민들도 저쪽으로 몰릴 테니까.
“저기 ‘지금우리’팀 와있대! 가보자, 빨리!”
“헐, 웬일이야! 사인, 사인 어디다 받지?”
달려오는 시민들을 지나쳐 커다란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담당 VJ를 떼어내려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카메라를 고쳐 들며 멈췄다.
“저는 앞에서 떼샷 찍고 있을 테니까 일 보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네, 금방 갔다 올게요.”
그가 촬영하는 동안, 나는 건물 안의 또 다른 출구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옷에 단 마이크를 떼고 112에 신고부터 했다.
“음주운전 신고하려구요. 생수 트럭이었는데 운전자가 많이 취한 것 같더라구요. 여기 지금 행사 중이라 도로에 사람들이 많아서, 이러다 누구 다칠 것 같습니다.”
오는 동안 계속 생각해봤다.
그 생수 트럭은 대체 왜 차량이 통제된 구역을 덮쳤을까.
세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트럭이 고장 나서 멈출 수가 없었다. 이 경우 왜 가로수나 다른 쪽으로 틀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 돌진했는지 의문이지만.
그리고 운전자가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미친놈이거나.
그래서 음주운전으로 신고했다. 다른 이유더라도, 음주운전처럼 보였다고 둘러대는 게 가장 편하고 그럴듯하니까.
곧 관할서에서 신고를 접수했다며 연락이 왔다. 바로 출동하겠다고.
도로 한가운데 서서 내가 기억하는 사건장소를 떠올렸다.
그때 내가 연세로의 허리 즈음에 있었고, 소란은 멀지 않은 앞쪽에서 시작됐다. 내가 있던 곳에서 큰길, 로터리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다. 만약에 생수 트럭이 로터리에서부터 입구를 뚫고 들어왔다면 소란이 훨씬 더 길었을 거다.
그렇다면 중간에 골목에서 튀어나왔을 가능성이 크지.
골목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 왼쪽 골목과 맞은편 오른쪽 골목 사이에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놨다. 차량용 횡단보도처럼.
차가 통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고깔 모양의 라바콘과 봉을 세워놓긴 했지만, 만져보니 속이 빈 플라스틱이라 힘이 없다. 그나마 직사각형 바가 모래를 넣었는지 조금 묵직한데, 이 정도는 충분히 뚫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초조한 마음에 혀를 찼을 때. 배 피디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우 씨, 지금 어딨어요? VJ가 선우 씨 못 찾겠다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피디님, 제가 위쪽에서 음주운전 차량을 봤거든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네? 뭐라구요?
“큰 사고 날까 봐 걱정돼서 차가 어디로 갔는지 둘러보는 중입니다. 그, 혹시 모르니까 그쪽에서 시민들 이목을 좀 끌어주시면 안 될까요? 함성 유도를 한다거나.”
-그······ 선우 씨, 지금 진심으로 하는 얘기예요? 컨셉이 아니라?
당황한 목소리다. 내가 들어도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다.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했더니, 배 피디가 얼떨떨해 하면서도 알았다는 답변을 들려줬다. 얼마 안 있어서 도로 뒤쪽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린다.
일단 경찰 출동을 기다리면서, 양쪽 골목 안에 생수 트럭이 있는지 살폈다. 골목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다른 차량은 드문드문 보였지만 내 기억에 있는 차는 안 보인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시민들한테 정보를 투척했다. 처음 음주운전 차 얘기를 했을 땐 ‘뭐 어쩌라고’하는 얼굴이었는데, 연예인 얘기에는 바로 혹한다.
하긴, 차량이 도로를 밀고 들어와서 사람들을 덮치는, 그런 뉴스의 사건 사고에서나 보던 상황을 누가 쉽게 상상할까. 그 광경을 직접 봤던 나도 그 순간에는 저게 진짜인가 싶었는데.
분침이 계속 흘러갔다. 긴장으로 가슴이 뻐근해졌을 때였다.
“선우 씨! 한참 찾았네요, 뭐, 무슨 일이라고요?”
담당 VJ가 카메라를 들고 달려왔다. 그를 돌아본 순간.
거슬리는 엔진 소리와 동시에, 맞은 편 골목에서 느닷없이 트럭이 튀어나와 라바콘을 들이받았다. 짐칸에 생수병을 가득 싣고 있는 낡은 트럭. 내가 봤던, 그 트럭이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트럭은 흥분한 소처럼 라바콘과 탄력봉을 들이받았다. 힘없는 라바콘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것에 얻어맞은 사람이 넘어졌다가 허겁지겁 일어나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뭐, 뭐야? 저 차 왜 저래?”
“시발, 깜짝 놀랐네! 차에 문제 있나, 왜 저 지랄이야?”
“저거 미친놈 아냐? 야야, 경찰에 신고해!”
경찰은 아직 보이지 않고, 생수 트럭은 빙빙 돌면서 지랄을 하더니 라바콘과 그나마 묵직한 직사각형 바를 한꺼번에 들이받고 잠깐 멈춰 있다. 시민들의 표정에 안도가 스쳤다.
하지만 진짜 난장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젠장. 나는 욕지거리를 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나도 내가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 뛰어들어 본적도, 뛰어들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런데 멈춘 트럭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장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진할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내가 봤던 마지막 순간이 떠오르면서 저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순식간에 트럭 옆에 다다랐다. 운전석 손잡이를 잡고 벌컥 열자, 지독한 술 냄새가 끼쳐왔다. 핸들을 잡은 중년 남자가 나를 홱 돌아본다. 눈빛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중년 남자를 붙들고 운전석에서 끌어내렸다.
“······그래서 녹화를 잠깐 멈추고, 지금 녹화가 문제가 아니라, 아니, 문제지. 녹화가 문제는 문젠데, 내가 지금 너무 당황해서 그래. 여기 하마터면 사고 크게 날 뻔했다니까! 경찰차가 오고 난리가······!”
한발 늦게 출동한 순경들과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와 보니, 배정환 피디는 핸드폰을 들고 횡설수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른 스텝들과 출연진들이 다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넵튠 애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안 그래도 흰 얼굴들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오, 오빠, 오빠, 괜찮아요? 우리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이게 대체 무슨······ 어디, 어디 다친 데 없으세요?”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돌아봐요, 빨리. 멀쩡한가 보게!”
임서영과 이태희, 엘제이가 몰려들어 내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이송하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굳은 채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잔뜩 겁에 질린 것처럼.
사실 나도 반쯤 정신이 빠져 있었는데, 애들 반응이 너무 격해서 정신이 엉금엉금 되돌아왔다. 내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달랜 후에야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애들 뒤로, 황재현을 비롯한 다른 연예인들이 다가왔다.
“술 처먹고 도로로 난입한 차를 몸으로 막았다며? 진짜야?”
“달리는 차를 세우고 운전사랑 막, 싸웠다고 그러던데? 진짜예요?”
“······아니에요.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국가대표를 했죠.”
나는 참았던 긴 숨을 뱉으며 대답했다. 소란스러운 틈에 끼니까, 그제야 일이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긴장한 상태였었는지 실감이 났다.
전화를 끊은 배 피디가 내 쪽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저기, 피디님. 오늘 문화시장인가, 그 이벤트 행사 주최 측이라는데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다고······.”
FD가 행사 측 관계자들과 구청 직원을 데려왔다. 조금 전에 나한테도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한 남자 하나가, 배 피디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방금 사고 때문에 시민들이 놀라가지고, 분위기가 좀 뒤숭숭해서요. 혹시 폐가 안된다면은 연예인분들이 괜찮으니까 안심들 하시라고 한마디씩만 해주시면 안 될까 싶어서요.”
“저희가요?”
황재현의 물음에 행사 관계자가 나랑 연예인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직접 사고 수습하셨던 분도 여기 계시고, 아무래도 유명한 분들이니까 한마디씩만 해주시면 금방 분위기 진정될 것 같아서요. 어떻게 좀, 부탁드릴 수 없을까요?”
“뭐, 한마디 하고 가는 거야 어려운 건 아닌데······.”
“일단 진정만 되면, 잠시 후에 인디밴드 도착해서 공연 시작할 거니까 그때부턴 자연스럽게 분위기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디밴드. 공연. 그 얘기를 듣자마자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이 사건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가 예능에 출연한 이유가.
나는 사방에 깔린 카메라와 시민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바쁜 넵튠 애들을 한 번씩 돌아봤다. 그리고 대화 중인 배 피디와 행사 측 관계자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이왕 하는 김에, 넵튠이 공연을 한 곡 하고 가면 어떨까요?”
***
스텝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배 피디는 자그마한 무대 앞에 세팅되는 카메라와 조명 장비들을 곁눈질하며 짧은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근처에서 기다리던, 정선우의 담당 VJ에게 손짓했다.
“테잎 확인 좀 해야겠다. 현장 그림 찍혔으면 보도국으로 보내달래.”
듣고 있던 송유진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도국이요? 뉴스 나간대요?”
“심하게 다친 사람도 없고 해서 뉴스거리가 될만한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 손에 날그림이 있으면 독점이니까. 그림 확인하고 단신으로 낼 만한지 결정하겠다는 거지.”
배 피디가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뉴스도 뉴스고, 우리는 이걸 어떻게 편집을 해야······.”
고민에 잠긴 듯 말을 멈추었던 그가 VJ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너 막판에 선우 씨 팔로잉했지? 그 사고상황에 선우 씨가 뛰어든 거, 그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찍었어?”
VJ가 들고 있던 6mm 카메라를 건네며 대답했다.
“다 찍었죠.”
< 지금부터 우리는 (3)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