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운의 상징 (2) >
모두의 시선이 화면에 쏟아졌다.
음원 사이트 창의 신곡 카테고리에 익숙한 앨범커버가 올라왔다. 클릭해서 들어가자 준비기간 동안 듣고 또 들었던 5개 트랙이 주르륵 뜬다. 더블 타이틀 두 곡에는 타이틀이라는 표시가 붙어있다.
국내 음원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음원 사이트 리뷰란에는 음원 공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인트로만 들어도 고퀄리티’, ‘넵튠 흥해라!’ 같은 응원 리뷰를 보고 있자니 나도 심장박동이 좀 빨라진다. 실시간으로 순위를 볼 수 있는 거라 그런지, 예능이나 드라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몇 위로 차트에 진입할까?
“실장님, 5분 예상차트 언제 떠요?”
내 물음에 김현조가 헛웃음을 흘렸다.
“야, 임마. 5분 예상차트는 1위부터 3위까지밖에 안 떠.”
“그중에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야야, 고양이 수호령이 역대급 히트를 해서 네가 지금 눈이 너무 높아지다 못해 머리꼭대기에 붙었나 본데, 음원 탑 찍는 거, 그거 말처럼 쉬운 거 아니다.”
김현조는 웃으며 넘겼지만, 난 진지하다. 아까 지붕킥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농담은 아니었고.
물론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건 안다. 음원다운로드 횟수랑 스트리밍 횟수가 치솟아서 데이터 수치가 말 그대로 그래프를 뚫고 올라간다는 거니까. 그게 쉬운 거였으면 음원을 출시하는 가수들이 그렇게 목을 맬 리가 없지.
그래도 어쩌면, 하는 기대가 이미 목구멍까지 올라와 있다.
성공이 예정된 앨범. 이제 신인 딱지는 떼도 될 만큼 올라간 인지도. 빵빵한 프로모션. 이 정도면 화려한 진입을 노려볼만하잖아?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인지,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오빠가 김칫국 7인분을 바가지로 퍼 드셔서 그런가, 오히려 제 마음은 안정되네요.”
임서영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웃었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다. 애들은 꼭 50위권 안으로 진입했으면 좋겠다느니, 그래서 곡이 차트 첫 페이지에 떴으면 좋겠다느니, 하며 소박한 기대를 늘어놓았다.
이 공간에서 기대치가 이 정도로 높은 건 나뿐, 아니, 나랑 배신자 둘 뿐인 것 같다.
잠시 후 김현조가 말했다.
“옜다, 5분 예상차트.”
재빨리 화면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없다. 1위부터 3위까지의 예상차트에는 넵튠의 이름이 없었다. 다들 김칫국이니 뭐니 해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대체 몇 위지? 머릿속으로 다음 숫자들을 점치고 있는 동안.
마침내 실시간 차트가 변했다.
“50위권 안에는 들어갔을 거라고 믿고, 50위부터 올라간다.”
“오빠, 빨리, 빨리, 심장마비 걸리겠다!”
“50위부터 올라갔는데 없으면?”
“야아! 너 이런 때까지 재수 없는 소리 할래? 말이 씨가 되면 어쩌려고! 너 빨리 선우 오빠 한번 터치해, 중화시켜!”
불같은 성화에 결국 엘제이가 내 팔을 스치듯 만졌다.
김현조가 불쑥 말했다.
“있다, 42위.”
뭐?
애들이 탄성을 터뜨릴 때, 나는 하마터면 희한한 소리를 낼 뻔했다. 만약 김현조가 바로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면 집계가 잘못된 거 아닌가 하고 음원 사이트에 전화했을지도 모른다.
“웬일이냐, 이거. 우리 수록곡이야.”
“······타이틀이 아니라 수록곡? 수록곡이 42위로 진입했다고? 호, 혹시 집계 잘못된 거 아니야?”
제가 말해놓고 놀란 임서영이 황급히 내 팔을 붙잡는다.
멈칫했던 화면 스크롤이 다시 움직인다. 김현조도 긴장했는지 달칵거리는 마우스 소리가 몇 번이나 들렸다. 곧이어 스크롤이 두 번 더 멈췄다.
35위, 33위. 다른 수록곡 두 곡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즈음 연습실 안의 공기는 후끈하다 못해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라이터라도 던지면 연쇄폭발이 일어날 것 같다. 다들 말 한마디 못하고 눈만 휘둥그렇게 뜬 채 화면을 쳐다봤다.
스크롤이 계속 올라갔다. 20위권에는 넵튠의 앨범커버가 안 보인다. 차트 순위의 앞자리가 1로 바뀌자 침 넘어가는 소리가 앞뒤에서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스크롤이 완전히 멈췄다.
“······여깄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새, 생시 맞을걸? 맞지? 맞지, 언니?”
“맞는 것 같은데. 오빠, 다른 사이트도 확인해봐 봐.”
“으아, 선우 오빠가 진짜로, 정말로 행운의 상징인가 봐! 머리카락 부적이 효험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고선 이럴 수가 없어!”
“회사에서 음원 사재기하고 그런 건 아니지? 요즘 말 많던데.”
발칵 뒤집어졌다. 뺨은 너나 할 것 없이 흥분으로 새빨갛고, 목소리들은 점점 높아져서 연습실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임서영은 오만가지 감정이 솟구치는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발을 구른다. 엘제이는 집요하게 김현조에게 사재기 여부를 확인하고 있고, 이태희는 가방에서 샴페인을 꺼내왔다. 이송하의 손에는 잔과 먹을거리가 들려있다.
배신자 역시 좀 아쉬운 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저 사이에서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그 대열에 끼지 못한 건 나뿐이다.
다시 한 번 화면을 확인했다. 변함없다.
이태희의 자작곡인 위성이 14위.
사이먼 리가 작곡한 물고기자리가 11위.
그게 타이틀 두 곡의 진입순위였다.
뜬눈으로 어슴푸레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머리가 복잡해서 밤새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음원 어플을 들락거리며 정각이 될 때마다 실시간 차트 순위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행히 순위가 상승하긴 했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상승 폭이 작다.
아침 순위는 위성이 11위, 물고기자리가 10위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성공적인 진입이다.
김현조와 넵튠 애들 모두 샴페인을 터뜨리며 새벽 늦게까지 행복을 만끽했고, 3팀장과 홍보팀을 비롯한 다른 팀 직원들도 이 정도 순위면 선방했다며 앞다투어 안도와 축하의 문자를 보내왔으니까.
그러니 분명 성공적인 진입은 맞다. 원래의 미래를 몰랐다면 나도 성공을 거둔 걸 기뻐하며 샴페인을 퍼마시고 곯아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봤던 미래가, 내가 들었던 그 이야기가 쉼 없이 머릿속을 헝클어놓고 있다.
마치 손에 쥐기 일보 직전이었던 걸 놓친 느낌이다.
애초에 내 기대가 너무 높았던 건가? 원래도 10위권으로 진입해서 순위가 올라갔나?
하지만 음악방송 1위를 할 히트곡치고는, 시작이 너무 약한 거 아닌가? 혹시 뭔가를 계기로 급상승한다거나, 역주행하기라도 하나?
아니면 예정을 벗어나 더블 타이틀로 바꾼 것 때문인가? 대중의 관심도가 분산돼서 더 올라갔을 순위가 주춤하고 있는 건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다시 앨범 리뷰란을 살펴봤다.
-전곡 다 퀄리티 넘나 좋네요. W&U에서 앨범도 겁나 예쁘게 만들었던데, 이건 앨범으로 소장해야 할 듯!
-넵튠 또 망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이 정도면 관짝 뜯고 나왔음.
-이대로 안 떨어지게 순위 유지하고 롱런하는 게 관건일 것 같습니다. 알박기해야죠.
-노래가 좋아서 순위 확 꺾일 것 같진 않아요. 수록곡까지 다 40위권 이상으로 차트인 했고, 타이틀 두 곡도 진입 잘했으니까 음방 뛰고 예능 최대한 많이 나가서 쭉쭉 끌어올렸으면 좋겠는데.
-이태희 자작곡 쩌는데요? 제일 좋은 듯. 무한 스트리밍 중.
-이태희 자작곡 222 왜 자작곡을 더블 타이틀로 올렸는지 알겠음.
-솔직히 순위 더 올라갈 수 있는 곡들인데 화력이 좀 아쉽네요.
-이제 첫날이니까 더 치고 올라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봄.
앨범 퀄리티에 대한 반응은 아주 긍정적이다. 별점도 4.8로 높은 편이고, 커뮤니티나 SNS 반응을 봐도 호평이 절대다수다. 이 상태에서 방송으로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입소문도 퍼지면 순위가 더 올라가겠지.
메마른 입술을 쓸며 생각했다.
그래, 조금 더 지켜보자.
막상 스케줄의 홍수 속으로 뛰어들자 느긋하게 고민에 잠길 틈 따윈 없었다. 신곡과 애들을 노출시키기 위해 최대한 빽빽하게 잡긴 했지만, 직접 소화해보니 악마의 스케줄이 따로 없다.
공중파와 케이블 음악방송, 교양방송의 축하무대, 그 밖의 소소한 행사무대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무대에 섰다. 앨범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팬 사인회도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메이크업하고 온종일 뛰어다니다가 새벽에 잠이 드는 나날이 이어졌다. 애들은 데뷔이래 제일 바쁜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바쁜 스케줄이 반가운지 나날이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애쓴 만큼 음원 순위도 조금씩 조금씩 올라갔다.
사이먼 리와 함께 출연한 토크쇼가 전파를 탔을 때는 내심 꽤 기대했다. 연예인 게스트들이 떼로 출연해서 떠드는, 일명 떼 토크긴 했지만, 스타 매니저 같은 1시간짜리 공중파 예능이었으니까.
하지만 스타 매니저 때에 비하면 파급력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본방 모니터링하다가 눈알 빠질 뻔했다. 애들 얼굴이 너무 안 나와서 풀샷 화면에서 찾느라고.
그래도 공중파라고, 방송 직후에 물고기자리가 꾸역꾸역 올라서 6위를 찍었고, 위성도 8위로 진입했다.
더디긴 하지만 꾸준히 오르는 순위를 보며 초조함을 누르고 있을 때. 올라가도 부족할 순위가 별안간 한 계단씩 덜컥덜컥 떨어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슈가캣 때문에.
“이건 BYG 팬덤 화력이야.”
김현조가 혀를 차며 말했다. 노트북에서는 자정에 공개된 슈가캣의 디지털 싱글이 재생되고 있다. 분명 슈가캣은 삼인조 걸그룹인데, 남자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주객전도도 이 정도면 쪽팔린 짓이지. 이게 어딜 봐서 슈가캣 노래에 BYG 피쳐링이야, 누가 들어도 슈가캣이 BYG 노래에 피쳐링 한 거지. SNS 홍보도 BYG 애들이 다 하던데. 걔들 팬덤도 슈가캣 노래라고 생각 안 하더라.”
BYG 멤버들이 참여한 슈가캣의 신곡은 공개되자마자 3위로 진입했다. 그리고 오전을 지나 지금은 2위로 올라갔다. 음원에서 이 정도 성적이라면 앨범판매량도 나쁘지 않을 거고. 방송활동까지 BYG랑 함께하면 화제성도 크겠지.
이 상태로 가면 음악방송 1위는 넵튠이 아니라 슈가캣이 할 판이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건지, 상황을 뒤집으려면 어딜 다시 틀어야 하는 건지 감도 잘 안 잡힌다.
TOP10에 안착한 걸로 흡족해하던 넵튠 애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말문을 잃었다. 특히 임서영은 생기가 쭉 빠져나가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졌다.
다음 음방 촬영 때는 슈가캣 애들과 맞닥뜨리게 될 텐데, 득의양양할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
“노래만 놓고 보면 분명 우리게 나은데. 팬덤이 깡패다, 깡패야. 슈가캣 얘들 원래 BYG 피쳐링은 예정에도 없었다더구만, 갑자기 이게 웬······.”
김현조의 말이 다트처럼 귀에 꽂혔다.
“BYG 피쳐링이 예정에 없었어요?”
“애초 앨범 기획에는 없었대. 그런데 중간에 바뀐 거라더라고.”
혼란의 도가니다.
슈가캣의 높은 음원 순위. BYG의 피쳐링. 이 모든 일이 원래 미래에서도 일어났던 일일까. 아니면 현재가 바뀐 걸까.
넥스트 K스타 콘서트 날 마지막으로 봤던 슈가캣을 떠올렸다. 똥 씹은 얼굴로 사라졌지. 자기들도 우리와 동시에 컴백한다면서, 마치 한번 두고 보자는 듯이.
스타 매니저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는 넵튠을 보는 게 배 아파서 BYG를 끌어들인 거라면, 이건 분명 원래 미래에는 없었던 일일 거다. 현재가 바뀐 거다.
산 넘어 산도 아니고. 안 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 순위가 낮아서 혼자 골머리를 썩이는 중인데 또 다른 변수까지 나오니, 용량초과로 머리가 폭발할 것 같다.
그래. 일단 변수는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
이번 앨범이 원래 미래만큼의 성공을 거두려면, 이태희의 자작곡이 히트곡 소리를 듣고 음방 1위를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대중에게 신곡을 효과적으로 노출시키고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지?
궁리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 메시지다.
또 누군가의 축하 메시진가 싶었는데, 예전에 몇 차례 연락받았던 작가의 번호였다.
-매니저님, 내부회의 언제쯤 결론 날까요?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는 중입니다. 새 앨범도 나오셨으니까, 넵튠이랑 같이 출연하시면 저희가 BGM에 뮤직비디오까지 신경 많이 써 드릴게요.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김현조를 돌아봤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다.
“실장님. 저까지 끼워서 출연해달라고 들어왔던 예능들 있잖아요. 일단 상황 지켜보려고 킵 해놓은 것들.”
“어, 왜?”
“그거 나갈게요.”
< 행운의 상징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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