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89화 (89/218)

< 행운의 상징 (1) >

[‘넵튠’ 컴백 임박! 오늘 자정 전곡 음원 공개 예정]

걸그룹 넵튠의 컴백이 임박했다.

히트곡메이커 사이먼 리의 참여로 기대를 모았던 넵튠의 미니앨범이 드디어 베일을 벗는다. 넵튠은 오늘(3일) 두 번째 미니앨범 ‘수호성(guardian)’ 발매 기념 언론 쇼케이스와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본격적인 컴백 신호탄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더블 타이틀을 내세운 이번 앨범은 사이먼 리 특유의 리드미컬하고 청량한 팝 댄스 ‘물고기자리’, 리더 이태희의 자작곡 ‘위성’을 비롯해 총 5트랙으로 구성된다.

전곡 음원과 뮤직비디오는 오늘 자정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헐. 찾아보니까 얘네 앨범 다섯 번째임. 징하게 말아먹었네.

-앨범 리스트 보면 공동묘지예요. 다 묻혔음.

-얘들은 이번 앨범이 성공하느냐 마냐가 진짜 중요하죠. 이송하 드라마로 터지고 임서영 예능 반응 오는 거 보면 개개인 포텐은 있는 것 같은데, 까딱하면 팀 해체각. 무조건 노래가 터져야 하는 타이밍이에요.

-이번 앨범도 망하면 넵튠은 진짜 하늘이 버린 거.

-이송하 버프 받고 사이먼 리 곡이면 망하진 않을 것 같은데?

-남돌도 아니고 이송하 버프는 음원에선 안 통하죠.

-음원 성적은 팬덤 화력이 겁나 세서 조직적으로 스트리밍 돌리거나, 노래가 다른 팬덤 씹어먹을 만큼 좋아야 함.

-그래도 지금까지랑은 인지도가 다르니까 이번엔 비벼볼 만할 듯.

-설레발 치지 말고 두고 보죠. 오늘 자정이면 대충 결론 날 텐데.

상암동 KS무브홀.

어둑어둑한 장내에 연한 보랏빛 조명이 흩어졌다. 무대에 설치된 거대한 LED 화면에는 별이 쏟아지는 그래픽 영상이 흘렀다.

1층과 2층 프레스 석에는 이백여 명의 미디어 관계자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취재기자들은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실시간으로 기사를 적었다. 잠시 후 쇼케이스가 시작되면 몇몇 키워드만 첨가해서 남들보다 빨리 기사를 표출할 수 있도록.

“얘들 음원 성적 얼마나 나올까? 성수기이기도 하고, 차트 상위권이 견고하니까 10위권 안으로 뚫고 올라가긴 힘들겠지?”

“대박, 중박, 폭망, 세가지 버전으로 기사 다 써놔야지.”

“일단 2~30위권으로만 진입해도 성공이죠. 노래만 좋으면 음방하고 예능 활동하면서 치고 올라갈 거고. 벌써 예능 많이 잡았을걸요?”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넵튠의 앨범 성적이나 앞으로의 활동방향에 관해 이야기하는 기자들도 있었고, 자극적인 가십거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기자들도 있었다.

프레스 석에서 떨어진 통로.

인터넷 연예 가십지의 기자 몇 명이 넵튠의 대기실 앞을 기웃거렸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젊은 여기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엄청 조용하네. 부장이 단독 건져오라고 지랄인데.”

“얘넨 거의 공백없이 바로 나오는 거지? 살쪘거나 얼굴 부었으면 그걸로 소설 하나 나올 텐데. 팀 내 불화 같은 건 티 안 내겠지?”

“누구 하나 울었으면 좋겠다. 그럼 리드 뽑기 편할 텐데.”

“야, 야.”

수군거리던 기자들이 한쪽을 보곤 입을 닫았다.

얇은 니트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기자들은 단번에 그 얼굴을 알아봤다. 정선우. 그들이 설 연휴에 앞다투어 기사를 써서 올렸던 대상이었으니까.

쇼케이스를 앞두고 다른 W&U 관계자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뛰어다니는 것과 달리, 그는 희한할 정도로 느긋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지금 큐카드 챙겨서 가고 있어요. 제가 애들 데리고 예상질문 준비시킬게요. 아, MC는 건영이랑 홍보팀에서 동선 체크하고 안내하기로 했어요. 쇼케이스 끝나면 MC랑 같이 인증샷 하나 찍어야···.”

“저기요!”

W&U 관계자 중에서 가장 기삿거리가 되는 사람이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앞으로 넵튠 활동 관련해서 질문 몇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내부에서는 이번 앨범 성적을 어떻게 예상하고 있습니까?”

“이송하 씨 개인 활동은요? 차기작으로 검토 중인 작품 있나요?”

“사이먼 리가 넵튠이랑 예능 동반 출연해서 지원사격할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스타 매니저로 터진 반응이 아직 식지 않고 있는데, 매니저님도 함께 출연하실 계획 없으신가요?”

쏟아지는 질문을 듣고 있던 정선우가 입을 열었다.

“제가 지금은 좀 급해서요.”

그러면서 아직도 들고 있는 핸드폰을 턱짓으로 가리킨다.

“잠시 후에 넵튠 멤버들 대상으로 공동인터뷰 시간 마련돼 있으니까, 그때 질문해주세요.”

기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만 달싹거렸다. 분명 고압적이거나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계속 달라붙기 어려운 분위기다.

여기자가 멀어지는 정선우의 뒷모습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예전에 음방 대기실에서 저 사람 봤었는데. 그때 좀 친해질걸.”

*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묵직한 공기가 달라붙었다.

문을 기준으로 중력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 같다. 오늘 곡을 발표하는 건 넵튠이지만, 오늘을 위해 몇 달을 달려온 건 W&U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대기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꽉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한 느낌이다.

“선우 씨! 어디 있었어요? 전화도 계속 통화 중이고.”

홍보팀 여직원이 급히 다가왔다.

“왜요, 그새 무슨 일 있었어요?”

“애들이 아까부터 계속 선우 씨 찾더라구요.”

“애들이요?”

대기실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멈칫했다.

눈앞의 광경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메이크업을 끝마치고 무대의상으로 갈아입은 애들이 소파와 화장대 의자에 앉아있다.

이번 앨범 컨셉에 맞춘 의상은 우아하면서도 전투적인,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담은 드레스다. 신화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한 손에는 하프를, 다른 손엔 활을 들려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 찾았다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묻자, 소파 위에 다리를 끌어안고 앉은 임서영이 날 쳐다본다. 사랑스럽게 꾸며놓은 게 쓸모가 없다. 표정이 악령에 쓰인 표정이라서. 엑소시즘이 시급해 보인다.

“오빠, 지금 밖에 비 와요?”

“어, 왜?”

아침부터 하늘이 심상찮더니, 조금 전부터 봄비가 부슬거리며 내리고 있다. 봄을 알리는 첫 비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봄이 오긴 왔구나, 싶었지.

그런데 어째 애들 분위기가 더 꺼림칙해진 것 같다.

임서영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영 달갑지 않은 표정들이다.

“왜들 그래?”

“오빠. 비가 오는 날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요.”

“슬픈 전설이지. 눈물 없인 못 듣는.”

임서영이 운을 떼고, 엘제이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거든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장단을 맞췄다.

“무슨 전설?”

“작년 가을에 디싱으로 컴백했던 날. 그날도 비가 내렸거든요.”

“······그런데?”

“정말 공들여서 준비한 곡이라 뜰 줄 알았거든요. 그때도 자정에 음원 공개돼서 눈 시뻘겋게 뜨고 기다렸는데, 그때까지도 망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어요. 그땐 몰랐죠.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걸.”

그 날을 떠올리는 듯, 임서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천둥 번개가 치는 효과음이라도 넣어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12시 딱 지나자마자 노래가 공개됐는데, 몇 위로 차트 진입했게요?”

듣기론 팔십몇 위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87위였어요. 그리고 2시간, 2시간 만에 광탈, 차트 아웃됐어요.”

“아.”

임서영이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좌절했다.

“그런데 오늘, 또, 비가 오잖아요! 우리한테는 불행의 상징이라구요. 예감이 안 좋아요. 그래서 비장의 수단으로 오빠를 찾은 거예요.”

“미안. 비를 멈추는 능력은 없다.”

“그게 아니라, 오빠는 우리 복뱀이잖아요! 행운의 상징! 옆에 붙어있으면 불행이 중화될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오빠를 팔팔 끓여서 마시고 싶다구요! 오빤 이 심정 모르실 거예요!”

“너 지금 제정신 아닌 건 알겠다.”

뭐,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을 위해 몇 달간 밤잠도 줄이고 악착같이 매달렸으니까.

몸에 힘을 빼고 소파에 풀썩 기댔다.

옆에 붙어있는 걸로 플라세보 효과를 볼 수 있다면야.

“그래, 어디 마음대로 해봐, 그럼. 끓여 마시는 거 빼고.”

아예 판을 깔아줬더니 되레 당황한다. 우물쭈물 다가온 임서영이 내 어깨와 팔을 검지 끝으로 쿡쿡 건드렸다.

멀찍이서 다른 스텝들이 웃으면서 인증샷을 찍는다. 이건 무조건 SNS에 올려서 기자들한테 뿌려야 한다면서.

그리고 언제 들어왔는지 김현조는 나더러 돌하르방 같다며 낄낄거리고 있다. 코 문지르면 아들 낳게 해준다는 그거.

마음을 비우고 앉아있는데, 옆에 앉은 이송하가 나한테 초콜릿 과자를 내민다. 이제는 이송하한테 뭘 받아먹는 것도 익숙해졌다. 혀를 감싸는 달달한 초콜릿을 맛보며, 장난처럼 물었다.

“왜, 송하 너도 나한테 뭐 필요해?”

“아뇨. 전 이거면 됐어요.”

이송하가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붙는다. 그리고 눈을 내리감으며 말했다.

“안정하는 중이에요.”

애들한테 기자들의 예상질문을 준비시켰다. 그러는 동안 임서영도 진정이 돼서 돌하르방 코스프레도 끝냈다. 다른 애들은 뭐 문제없나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이태희가 내 등을 툭 건드렸다.

“오빠, 잠깐만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곤 행거가 놓인 간이 탈의실로 들어간다. 슬쩍 따라 들어갔다. 이태희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쓸었다. 애들 앞에서는 가을 호수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정말 잘 될까요?”

“왜, 너도 비 오는 날의 슬픈 전설이 마음에 걸려?”

이태희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떠올랐다.

“아뇨. 곡을 좀 더 손볼걸,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걱정하지 마. 곡도 좋고, 리허설 무대도 좋았어. 기자들 반응도 좋을 거야.”

웃으며 말했더니, 이태희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다시 한 번만.”

“곡도 좋고, 무대도 좋았어. 기자들 반응도 좋을 거야.”

“한 번만 더요.”

“곡도······.”

“마지막으로.”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내 앞에서 걱정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홀가분한 표정을 짓던 이태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연하고 침착한 리더 이태희가 돼서 큐카드를 살펴본다.

웃으며 다시 소파에 앉았을 때였다.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던 엘제이가 벌떡 일어났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내 앞까지 다가오더니, 팔짱을 끼고 날 내려다본다.

“넌 또 왜 그래? 원하는 게 뭐야?”

엘제이가 느리게 입술을 핥아 올린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서 내 앞머리를 슥 만진다. 본능적으로 목이 뒤로 빠졌다. 얘 앞에서는 좀처럼 방심할 수가 없다.

무슨 수작인가 싶어서 미간을 좁혔더니, 엘제이가 말했다.

“머리 좀 잘라주세요.”

이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야.

“아, 머리 말고 머리카락이요.”

“머리카락을 왜?”

“왠지 부적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요. 행운의 부적?”

엘제이의 입꼬리가 사악 올라간다. 이거 하난 분명히 알겠다. 다른 애들이랑은 달리, 얘는 긴장돼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저건 분명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엘제이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온 순간.

정확하게 세 쌍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쏘아졌다. 가장 먼저, 부적이라는 키워드에 홀랑 넘어간 임서영이 백팔 배라도 올릴 기세로 달려왔다.

“오빠, 저도! 저도요! 저도 한 가닥만 뽑아주세요!”

“이왕 뽑으시는 김에 제 것도.”

“······저는 두 가닥, 아니 세 가닥이요.”

결국, 멀쩡한 머리를 몇 가닥이나 뽑아야 했다.

*

한해 데뷔하는 아이돌만 수십 팀. 새로 쇼케이스를 열고 컴백하는 기존 가수들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백을 훌쩍 넘어간다.

그러니 기자들에게 아이돌 그룹의 쇼케이스는 익숙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이벤트였다. 보고 또 본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는 것만큼이나 지겨운 이벤트.

기자들이 기대하는 건 천편일률적인 무대 공연이 아니었다. 신곡에 대한 코멘트는 미리 W&U 홍보팀 측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를 적당히 발췌해서 붙여넣으면 된다.

기자들의 관심사는 그 뒤에 이어질 간담회였다. 간담회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 멤버들로부터 기삿거리가 될만한 멘트를 얻을 것인가.

때문에, 넵튠 멤버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 인사를 할 때까지도 기자들은 노트북 화면에 코를 박고 있었다.

하지만 첫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 후.

기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이야······ 이거 AR 튼 거 아니고 라이브 맞지? 실력 탄탄하네.”

“쟤들 실력이야 넥스트 K스타로 증명했잖아요. 근데 이송하가 좀 떨어진다더니 실제로 보니까 괜찮은데요? 무대구성도 좋고, 퍼포먼스도 좋고, 올해 들어 본 쇼케이스 중에 제일 괜찮네요.”

“곡도 잘 빠졌는데? 이게 그거지? 사이먼 리가 작곡한 곡?”

“이 정도면 W&U에서 공격적으로 밀어줄 만하네요. 이거 운만 따라주면 성적도 괜찮겠는데요?”

프레스 석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개중에는 취재하러 온 게 아니라 공연을 감상하러 온 것처럼 고개를 까딱거리며 후렴구를 따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공연이 끝난 것을 진지하게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듯, 두 번째 무대가 시작됐다.

다이나믹하고 파워풀한 리듬, 하지만 스치는 바이올린 선율이 서정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넵튠 멤버들의 특색있는 음색, 그리고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연상케 하는 의상과 안무가 어우러진 무대. 그건 신비하다는 수식어가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무대가 끝날 즈음, 기자 한 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야, 사이먼 리 곡이 이건가?”

“이건 이태희 자작곡이에요. 보도자료에 작사작곡 혼자 다 했다던데. 실력파 걸그룹에다가 아티스트 이미지까지 씌우려고 언플하는 건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되게 괜찮은데요?”

“생각보다? 난 사이먼 리 곡보다 방금 그게 더 좋던데?”

공동인터뷰가 진행되자 곳곳에서 쉴 틈 없이 질문이 터져 나왔다. 진행을 보는 MC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쇼케이스를 여러 번 다녔지만 이만큼 질문이 많은 쇼케이스는 처음이라며.

“이태희 씨 자작곡이 더블 타이틀로 채택됐는데요. 작곡과정에 비하인드스토리 같은 건 없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무대 테이블 중앙에서 이태희가 마이크를 들었다.

“있죠. 매니저 오빠가 아니었으면, 이 곡은 이번 앨범에서 아예 빠졌을 테니까요.”

“매니저라면 혹시······ 정선우 씨요?”

“네.”

기삿거리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자, 기자들의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노트북 화면에는 ‘이태희 자작곡 비하인드’, ‘이태희 자작곡 매니저 아니었으면.’ 따위의 리드가 줄줄 이어졌다.

이태희가 연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계속 말했다.

“곡 작업할 때 슬럼프가 왔었는데, 그때 매니저 오빠가 숙소에 찾아왔어요. 저한테 선물이라고 뭘 주는데, 보니까 안에 술이랑 안주가······ 마트 진열대를 싹 쓸어담아 왔다고 하더라구요.”

“왜 하필 술을?”

“아, 제가 뭔가 마시면서 작업하는 게 버릇이 돼서요. 그거 주시면서 땡기는 거 골라 마시면서 곡 만들라고 하셨는데, 덕분에 이틀 후에 곡을 완성했어요.”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눈이 가늘어지며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그 후에도 제 곡을 더블 타이틀로 밀어주기도 하셨고. 이 곡이 좋은 성적을 얻는다면, 그건 매니저 오빠 덕분일 거예요.”

*

“밖에 비 그쳤어요.”

연습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연습하다가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넵튠 애들, 그리고 한쪽에서 얘기 중이던 김현조와 배신자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눈을 댕그랗게 뜬 임서영에게 말했다.

“불행 끝났네, 이제.”

“지, 진짜요? 진짜로 비 그쳤어요?”

“그래. 비 그치고 하늘에서 한줄기 서광이 비치더라.”

“정말요?”

“이건 거짓말.”

애들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음을 흘린다.

김현조와 배신자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노트북과 핸드폰을 늘어놓고 모니터링이 한창이다.

쇼케이스와 기자간담회를 성황리에 마무리 짓고 나자, 포털 뉴스란에 넵튠의 컴백을 알리는 기사들이 둑 터진 것처럼 쏟아져나왔다.

홍보팀에서는 마지막 물량을 쏟아붓기라도 하듯 프로모션에 열을 올렸고, SNS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넵튠 컴백과 미니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속속 올라왔다.

노트북 한 대에는 온라인 음원 사이트 창이 주르륵 떠 있다.

“몇 위로 진입할까. 50위권 안으로만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어떤 곡들은 공개하자마자 그래프가 지붕 뚫고 올라가던데.”

입맛을 다시며 말했더니 김현조가 헛웃음을 짓는다.

“지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래프 지붕킥이 어디 심심하면 하는 건 줄 알아? 기대하는 건 좋은데 적당히 해라, 적당히. 높은 데서 떨어지면 더 아파.”

“그래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잖아요.”

이번엔 배신자가 말했다. 두 눈에 기묘한 열기가 일렁인다.

“10~20위권만 되도, 방송 활동하면 더 올라갈 테니까요. 예능 반응만 받쳐주면 차트 1위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게. 1위도 노려볼만하지.”

나도 동조했다.

물론 배신자와 내가 생각하는 1위 곡은 서로 다르겠지만.

자정을 앞두고, 우리는 컴퓨터 앞에 우글우글 모여앉았다. 어디선가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을 누르고 심호흡하는 소리. 참지 못하고 새어나온 이상한 신음.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흥분을 다스리고 있다. 나도 입술을 살짝 핥았다. 딱 기분 좋을 정도의 흥분이 몸을 감싸고 돈다.

분침이 서서히 기울어진다. 그리고 정확하게 12시를 가리켰을 때.

마침내 넵튠의 두 번째 미니앨범이 공개됐다.

< 행운의 상징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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