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88화 (88/218)

<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5) >

홍보팀 사무실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그 사이로 사나운 얼굴의 김현조가 들어왔다. 통화 중인지 핸드폰을 귀에 딱 붙이고 있다.

“어, 민 기자. 일단 계속 좀 알아봐 줘.”

전화를 끊은 그가 나와 박 팀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 이주환이 여자관계 얘기 들었어? 들었어요?”

우리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김현조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 새끼 만나는 여자가 또 있다는 거 같은데? 일반인이래. 민 기자 말론 얘기가 구체적이라 거의 팩트인 거 같다더라고. 지투데이가 정보 쥐고 있다는데, 선우 너 거기 친한 기자 있지 않냐?”

“있죠.”

대답했더니, 김현조가 내 등을 때리며 재촉했다.

“전화해서 슬쩍 좀 물어봐. 그런 인맥 이럴 때 쓰지 언제 쓰냐!”

“현조 씨, 뒷북치지 말고 앉아봐요. 진정 좀 하시고.”

박 팀장이 빈 의자를 가리켰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광견병 걸린 새끼 하나가 분탕을 치고 있는데? 잠깐, 근데 뒷북이면, 소식 벌써 들었······.”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던 김현조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아니, 둘 다 분위기가 왜 이래? 팀장님 왜 그렇게 태연해요? 아까까지만 해도 이주환이 어딨냐고, 똥물에 튀겨도 모자랄 놈이라고 길길이 뛰시더니?”

박 팀장이 나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선우 씨한테 물어봐요. 오늘 선우 씨가 제대로 한 건 했으니까.”

“한 건 해요? 뭘요?”

“선우 씨가 이주환이 그놈 똥물에다 잘 담가놨거든요. 이제 건져서 튀기기만 하면 돼요.”

김현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이게 뭔 소리야?”

“음, 이거 들어보세요.”

나는 입 아프게 설명할 것 없이 김현조 앞에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아까 이주환과 통화했던 내용이 그대로 녹음된 파일을.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김현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이주환이야? 이 새끼가 전화를 받았어?”

“일단 들어봐요, 현조 씨. 그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니까.”

김현조가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침묵 속에 나와 이주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점점 김현조의 얼굴이 해괴해지더니, 급기야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누군가를 위협하고, 또 그걸 녹음까지 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듣는 게 익숙한 일은 아니라서. 아니, 이게 익숙해지면 그게 더 문젠가.

박 팀장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클라이맥스 나오네요.”

‘저기요. 지금, 지금 바로 내릴게요, 글. 술 먹고 실수한 거예요.’

초조와 당혹으로 얼룩진 이주환의 변명.

두 번째로 듣는 건데도 박 팀장의 리액션은 훌륭했다. 흡사 생맥주를 시원하게 원샷한 사람 같달까.

“자기, 이거 나한테도 좀 쏴줘. 핸드폰에 넣어놓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마다 들어야겠어. 효과가 아주 직방이야.”

박 팀장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박 팀장과 닮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현조가 입을 뗐다.

“저놈 회사 뒤집어졌겠구만?”

“SNS 글은 바로 내려갔고, 수습하려고 머리 맞대고 있겠죠.”

내 말에 김현조가 또다시 묘한 표정으로 날 본다. 그리고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 자식 이거, 수완 좋구만? 나보다 낫다, 임마.”

대답 없이 웃었더니, 김현조가 철썩철썩 내 등짝을 두드렸다.

그가 긴장 풀린 얼굴로 박 팀장에게 물었다.

“웬 날벼락인가 했는데, 이렇게 되면 큰 피해 없이 넘어가겠네요.”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박 팀장이 화장기 없는 입술을 비틀었다.

“이미 송하가 엮였는데. 이주환이 글 내리고 해명해도, 안 믿고 우리 쪽에서 압박한 걸로 오해하는 애들 많을 거고. 초중생 어린 팬들은 팩트고 뭐고 자기들이 믿고 싶은 거 믿잖아요.”

“그거야······.”

“그러니까 상황을 우리한테 유리하게 만들려면, 이주환 그놈을 개새끼로 만들어야죠.”

그때였다.

새까맣게 죽어있던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박우정 기자였다.

“네, 기자님.”

박 팀장과 김현조의 시선이 나한테 꽂혔다. 기묘한 열기로 가득한 눈빛들이다. 그리고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박우정 기자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게 열이 오른 상태였다.

-선우 씨, 찾았어요, 찾았어요, 그 여자!

“찾았다구요? 벌써요?”

내가 박우정 기자에게 정보를 알려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범인을 찾아도 이렇게 빨리는 못 찾겠다.

-선배가 도와줬어요. 스타커플도 아니고, 아이돌이랑 일반인 스캔들이라 다른 때라면 신경 안 쓰셨을 텐데 이 건은 송하 씨까지 엮여서 잘만 쓰면 재밌겠다고.

“아.”

-같이 펀치라인 애들 주변 사람 샅샅이 훑었어요. 뭐 새벽에 잠 깨웠다고 욕은 좀 먹었지만. 인상착의에 직업, 이름 가지고 뒤지니까 금방 나오더라구요. 벌써 그 여자랑 통화도 했어요.

이번엔 정말 놀랐다.

“통화까지 했다구요?”

-그 여자가 일하는 바가 새벽 4시까지 영업이더라구요.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인 박우정 기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례금 주기로 하고 팩트 확인했어요. 이제 기사만 쓰면 돼요.

*

아침이 밝으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간.

단잠을 자다가 강제 기상한 펀치라인 멤버들이 거실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투덜대고 있는 이주환을 쳐다보았다.

“새꺄, 뭘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뭐야, 이게.”

“너 때문에 팀 이미지까지 나빠지면 어쩔거야?”

“하여튼 저 또라이 새끼. 잠도 못 자게 새벽에 지랄이야.”

“시발, 시끄러워!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이주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그의 성격에 익숙해진 펀치라인 멤버들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 무시했다.

머리를 벅벅 긁은 이주환이 욕을 내뱉었다.

“니미, 이거 무조건 먹히는 계획이었단 말이야. 내 인지도도 올리고 더럽게 비싼 이송하 엿도 좀 먹이고. 완전 천재적이었는데. 시발. 그 매니저 새끼, 녹화 때도 마음에 안 들더니 끝까지······.”

그가 바닥을 걷어차며 화풀이했을 때.

“야, 주환아!”

방에서 줄곧 통화 중이던 실장이 뛰쳐나왔다.

“뭐야, 왜. 또 뭐!”

“너 그, 혜성인지 뭔지 하는 걔한테 얘기 잘해놓은 거 맞지?”

“아까 통화하는 거 형도 봤잖아. 혹시라도 기레기들이 전화할 수도 있으니까 무조건 닥치고 있으라고 했어.”

실장이 찜찜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다시 전화해봐. 이상한 얘기가 좀 들려서 그래.”

“얜 괜찮다니까. 나한테 뻑가서 내가 하지 말라는 건 안 한다고.”

툴툴거리며 이주환이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공허한 신호음은 1분 후 소리샘으로 이어졌다.

“시발, 얘 왜 전화를 안 받아?”

“일부러 안 받는 거 아니야? 문자라도 보내봐.”

“아니라니까. 바쁜가 보지. 좀 있어봐.”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열 번째.

신호음의 종착역은 전부 다 소리샘이었다. 처음 몇 통까지만 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이주환은, 다섯 통이 넘어가면서부터 이를 갈았다.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뺨은 잘게 경련했다.

“뭐야, 뭘 하고 있길래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야, 진짜 안된다. 너 일반인이랑 스캔들 터지면 안 된다고. 이송하 같은 대세랑 엮어서 노이즈마케팅 잠깐 하는 거 하고, 일반인이랑 사귄다고 까발리는 거 하고 완전 다른 얘기야! 팬들 다 떨어져 나가! 거기다가 SNS에 글 썼던 거까지 같이 거론되면······!”

“니미, 또 소리샘이야! 전화기를 어디다 처박아놓고 다니는 거야!”

두 사람 모두 초조한 얼굴로 자기 말을 지껄였다.

이주환이 짝다리를 덜덜 떨며 열 몇 번째 전화를 거는 순간.

“어어, 형, 형! 기사 떴어!”

태블릿을 만지던 막내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모두가 태블릿 앞에 모였다. 여러 쌍의 눈이 기사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숙소 거실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주환은 흙빛이 된 얼굴로 입만 벙긋거렸다.

실장은 득달같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메인보컬이 이주환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진짜 좆됐네.”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이주환이 고래고래 욕을 쏟아부었다.

*

하늘은 유난히 맑고 쾌청했다.

밤사이 워낙 많은 일이 있었던 터라 잠은 부족했지만, 기분은 오늘 날씨만큼이나 상쾌하다.

근처 카페에서 산 베이글과 커피를 양손에 쥐고 넵튠 숙소로 들어갔다. 거실 러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애들이 날 쳐다본다.

분명 새벽에 일 잘 끝났다고 연락했는데, 아무리 봐도 밤을 꼴딱 새운 몰골들이다.

좀비처럼 퀭한 눈을 한 임서영이 비척비척 다가왔다.

“오빠으아, 대체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많은 일이 있었지. 너흰 상태가 왜 이렇게들 썩었어? 안 잤어?”

임서영이 침을 꿀꺽 삼켰다.

“네. 태풍 상륙할 거 같아서 마음의 준비하고 있었어요.”

“태풍이 오긴 왔는데, 살짝 비켜갔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제야 임서영의 안색이 좀 밝아졌다.

러그 한쪽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엘제이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 태풍, 펀치라인 쪽으로 갔나 봐요. 난리 났네.”

펀치라인을 제대로 강타하긴 했지.

할 일 없는 네티즌들이 이주환의 SNS 캡처 사진을 뿌리며 이송하를 몰아가던 그때. 지투데이에서 SNS 받고, 거기다 이주환의 데이트 상대를 끼얹어서 독점기사를 내보냈다.

그다음이야 뭐, 후속 기사들과 어뷰징 기사들이 줄줄이 떴고. 박 팀장의 의도했던 바대로 이주환은 이미지에 단단히 똥칠하고, 우리 오빠를 부르짖던 팬들도 대거 이탈했다.

그리고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이주환 쪽에서 SNS에 올렸던 글을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쓰레기 같아 보일 테니까. 어쨌든 그 해명과 박 팀장의 여론몰이 덕분에 이송하를 놓고 마녀 사냥하려던 사람들은 쏙 들어간 상태다.

다른 애들이 이주환에 대한 기사와 댓글들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이송하 앞에 베이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네. 기다렸어요.”

이송하가 맑게 갠 하늘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

“뭘 어쩌자고?”

본부장이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2팀장과 조 실장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었다.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신 2팀장이 입을 열었다. 본부장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한 이야기가 줄줄 나왔다.

“이송하 걔,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첫 작품 대박 터뜨리고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차기작 줄줄이 죽 쒀 먹은 애들이 한둘이에요? 지금부터 잘 키우려면 베테랑이 붙어서 관리하는 게 좋죠, 아무래도.”

“그래서 복덩이 대신 조 실장, 네가 붙겠다고?”

본부장이 찻잔을 후후 불며 물었다.

안색이 한층 좋아진 조 실장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채영이 상황이 좀······ 당장은 제가 붙어있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2팀장이 거들었다.

“이송하 앞으로 더 바빠질 거고 드라마판, 영화판에 제대로 발 담그면 그때부턴 이것저것 문제들이 막 튀어나올 텐데. 계속 정선우 그놈 손에 맡겨놓을 순 없잖아요. 고양이 수호령이야 이봉준이가 같이 붙었으니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론 혼자 부딪쳐야 할 거 아니에요. 그놈 연차 기껏해야 5개월 햇병아린데, 감당이 되겠어요?”

“어젯밤 얘기 못 들었어?”

본부장이 불쑥 물었다.

“어젯밤이요?”

“그, 기사에 이송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긴 하던데······ 별로 큰일은 아닌 것 같던데요.”

조 실장의 대답에, 본부장이 혀를 차며 계속 말했다.

“박 팀장 말이, 이송하 스캔들에 휘말려서 연초부터 홍역 치를뻔한 거, 복덩이 그놈이 뚝딱 해결했다더라. 연차 5개월짜리 햇병아리치곤 수완도 좋더구만.”

“아니, 그래도······.”

“일 잘하고 있는 놈 들쑤시지 말고 냅둬.”

2팀장이 불만스럽게 운을 뗐지만, 본부장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조 실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너희는 돌아가면서 왜 그러냐? 채영이 걔는 복덩이 자기한테 붙여달라고 대표님한테 졸랐다더구만, 너는 또 이송하야? 너도 정 담당 바꾸고 싶으면 이송하 오케이 받아서 오던가.”

찌그러져 있던 조 실장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가 이송하 설득하면 저한테 맡겨주실 겁니까?”

“오케이 받아와, 그럼 생각해볼 테니까.”

그날 저녁.

조 실장은 지하 연습실에서 다음 앨범 준비에 매진하던 이송하를 불러냈다. 그리고 작은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조 실장이 준비한 자료들을 늘어놓았다.

대화는 고작 십분 정도 이어졌을 뿐이다.

십 분 후 이송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연습실로 돌아갔다. 조 실장은 한참 후에야 회의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날 이후.

조 실장은 다시는 담당을 바꾸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5)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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