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4) >
그냥 무작정 윽박지른 건가?
턱을 문지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내 말투나 목소리는 예전 심경택 선생을 협박했을 때랑 비슷했다. 벼랑 끝에 몰려서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분명 상대방에게 위협요소가 될만한 뭔가를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었단 말이야.
대체 뭐지?
궁리하는 순간에도 이주환의 SNS에는 댓글이 늘어나고 있다.
이주환 그 미친놈은 저런 똥을 싸질러놓고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술에 취해 오락가락한 상태로 올려놓고 쓰러지기라도 한 건가? 아니면 멀쩡한 정신으로 인터넷 반응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있을까?
그놈의 미끈한 면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만약 지금 눈앞에 이주환이 있다면 멱살 잡고 주먹질이라도 했을 거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박 팀장이다.
-저놈 또라이야? 저게 무슨 개수작이야?!
전화를 받자마자 욕지거리가 쏟아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다. 하긴, 멘붕상태가 아닌 게 어디야. 사건이 터질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던 나도 뒤통수가 저릿저릿한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자긴 혹시 뭐 알고 있었어? 저 자식 무슨 낌새라도 있었어?
“아뇨, 저도 방금 다른 기자님 연락받고 알았어요. 저번 녹화 때 송하한테 들이댔던 거 이후로는 쭉 잠잠했는데.”
박 팀장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주환 저 미친놈, 뭐하고 자빠져 있는지 전화도 안 받아. 저 자식 회사 실장, 팀장도 안 받고. 내 전화만 안 받는 게 아니라 현조 씨 전화도 안 받아. 양아치 같은 놈들.
“실장님이랑 같이 계세요? 계속 통화 중이시던데.”
-회사에서 보기로 하고 가는 중이야. 현조 씨도 지금 정신없을 거야. 작년에도 바람 잘 날 없더니 연초부터 액땜 한번 제대로 한다, 정말!
“저도 준비하고 바로 갈게요.”
어깨에 핸드폰을 끼우고 옷을 갈아입는데, 박 팀장이 말했다.
-언론 쪽은 최대한 막고 있는데, 이것도 오래 못 갈 거야. 그러니까 자긴 송하한테 전화해서 이주환이랑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건지 팩트 확인하고, 마음의 준비도 좀 시켜놔.
“네.”
-우리 쪽에서 뭐라고 입장표명을 하든, 송하랑 이주환이랑 엮어서 신나게 소설 쓰는 네티즌들 많을 거야. 절대 인터넷 하지 말라고 해. 펀치라인이 초중생 팬이 많아서 악플 엄청날 테니까.
“네, 그리고 팀장님.”
급하게 끊으려는 박 팀장을 붙잡았다.
“이주환 개인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그 자식 지금 전화 안 받는다니까? 문자를 보내도 씹어먹고.
“전 안면이 좀 있으니까, 혹시 모르잖아요. 시도라도 해볼게요.”
-······그래, 혹시 모르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문자로 보낼게.
박 팀장의 문자를 기다리는 동안 이송하한테 먼저 전화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금방 신호음이 멎었다.
-오빠?
아직 상황을 모르는지, 의아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별일 아닌 척 몇 마디를 건네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송하야. 혹시 해서 묻는 건데, 너 이주환이랑 아무 일도 없지?”
-그게 누군데요?
애초에 의심도 안 했지만, 딱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다.
“펀치라인에 랩 하는, 저번에 너한테 말 걸었던 놈. 그 뒤론 별일 없었지?”
-아······ 없었어요. 오빠가 상종도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잘했어. 그 미친놈이 지금 SNS에 너랑 연관된 헛소리를 지껄여놔서 좀 시끄러워질 것 같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인터넷은 하지 마.”
끼워팔기 논란,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며 온갖 욕을 얻어먹은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그때 일이 떠올라 불안해할 법도 한데, 이송하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도 않았다.
-네.
그걸로 끝이었다.
걱정도, 당황도 침범하지 못한 목소리다. 유일하게 느껴지는 건 단단한 신뢰뿐이었다.
나는 달빛 한 점 없이 캄캄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막 미니밴에 올라탔을 때, 박 팀장의 문자가 도착했다.
이주환의 개인연락처다.
텁텁한 숨을 뱉고 통화버튼을 밀었다. 주절주절 랩을 지껄이는 컬러링이 귓속을 파고든다.
마른침이 넘어간다. 미래 예지에 너무 의지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는데도,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르는 능력이니 거기 매달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도.
나는 어느새 눈앞에 노이즈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자동음성이 들릴 때까지도 예지 능력은 발동될 기미가 없었다.
이송하 매니저라고 문자를 보내놓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세 번. 박 팀장의 말대로 이주환은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고민하다가 이번엔 박우정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상황을 알려준 것에 대해 인사부터 하고, 물었다.
“기자님. 혹시 이주환 찌라시 도는 거 있어요?”
-찌라시요?
“네. 안 좋은 소문이나, 켕길만한 일이나. 그런 거요.”
그러니까, 내가 그놈을 위협할 수 있을만한 무언가.
-말이 많은 멤버긴 한데. 잠깐만요, 선배들한테 좀 알아볼게요.
얼마 후 박우정 기자가 수집한 소문들을 풀어놓았다.
데뷔 전부터 또라이 기질로 유명했다는 것, 워낙 저 꼴리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라 회사에서도 골치 썩고 있다는 것. 그 밖에도 몇 가지가 더 이어졌다. 하지만 귀가 번쩍 뜨일만한 건 없었다.
마지막으로, 박우정 기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이주환이 데이트한다고 했다던데요.
“데이트요?”
-네. 이주쯤 전이래요. 이거 알려준 선배가 그 데이트 상대가 송하 씨 아니냐고 자꾸 캐묻······.
무교지만, 지금만큼은 신에게 감사라도 하고 싶다.
박우정 기자의 목소리가 멀어지더니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만큼 노이즈가 가득한 시야가 반가웠던 적이 없다.
이주환과 관련 있는 미래이길 바라며,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바 안이다. 은은하게 내려앉은 조명. 눈앞의 원목 바에는 맥주잔과 주전부리가 담긴 유리그릇이 놓여있다. 어디선가 낯선 힙합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래의 내가 손을 움직여 차가운 맥주잔을 든다. 곧 메마른 황무지 같던 목구멍으로 시원한 맥주가 넘어간다.
쫑긋 세운 귀로 여자 바텐더 두 명의 대화가 들렸다.
“이주환 노났다, 야. 며칠째 화제잖아. 실시간 검색어도 오르락내리락하고. 동정표 받아서 이미지 변신했지, 팬덤도 확 늘어났지. 같이 스캔들 난 이송하는 이미지 다 구겨졌는데.”
“그러게.”
미래의 나는 맥주를 마시는척하며, 단답형으로 대답한 여자를 유심히 살피고 있다.
예쁘장한 외모. 늘씬하고 호리호리한 몸. 커트 머리.
“이주환 걔, 이제 우리랑 상대도 안 해주는 거 아니야?”
동료 바텐더가 커트 머리 여자에게 은근히 물었다.
“근데 혜성아. 너도 얼마 전에 이주환 만나는 중이라고 안 그랬어?”
현재로 돌아오자마자 박우정 기자와의 전화를 끊었다.
갑갑한 굴속에 처박혀있다가 마침내 바깥 공기를 마신 기분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미래에서 보고들은 정보를 조합했다.
그러니까, 이주환한테 따로 만나는 여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이게 사실이라면 이주환을 위협하기에 딱 좋은 소스다.
SNS에 이송하를 저격해서 우리 사이에 뭐가 있었다느니, 눈빛이 변했다느니 하면서 상처 입은 순정남 흉내를 낸 놈이, 사실은 전혀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고 놀았다는 거니까.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낚시를 하듯, 이주환에게 문자를 하나 던졌다.
-바쁘시네요. 녹화장에선 혼자 썸타시랴, 혜성 씨랑 데이트하시랴.
*
펀치라인 숙소.
이주환은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태블릿으로 SNS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이송하보다 오빠가 아까워요, 기회주의자는 잊어버리고 힘내세요, 같이 넵튠 공홈 테러하러 가실 분, 오빠 오늘까지만 아프기, W&U에서 언플로 덮기 전에 이거 박제해서 커뮤니티로 나를게요······ 이야, 우리 팬들 새벽에도 열일하네. 형, 기사 뜬 거 없어?”
“아직.”
소파 끝에서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에도 태블릿이 들려있다.
이주환이 불만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
“기레기들 다 뒈졌나? 이런 큰 떡밥을 던져줬는데 왜 이렇게 조용해?”
“W&U에서 손쓰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지. 기사 하나만 딱 뜨면 바로 어뷰징 기사들 줄줄 따라 올라올 거야.”
그때 테이블 위에 던져놓은 핸드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화면을 쳐다본 이주환이 비웃었다.
“안 받으면 좀 포기하지, 엄청 끈질기네. 이러다 W&U 직원들 번호 다 외우겠다. 근데 어째 형 거는 좀 조용해졌다?”
“꺼버렸어. 배터리 나갔다고 둘러대려고.”
“짜증 나는데 나도 끌까?”
“그냥 둬. 지금도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지만, 그래도 둘 다 핸드폰 끄고 잠수타면 티가 너무 나잖아.”
소파 뒤쪽.
냉장고를 뒤지던 메인보컬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근데 아무리 노이즈마케팅이래도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니야? 내일 어떻게 수습하려고?”
“세기는, 내가 이송하 이름 다 까고 욕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 생각엔 분명 우리 사이에 뭐가 있었다니까?”
이주환이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며 말했다.
“걔가 갑자기 빵 뜨지만 않았어도 잘됐을지도 모른다고. 당사자인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어쩔거야. 고소할 거야?”
생각만 해도 우습다는 듯 이주환이 낄낄거렸다.
실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넌 그냥 잠자코 있어, 내가 아침에 정리할 테니까.”
“뭐라고 할 건데?”
“너 핸들링 안되는 거 비밀도 아니고. 네 욕이나 푸지게 하면서 W&U에 읍소해야지. 당장 SNS 글부터 내리겠다고 할 테니까, 넌 타이밍 맞춰서 글이나 잘 내려.”
“알았어.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캡처 사진 다 돌아다닐 텐데, 뭐.”
비웃듯이 말한 이주환이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이번엔 진동이 짧다. 문자였다. 이미 넘칠 만큼 받은 다른 것들과 비슷한 내용이겠지, 하던 그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이거?!”
“왜 그래? 누군데?”
실장이 덩달아 일어나 물었다.
하지만 이주환은 대답도 없이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졌고, 거실을 서성거리는 걸음은 초조했다.
곧 신호음이 끊어졌다.
-네, 정선웁니다.
“문자 뭐야? 무슨 개소리야?!”
이주환이 득달같이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반대편에서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개소리는 그쪽 SNS에 있고. 아니, 이것도 알아듣고 전화한 거 보니 개소리가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뭐?!”
-녹화장에서는 혼자서 썸타느라 바쁘시고, 데이트는 다른 여자랑 하시고. 아, 이 바닥이 원래 그런 건가? 참 더럽고 아프긴 하네요.
“데이트? 대체 누가 누구랑 데이트를······!”
아랫입술에 침을 바르며 잡아뗀 순간.
-혜성 씨요. 커트 머리에 바텐더 하시는.
이주환이 우뚝 멈췄다. 삽시간에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옆에서 엿듣던 실장은 황급히 핸드폰 전원을 켰다.
-SNS 글부터 내리시고, 해명해서 빨리 수습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팬들이 그쪽 안쓰럽다고 야단이던데. 누구 눈빛이 변했다느니 우울하다느니 떠들어놓고, 그 시기에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면서 놀았다는 걸 들키면 어린 팬들이 실망할 것 같은데요.
차분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여지없이 협박이었다.
이주환이 머리를 헝클며 실장을 쳐다봤다. 별수 없다는 듯, 실장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를 퍽 걷어찬 이주환이 욕지거리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지금, 지금 바로 내릴게요, 글. 술 먹고 실수한 거예요.”
변명한 그가 초조함을 감추며 물었다.
“······그런데 혜성이 걔,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만 아는 거예요?”
건너편에서 잠깐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도 들은 얘기예요.
결국, 이주환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
급하긴 급했는지,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이주환의 SNS에서 글이 내려갔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 박우정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심각했다.
-선우 씨, 아무래도 이거 곧 기사 뜰 것 같은데······!
“잘 해결될 것 같아요, 기자님 덕분에.”
-······네?
의아해 하는 박우정 기자에게 말했다.
“감사의 뜻으로 제가 기삿거리 하나 드릴게요.”
-기삿거리요?
“네, 이주환 스캔들이요.”
<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4)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