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84화 (84/218)

<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1) >

“저게 다 콘서트 보러 온 사람이에요?”

애들이 입을 벌리고 차창 밖을 쳐다봤다.

다들 얼마나 눈을 크게 뜨고 있는지, 뒤통수를 치면 눈알들이 툭툭 굴러떨어질 것 같다. 그 중엔 내 눈알도 있을 거다. 나도 놀라서 조수석 차창에 얼굴을 처박고 있으니까.

넥스트 K스타의 마지막 녹화는 콘서트였다. 아이돌 여덟팀이 미션 때마다 선보였던 공연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콘서트.

화제성이 높으니 관객도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홀 입구에 모여있는 인파를 직접 보니 말문이 막힐 정도다. 음악방송이나 지방 행사장에도 관객들은 있었지만,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오, 오늘 몇 명이나 오는 거예요?”

“티켓 매진됐다고 했으니까, 오천 명은 넘을 거야.”

배신자가 운전석에서 대답했다.

“오천······!”

임서영이 이상증세를 보이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내버려두면 손가락을 씹어먹을 기세길래 내 팔을 뒤로 넘겨줬다.

“자, 인형은 없으니까 이거라도 붙들고 있어.”

“복 받으실 거예요!”

임서영이 내 팔을 덥석 잡는다.

그런데 분명 사람 손은 두 개일 텐데. 왜 손이 증식하는 것 같지. 이상해서 돌아보니 이송하도 같이 붙들고 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긴장하는 일이 드문 앤데, 공연은 아직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얼굴이 경직돼있다.

그럴 만도 하지. 혼자 팀 평균을 깎아 먹는다는 소릴 들었던 게 오래전 일도 아니니까.

“어, 저 사람······.”

갑자기 이태희가 차창 밖의 인파를 보며 눈을 좁혔다.

“왜? 아는 사람 있어?”

“저번에 홍대에서 게릴라 콘서트 할 때 본 사람인 것 같아서요.”

이태희의 대답에, 김현조가 혀를 내두른다.

“그때 본 사람을 아직도 기억해?”

“덩치가 커서 눈에 띄기도 했고, 처음으로 선물 준 사람이라서.”

“아! 그때 그 버터 쿠키?!”

임서영이 차창에 찰싹 붙었다. 그때 받은 버터 쿠키는 아직도 거실 한편에 박제돼 있다. 엘제이가 곰팡이 폈다고 서너 번인가 갖다 버렸는데 매번 임서영이 되찾아왔지. 명줄도 긴 쿠키다.

“그럼 우리 보러 왔나? 우리 보러 왔겠지?”

“모르지. 그 사이에 응원팀이 바뀌었을 수도.”

엘제이가 꿈도 희망도 없는 말을 했다. 하지만 임서영의 눈은 이미 반짝반짝했다. 유난히 ‘팬’을 신경 쓰는 애라, 팬이 왔다는 생각에 자신감과 의욕이 솟은 모양이다.

임서영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승합차 안의 공기가 서서히 달궈졌다.

*

넥스트 K스타가 경쟁 프로그램이다 보니, 관객 중에는 특정 팀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모인 자리에는 신경전이 오가기 마련이었다.

“이태희가 그렇게 노랠 잘하냐? 난 모르겠던데?”

“난 엘제이 랩 잘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넵튠 투표하는 사람 중에 이송하 얼굴만 보고 표 던지는 사람도 많을걸? 근데 걔가 그 정도야? 난 걔 예쁜지 모르겠던데.”

“야, 솔직히 걔는 그 정도야. 그건 모르겠으면 외워라.”

슈가캣을 응원하러 온 팬 몇 명이 쑥덕거렸다.

슈가캣과 넵튠 임서영 사이에 과거사 때문에, 슈가캣의 팬들 사이에서는 시작부터 넵튠을 견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슈가캣은 보이그룹과 순위권을 다툴 정도였고 넵튠은 저 아래 밑바닥이었으니까. 그런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기어 올라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이제는 역전된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슈가캣 팬 중에는 유독 넵튠 안티가 많았다.

넵튠을 응원하러 온 관객 몇몇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슈가캣 팬들은 계속해서 쑥덕거렸다.

뒷좌석에서 솥뚜껑처럼 커다란 손이 그들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거기 아는 거 없는 양반들. 조용히 좀 합시다.”

“뭐야, 우리 입으로 말도 못······!”

짜증스럽게 돌아본 이들이 흠칫 놀랐다.

일자로 떡 벌어진 어깨, 운동선수처럼 단단한 체구. 슈가캣 팬들이 얌전히 찌그러졌다. 뒷좌석 남자랑 시비가 붙었다간 콘서트가 아니라 황천을 구경하게 될 것 같았으니까.

그때 6mm 카메라를 들고 관객석을 돌아다니던 VJ가 다가왔다.

그리고 뒷좌석 남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인터뷰 좀 부탁드릴게요. 누구 응원하러 오셨어요?”

“넵튠 응원하러 왔습니다.”

그 말에 앞좌석의 슈가캣 팬들이 더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그들이 창백한 얼굴로 좌석 포기하고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대고 있을 때.

남자와 동행한 여자가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야, 넌 여기까지 와서 무게를 잡고 있냐? 저 넵튠 팬입니다! 티켓팅 성공해서 깨춤 추고 왔습니다! 이렇게 인터뷰해야 방송에 나가서 넵튠한테 얼굴도장이라도 찍지!”

“시끄러워.”

남자가 노려봤지만, 여자는 신경도 안 쓰고 VJ에게 말했다.

“저번에 게릴라콘서트 때도 현장에 있었는데요. 처음엔 얘가 아이돌 공연 뻔하다고 코웃음 쳤었거든요.”

“아, 그래요?”

“그래서 제가 혹시 아냐고, 너도 걸그룹에 꽂혀서 한 달 뒤에 팬 사인회 가서 줄 서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얘가 저보고 지랄하지 말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여기 이러고 있네요. 넵튠한테 꽂혀서.”

*

한쪽 벽에는 크로마키용 천이 커튼처럼 쳐져 있고, 그 아래에 의자 네 개가 쪼르륵 놓였다.

넵튠 애들은 능숙하게 의자에 앉아 사전인터뷰를 준비했다.

“이제 마지막 인터뷰네요.”

고준태 피디가 빽빽한 질문지를 흔들며 말했다.

마지막이라서 그런가. 고준태 피디 저 양반도 오늘은 좀 독기가 빠졌다. 시청률 상승에 대한 집념으로 가득 찼던 눈도, 어떻게든 자극적인 멘트를 뽑아내려고 기름칠을 했던 혓바닥도 잠잠하다.

“첫 녹화 전에는 일곱팀 중 다섯팀이 넵튠을 꼴찌로 찍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녹화날인 지금은 전체순위 3위까지 올라왔네요.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감회도 남다르겠어요?”

그래, 처음에 임서영이 저 말을 듣고 뻣뻣하게 굳었었지.

하지만 고준태 피디 말대로 지금 넵튠의 순위는 3위다.

1위가 펀치라인, 2위도 보이그룹이니, 걸그룹 중에서는 넵튠이 1위인 셈이다. 팬덤 화력을 제외하고 따지면 넵튠 순위가 더 오를 거라는 평가도 많았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면 깜짝 놀랄 때도 있어요. 꿈인 줄 알고.”

임서영이 가슴께를 꾹 누르며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팀이 해체될까 봐 하루하루 벼랑 끝에 서 있었는데, 겨우 4개월 만에 세상이 변했잖아요. 꿈인가 싶어서 놀랐다가, 꿈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을 때마다 너무 행복해요.”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기쁨이 흠뻑 배어난다.

질문은 한참을 더 이어졌다. 다른 팀의 두 배는 되는 시간을 들이고 나서야 사전인터뷰가 끝났다. 시간을 보니 이미 공연시간이 코앞이었다. 바로 이동하려는데, 고준태 피디가 나를 붙잡았다.

“잠깐, 선우 씨도 인터뷰 두어 개만 부탁해요.”

“저요?”

“따지고 보면 우리 인연을 이은 게 선우 씨잖아요. 4개월 전에 선우 씨가 날 안 붙잡았으면 오늘이 있겠어요?”

고준태 피디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터뷰는 좀 해줍시다. 나 서지준 씨 섭외 파투난 것 때문에 아직도 위에서 바가지 긁히고 있어요.”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다.

김현조가 하고 오라고 등을 떠미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개인 인터뷰를 했다. 내 인터뷰가 시청률에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될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준태 피디는 만족한 모양이었다.

모두 끝난 후에 고준태 피디와 어색한 악수를 하며 생각했다.

앞으론 만나지 맙시다.

스탠바이 20분 전.

대기실 안에 묵직한 긴장이 흘렀다. 산소가 부족한 느낌이다.

밖에서는 슈가캣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수천 명의 관객이 지르는 함성이 여기까지 들렸다.

넵튠의 첫 무대가 바로 다음 차례였다. 애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긴장의 찌꺼기를 털어냈다. 임서영은 커다란 가방을 끌어안고 복식호흡 중이고, 이태희와 엘제이는 이어폰을 꽂고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이송하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

숨소리도 고요한 가운데, 이송하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얼핏 보니 화면에 뜬 저장이름이 ‘집’이었다. 핸드폰을 집은 이송하가 망설임 없이 전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아예 전원을 끄고 가방에 넣어버린다.

“받아도 되는데. 잠깐 전화통화 할 시간은 있어.”

내 말에 이송하가 고개를 휘휘 젓는다.

“안 받아도 돼요.”

“부모님이랑 통화하면 마음이 좀 안정될 텐데.”

“괜찮아요.”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곧 이송하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안정은, 오빠랑 있을 때가 제일 잘돼요.”

스탠바이 10분 전.

대기실에서 나와 무대로 이동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서인지, 아니면 수천 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긴장한 건 다들 똑같기 때문인지, 다른 그룹의 멤버들도 잘하라고 한마디씩 건네온다.

무대 뒤에 도착한 건 슈가캣 공연이 끝난 직후였다. 특별 MC와 심사위원들이 자료화면을 보며 가벼운 토크를 이어가는 동안, 슈가캣이 떠들썩하게 자축하며 무대 뒤로 내려왔다.

그리고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안색이 변했다.

그동안은 넵튠이 이송하 원맨팀이 됐다느니, 걸그룹인데 연기하는 멤버만 주목받아서 곤란하겠다느니. 생글생글 웃으며 긁어대더니만, 지금은 표정관리가 안 되는지 대놓고 똥 씹은 얼굴들이다.

스타 매니저 때문에 넵튠 전체가, 특히 임서영이 빛을 봤기 때문이겠지. 지금쯤 복장이 뒤집어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이 임서영을 무시하고 견제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던 애들이니까.

슈가캣 리더 한샛별이 임서영 옆에서 걸음을 멈췄다.

“넵튠 신곡 봄에 나오지? 사이먼 리 선생님 거?”

“더블 타이틀이야. 태희 언니 자작곡까지.”

임서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쳐 지나가며, 한샛별이 다시 말했다.

“우리도 그때 컴백해. 음악방송에서 보겠네.”

“안녕하세요, 넵튠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간 애들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늘 입에 달고 다니던 구호였지만, 적어도 오늘 모인 관객 중에는 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객석에서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이 터졌다.

참, 감회가 남다르긴 하다.

이윽고 애들이 밤을 새우며 연습했던 미션 곡 MR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게 처음이라 내심 걱정했는데, 노파심에 불과했다. 무대 위에 올라간 애들한테서는 긴장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었다.

나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무대를 바라봤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 녹화 기념으로 우리끼리 간소하게 쫑파티를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케이크만 한 조각씩 나눠 먹고 끝냈는데도, 원룸에 도착했을 땐 이미 늦은 새벽이었다.

가로등 불에 의지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누가 참치통조림이라도 내놨는지, 주차장 귀퉁이에서 검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있다. 가까이에 차를 댔더니 꼬리를 바짝 세우고 경계한다.

시동을 끄고 쭉 기지개를 켰다. 샤워고 뭐고 들어가서 얼른 엎어져 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뜬금없이, 눈앞에 노이즈가 나타났다.

만약 노이즈가 없었더라면, ‘왜 손이 제멋대로 움직이지?’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정차된 차 운전석에 앉아있었으니까.

익숙한 미니밴의 내부. 익숙한 핸들. 익숙한 방향제.

그리고 이곳도 밤이었다.

안 그래도 노이즈가 심한데 가로등도 없다. 창밖은 온통 어두컴컴했다. 어렴풋이 건물이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확실한 건, 나한테 익숙한 장소는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당장 인터뷰해서 해명하세요.”

나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인터뷰? 해명?

꼭 누군가를 위협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지난번 심경택 선생을 협박했던 때와 비슷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때 녹음했던 파일을 재생했을 때. 그때 들었던 내 목소리가 꼭 이랬다.

귀에 대고 있는 핸드폰 너머에서 거칠어진 숨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부탁하는 게 아닙니다. 한번 인터뷰해서 안되면 두 번, 세 번 해서 이 상황 바로잡아요. 같이 흙탕물에서 구르고 싶지 않으면.”

말이 이어졌지만, 힌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인터뷰는 뭐고, 상황을 바로잡으라는 건 또 무슨 말이지?

같이 흙탕물에서 구른다는 건 무슨 소리고?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갔다. 핸드폰 너머에선 숨소리만 더욱 거칠어졌을 뿐, 아직 대답은 없다. 내 의지대로 고개를 돌릴 수만 있다면, 그럼 당장 핸드폰을 확인해서 전화번호를 봤을 텐데······.

카랑카랑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귀를 찔렀다.

흠칫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털을 세운 검은 길고양이가 보인다.

그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내 원룸 앞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내가 본 미래를 되새겼다. 밖에서 길고양이가 계속 위협소리를 내며 맴돌았지만,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는 의문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건 대체 언제 일어나는 일일까.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보조석 앞에 붙인 방향제를 쳐다봤다.

반이 조금 넘는 양이 남아있다. 미래에서 봤을 때도 차이가 크지 않았다. 저 방향제를 다 쓰고 똑같은 종류의 방향제를 채운 걸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미래에서 나랑 통화했던 상대방은 누구였을까.

난 왜 그 사람을 위협하고 있었을까.

······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 퍼즐 조각이 부족할 때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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