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매니저 (1) >
“세상에, 이거 봐봐, 이거. 피부 건조한 것 좀 봐. 겨울에는 수분이나 영양공급 꾸준히 해주는 게 좋아요. 그래도 잡티는 없네. 베이스는 가볍게 할게요, 피부 결만 정돈하면 되겠어.”
“……끝내기만 해 주세요.”
화장대 앞에 앉은 그 순간, 이미 난 마음을 비웠다.
콧수염을 기른 샵 소속 아티스트가 능글맞게 웃는다. 그의 손에는 납작한 메이크업용 붓이 들려있다. 붓에다 물감 대신 살 색 크림을 찍더니 내 얼굴에 쓱쓱 펴 바른다.
“오빠.”
임서영이 뒤에서 내 어깨를 콕콕 찔렀다.
“왜?”
“그냥 한 번 불러봤어요.”
정면 거울에 임서영의 얼굴에 비쳤다. 크고 동글동글한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진다. 얼음도 녹일 것 같은 눈웃음을 치면서 안 어울리게 흐흐흐 웃는다.
“오빠, 오빠, 오빠.”
“왜, 왜, 왜.”
“그냥 부르는 김에 세 번 더 불러봤어요.”
그러더니 뭐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난 것처럼 내 주위를 뱅뱅 돈다. 뭔가 연상된다. 끝 부분만 살짝 곱슬곱슬하게 만든 머리카락은 털, 팔랑팔랑 흔들리는 플레어스커트 자락은 꼬리.
흡사 눈밭을 뛰어다니는 개다. 아니, 개보다는 강아지지.
“하루가 멀다고 기다렸던 날인 건 알겠는데, 정신줄 붙들어.”
“오빠. 거기 앉아있으니까 기분 어때요?”
“어떻긴, 벌칙 받는 기분이지.”
아니, 차라리 유성 매직으로 낙서 당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김현조나 배신자가 여기 없는 게 천만다행이지.
“에이, 요거 갖고 무슨 벌칙이에요. 풀 메이크업하면 거품 무시겠네! 볼 터치도 좀 해보실래요? 올해 S/S 컬러는 옅은 코랄이래요. 이거, 이거, 내 립스틱색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지 말고 좀 앉아있어. 왜 이렇게 흥분상태야? 너 그러다가 녹화 시작하기 전에 진 다 빠진다.”
“괜찮아요! 오늘 컨디션 끝내주니까요!”
두 주먹을 옴팡 쥐고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친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가서 도시락이나 먹어, 멍청아.”
가까이 다가온 엘제이가 임서영의 등짝을 철썩 때렸다.
찰랑찰랑하게 늘어뜨린 금발도 그렇고, 눈꼬리를 날렵하게 뺀 메이크업도 그렇고, 이쪽은 오늘따라 유난히 고양이 같다. 고급 품종묘의 탈을 쓴 길고양이.
이거 임서영이랑 투 샷으로 찍어놓으면 괜찮겠는데.
안 그래도 팬카페에서 이 두 명을 놓고 개와 고양이라고 부르면서 합성사진을 만들던데, 아주 좋은 떡밥이 되겠어.
라고 생각했을 때. 엘제이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나를 찍는다.
“뭐해? 날 왜 찍어?”
“찍어놓으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찍지 말고 써먹지도 마.”
“그렇게 질색하면 더 찍고 싶은데요. 좋은 데 쓸게요.”
그러면서 슬쩍 웃는다. 괴벽스러운 미소다.
임서영이 엘제이의 핸드폰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나나나, 찍은 거 나도 보내주라!”
“싫은데?”
“에이씨, 성격파탄자! 됐어, 내 걸로 찍으면 되지!”
핸드폰을 가져오더니 임서영까지 사진을 찍어댄다. 한숨을 쉬며 이태희와 이송하 쪽을 바라봤다. 둘은 좀 얌전한가 싶어서.
음. 그 어느 때보다 얌전하다. 얌전할 수밖에 없다.
이송하는 소파에서 도시락 먹는 중이고, 이태희는 이송하 허벅지를 베고 자고 있다.
“오늘 녹화하시는 거, 방송 언제예요?”
아티스트의 조수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설날 당일이요.”
“그날 꼭 볼게요. 프로그램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매니저님이랑 넵튠 멤버들이랑, MSG 안치고 카메라 앞에서 지금 이런 모습만 보여줘도 재밌겠는데요?”
“이게요?”
“네. 저희야 허구한 날 연예인이랑 매니저들 보잖아요. 분위기 안 좋아서 농담도 못 하는 팀도 많아요. 근데 이 팀은 진짜로 사이좋아 보이거든요.”
“방송에도 그렇게 보였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공중파 예능이고, 김현조랑 박 팀장이 내가 제일 잘 맞는다고 추천해서 선선히 출연을 확정 짓긴 했지만, 사실 지금도 이게 잘 될까 싶다.
내가 예능에서 빵빵 터뜨릴 만큼 개그센스가 넘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예능프로 자체를 즐겨보는 편도 아니니까.
어쨌든 나가는 거 애들한테 도움이 돼야 하는데.
내 심각한 표정을 봤는지, 임서영이 손끝으로 내 어깨를 찰싹찰싹 두드린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그냥 제 옆에 딱 붙어있음 돼요! 개인기도 완벽하고, 상식 퀴즈 예상질문도 뽑아서 엄청나게 봤어요! 나라별 수도도 달달 외웠어요!”
“얘 어제 그거 외우느라 날밤 새웠어요. 무슨 대입시험 치는 것도 아니고.”
엘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임서영이 홱 눈을 흘긴다.
“만반의 준비를 해야 우리 분량 챙길 거 아냐! 예능은 정글이야, 정글! 준비 없이 가면 다른 출연자들한테 무시당하고 통편집될 수도 있단 말이야!”
다다다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눈을 빛내며 덧붙인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횐데. 꼭 다 보여주고 올 거야!”
특집 타이틀은 ‘스타 매니저.’
컨셉은 간단해 보인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궁합.
토크쇼와 버라이어티를 결합한 형식인데, 여러 연예인과 매니저들을 모아놓고 토크랑 게임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가장 찰떡궁합으로 뽑힌 팀한테 선물을 준단다.
고급 한우세트.
이송하도 의욕이 샘솟는지 눈이 초롱초롱하더라.
뭐, 토크쇼야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매니저의 입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쪽쪽 뽑아내겠다는 거고.
그건 어찌어찌 괜찮을 것 같은데 게임이 문제다.
게임 이름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네가 해보세요’다.
연예인과 매니저의 처지를 바꿔서 역지사지를 느껴보는 게임이라는데, 촬영구성안이 너무 단순해서 몇 번을 읽어봐도 구체적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림 괜찮은데? 그럴듯하다, 야.”
뒤늦게 대기실로 들어온 김현조가 나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 혼자다.
“건영이는요?”
“걔는 다른 일 맡겨놓고 나 혼자 왔어. 애들은 좀 어때? 공중파 특집 예능에 풀로, 그것도 네 명이 같이 출연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될 텐데.”
“오늘 녹화하는 사람 중엔 제가 제일 긴장한 것 같은데요.”
내 말에 김현조가 피식 웃는다.
“너야 긴장해도 티가 별로 안 나잖냐. 일단 인상이랑 분위기에서 먹고 들어가는 것도 있고.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요즘은 김현조 없이도 애들 데리고 촬영 잘 다녔는데, 오늘은 내가 매니저가 아닌 출연자가 돼서 그런지 김현조가 같이 있다는 게 좀 든든하다.
“뭐,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래. 그리고 토크 할 때 송하 뒷이야기 풀기로 한 거, 그거 잊지 말고. 그 부분은 무조건 방송에 나갈 거니까 멘트 좀 미리 준비해놔.”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실장님.”
마른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정말 방송에서 언급해도 괜찮다는 거죠?”
“위에서 얘기 내려온 거야. 대표님이 직접 오케이 한 건데 뭐. 이거 본방 나가기 전에 회사에서 보도자료도 돌릴 거고.”
김현조가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뒷수습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 그 양반도 엿 좀 먹어봐야지. 대놓고 본명을 못 까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걸로도 그 양반 거들먹거리던 얼굴에 똥칠은 될 거다.”
“그렇겠죠?”
“그럼.”
김현조가 음산하게 웃었다.
전염된 것처럼 내 입가에도 음산한 웃음이 떠올랐다.
몇 개월간 매니저 일을 하면서 연예인을 보는 것도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연예인들은 대부분 가수거나 배우였다면, 오늘 출연자들은 개그맨이나 전문 방송인들이 많았다.
분장실을 돌며 인사를 하는 동안 기가 쭉 빨렸다.
인사라기보단 거의 탐색전이었다. 넥스트 K스타도 장르는 예능이지만, 거기랑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임서영이 왜 예능은 정글이라고 했는지 알겠다.
이제 스탠바이까지 남은 시간은 삼십 분 정도였다.
김현조 먼저 스튜디오 세트장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스튜디오 밖에서 애들이 옷을 갈아입고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안 가 협찬 의상을 입은 애들이 다가왔다.
그런데 한 명이 빈다.
“서영이는?”
답답하다는 듯, 엘제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걔 대기실에 있어요. 녹화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개인기 연습 한 번 더하고 온다고.”
“개인기 연습을 또 해?”
이번엔 이송하가 대답했다.
“저희 있으면 집중 안 된다고 해서 먼저 나왔어요.”
“일단 실장님한테 가 있어. 내가 서영이 데리고 올 테니까.”
대기실로 가려는데, 이태희가 걸음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애가 부담감에 눌린 것 같아요.”
“부담?”
호수처럼 차분하던 눈동자에 걱정의 빛이 떠오른다.
“저희가 완전 무명이었을 때부터 서영이가 우리 이름 알린다고 예능을 여러 번 했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혼자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 부담이 큰 것 같은데, 저희한테는 말을 안 하네요.”
엘제이와 이송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까 샵에서도 평소보다 유난 떨기는 했어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 갔다. 밤새서 컨디션 개판일 텐데, 좋다고 한 것도 걸리고.”
“그리고 아침도 몇 숟가락 안 먹고, 도시락은 아예 손도 안 댔어요.”
“음. 알았어. 일단 들어가서 실장님한테 얘기해.”
애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대기실로 향했다.
좀 더 유심히 살펴봤어야 했는데.
다른 때보다 더 흥분한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워낙 예능 출연에 목을 매던 애라 들떠서 그러는 줄 알았다. 쾌활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선 혼자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건가.
단숨에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다 멈췄다. 문 앞에 임서영이 우뚝 서 있었다.
“서영아.”
“어, 오빠! 저 막 나가려던 참인데요?”
임서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밝은 목소리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설핏 불그스름해진 눈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삐걱삐걱 흔들리는 눈동자도.
“많이 긴장돼?”
내가 묻자, 임서영이 고개를 크게 젓는다.
“아뇨? 괜찮은데요!”
“아닌데. 내가 보기엔 너 안 괜찮은데.”
“진짜 괜찮다니까요. 빨리 가요, 오빠!”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임서영은 대기실 문턱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동그란 운동화를 신은 발이 주춤주춤 움직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에이씨, 미치겠네. 왜 이러지……?”
푹 쪼그려 앉은 임서영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중얼중얼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난다. 안에 들어가서 대기실 문을 닫았다. 얼굴을 숙이고 있던 임서영이 살짝 고개를 든다. 아니나다를까 큼지막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안돼, 눈물 나면 안 되는데. 마스카라 번질지도 모르는데!”
“나 참, 지금 그거 걱정할 때야? 아직 메이크업 수정할 시간 있으니까 괜찮아.”
긴장을 덜 수 있을까 싶어서 최대한 가볍게 말했는데, 도움이 안 된 모양이다. 당황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다.
임서영 앞에 마주앉아 시선을 맞췄다.
“이렇게 부담되면 나한테 얘기하지.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혼자 대기실에 남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어.”
“분명히 괜찮았는데. 진짜 괜찮았어요. 근데…….”
임서영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거 진짜 좋은 기회잖아요. 공중파고, 설 특집이고, 한 시간짜리 풀 게스튼데. 예전에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기회가 오면 정말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연습도 맨날 맨날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막 겁이 나는 거예요.”
“왜?”
“……기회가 왔는데, 제가 못하면 어떡해요?”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결국 잔뜩 일그러진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겨우겨우 버티던 둑이 터지고 나니 그다음은 순식간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눈물방울이 맺혔다.
“으아아, 눈물 나요, 어떡해! 닦을 거, 닦을 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서 메이크업이 지워질까 봐,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로 손만 허우적거리고 있다.
일단 대기실 안에 있는 티슈를 몇 장 뽑아서 내밀었다. 임서영이 그걸 받더니 눈물이 맺힌 곳만 조심조심 두드린다.
나는 티슈를 계속 뽑아주면서 생각했다.
얘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일단 임서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랬더니 확 움츠러든다.
“아, 안돼요, 그럼 눈물 더 나요! 지금 오빠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 줄줄 나는데!”
별수 없이 손을 떼고 말했다.
“이번에 좀 못하면 세상 무너지냐.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곧 다음 앨범도 나올 거고, 앞으로 예능 출연할 일 많을 거야. 뼈 빠지게 일해서 계속 방송 잡아줄게.”
“이번에도 잘해야 돼요. 예능은 제가 제일 많이 했잖아요. 현조 오빠나, 태희 언니나, 엘제이나, 송하도 그렇고. 다 저는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뭐?”
“전 똥멍청이에요……!”
임서영이 문에 머리를 박았다.
< 스타 매니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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