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72화 (72/218)

< 여러모로 역대급 드라마 (1) >

풍악을 울릴 때가 된 건가? 그런 건가?

핸드폰을 꺼내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를 검색해봤다. 이송하도 졸음이 대롱대롱 달린 얼굴로 들여다본다.

포털, SNS, 드라마 팬 페이지까지 뭍나인 관련 글이 쏟아지고 있다. 원작 팬들 때문에 지금까지도 화제성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반응은 처음이다. 그것도 본방 시작 15분 만에.

오늘 방송 내용이 시청자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건 분명하다.

간간이 작가 미쳤느냐, 감독 돌았느냐는 극단적인 글까지 보이는 걸 보면.

이봉준 실장과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서지준이 조소하며 말했다.

“야. 실검, 실검 노래를 불렀다더니, 네 드라마 본방 끝나기 전에 실시간 검색어에 뜨겠다.”

“뭐라고?”

손채영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오빠, 핸드폰……! 됐어, 필요 없어. 내 핸드폰 어딨어.”

조 실장이 머뭇거리자, 손채영이 직접 벗어놓은 겉옷 주머니와 핸드백을 뒤진다. 그리고 케이스에 본인 화보 사진이 프린팅된 핸드폰을 찾아냈다.

조실장은 손채영이 핸드폰이 아니라 폭탄을 들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면서 그 주위를 맴돌았다.

“대체 뭐가 어떻길래…….”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움직이던 손채영이 어느 순간 입을 다문다.

눈동자가 커다래지고, 시선은 화면에 내리꽂혔다.

“이게 뭐야. 무슨 일인데 이 난리야?!”

“일단, 일단은 내가 감독님이랑 통화해 볼게.”

“본방부터 확인하고! 뭘 어떻게 붙여놨길래 이러는 건지 봐야지!”

버럭 성질을 낸 손채영이 멈칫한다. 그리고 짜증 섞인 시선으로 우리 쪽을 곁눈질한다. 곧 손채영이 조 실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어폰 줘.”

“채영아, 너 진정부터…….”

“이어폰 달라고!”

그렇지. 터질 때가 됐지.

고막에다 푹푹 찔러대는 고함을 못 이긴 조 실장이 이어폰을 바치듯이 넘겼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손채영이 화면에 집중한다.

나도 DMB를 볼까 하다가, 말았다.

본방보다 손채영 구경하는 게 더 재밌겠다 싶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생하던 얼굴이 삽시간에 썩어가고 있거든. 반면에 내 마음속에는 파릇파릇 피어난 새싹들이 탭댄스를 추는 중이다.

아. 정말이지 끝장나게 산뜻한 기분이다.

뭍나인의 추락은 이제 제대로 급물살을 타겠지. 뭍나인 관계자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마어마하게 설렌다. 2년을 기다린 블록버스터 영화 후속편이 개봉하던 날만큼이나 설렌다.

손채영을 향한 억하심정이 깊긴 깊었구나, 싶다. 하긴, 손채영이 코앞에서 비웃는 목소리로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라구요. 이 바닥이 원래 이런 거예요.’라고 떠들었던 그 날 이후로, 꾹꾹 눌러놓았었으니까.

당사자인 이송하는 어떤가 싶어 옆을 돌아봤다. 무덤덤한 얼굴로 곰 젤리만 먹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야 이런 와중에도 냉정함을 유지한다고 감탄할지 모르지만, 다른 때와는 분명 다르다.

유난히 신나게 먹고 있거든.

“맛있어?”

“네. 꿀맛이에요.”

젤리 곰 대여섯 마리를 한입에 넣고 학살하며, 이송하가 소곤거린다. 그리고는 내 손에도 몇 마리 쥐여준다. 나는 즐겁게 젤리를 먹으면서 손채영의 썩어가는, 왕창 일그러진 얼굴을 감상했다.

“뭐 이런 뜬금없는…… 이거, 감독이 무슨 생각으로…….”

“채영아, 제발 진정….”

“진정?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쪽대본 나부랭이 가지고 겨우겨우 연기한 씬을 이 꼬라지로 붙여놨는데? 이럴 거면 재촬영은 왜 한 거야!”

아. 이런 기쁨은 함께 나눠야 하는데.

넵튠 멤버들이나 김현조, 3팀장한테도 보여주고 싶은데 안타깝다. 동영상 촬영하면 뺨 맞는 거로는 안 끝나겠지? 휴게실에 CCTV 같은 건 없나?

천장을 쳐다보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캡모자를 거꾸로 쓴 남자가 들어왔다. 그 뒤로 묵직한 ENG 카메라와 조명 장비를 짊어진 스텝들도 줄줄이 따라온다. PBS 촬영팀이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피디는 눈치가 빨랐다. 단숨에 휴게실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급히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인다.

“아이고, 바쁘신 분들 모셔놓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막혔느니 어쨌느니 살살 변명을 하면서. 아무래도 분위기가 싸늘한 게 촬영팀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오해한 모양인데. 서지준이랑 손채영 이름값 때문인지 너무 저자세로 나와서, 이봉준 실장이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분위기를 수습했다.

그사이 휴게실 안에 휘몰아치던 폭풍전야의 기운이 사그라졌다.

핸드폰을 보며 낄낄거리던 서지준도, 인형에 말뚝이라도 박을 것처럼 감독을 저주하던 손채영도, 어느새 태연한 가면을 썼다. 세 명 중에 맨 얼굴은 이송하뿐이다.

가볍게 인사부터 나누고, 촬영준비를 끝낸 피디가 사근사근한 어투로 말했다.

“브릿지 전후 뚜껑용으로 스케치부터 좀 따고 갈게요. 그냥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하시면 됩니다. 오디오는 안 들어갈 거예요.”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라.

그럼 백 프로 비방용인데.

오디오가 안 들어가니까 괜찮으려나. 힐끔 이봉준 실장을 봤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하품을 쩍쩍한다.

손채영이 먼저 태연자약하게 입을 뗐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란 말이 있잖아. 그런 거지.”

이송하와 서지준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계속 말한다.

“걱정할 거 없어. 감독님 작가님 두 분 다 믿을만한 분들이니까, 금방 제 궤도로 돌아올 텐데. 일희일비할 거 뭐 있나.”

그쪽이 조금 전까지 엄청나게 일희일비했거든.

혀를 내두르며 손채영을 바라봤다. 입사하기 전에 내가 알던 그, 손채영이 저기 있다. 청순함의 상징.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고 담백한 목소리는 나레이터 뺨친다. 조금 전까지 쌍심지를 켜며 감독에게 저주를 쏟아붓던 그 여자가 맞나 싶다.

손채영이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덧붙였다.

“드라마 판에서 이 정도야 일상이지, 뭐.”

“그래. 시청률에는 타격 없어야 할 텐데.”

서지준이 웃으며 대꾸한다. 아까 같은 비웃음이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해석하면 ‘이 정도야 일상이니까 개소리로 긁을 생각 마’, ‘누가 뭐래? 근데 이래서 시청률 20프로는커녕 현상유지나 되겠냐?’ 뭐 이런 대화인 것 같은데. 겉으로만 보면 그냥 한솥밥 먹는 동료 연예인들의 담소다.

다행히 서지준이 이송하한테도 드라마 촬영 건으로 말을 걸어서, 이송하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녹아들었다. 카메라 모니터에 비친 그림이 무서울 만큼 친근해 보인다.

“거봐, 걱정할 필요 없지?”

이봉준 실장이 실실 웃으며 내 옆구리를 친다.

“그러네요.”

“아무렴, 둘 다 프론데.”

“송하가 걱정이네요. 저렇게 내숭 떠는 건 잘 못 할 것 같은데.”

감정표현이나 말수도 적고, 그나마도 직설적일 때가 많은데. 저런 데에 잘 섞여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손채영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 활동 할 때는 멤버 애들이 도와줄 수도 없는데.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걱정이다, 걱정이야.

한숨을 쉬었더니 옆에서 이봉준 실장이 중얼거린다.

“글쎄다, 될성부른 떡잎이지 싶은데. 너한테 하는 거 보면.”

“저한테요?”

“뭐, 내가 보기엔 별로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뜬구름 잡는 소릴 하더니만, 졸려서 자판기 커피라도 마셔야겠다며 자리를 뜬다. 조실장은 아까 뭍나인 감독과 통화한다고 나가서 이제 남은 매니저는 나뿐이었다.

팔짱을 끼고 촬영을 지켜보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속삭인다.

“W&U는 소속 연예인끼리 되게 친하네요.”

“네?”

누가 헛소리를 하나 싶어서 봤더니, 젊은 남자다.

본인을 FD라고 소개한 남자가 또다시 재잘거린다.

“대형 소속사라 그런가, 가족적인 분위기라 그런가, W&U에는 성격 좋으신 분들만 계신 것 같아요. 어제는 성도원 씨 인터뷰 땄는데, 어우, 성도원 씨도 진짜 사람 좋으시더라구요.”

“하하하.”

근래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겼다.

성격 좋으신 분들만 있다고? 사람이 좋아?

여긴 연예 엔터테인먼트의 탈을 쓴 복마전이야, 이 사람아. 만약 가식을 벗어던지고 소속사별 개싸움 대항전 같은 걸 한다면, 전투력만큼은 여기 따라올 곳이 없을걸.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고.

꾸역꾸역 차오르는 말을 삼키며 웃었더니 FD가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촬영 끝나고 세 사람 사인 좀 몇 장 받아주면 안 되느냐고. 이 부탁 하려고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를 했구만. 얘기해보겠다고 대답했더니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기뻐한다.

스케치 촬영 후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신년인사 멘트를 하고, 마지막으로 피디가 간단한 인터뷰를 몇 개 더 땄다.

잠자코 보고 있다가, 손채영 차례에서 귀가 번쩍 뜨였다.

“자, 그럼 손채영 씨한테 이송하 씨는 어떤 후배예요?”

“……뭐라구요?”

손채영의 가면에 금이 쩍 간다.

옆에 앉은 서지준이 헛기침하며 입을 막는다. 눈이 웃고 있다. 나도 삐져나올 것 같은 웃음을 누르며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이건 찍어야 해. 찍어야 하고말고.

다들 모니터링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아예 대놓고 찍었다. 옆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이봉준 실장이 낄낄거리면서 동영상 파일을 꼭 자기한테도 보내라고 당부했다.

“그러니까, 손채영 씨한테 이송하 씨는…….”

아니, 손채영은 안 들린 게 아니라 안 듣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손채영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속으로는 욕을 퍼붓고 있겠지.

안 그래도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가 삐끗한 상황이라 지금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텐데. 카메라 앞에서 욕은 못할 거고 뭐라고 할지 몹시, 몹시 기대된다.

상반신을 잡고 있는 카메라 아래로, 손채영의 손이 소파 커버를 꽈악 움켜쥔다. 얼마나 성질이 났는지 손등에 핏대까지 서 있다.

“이송하 씨는 참…….”

한참 뜸을 들이던 손채영이 느릿느릿 말했다.

“연기도 잘하고, 착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결국에는 토해낸다.

“……제가 아끼는 후배죠.”

촬영 팀이 돌아간 후.

손채영은 이송하를 흉흉한 눈으로 노려보며 아까 한 멘트는 시청자를 위한 예의상 멘트라고 거듭 소리치더니, 죄 없는 테이블을 걷어차고 사라졌다.

인간이 덜됐어, 인간이.

나는 이봉준 실장에게 영상을 보내주고, 넵튠 멤버들과 김현조 실장 등이 모인 우리 팀 단체 톡방에도 올렸다.

모두 이송하 레슨 사건 때문에 손채영한테 맺힌 게 많았던 터라, 톡방이 폭발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지준의 말대로,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는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그리고 승승장구하던 시청률이 주춤했다.

수정 압박을 받은 작가가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작업한 수정고, 촬영일정을 엉망으로 만드는 쪽대본, 그리고 급한 편집까지 더해져서 이야기가 산으로 뱃머리를 돌린 게 문제였다.

더 큰 문제는, 그 산이 바로 북망산이라는 거지.

올라가는 건 마음대로지만 내려가는 건 불가능한.

애석하게도 그 뒤로 손채영하고 직접 부딪치지는 못했다. 다만 홍보팀을 들들 볶아대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다. 이런 때일수록 언플을 더 잘해야 한다나.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정비해서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뭐, 아직 초반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작가 멘탈이 흔들리고, 벌떼 같은 원작 팬들과 방송사, 제작사, 연출진에 협찬사까지, 수많은 사공이 이래라저래라 떠들어대는 악순환만 반복됐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홍보성 기사를 쏟아내 봤자였다.

결국, 그다음 주.

20프로를 목표로 솟구치던 뭍나인의 시청률이 뚝 꺾였다.

그리고 고양이 수호령의 시청률이 10프로를 돌파했다.

Knet 분장실 복도에서 녹화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면 2분이면 도착할 길을 십 분 동안 걷고 있다. 지나쳐가던 넥스트 K스타 스텝들이나 안면 있는 방송사 관계자들이 자꾸 붙들어서.

다들 축하한다고 야단이다. 고양이 수호령이야 이미 성공한 케이블 드라마 목록에 이름을 올린 상태라서 축하는 넘칠 만큼 받았지만, 10프로를 넘기고 나니 반응이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격하다.

이제 정말 공중파 드라마 시청률을 넘어서기 시작했으니까.

시청률은 여전히 상승세고, 연예부 기자와 평론가들은 흥행에는 큰 기대 없던, 오히려 말 많고 탈 많아 안 좋은 쪽으로 역대급 드라마가 될 거라고 예상했던 고양이 수호령의 반전이라며 기획기사들을 써내고 있다. 최고의 기대작으로 시작했지만 휘청휘청하고 있는 뭍나인과 비교하는 기사들도 보이고.

여러모로 주변이 술렁거리고 있다.

뭐랄까. 거대한 둑안에 물이 쭉쭉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 둑이 터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지금은 상상하기도 벅차다.

“선우씨!”

누군가 또 발목을 잡는다.

돌아보니 능청스러운 고준태 피디의 얼굴이 보인다.

“드라마 시청률이, 10프로가 넘었다면서요?”

“아, 네.”

빙긋 웃으며 대답했더니 고준태 피디가 입맛을 다신다.

“이야, 무슨 시청률이 공중파처럼 올라가네. 이대로 송하 씨 드라마 잘 되고, 우리 넥스트 K스타까지 8프로 딱 넘겨서 유종의 미를 거두면, 연초부터 넵튠이 제대로 쌍끌이하는 건데. 안 그래요?”

“그렇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서 말인데.”

고준태 피디가 주변을 의식하는 듯 앞 뒤를 두리번거린다. 나는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그가 용건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고준태 피디가 물었다.

“다른 프로에서 채가기 전에 서지준 씨 섭외 확정 짓고, 막방에 송하 씨랑 투 샷 딱 나가면 좋겠는데…… 뭐 좋은 소식 없어요?”

< 여러모로 역대급 드라마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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