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슛 들어가겠습니다 (5) >
TVL. 주조정실.
그 공간이 오늘만큼은 시장바닥보다 더 시끄러웠다. 송출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팀의 직원들까지. 모두 앞다투어 떠들면서 시퍼런 지폐를 흔들었다.
“나는 2.5프로.”
“지금 완전 불판인 거 몰라? 나는 3프로.”
“난 3.3프로.”
“스톱! 스톱! 국장님 오십니다!”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치자마자 주조정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드라마국 배 국장과 송 부장, 신태균 감독이 들어왔다. 워낙 관심도가 높은 드라마라 오늘만큼은 함께 주조정실에서 시청률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재빨리 헛기침하며 빠져나갔다.
“또 시청률 가지고 내기했구만?”
송 부장의 말에 기술감독이 멋쩍게 웃었다. 시청률 내기의 증거가 적혀있는 포스트잇을 가로챈 송 부장이 줄줄 읽었다.
“거의 다 3프로대네?”
“반응이 워낙 후끈후끈해서 다들 기준치를 높게 잡긴 했죠. 그래도 이거 분위기가, 잘하면 4프로 가까이 찍을 수도…….”
“4프로 넘긴다에 5만 원 건다.”
송 부장이 지갑에서 지폐를 턱 꺼냈다. 주조정실 직원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 너무 가시는 거 아니에요?”
“종영할 때까지 4프로 못 넘는 드라마가 쌔고 쌨는데.”
“저는 5프로에 겁니다.”
이번엔 신태균 감독이었다. 그의 손에서 5만 원권 지폐가 흔들렸다.
기술팀과 편성팀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돈을 받았다. 그리고 뒤에는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저 양반들이 김칫국을 과하게 들이킨 것 같다고.
그러나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직원들은 그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2분 전입…… 어?”
시간 체크를 하던 부감독이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는 분당시청률 그래프를 확인하고 멈칫했다. TVL의 분당 그래프가, 동시간대 다른 케이블 채널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이거 지금, 어, 뭐야, 벌써 2프로 넘었는데요?”
“뭐야, 이거? 진짜야?”
편성팀 직원은 뒤쪽 눈치를 보며 모니터를 툭툭 두드리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그래프의 선은 2프로 위로 가파르게 뻗어 올라갔다.
기술감독이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설마, 이러다가 3프로 찍고 들어가는 건 아니겠죠?”
그리고 그 설마는 현실로 일어났다.
“부, 분당 3프로로 스타트 끊었습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출발에 주조정실 안이 시끄러워졌다.
화면으로 고양이 수호령의 타이틀이 스쳤다. 그리고 편집본에서 가장 좋은 그림만 뽑은 하이라이트가 몰아친다. 주조연 배우들의 컷들이 숨이 막힐 만큼 빠른 호흡으로 지나가다가 갑자기 덜컥 멈춘다.
이송하다.
감독이 작정이라도 한 듯, 이송하의 하이라이트 컷을 어마어마하게 붙여놨다.
기술감독은 그래프에 신경 쓰던 것도 잊고 화면을 바라봤다.
연기를 잘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TVL 내부에서 물건 하나 나왔다고 소문이 퍼졌으니까.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주조정실에서 송출을 담당하는 동안, 연기파라고 극찬받는 배우들의 연기를 물리도록 봐왔다. 그러니 이제 어지간한 걸 봐서는 감흥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혀를 내둘렀다.
‘타고났다는 말을 실없게 던졌겠어요? 걔한테 정신과 상담받아보라는 얘기까지 했었어요, 내가.’
원로배우 장윤옥의 말 뒤로, 카메라 감독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왜, 가끔 그런 배우들 있잖아요. 씌이는 배우들. 그런 거죠. 가끔 카메라로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칠 때가 있다니까요.’
화면은 촬영현장을 비춘다. 우울하고 차가운 표정의 이송하, 그리고 한 손에는 햄버거를 들고서 매니저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또 다른 이송하를 교차 편집한다. 이중적인 모습이 극대화되도록.
기술감독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들렸다는 게, 바로 저런 거 아닌가.
“어…… 도, 돌파했습니다. 4프로!”
갈라진 목소리에 기술감독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모두가 분당시청률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리고 4프로를 넘어간 그래프를 본 순간, 누군가 흥분 섞인 함성을 질렀다. 곧바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금 동시간대 GTBN이랑 거의 세 배 차이에요, 세배!”
“이, 이러다 진짜 5프로까지 가는 거 아냐?”
송 부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장님, 제가 뭐랬어요. 이거 물건이라니까요! 베일 벗자마자 시청률이 4프로가 넘어갔어요, 4프로! 이 정도면 앞으로 공중파랑 붙어도 돼요!”
배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양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신 감독, 신태균! 고생했다, 임마! 이제 쭉쭉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았어! 일단 김판석 대표랑 W&U 백한성 대표한테 연락해서 소식 전해주고, 아니다, 내가 직접 전화……!”
“조용히 좀 보세요, 부장님.”
신태균 감독이 말했다. 그는 아까부터 분당 시청률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던 직원들도, 국장, 부장도 다시 모니터를 쳐다봤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흥분이 도사린 침묵 속에 시청률 그래프는 점점 치솟았다.
손채영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TV 화면을 응시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확 망해버려라.
요즘 이송하와 그 매니저, 꼴 보기 싫은 두 사람 때문에 밥맛까지 떨어졌다. 신경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성격이다. 저 드라마가 1프로도 안되는 시청률로 침몰하는 걸 봐야 심신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TV 속에서 원로배우 장윤옥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내가 타고났다는 말을 실없게…….’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던 손채영이 손에 잡히는 걸 TV로 집어 던졌다.
“눈이 삔 거 아냐? 하긴, 그러니까 저 경력에 케이블을 찍지.”
손채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 화면이 바뀌고 이송하가 연기하는 정해원의 컷들이 이어진다. 오싹한 느낌에, 손채영은 저도 모르게 팔뚝을 내려다봤다.
솜털이 곤두서 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 이상 화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한 손채영이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끌어당겼다. 이럴 때는 이송하를 욕하는 악플들을 보면서 기분전환을 하는 게 제일이었다. 금방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편안해질 거다.
포털을 열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이송하의 이름이 보였다.
메인에 걸린 기사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에도 다 이송하의 이름이 박혀있다. 키워드는 연기력 논란 불식, 네티즌 박수, 최고의 연기…….
하여튼 기자들, 지들이 뭘 안다고.
댓글. 댓글은 괜찮을 거다. 악플러들은 변하지 않으니까.
여자 연예인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욕하고 보는 사이트로 들어갔다. 관련 글도, 댓글도 어마어마했다. 손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독이 진짜 논란 뽑겠다고 이 갈고 만든 듯. 저것만 봐도 연기 잘하는 건 알겠네요.
-못할 거라고 아예 박아놓고 욕하던 사람들, 다 이불 킥하고 계시나 조용하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경력도 없고, 오래 배웠다는 얘기도 없는데 타고났네, 어쩌네 하니까 더 욕먹었던 건데, 저런 거면 타고났다고 할 만하네요. 연기가 아닌 것 같던데요.
-장윤옥이 정신과 상담받으라고까지 했다잖아요. 좀 걱정되긴 함.
-근데 이거 시청률 어마어마하게 올라갈 듯. 드라마도 존잼이겠던데.
“이게 뭐야!”
기가 막힌 얼굴로, 손채영이 노트북을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남은 화분도, 리모컨도,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의 대본까지 모두 집어 던지며 짜증을 냈다.
초조하게 거실을 서성거리던 손채영이 조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양이 수호령 방송이 끝난 화면에는 어느새 다른 광고가 흐르는 중이었다.
“오빠, 저거 시청률 몇 프로야? 알아봤지?”
사납게 소리치자 조실장이 꺼리는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게 말이야, 저기 채영아…….
“몇프로냐고! 2프로? 3프로야?”
-그러니까, 그게…… 어휴.
불길한 한숨 소리에 손채영의 얼굴이 이마가 잔뜩 일그러졌다.
“……설마 4프로는 아니지?”
-채영아, 곧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방송 나가면 그것도 시청률 대박 터질 거야. 고양이 수호령이랑은 두 배, 아니지, 세 배까지 벌어질 수도 있을걸. 그러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서 저거 시청률 뭐냐니까!”
-내가 문자로, 문자로 보내줄게.
조실장이 폭탄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것처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 초 후,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들어왔다. 황급히 확인한 손채영이 우뚝 굳었다.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봐도 숫자는 그대로였다.
“말도 안 돼…….”
두 눈에 흉흉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리고 곧, 손채영의 주변 물건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W&U의 대표실에 낮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시작이 그 정도면,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되네요. 배우 컨디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신경 쓸 거고, 지금도…… 좋은 매니저가 붙어있으니까.”
몇 마디 더 듣기 좋은 말을 주고받던 백한성 대표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몇걸음 걸어 한쪽 벽 앞에 섰다. W&U 소속 연예인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장식돼 있다.
그는 입술을 문지르며 비어있는 부분을 바라봤다. 얼마 전까지 성도원의 사진이 걸려있던 공간이다. 대신 이송하의 개인 사진을 하나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가, 문득 시선을 내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손채영의 사진.
말없이 사진을 쳐다보던 백한성 대표가 손을 뻗었다.
길쭉한 손끝이, 고민하듯 손채영의 얼굴을 툭 건드렸다.
그리고 종로. 지투데이 예능부 사무실.
박우정 기자는 책상에 난잡하게 늘어진 자료들을 곁눈질하며 격정적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중간중간 쥐어뜯은 머리는 이미 봉두난발이다.
직원들이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컴퓨터 화면에 기어들어 갈 것처럼 얼굴을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는 고양이 수호령의 방송화면과 실검, 반응 댓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임마. 뭐해?”
깜짝 놀라 돌아보자 수염이 지저분한 남자가 서 있다.
“아, 부장님.”
“이송하 난리 나서 다른 데서 기사들 쏟아져 나오는 거 몰라? 1초라도 빨리 내놔야지 뭘 그렇게 붙잡고 있어!”
“제가 이송하 매니저랑 친해서 좀 정성을 들이느라…… 금방 올릴게요!”
“아니, 아니, 잠깐!”
급히 박우정 기자의 어깨를 붙잡은 부장이 물었다.
“너 이송하 매니저랑 친하다고?”
“네.”
“얌마, 진작 말하지. 지금 이송하랑 그 관계자들 인터뷰 하나 따려고 사방에서 혈안이 돼 있구만!”
부장이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니가 그 매니저한테 부탁해서 인터뷰 좀 따봐라.”
*
김현조가 눈살을 찌푸렸다. 핸드폰을 두어 번 흔든 그가 다시 물었다.
“몇 프로라구요?”
건너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김현조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졌다. 우리는 미어캣들처럼 고개를 쭉 빼고 김현조를 쳐다봤다.
대체 뭐야. 몇 프로라는 거야. 궁금해 죽겠네. 넥스트 K스타보단 더 나왔을 거다. 사람들 반응이 그때랑 비교도 안 될 만큼 난리였으니까. 그리고 인터넷도 인터넷이지만, 내 핸드폰이 아까부터 날뛰고 있거든. 오늘 아침에 온 연락들은 지금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답장 보내다가 지문이 닳지 싶다.
마침내 김현조가 전화를 끊었다. 임서영이 득달같이 물었다.
“몇프로 나왔대?! 빨리, 빨리 말해봐, 답답해서 말라죽겠다!”
김현조가 털썩 소파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우리를 한 번씩 쳐다봤다. 특히 이송하와 나를.
“역대 TVL 드라마 시청률 5위가 5.9프로래. 겨울태양.”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런데 오늘 고양이 수호령이 실시간 시청률 6프로까지 찍었단다. 실시간이라 내일 되어야 정확하게 나오겠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거야.”
잠깐동안,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김현조의 입에서 나온 숫자를 암호문이라도 되는 듯 해석하고 있을 거다.
나도 지금 그러고 있으니까.
인터넷에서 반응이 워낙에 폭발적이라 기대가 높긴 했지만…….
6프로라고?
이제 막 신호탄을 울린, 케이블 드라마의 시청률이, 6프로가 나왔다고?
“여, 역대 5위면…… 엄청 잘 나온 거 맞지?”
임서영이 더듬거렸다. 엘제이도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
“그…… 런거 아냐? 지금까지 TVL에서 했던 드라마가 몇 갠데.”
“오빠, 맞죠? 이거 대박 터진 거죠?”
임서영이 내 등을 양손으로 찰싹찰싹 두드리며 묻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아니지.”
“아니에요?!”
“어마어마한 대박이 터진 거지.”
임서영이 거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이태희와 엘제이도 확 밝아진 안색으로 이송하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방송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송하를 중심에 넣고 요란하게 떠들어댄다. 물론 임서영의 목소리가 95프로를 차지하긴 하지만,
다른 목소리들도 흥분한 기색이 뚜렷하다.
또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김현조가 전화를 끊고 나한테 손짓한다.
“박 팀장님인데, 지금 홍보팀 난리났대.”
“난리요?”
“뒤늦게 숟가락 얹겠다고 여기저기서 문의가 쏟아진다더라. 연락이 하도 많이 와서 홍보팀이 아니라 콜센터래, 콜센터. 체감 시청률은 벌써 10프로쯤 되는 분위기라는데?”
입 끝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김현조가 내 팔뚝을 철썩 때린다.
“기분이 어떠냐?”
기분이라.
“넥스트 K스타는 기회만 잡은 거지만, 이건 시작부터 아예 니 손으로 쌓아 올린 물건 아냐. 시놉시스 받고, 송하한테 드라마 하자고 밀어붙이고, 오디션에 촬영 준비까지. 니가 쌓아올린 게 지금 대박 터졌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내가 관여한 첫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그야, 뭐.”
씩 웃으면서 말했다.
“찢어지죠.”
김현조가 술이라도 걸친 사람처럼 커다랗게 웃었다.
무언가가 뿌듯하게 차오른다. 가슴이 뻐근하고, 심장은 터질 지경이다. 아마 여기 사람들이 없었다면, 시원하게 소리 한 번쯤 질렀을걸. 그리고 부모님과 형한테 전화해서 자랑을 늘어놨을지도 모른다. 다들 엄청 좋아하시겠지.
주먹을 꽉 쥐었다.
김현조의 말처럼 고생해서 하나하나 쌓아온 것이, 엄청난 성공으로 돌아왔다는 것. 양손에 잡히는 확실한 무언가를 이루어냈다는 것. 타인의 인정과 스스로 보람에 취하는 것.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넵튠 애들한테 폭 파묻혀서 축하받고 있는 이송하를 바라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넋 놓고 있더니, 애들이 하도 요란을 떨어서 그런지 지금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래, 웃어야지. 웃을 수밖에 없는 날인데.
이송하를 욕하던 사람들은 대중들에게 밀려서 기도 못 펴고 있다. 오히려 이송하에게 악플을 남기는 사람을 우르르 달려가 물어뜯는 분위기니까. 지난날 이송하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욕 먹었던 것들을 증거자료라고 올리는 사람들이 나왔고, 이송하에 대한 동정여론까지 불처럼 일어난 덕분이다. 넵튠의 팬카페와 고양이 수호령 팬 페이지에는 응원 글들이 수북하다.
그러니까 이제, 지금까지처럼 마음고생 할 일은 없다는 거다.
이제 이송하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을 필요도 없고, 가끔 느껴지는 비웃는 시선에 기분 더러워질 일도 없겠지.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이송하가 내 쪽을 쳐다본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림 같은 눈이 살짝 웃는다. 찰나 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이 지나갔는지, 가능하다면 멈춰놓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나한테 오려던 이송하가 다시 임서영의 손에 잡혀 짤짤 흔들리고, 나는 김현조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이거 때문에 내일 넵튠 앨범회의 할 때 분위기 죽이겠다.”
“아.”
“박 팀장님이 너 꼭 데리고 오라더라. 보고 싶어하는 사람 많다고.”
김현조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참 내, 니가 복덩이는 복덩이다.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몇 번이나 들은 레퍼토리가 또 쏟아졌다.
곧 조촐하게 뒤풀이를 시작했다. 김현조가 3팀장이 줬다는 산삼주를 하나 더 꺼내놓는 바람에 술판으로 번지긴 했지만.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산삼주의 효과는 대단했다. 두 시간이 흐르자 제정신인 사람이 거의 없다.
고개를 꾸벅꾸벅 흔들던 이송하가 결국 풀썩 쓰러진다. 가까스로 붙잡아서 소파에 기대놓으니까 입을 우물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그린다. 치킨 한 마리를 해치워놓고 꿈에서 또 뭘 먹고 있는 거야, 얘가.
걸그룹 숙소라기보다는 난장판에 가까운 거실과 패잔병처럼 쓰러진 사람들을 훑어보는데, 한 사람이 빈다.
배신자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한참 동안 안 보인 것 같은데. 또 담배 피우러 갔나?
*
통화를 끝내고, 최건영은 적막한 숙소로 들어갔다.
넵튠 멤버들은 방으로 들여보냈는지, 김현조와 정선우 둘만 겉옷을 챙겨입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최건영은 우뚝 서서 정선우를 내려다봤다.
늘 환하게 웃고 있었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찾아볼 수 없다. 납덩이처럼 차갑게 굳어있을 뿐이다.
그가 손에 쥔 핸드폰을 꽉 움켜쥐며 생각했다.
오늘이 정선우의 날이었다면, 내일은 바로 그의 날이 될 거라고.
< 슛 들어가겠습니다 (5)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