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슛 들어가겠습니다 (2) >
“지금 저기서 드라마 촬영한다는데? 서지준 있대, 서지준!”
“누구? 누구 있다고?”
“서지준이랑 걔 누구야, 연기력 논란 있는 애. 아, 이송하!”
“잠깐 보고 갈까?”
늦은 아침.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벚꽃길을 걷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한강 둔치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촬영현장에는 구경꾼들이 제법 있었다. 반 정도는 서지준을 보러 온 여자들이었고, 나머지는 연기력 논란으로 화제인 이송하가 있다는 소리에 흥미를 품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서 여자 한 명이 고개를 쑥 내밀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전자였다. 서지준이 한강에 떴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은행업무를 핑계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송하의 연기력이 대단한 관심사일지 몰라도, 그녀에겐 서지준만 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눈을 크게 뜨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갈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 여자는 갸웃하며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홀린 것처럼 자꾸만 시선이 다른 곳을 따라간다.
서지준이 아니라, 이송하에게로.
무슨 내용을 촬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송하가 고양이 흉내를 내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굉장히 잘한다는 것도. 사소한 제스쳐와 몸짓 하나하나가 그녀를 정말 고양이에 씐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분명 눈앞에서 움직이는 건 사람인데 쫑긋하니 솟은 귀와 꼬리가 환영처럼 보이는 것 같다.
저건 찍어야 돼.
여자는 핸드폰 갤러리에 서지준 대신 이송하의 사진을 가득 채웠다.
그 옆에는 자전거를 옆구리에 낀 남자들이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계속 난리더니만, 쟤 연기 잘하는데요?”
“이야, 저거 잘못하면 엄청나게 오글거릴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잘하네요. 진짜 고양이 같아요. 우리 집 고양이도 저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그럼 아주 상전처럼 모시면서 살 텐데.”
“생각하지 마, 미친놈아.”
“근데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냐.”
“그러니까요. 여배우들은 다 저런가? 완전 CG네요.”
이송하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누군가는 장윤옥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잘할 줄 알았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백 프로 끼워팔기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라며 머쓱해 했다.
그 가운데, 한참 넋을 놓고 이송하를 구경하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SNS에 좀 올릴까? 이송하 아직도 욕 많이 먹던데.”
후끈하던 비난 여론은 장윤옥의 인터뷰 이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덮어놓고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장윤옥이 드라마를 위해 입에 발린 인터뷰를 했을 거라고 떠들기도 했다.
“그래, 올려, 올려.”
친구까지 부추기자, 남자가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지금 이송하 드라마 촬영하는 거 구경 중인데, 연기 잘하는 거 맞네요. 근거 없이 발연기 운운하시는 분들, 이제 그만합시다. 논란 끝!
-니가 뭔데 논란 끝이래. 알바냐?
곧바로 달린 글을 보고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넌 누군데 초면에 반말이냐. 지금 눈앞에서 연기하는 거 보고 있거든?
-동영상 찍어 올리던가.
“나 참.”
팔을 걷어붙인 남자가 이송하가 연기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영상을 올리면서 이젠 믿겠지, 하고 생각했을 때. 주르륵 답글이 올라온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개 눈깔 인증’ 따위의 악의적인 글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헐. 뭐 이러냐? 직접 보고 있다는데도 안 믿네?”
“자기들 눈으로 본 거 아니라 이거지.”
남자는 한동안 인터넷상의 얼굴 없는 사람들과 싸우다가 손을 들어버렸다. 그악스럽게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혼자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혀를 내두르며 악성 댓글들을 캡처했다.
“그건 왜 캡처해?”
“저거 방송 나가면, 그때는 이송하 연기력 논란 얘기 쏙 들어갈 거 아냐.”
“아마도?”
“그때 증거자료로라도 쓰려고.”
*
새벽에 시작된 촬영은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시간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장소만 한강에서 야외 세트장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송하는 카메라 앞에 섰을 때나, 아닐 때나 내내 정해원이 씐 것처럼 돌아다녔다. 저렇게 해야 본인도 몰입도 잘되고, 카메라에도 죽여주게 잡힌다길래 내버려뒀는데 큰 문제가 있다.
애가 밥을 안 먹는다.
이송하가, 밥을 안 먹는다.
넥스트 K스타 녹화 때문에 어제도 많이 못 먹은 데다가, 밤에도 엘제이가 넣어준 과자만 입에 댔을 뿐이다. 아침에는 스텝들이 딱 봐도 고급으로 보이는 도시락을 갖다 줬는데 그것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맙소사. 이송하 사전에 먹는 둥 마는 둥이라니.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세트장으로 탑차가 들어왔다.
“지준오빠 잘 부탁드립니다! 고양이 수호령 파이팅!”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서지준 팬들이 온다고 했었지.
뭔가 했더니 군침 도는 냄새를 솔솔 풍기는 분식차다. 현수막에 메뉴가 쓰여 있는데, 이건 뭐 종합선물세트다. 이송하한테.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인 이송하를 분식차 앞으로 질질 끌고 갔다.
“송하야 저거 봐, 어묵, 떡볶이, 닭꼬치, 새우튀김…….”
“네?”
아니나 다를까, 정해원은 가고 이송하가 튀어나왔다. 탑차가 변신로봇처럼 열리고 그 안에 푸짐하게 쌓여있는 분식이 드러나자, 이송하의 얼굴이 엄청난 장난감을 본 어린애처럼 몽롱해진다.
“갖고 싶다. 숙소로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안돼. 포기해.”
분식차를 숙소로 들고가지 못하는 대신 뱃속에 넣고 갈 셈인지, 이송하는 접시에 먹을거리를 산처럼 쌓았다. 정말, 산처럼 쌓았다. 스텝들이 그 광경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쳐다본다.
그럴 만도 하다. 새벽부터 배역에 씌어있어서, 저 사람들이 본 이송하는 차갑고 어른스러운 정해원의 이미지였을 테니까.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는지 메이킹 팀까지 와서 찍는다.
“와, 송하씨 의외네. 그걸 다 먹어요? 저게 어디로 다 들어가?”
“왜 그래, 새벽부터 나와서 열심히 한 사람한테. 많이 드세요!”
정해원에 씌어있을 때는 스텝들이 멀찍이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표정으로 힐끔거리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슬쩍 다가와서 한마디씩 하고 간다.
우리도 세트장을 한 바퀴 돌면서 신태균 감독을 비롯해 다른 배우들, 스텝들에게 잘 먹으라고 인사를 돌렸다.
마침내 자리를 잡고 젓가락을 들었을 때.
“복댕이랑 송하도 많이 먹…… 고 있네. 간식차 털어왔어?”
서지준의 팬들을 우르르 데리고 다가온 이봉준 실장이 이송하의 접시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한다.
“송하가 어제부터 먹은 게 많이 없어서요.”
물론 굶지 않았어도 저만큼 펐겠지만. 어쨌든 변명을 하고 나서 서지준 팬들을 돌아봤다. 나랑 나이가 엇비슷해 보이는 여자도 있고,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화장기 없는 어린애도 있다.
“감사합니다. 간식 잘 먹을게요.”
내가 인사하자 이송하도 새우튀김을 반쯤 문 채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진짜 맛있어요. 잘 먹겠습니다.”
“아…… 많이 드세요, 언니!”
이송하를 멍하니 보던 팬들이 손사래를 친다. 조금 전까지는 조금 뾰족한 시선으로 힐끔거리던 애들도 있었는데, 편견 때문이었는지 이송하의 인사를 받자마자 사르르 풀어진다. 인증샷이라며 이송하의 먹방 사진을 몇 장 찍은 팬들이 나한테 통통한 종이가방을 내민다.
“이거 받으시구요. 앞으로 지준 오빠 잘 부탁드려요.”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가방 안에는 겨울 촬영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만한 것들이 가득했다. 핫팩이랑 핸드크림, 사탕, 무릎 담요까지. 담요의 귀퉁이에는 서지준 이름 석자와 팬클럽 이름이 박혀있다.
연예인 팬들의 서포트, 조공문화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진짜 지극정성이다. 안에 서지준 잘 부탁한다고 써놓은 손글씨 메모도 있다. 이런 걸 선물 받으면 서지준한테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겠네.
나도 이송하 이름으로 뭔가 좀 돌려야 하나.
“근데 니들 너무 무리한 거 아냐? 본방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분식차에, 선물에. 돈 많이 들었겠는데?”
이봉준 실장의 말에, 개중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가 친근하게 대답했다.
“상황이 상황이라, 기운 내시라고 일찍 준비했어요. 그리고 계좌 열자마자 총알은 순식간에 모이던데요? 이번에 논란 터지고 사방에서 막 찔러대서, 우리도 똘똘 뭉쳤거든요.”
“맞아요, 요즘 박터지게 싸워서 다들 전투력 만렙이에요.”
“악플러들 댓글 수집해놨는데, 그거 홍보팀으로 보낼게요.”
보고 있으려니까, 좀 부럽다.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저렇게 도와주는 팬들이 있다는 게.
“그래. 드라마 잘되면 소소하게 팬 미팅 한번 추진해보자.”
“본방 들어가면 라이트 팬들도 유입될 거니까, 그때 밥차랑 커피차 끌고 또 올게요.”
“우리야 고맙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어.”
곧 감독님과 이야기를 마친 서지준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팬들이 우르르 그의 곁으로 몰려간다. 악플러와 박터지게 싸웠다는 팬들은, 서지준 앞에서는 상기된 얼굴로 발만 동동 구른다.
오히려 서지준이 서슴없이 팔을 벌려 반긴다. 가볍게 안아주고, 손을 잡고. 몇 명은 낯이 익은지 이름까지 불러주면서. 이름 불린 팬들은 거의 얼굴이 터질 지경이었다.
팬서비스 엄청 잘하는구나, 서지준.
제일 어려 보이는 팬이 종알종알 떠든다.
“포털에서 내년 초 가장 기대되는 드라마 투표 중인데, 지금 고양이 수호령이 2등이에요, 오빠! SNS에 퍼 나르면서 표 엄청 모았어요!”
“우리가 2등이야? 1등은 뭔데?”
서지준의 물음에 팬들이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요. 그거 원작 팬들 화력 겁나 세요!”
“우리도 분투했는데 압살당했어요, 오빠.”
그거 어디서 하는 건지 몰라도 나도 한 표 던져야겠다.
“요즘 인터넷에서 시끄러워서 힘드시죠.”
팬이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자, 서지준이 혀를 찬다. 그리고 이송하를 쳐다보며 말한다.
“힘들기야 쟤가 힘들지. 아직도 나랑 한 세트로 섭외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많더라. 사실 쟤가 먼저 들어간 작품에 내가 늦게 들어간 건데. 너희도 쟤 연기하는 거 보고 소문 좀 내줘.”
“네!”
팬들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식사시간이 끝나고 금방 촬영이 재개됐다. 이송하는 다시 정해원의 탈을 쓰고 대기하고 있다.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데 자꾸 귓가로 이송하의 이름이 들려온다.
힐끔 보니 서지준의 팬들이 동그랗게 모여서 뭔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와. 어그로들 우글우글하네. 밥 먹고 할 짓이 그렇게 없나?”
“이 사람은 이송하한테 원수졌나 봐요.”
몇 걸음 다가가서 들어보니, 저 중 한 명이 이송하가 밥 먹고 있는 인증샷을 인터넷에 올린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해보니 한참 먹방 중인 사진이다. 맞은편 의자에 내 모습도 같이 찍혀있다.
사진은 멀쩡한데, 밑에 주르륵 달린 글들이 가관이다.
-와, 쟨 먹으려고 촬영장 갔나. 연기 연습 안 하고 처먹고 있을 군번인가?
-천재는 그깟 연기 연습 안 해도 됨.
“이런, 미친…….”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핸드폰을 보고 있던 팬들이 놀라서 나를 쳐다본다.
“아, 죄송해요. 순간 울컥해서.”
핸드폰 페이지를 보여주며 말했더니, 말총머리를 한 여자애가 위로한다.
“이거 보셨구나. 인터넷에 진짜 미친놈들 많아요.”
“연예인은 팬덤 싸움이라, 팬덤이 크면 이렇게까진 안 되는데.”
“맞아요, 지금도 쉴드쳐주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다 그냥 오다가다 한마디씩 던지는 정도라서. 악플러들한테 너 뒤졌어, 이러면서 멱살 잡고 대거리하는 팬들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면 더 물어뜯거든요.”
몇 명이 물꼬를 트자,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나온다.
“근데 넵튠 팬덤이 아예 없나? 요즘엔 인지도 조금 올랐잖아.”
“넥스트 K스타 때문에 조금씩 늘어나고 있긴 한데, 결속력이 약해요. 넵튠 팬 중에서도 이송하를 안 좋게 생각하는 애들이 있더라구요. 저러다가 그룹 내에서 그룹 팬, 개인 팬 갈라져서 싸우면 진짜 개판 나는 건데.”
넵튠 팬들이 이송하를 안 좋게 생각한다고?
넥스트 K스타 시청자투표에서 넵튠 순위가 조금씩 올라가는 중이라, 팬이 생기고 있구나 하면서 뿌듯해 하는 중인데.
“정말 그래요?”
내가 진지하게 묻자, 커트 머리를 한 여자가 움찔하며 대답한다.
“제가 부업으로 다른 걸그룹 덕질도 하고 있어서 좀 들었는데요. 이송하 혼자만 열심히 안 한다고 생각하던데요?”
“근데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해요.”
다른 팬들이 조심스럽게 덧붙인다.
“저도 넥스트 K스타 지금까지 나온 거 다 봤는데, 다른 멤버들에 비해 지적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혼자만 열심히 안 하고 대충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 조금 했거든요.”
“왜, 아이돌 보면 가끔 그런 멤버 있잖아요. 팀 활동에는 관심 없어서 설렁설렁하고 자기 개인 스케줄만 챙기는 멤버. 아예 그런 케이스로 찍힐 수도 있어요.”
개인 활동은 열심히 하면서 팀 활동은 대충하는 멤버라니. 이송하랑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저렇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답답해서 목이 막힐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TV로만 보는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고.
넥스트 K스타는 회당 60분짜리 프로그램이고, 출연하는 연예인은 수십 명이다. 이송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화면에 많이 비치는 편이지만 그래 봤자 단편적인 부분들일 뿐이다. 그걸로는 이송하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답답하네. 연기연습만큼 무대 연습도 엄청나게 하고 있는데.”
혀를 차며 중얼거렸더니, 팬들이 앞다투어 말한다.
“티가 안 나잖아요, 티가.”
“저희야 속사정은 모르니까요. 그냥 떡밥 보고 궁예질 하는 거지.”
“사실 괜찮은 떡밥만 있으면 팬덤은 확 뭉칠 수도 있는데. 그지?”
“떡밥?”
말총머리 여자애가 뺨을 긁적이며 대답한다.
“동영상이나 움짤, 그런 거 있잖아요. 얘 열심히 하는 애예요, 하고 영업할 만한 거.”
떡밥으로 쓸만한, 이송하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장면 같은 건 많이 찍어놨는데.”
“그건 너무 설정 같잖아요. 일단 소속사가 끼면 언플하는 걸로 보여서 안 하느니만 못할걸요.”
“사람들이 직캠 찍어 올린 건 없나?”
팬들이 적극적으로 핸드폰을 두드린다.
“별거 없네. 멤버들이 다 같이 출연한 방송 뭐 없을까요?”
기억을 되짚어봤다.
“Knet 음악방송, 공중파 음악방송에도 나갔고, 넥스트 K스타, 그리고 지난번에 TBS 나눔 캠페인 생방송…… 아, 그건 방송 안 나갔구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반사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억수 같은 소나기가 내린 날.
이송하가 비에 젖은 무대 위에서 춤추다가 넘어지고, 다친 발목으로 넥스트 K스타 녹화를 했던 날. 심지어 리허설만 하고 생방송에는 얼굴을 비치지도 못했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어.”
아까부터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있던 여자애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나한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이거 아니에요?”
화면을 보니 어떤 공무원의 개인 블로그다.
나눔 캠페인 현장에 참여했었던 사람인지, 간략한 후기와 함께 당일 날 찍은 사진들을 올려놨다.
중간에 동영상도 하나 보인다.
제목은 ‘빗속에서 고생해준 걸그룹 웹툰’.
웹툰?
동영상을 재생하자마자 무겁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맨몸으로 춤을 추는 애들도. 1분도 안 지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버린 모습이 고화질 동영상에 선명하게 비친다.
“웬일이야, 무대 상태 왜 저래? 저러다 사고 나겠다.”
누군가 중얼거리자마자, 화면 속의 이송하가 휘청하더니 그대로 엎어진다. 헉, 하고 두세 명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를 냈다. 넘어진 이송하는 몇 초 만에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재빨리 안무를 계속한다.
재생이 끝난 동영상이 새카맣게 물든다.
물끄러미 화면을 보고 있던 팬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말총머리가 말했다.
“찾았네요, 떡밥.”
< 슛 들어가겠습니다 (2)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