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58화 (58/218)

< 슛 들어가겠습니다 (1) >

-해 봐.

백한성 대표가 선뜻 말했다.

김현조나 3팀장에게 먼저 얘기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다.

백한성 대표가 나한테 직통으로 전화할 줄 알았나.

일단 선조치 후보고로 가자. 내일 김현조를 만나서 이 얘기를 하면. 음. 몇 차례 경험했던 그 시선을 받게 되겠지.

미친놈 보는 시선.

긴장을 풀고, 엄마표 생강 꿀차로 목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것 말인데요. 만약 고양이 수호령 드라마가 성공하면, 그때 가서 얘기하라고 하셨던…….”

-아.

낮은 웃음소리.

대표라는 무게 때문인가. 왜 웃음소리도 편하게 안 들리는 걸까.

-원하는 게 생긴 모양이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손채영과 심경택 선생, 그리고 이송하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3팀장이 한 차례 휩쓸었는지, 백한성 대표도 사건의 자초지종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마지막 한마디를 위해 신중하게 골조를 세우는 동안 백한성 대표는 짤막하게 듣고 있다는 기척만 냈다.

마침내 내가 꺼내놓을 수 있는 모든 걸 다 꺼낸 뒤에, 말했다.

“입바른 사과가 아니라…… 그만한 대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희한하네.

“네?”

건너편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니 말을 듣고 있으면, 드라마가 성공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거든.

“그, 야 좋은 드라마니까요. 꼭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성공시켜 봐. 대가는 내가 고민해 보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눈앞에 심경택 선생의 고압적인 얼굴과 손채영의 비웃는 얼굴이 그려진다. 하루에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을 두 번이나 봐서 꿈자리가 뒤숭숭할 뻔했는데, 비로소 심신이 안정을 찾았다.

그러다가 문득 백한성 대표가 나한테 전화를 건 목적이 떠올랐다.

“대표님께서 물어보고 싶다고 하셨던 건…….”

이 사람이 나한테 물어볼 게 대체 뭐가 있지?

머리를 굴리며 경우의 수를 뒤적거리는데, 느긋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드라마. 중국에서는 반응이 어떨 것 같아?

“네?”

-운 좋은 사람이 한 번 찍어보라고.

*

중국 베이징.

붉은 색조에 휘감긴 화려한 스위트룸 응접실. 널찍한 소파에 기대앉은 백한성 대표가 몇 마디를 더 건네고는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소파 한쪽에 툭 던져놓은 그가 목을 뒤로 젖힌다.

“대표님, 이십 분 후에 내려가시죠.”

본부장이 응접실로 나와 소파에 늘어졌다. 숨돌릴 틈 없는 일정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완연했다. 같은 일정을 소화했는데도 백한성 대표보다 두 배는 더 지쳐 보였다.

“그런데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하세요? 3팀장한테서 다시 왔어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백한성 대표가 입 끝만 당기며 웃었다.

“아니, 정선우.”

“누구요? 정선우…… 정선, 3팀 복댕이요?”

본부장이 어리둥절해 하자, 백한성 대표의 웃음이 좀 더 진해진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대표님이 걔한테 물어보실 일이 뭐가… 아, 채영이랑 송하 문제요?”

“그것도 있고. 고양이 수호령, 그 작품이 중국에서 반응이 어떨 것 같은지 좀 찍어보라고 했지.”

황당하다는 듯, 본부장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무슨 박수무당도 아니고. 이러다 걔한테 복비도 내야겠네요.”

소파에 앉은 그가 들고 나온 두툼한 서류뭉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서 걔는 뭐래요?”

백한성 대표는 잠깐 뜸을 들였다. 희고 길쭉한 손가락 끝이 버릇처럼 소파를 툭툭 두드린다.

“잘될 것 같다는데.”

“어이구,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그놈 그거 가끔 신통한 건 맞는데, 감은 글쎄올시다 던대요. 도원이가 자기 매니저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거절한 거, 그것도 나중에 감이 안 좋았었다고 했다더구만.”

“……그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백한성 대표는 느긋하게 풀어져 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눈을 가늘게 뜬다. 좋은 흥밋거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성도원이 감이 안 좋다고 했다고?”

“농담으로 한 소리겠죠, 뭐.”

“참 희한하단 말이야…….”

나직이 중얼거리는 백한성 대표에게 본부장이 말했다.

“아, 하나 더 있어요. 이건 홍보팀 쪽에서 나온 얘긴데요. 뭐 이것도 농담처럼 얘기했다고는 하더라만.”

“음?”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요, 그것도 감이 안 좋다고 했다네요?”

이번에는 백한성 대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좀 뜻밖인데.”

“그러니까 감은 글쎄올씨다 라는 거지요. 그냥 입버릇일 수도 있고.”

본부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복댕이가 혹시, 손채영이 문제 가지고는 별말 안 해요?”

“아. 그 얘기는 1월에 다시 하기로 했지.”

“1월에요? 왜…….”

“그때 드라마 두 개가 동시에 방영 시작하잖아.”

백한성 대표의 음성에는 흥미와 미묘한 감정의 편린들이 섞여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

본부장이 생각에 잠긴 듯한 백한성 대표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십 분쯤 지난 후, 백한성 대표가 기지개를 켰다. 얇은 셔츠 안의 근육들이 활기를 띠었다. 단숨에 피로를 떨쳐낸 그가 손을 내밀었다.

“포트폴리오는?”

“아, 일단 말씀하신 대로 다 준비해 놓긴 했는데요.”

본부장에 들고 있던 서류뭉치에서 포트폴리오 몇 개를 골라냈다.

“도원이 대체하기에는 다들 이미지가 딱히…… 광고주들이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원하고 있어서요. 그나마 지준이가 광고주들 입맛에 맞기는 하는데, 얘는 또 중화권 인지도가 너무 딸리잖아요.”

포트폴리오를 건네받은 백한성 대표가 말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본부장이 듬성듬성 벗겨진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단둘뿐인데도 목소리가 한층 줄어들었다.

“아니 그런데…… 대체 왜 도원이 대신 다른 애를 넣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광고주 쪽에서도 도원이 기용하고 스타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봐서, 어지간해선 안 놓치려고 할 텐데요.”

성도원의 포트폴리오를 집어 든 백한성 대표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프로필 사진 속의 성도원은, 흰 와이셔츠에 맨발 차림으로 모래사장에 누워 웃고 있다. 그를 한류스타로 만들어준 청량하고 우아한 미소다.

“통제가 안 되는 폭탄은, 터지기 전에 정리해야지.”

백한성 대표는 포트폴리오를 덮고 소파 아래로 툭 던졌다.

그 모습을 본 본부장이 슬쩍 입술을 핥고 말했다.

“채영이는 어쩔까요? 광고주 측에서는 도원이는 붙잡아놓고, 채영이를 새로운 얼굴로 교체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왔었다는데,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가 중국 반응이 아주 뜨거워서 쏙 들어간 것 같더라구요.”

“그래?”

“한국에서는 고양이 수호령이 난리지만, 여기는 인어공주가 반응이 괜찮아요. 뭐, 방영도 안 된 드라마 판권을 20억에 팔았을 정도니까요.”

턱을 몇 번 문지른 백한성 대표가 테이블 위에 서지준의 포트폴리오를 올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손채영의 포트폴리오를 옆으로 밀어놓고, 그 자리에 보잘것없는 얄팍한 포트폴리오를 툭 내려놓는다.

이송하였다.

“이 그림은 어때?”

“어, 음… 그림 좋죠. 그림은 좋은데, 광고주 반응은 안 좋을걸요.”

떨떠름하게 대답한 본부장이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지준이도 여기선 인지도가 바닥인데 송하 얘는 완전히 무명이잖아요. 진짜 복댕이 말대로 이번 드라마가 중국에서 대박이라도 나면 또 모를까. 그건 하늘이 도와줘야 하는 건데, 운이 그렇게 따르겠어요?”

“두고 봐야지. 고양이 수호령은 중국 판권 계약이 아직이랬나?”

“판 프로덕션에서 애쓰고 있는 것 같은데 조율이 잘 안 되나 보더라구요. 프로덕션 자체도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우왕좌왕하는 모양이고, 무엇보다 내세울 수 있는 한류스타가 없으니까요. 블랙아웃 고놈들 콘서트 끝났다고 탱자탱자 놀던데 얘기 좀 해볼 걸 그랬나.”

본부장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백한성 대표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느긋하게 넥타이를 맸다.

잠시 후 그가 입을 열었다.

“판 프로덕션 대표 연락처 좀 알아봐.”

“네?”

“그리고 여기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큰 걸로 몇 군데 미팅 좀 잡아놓으라고 하고.”

그 말에 귀국 날짜가 미뤄질 것을 짐작한 본부장이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둥그런 어깨를 축 늘어뜨린 본부장과 달리, 백한성 대표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세 개의 포트폴리오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것도 궁금하네.”

“뭐가요?”

“정선우 감이 얼마나 맞을지.”

*

스포츠카를 타고 아우토반 위를 질주하는 기분이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우토반은 가본 적 없고, 스포츠카도 아직 제대로 타본 적은 없지만 대충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엄청 빠르겠지, 뭐.

눈 깜짝할 사이에 넥스트 K스타의 녹화가 한 차례 지나갔고, 본방도 두 편 더 방송됐다. 시청률은 첫방 최고시청률 3.1을 찍더니 2화에는 3.6를 찍고 3화에는 3.9까지 매회 역대 최고시청률을 갱신하며 쭉쭉 치고 올라갔다.

4프로 대가 코 앞이라 그런지 방송사 들어갈 때마다 제작진들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다.

고준태 피디는 여전히 넵튠 애들, 그중에서도 이송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편집을 시도하면서 이송하의 화제성을 우려먹었지만, 첫방처럼 대놓고 엿을 먹이는 일은 없었다. 물론 언제 다시 엿을 제조할지 모르니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중이다.

어쨌든 화면에 얼굴을 많이 비치니 인지도가 올라가고, 애들이 꾸준히 심사위원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아내고 있어서 실력파 걸그룹 이미지도 차곡차곡 구축해나가는 중이다.

과연 방송이 좋긴 좋은 게, 팀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지방 행사도 들어오고, 페이도 올라서 이제 애들 메이크업 비용은 나온다. 이거야말로 진짜 박수 칠 일이다.

“거의 끝나가네.”

배신자가 차가운 밤공기를 두르고 공개홀로 들어왔다. 텁텁한 담배 냄새가 확 끼쳐온다.

“너 담배 피웠냐?”

“냄새나?”

“당연히 나지. 원래 안 피웠었잖아?”

“끊었었는데…… 요즘 다시 땡겨서.”

배신자가 혀를 차며 옷깃을 털어낸다. 담배 때문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현조 뺨치게 피곤해 보이던 놈 얼굴에서 활력이 좀 돈다.

나는 집안환경 때문에 학창시절에도, 군대에서도 담배는 손도 대본 적이 없는데, 요즘 들어 유혹에 시달리는 중이다. 다른 팀 매니저나 제작진이 녹화 중간에 담배 한 대씩 피우고 오면 링거 맞고 온 것처럼 쌩쌩해지더라고.

“오늘 송하 드라마 첫 촬영이지?”

“어. 드디어.”

고양이 수호령도 포스터 촬영, 고사식을 치르고 얼마 전에 첫 촬영에 돌입했다. 첫눈 오기 전에 남녀주인공의 가을 회상 씬부터 몰아 찍는 중이다. 송하는 오늘이 첫 촬영이지만, 서지준과 이봉준 실장은 벌써 야외촬영장과 세트장만 왔다 갔다 하면서 산다고 들었다.

“이거 녹화 끝나고 촬영장으로 바로 가는 거야?”

“그렇지. 새벽 4시 스탠바이래.”

지금이 자정이 좀 넘었으니까, 무대메이크업 지우고 메이크업부터 새로 하고, 의상 갈아입고 바로 야외 촬영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가늠하고 있는데 배신자가 작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그럼 내일 회사 못 들어오겠네. 회의 내용은 문자로 찍어줄게.”

“회의 있었나?”

“애들 다음 미니앨범 콘셉트회의 시작하잖아.”

아, 맞다. 그랬지.

예능이나 드라마 특수로 인지도가 반짝 올랐다가, 그 작품이 종영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묻혀버리는 연예인들이 부지기수다. 넵튠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음 계단을 신중하게 쌓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연초에 내놓을 넵튠의 다음 미니앨범이다.

지금은 예능이랑 드라마 스케줄 위주지만, 기본적으로 넵튠은 걸그룹 가수니까. 대중들이 들었을 때 멜로디를 알만한 히트곡이 한 곡만 있어도 공연, 행사, 팬 사인회 등등 활동 반경이 엄청나게 넓어질 거란 말이지.

이번 앨범만 성공하면 앞길이 잘 다져지는 거라 관련 직원들이 총동원돼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넵튠 이름을 달고 말아먹은 앨범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이번엔 다들 이를 갈고 나선 느낌이랄까.

김현조는 아예 좀비가 돼서 돌아다니고 있고, 넵튠 애들도 이번엔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광탈 당하지 않겠노라고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다.

이 시점에서 부담감이나 걱정보다 기대가 더 큰 사람은 나뿐일 거다.

나야 알고 있으니까.

아주 높은 확률로, 넵튠이 다음 타이틀곡으로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다는 걸.

“야, 이송하. 촬영 잘하고 와!”

숙소 입구에서 임서영이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이태희와 엘제이도 하품을 참으며 응원의 말을 덧붙인다.

“송하, 갔다 와. 첫 촬영이라고 부담 갖지 말고.”

“아침밥은 촬영장에서 주나? 내가 아까 차 뒷좌석에 간식거리 좀 쟁여놨으니까 먹고 싶으면, 물론 먹고 싶겠지. 다 먹어.”

혼자 승합차에 남은 이송하가 창문 너머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엘제이의 말에 가장 큰 리액션을 보였다.

슬슬 차를 출발시키는데, 밖에서 임서영이 음산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손채영보다는 잘해야 된다! 손채…!”

“부담 주지 말라고, 멍청아!”

백미러에 엘제이한테 뒤통수를 얻어맞는 임서영의 모습이 비친다.

손채영과 심경택 선생의 만행은 나와 김현조가 적당히 다듬어서 애들한테 얘기해 줬는데, 와. 그때 반응 참 죽여줬지. 어쨌든 그로 인해 넵튠 숙소에서 손채영은 공공의 적이 됐다.

이태희는 조용히 화냈고, 엘제이는 임서영 고양이 인형에 어퍼컷을 먹여서 다리를 찢어놨다. 그리고 임서영은 손채영의 굴욕 사진을 출력해서 거실에 잘 보이도록 붙여놓고 하루 한번 감상의 시간을 가진다.

연초가 되면 회사 차원에서 신년회를 한다는데. 얘들이 손채영과 맞닥뜨리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할 수가 없다.

뭐, 혹시 모르니까 김현조와 농담 삼아 얘기해 놨다.

우리 테이블에 케이크 몇 개 준비할까 하고.

샵에 들러서 촬영 준비를 마치고, 곧장 야외촬영장인 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뒷자리에 있는 이송하는 엘제이가 준비한 간식을 전투식량처럼 까먹으면서 대본을 만지작거린다.

표정을 보니 벌써 반은 정해원 역에 씌어있다.

방해하지 말아야지.

늦은 새벽이었지만 한강 둔치 촬영장은 거의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천천히 들어가면서 차창을 열고 바깥을 내다봤다. 축축한 강바람과 함께 시끌벅적한 현장의 소음이 덮쳐온다.

길쭉한 크레인과 빛을 뿌리는 조명 장비, 카메라와 두꺼운 전선, 반사판 따위를 줄줄이 짊어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메이킹 영상 속에서나 봤던 분주한 촬영 현장이 실제로 눈앞에 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이다. 아마 놀이공원에 도착한 네쌍둥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겠지.

다른 승합차들 사이에 차를 대자 바로 낯익은 조감독이 창문을 두드렸다.

“오셨어요?”

“네, 늦은 시간에 고생 많으시네요.”

“초반이라 아직까진 꿀이에요, 꿀.”

조감독이 촬영현장을 턱짓하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대본리딩 못 본 스텝들도 그렇고, 보조출연자들도 그렇고. 다들 이송하씨 얘기 엄청 하고 있어요. 여기가 한강이라 날 밝으면 구경꾼들도 몰릴 거고…… 감독님이 이송하씨 부담될까 봐 걱정하시던데요. 괜찮으실까요?”

뒷좌석을 돌아봤다.

이송하는 물끄러미 대본 표지를 보고 있다. 아니다. 표지를 보고 있는 건지, 시선이 닿은 곳에 표지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 옆에는 아직 다 먹지 않은 과자가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

나는 조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네요.”

“네, 그럼…….”

조감독이 목에 걸고 있는 헤드셋 인터컴에 대고 외쳤다.

“이송하씨 지금 도착했습니다!”

잠깐 헤드셋에 귀를 기울이더니 이번엔 내 쪽을 본다.

“네, 이송하씨 리허설 먼저 하고…….”

그리고 마지막 말을 던진다.

“바로 슛 들어가겠습니다!”

< 슛 들어가겠습니다 (1)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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