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킬 것이 생긴 사람은 (1) >
이송하는 이틀을 꼬박 채우고나서 포털 실검에서 내려왔다.
논란이 사그라진 건 아니다. 포털에 이송하의 이름을 검색하는 사람이 줄어든 건, 이미 이 일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건이 되었기 때문이니까.
검색창에 이송하의 이름을 검색하면 어뷰징 기사들이 일일이 세기도 힘들 만큼 뜨고, 여전히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관련 글이 올라올 때마다 갑론을박을 벌이는 댓글들이 수십, 수백 개씩 달린다.
그래서 이송하는 이틀간 숙소 안에서 대본연습만 했다.
즉, 지금이 사건이 터진 후 첫 외출인 거다.
“태희 언니가 편의점에 갔다 왔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봤대요.”
“그래?”
“네. 그래서 사진도 같이 찍고 사인도 해주고 왔다고 했어요.”
백미러를 보니, 이송하는 창턱에 턱을 괴고서는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 사이로 언뜻,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기 어려운 눈동자가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이송하가 워낙 무덤덤한 성격인 데다가 겉보기에 멘탈이 흔들리는 기미가 안 보이니까 한시름 놓은 것 같은데, 나는 계속 신경이 쓰인다.
멀쩡한 게 아니라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니까.
“서영 언니는 집에 다녀왔는데, 가족이랑 친척들이 다 난리 났대요.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로 줘야 한다고 다들 사인해놓고 가라고 해서, 50장이나 해놓고 왔대요.”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은 것처럼 들린다.
창가에서 떨어진 이송하가 앞좌석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오빠. 저도 금방 사인할 일이 생길까요?”
힐끔 보니 얼굴에 그늘이 보인다. 꽤 심각한 표정이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저런 표정을 하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기분이 안 좋나 싶어서 바로 말했다.
“당연하지. 엄청 많이 생길 거야.”
“큰일 났어요.”
이송하가 중얼거린다.
“사인 뭐였는지 잊어버렸는데…….”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진다. 종잡을 수가 없다, 진짜.
“다른 것도 아니고 사인을 잊어버려?”
“제 사인이 낙서 같다고 데뷔할 때 회사에서 만들어 줬는데, 2년간 쓸 일이 없어서 잊어버렸어요. 어떡하지. 오늘 밤새서 연습할게요.”
“그게 뭐라고 밤을 새워. 내일 대본리딩 날인데 푹 쉬어야지.”
허탈하게 말하는 사이에 회사 근처까지 도착했다. 평소처럼 주차장 입구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열 명쯤 모여있다. 대부분 두꺼운 겨울 패딩을 입은 젊은 여자들. 아니, 어린 여자애들도 있다.
귀를 기울여보니 한국말과 중국말이 섞여서 들린다.
뭐지?
이송하를 태우고 있어서 그런지 저절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옹호하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욕하는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으니까. 혹시 인터넷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이송하한테 욕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데 어린 여자애 두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안 들리는 줄 아는지 저희끼리 수군거리는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야, 니가 물어봐. 빨리.”
“싫어, 까칠하게 생겼잖아. 욕먹을 거 같아. 니가 물어봐.”
“에이씨…… 저기요, 아저씨.”
충격적인 호칭에 미간을 구겼다가 교복을 입은 걸 보고 겨우 수긍했다.
그래, 쟤들한테는 군인도 아저씨니까.
“블랙아웃 오빠들 오늘 회사 안 들어와요?”
여자애들뿐이라는 점에서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블랙아웃 팬들이다. 여기 출퇴근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얼굴 한번 못 본 11인조 보이그룹. 아이돌계의 초통령.
아시아 투어를 마치고 오늘 귀국했다는 뉴스는 봤는데, 걔들을 보려고 소속사 앞에서 기다리는 모양이다.
“오는지 안 오는지만 알려주시면 안 돼요? 네? 저희 진짜, 오빠들 건강한지만 보고 갈 건데. 진짜로 귀찮게 안 하고 멀리서 얼굴만 보고 갈게요.”
“아까 공항에 사람 너무 많아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단 말이에요. 저 누가 밀쳐가지고 넘어져서 팔꿈치도 까졌는데.”
그것참 딱하긴 한데, 사람을 잘못 잡았다.
“미안한데, 그쪽 스케줄은 몰…….”
친절하게 대답하는데 애들이 나를 안 본다. 다들 멍하니 옆을 보고 있다.
정확하게는, 열린 창문 너머로 이송하를 쳐다보고 있다.
아차 싶어서 창문을 올리려는 순간. 여자애 하나가 중얼거린다.
“헐. 더럽…….”
더럽?
“더럽게 예쁘네.”
이송하가 나를 한번 보고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와, 언니 이송하 맞죠!”
“네. 맞아요.”
“대박, 언니 너무 예뻐요! 사람 아닌 거 같아요!”
짤막한 단발머리를 한 여자애가 흥분한 목소리로 연신 감탄한다. 옆에 있는 애는 사진을 찍으려는 건지 핸드폰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둘이 호들갑을 떠니까 멀찍이 모여있는 사람들까지 수군거리며 이쪽을 쳐다본다.
“누구? 누군데?”
“넵튠에 걔 있잖아, 서지준이랑 드라마 하는. 지금 난리 난 애.”
“쩐다. 손바닥에 눈코입이 다 있어. 뭐 저렇게 생겼냐? 세상 혼자 사네.”
정말 다행히, 내가 걱정하던 일은 없었다.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저희끼리 쑥덕거리기만 할 뿐이다.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거는 애들은 모두 생글생글 웃고 있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안 그래도 내일부터는 이런저런 스케줄 때문에 바깥으로 돌아다녀야 할 일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이 정도만 돼도 버틸만하겠다.
“언니, 힘내세요! 드라마 꼭 볼게요!”
“저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아까 손채영도 들어가는 거 봤는데, 언니가 훨씬 예뻐요!”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마지막 말에 멈칫했다.
손채영은 왜 왔지?
더 궁금해할 틈도 없이 애들이 핸드폰을 내밀고 매달린다. 뭐, 위에서도 인증사진이나 사인 정도는 가능한 한 해주라고 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송하는 아예 차에서 내려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교복 입은 애들하고도 찍고, 캐리어를 들고 있는, 관광객처럼 보이는 중국인 여자애들하고도 찍고.
물론 내가 찍어줬다.
“아, 아저씨…… 저 오징어 됐는데요. 이게 최선이었어요?”
“최선이었어.”
“헐, 단호박.”
정말 최선을 다해서 찍었다. 결과물은 안타깝지만.
애들이 투 샷 사진을 보고 너무 상심하길래 이송하가 사인도 몇 장 해줬다. 무슨 예술작품 만드는 것처럼 엄청 집중해서 그리는데, 정말 심각하긴 심각하다. 내가 눈 감고 왼손으로 그려도 저거보단 낫겠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그 모습까지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뭐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계속 엄지를 치켜드는 걸로 봐선 예쁘다는 뜻이겠지.
해줄 거 다 해주고 나서야 드디어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끄르는데, 갑자기 뒤에서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이송하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웃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일로 기분이 좋아진 건가?
“그렇게 좋아?”
“오빠보고 까칠하게 생겼대요.”
“응?”
예상외의 대답이 날아왔다. 그러고 보니 애들이 처음에 그랬었지.
그런 얘기 자주 듣는다고 대답하려는데, 이송하가 먼저 차에서 내린다.
한 마디를 남기고.
“아닌데.”
오늘 이송하를 데리고 회사에 들어온 건 박팀장 때문이다.
오전에 백한성 대표가 TVL로 들어가 이야기를 끝내고 온 덕분에, 앞으로 고양이 수호령의 제작과정을 메이킹 팀이 찰싹 달라붙어 찍기로 했다.
즉, 내일 대본리딩이 우리가 뿌릴 첫 번째 떡밥이 되는 셈이다.
나도 이송하도 대본리딩이 처음이다 보니 몇 가지 조언을 들었다. 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조연 배우들은 물론 관계자들까지 모두 모이는 자리니만큼,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니까.
이야기가 끝나고 박팀장이 이송하한테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먼저 일어나는데, 반갑지 않은 이름이 또 튀어나왔다.
“참, 손채영 아직 회사에 있을 텐데. 자기 혹시 걔랑 마주치면 조용히 피해. 걔 지금 폭탄이야.”
“왜요?”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대본리딩한 거 기사 나갔었거든. 그런데 송하 사건 때문에 묻혀서 실검 1위 못했다고 한 시간 동안 징징거렸어. 내가 유난스러운 연예인 많이 봤지만, 걔는 그중에서도 유난이라니까.”
박팀장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라운지로 내려갔다.
다들 일하는 중인지 빈 테이블만 가득하다. 자판기에서 내 몫의 캔커피를 뽑고, 이송하에게 줄 달달한 음료수도 하나 고르는 중이었다.
갑자기 뒷목이 선뜩하길래 돌아보니, 젠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손채영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초면에 꺼지란 말을 들은 건 내 쪽인데 왜 날 노려봐? 안 그래도 이송하 레슨 선생 문제가 자꾸 걸려서, 나야말로 저 얼굴 보기 찝찝한데.
하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고, 저쪽은 회사의 간판 배우 중 한 명이고.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손채영이 나를 기분 나쁜 눈으로 쳐다보고는 휙 지나간다. 멀리 간 것도 아니고 내 바로 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들고 있던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대본을 들춘다.
어이가 없다.
저런 성질머리로 인어공주는 무슨, 마녀를 하지.
박팀장 얘기도 있었고, 더 있어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아서 자리를 뜨려는데 등 뒤에서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끼워팔기 논란이 웬 말이야, 쪽팔리게. 이송하랬나, 걔 멘탈은 괜찮아요? 잘하라고 좀 전해줘요. 다른 W&U 소속 배우들 이미지 안 나빠지게. 그런데 시작 전부터 이렇게 잡음이 많아서야, 어디 드라마는 잘 되겠어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속이 마지막에 얼음물을 뿌린 것처럼 가라앉는다.
대신 오랜만에, 다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미용사의 심정을 느꼈다.
옥상에라도 올라가서 외칠까보다.
우리 걱정하기 전에, 시청률 3프로 나올 댁 드라마나 걱정하라고.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참 다행이다.
내가 처음으로 손채영을 만난 것도 이 라운지였다. 그때, 손채영과 조실장이 나한테 시놉시스 두 개를 보여주고 어떤 작품이 더 잘될 것 같으냐고 물어봤던 그때.
만약 손채영이 내 말을 귀담아듣고 저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가 손채영에게 고양이 수호령을 추천해줬다면.
그랬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나는 이송하에게 연기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이송하에 대한 미래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따라다니며 설득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송하도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겠지.
진짜 큰일 날 뻔했네.
그때 손채영한테 꺼지란 얘기를 들었던 게 천만다행이다.
“잘 될 겁니다, 드라마.”
일부러 웃는 얼굴을 하고 대답했더니 손채영이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4층에서 멈췄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이송하가 나를 발견하고 서둘러 걸어온다.
“기다리셨죠.”
“아니…….”
그 순간, 나는 이송하를 바라보는 손채영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내 시선을 따라서 눈을 돌린 이송하가 손채영을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선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이송하의 눈에서 강한 거부감을 보았다.
< 지킬 것이 생긴 사람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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