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4) >
“어휴…….”
3팀장이 험악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쉰다.
“고양이 수호령 쪽은? 거기도 알고 있었대?”
“아뇨.”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아까 통화했는데 그쪽은 전혀 몰랐대요.”
일찌감치 김판석 대표, 그리고 신태균 감독과도 통화했다.
대화를 나눈 건 잠깐이었지만 그들 역시 나와 같았다. 논란이 엄청난 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것에 놀랐을 뿐, 논란의 화두인 이송하의 연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이송하의 멘탈을 걱정했으면 했지.
“진짜 몰랐대?”
“네. 이것 때문에 판 프로덕션 쪽에서도 정신 없더라구요. TVL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고 해서, 일단 그쪽이나 우리나 내부회의로 상황정리 좀 하고 다시 얘기하기로 했어요.”
3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돌린다.
“송하한테 씌워진 죄목이 뭐야? 끼워팔기로 배역 땄다는 거랑, 또 있어?”
“괘씸죄지, 뭐.”
김현조가 머리를 거칠게 헝클고는 한숨을 뱉었다.
“노래가 딸리니까 얼굴로 떠보려고 드라마 판 기웃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은 다른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까지 싸잡아 욕 먹인다고, 그쪽 팬들이 더 난리야.”
“이런 논란은 초기에 빨리 잡아야…….”
3팀장이 말하다 말고 갑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확인한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본부장님. 아, 도착하셨어요? 그럼 지금 같이 올라갈게요.”
그가 통화하면서 박팀장과 김현조에게 손짓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쳐다본다.
“네, 여기 있어요. 잠깐만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3팀장이 나한테 핸드폰을 내민다.
“복댕이, 너 전화 좀 받아봐라.”
“네?”
“본부장님이 너 찾는데? 받아봐, 빨리.”
얼떨결에 핸드폰을 받았다.
“네, 정선웁니다.”
-그래.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어.
당연히 본부장의 털털한 목소리가 들릴 줄 알았는데, 좀 다르다.
낮고 부드럽다.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떠올랐다.
백한성 대표의 목소리다.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성도원의 얼굴,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 내 첫차…….
-이송하 담당이라고 들었는데.
“아, 네. 맞습니다.”
-니가 보기엔 그 애 연기가 어때?
당연히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좀 더 그럴듯하게 대답하기 위해 말을 고르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궁금한 건 이거야. 이송하가 연기로 캐스팅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느냐, 없느냐.
“아.”
-어느 쪽인가에 따라서 회사의 대응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했다.
“새로 구한 레슨선생님이 송하를 보고 가르칠 게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연기를 몇 개월만 배운 거라면, 타고난 거라구요. 괜히 손댔다가 이상한 쪼가 붙을까 봐 걱정된다고 요즘은 조언도 잘 안 합니다. 그리고 고양이 수호령 제작진 쪽에서도….”
-아니.
갑자기 백한성 대표가 낮게 웃는다.
-니 생각을 물어본 거야. 지난번처럼.
내 생각?
내 생각은 어떠냐고?
“저는 충분히…….”
-충분히?
“송하 연기력이면 충분히, 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조차 놀랐을 만큼, 내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마른 입술을 핥으며 앞을 보자 다들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래, 알았어.
“아, 네.”
-다른 사람들 먼저 6층으로 올라오라고 전하고, 넌 고양이 수호령 감독한테 연락해서 오디션 영상 좀 받아. 오디션 볼 때 카메라 테스트했지?
“네, 했습니다.”
-영상 받아서 가지고 올라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
TVL 드라마국 회의실.
고양이 수호령의 CP를 맡은 송부장이 빈 종이컵을 우그러뜨렸다.
“쌈마이같은 놈들. 지들 잘 먹고 잘살겠다고 남의 밥그릇에 똥물을 튀겨? 나도 Knet으로 가서 밥상을 한 번 뒤집어엎든가 해야지…….”
음침하게 중얼거리던 송부장이 맞은편의 신태균 감독을 쳐다본다. 그는 졸린 건지, 생각 중인 건지, 줄곧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태균아, 신감독. 이송하 진짜 연기 괜찮은 거 맞지? 서지준까지 걸려있어서 논란 생겼다고 바로 하차시킬 수도 없고…… 베일 딱 벗었는데 걔 발연기면 어떡하냐? 그럼 작품 완성도도 문제지만 우리 얼굴에도 똥칠하는 거라고.”
“…….”
“너 정말 제대로 오디션 보고 뽑은 거 맞지? 혹시 진짜 서지준 데려오면서 같이….”
“자꾸 그런 얘기하실 거면 저 가요.”
신태균 감독이 일어났다. 송부장이 기가 막힌다는 듯 탁자를 친다.
“얌마, 너는 이런 일에까지 무관심하면 어떡하냐! 걱정도 안 돼?”
“안 돼요. 그러니까 부장님도 이런 쓸데없는 일로 부르지 좀 마세요.”
“쓸데없는 일?! 넌 귀 막고 다니냐? 지금 이거 때문에 난리가 났어!”
“관심 없어요. 촬영도 안 들어간 작품 가지고 무슨…….”
“야! 국장님도 걱정하고 계셔, 임마!”
점퍼를 입던 신태균 감독이 멈칫했다. 그리고 까치집을 지은 머리를 몇 번 긁적여 더 덥수룩하게 만들더니 작게 한숨을 쉰다.
“제가 언제 연기 못하는 애 데리고 촬영하는 거 보셨어요? 못 믿으시겠으면 오디션 날 카메라 테스트했으니까 테잎 보세요. 저 진짜 갑니다.”
그는 무덤덤하게 말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그러나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이번에는 조연출이 달라붙었다.
“저기, 선배.”
“뭐야, 또. 담배 한 대 피우고 얘기…….”
“마케팅팀에서 인터뷰 좀 해달라고 계속 연락 오는데 어떡하죠?”
신태균 감독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인터뷰?”
“아니, 제가 선배는 인터뷰 같은 건 따로 해본 적이 없고, 그런 거 안 좋아해서 제작발표회 때도 한두 마디 겨우 하신다고 얘기했는데요. 그래도 자꾸 연락이…… 마케팅팀 입장에서는 돈 안 들이고 드라마 홍보할 기회다 이거죠.”
신태균 감독이 입을 열려던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선우씨?”
잠시 상대편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신태균 감독이 곧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연출에게 지시했다.
“지난번에 이송하 카메라 테스트한 영상, 그거 W&U에 좀 보내.”
“네? 네.”
“그리고 인터뷰는…….”
신태균 감독이 잠시 뜸을 들였다. 눈치를 보던 조연출이 먼저 말했다.
“제가 마케팅팀에 절대 안 한다고 못 박을까요?”
“아니, 그거…… 음. 일단 좀 기다려보라고 해.”
예상 밖의 말에, 조연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시간, Knet 넥스트 K-스타 제작팀 사무실.
피디진과 작가진들 모두 들뜬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는 그곳에 고준태 피디가 들어섰다. 떡진 머리 위에 푹 눌러쓴 모자, 수염이 까칠한 턱, 며칠간 노숙이라도 한 듯한 행색이었지만 눈빛만은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시선이 모이자, 고준태 피디가 들고 있던 종이를 AD에게 넘긴다.
“이건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공식적으로 한번 읽어봐.”
“넵. 11월 20일 넥스트 K스타 시청률. 수도권 2.4, 전국 2.5입니다.”
모두 박수를 치거나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했다.
이어서 고준태 피디가 AD에게 또 다른 종이뭉치를 건넸다.
“이것도.”
“넵. 이건 분당입니다! 최고 시청률이…… 어?”
페이지를 넘겨 분당 시청률을 확인하던 AD가, 형광펜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뜬다.
“왜, 뭔데?”
“뭐야? 얼마나 올라갔는데?”
AD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분당 최고 시청률, 3.1입니다.”
순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케이블 프로그램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긴 하지만, 공중파 못지않은 시청률을 내는 건 어디까지나 소수일 뿐. 대부분은 아직 시청률 1프로대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리즈물도 아니고 새로 런칭한 프로그램이 첫회 최고 시청률 3프로를 넘겼다는 건, 누구라도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고준태 피디가 다른 피디들을 불러 말했다.
“넵튠 그림 좋은 거, 편집 때 시간 넘쳐서 잘라낸 것들 좀 있지? 그거 마케팅팀에 넘겨. 클립으로 만들어서 공식 홈페이지랑 SNS에 올리게.”
“네.”
“예고도 하나 더 만들어. 이송하 얼굴 대문짝만하게 박아서…….”
그때 사무실 밖에서 누군가 유리문을 두드렸다.
공들여 만진 머리와 고급스러운 머플러가 눈에 띄는 중년 남자. 넥스트 K스타의 CP인 최부장이었다. 고준태 피디는 몇 가지 더 지시를 남기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형, 시청률 봤어?”
“당연히 봤지. 고생했어. 국장님도 좋아하시더라. CM이랑 PPL 문의도 계속 들어오는 중이고.”
“다음 편은 시청률 더 오를걸?”
고준태 피디가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말했다.
최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찜찜한 표정이었다.
“시청률은 좋은데, 이제 수습이 문제지. 여론을 보니까 이송한가 하는 걔, 진짜 발연기면 걔도 문제지만 TVL도 욕 푸지게 먹겠던데?”
“무슨 상관이야? 우린 우리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지. 우리가 게스트로 배우 좀 섭외해 달라고 매달릴 때 TVL에서 도와줬어? 아니잖아. 그리고 W&U는, 안 그래도 아침부터 거기 홍보팀한테 욕 바가지로 처먹었어. 그 여자 성질 장난 아니더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넵튠 띄워준 거나 마찬가진데 넷 중에 하나 욕먹는다고 지랄은… 회사가 큰 그림을 봐야지.”
혀를 찬 고준태 피디가 나직이 말했다.
“어쨌든 그 문제로 나도 형한테 할 말이 좀 있었는데.”
“할 말?”
“형이 국장님한테 말씀드려서 W&U 대표랑 밥 한번 먹으면 안 돼? 기름칠 좀 해줘. 반응 보니까 넵튠은 앞으로 뽑아먹을 것도 많을 것 같고, 최종화까지 잘 달래서 끌고 가야지.”
고준태 피디가 최부장의 옆구리를 살살 찌른다. 최부장이 인상을 확 찡그렸다.
“폭탄은 니가 던지고 수습은 내가 하냐?”
“시청률 잘 냈잖아. 연출은 시청률만 잘 내면 되는 거 아냐?”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 결국 최부장이 한숨을 쉰다.
“시청률이 깡패다, 깡패야. 어휴, 백한성 그거 수틀리면 감당 안 되는데….”
“왜? 저번에 보니까 백대표 나긋나긋하니 성격 좋아 보이던데?”
“모르는 소리 하네.”
최부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성격 좋기만 한 놈이 십 년 만에 1인 기획사를 대형 기획사로 키울 수 있을 것 같냐? 보통 놈 아니야, 그놈도.”
*
나는 경직된 어깨를 돌리면서 힐끔 시선을 들었다.
백한성 대표를 포함한 모두가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주시하고 있다. 재생이 끝난 화면은 이미 한참 전부터 검게 물들어 있는데도.
대표실의 분위기는 그날과 비슷하다.
이송하가 판 프로덕션의 좁은 회의실에서 오디션을 봤던 그 날. 그때처럼 이곳에도 기묘한 침묵이 감돌고 있다. 영상이 재생되고 있을 때는 감탄이라도 나왔는데, 지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것처럼 고요하다.
다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백한성 대표 때문에 참고 있는 눈치다.
백한성 대표는 아까부터 다리를 꼬고 앉은 채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표정으로.
저 반응은 뭐지?
설마 이송하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었나?
그럴 리는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도 영상을 보는 동안 눈에 이채가 돌았으니까.
백한성 대표가 희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소파의 팔걸이를 툭, 툭, 느리게 두드렸다. 규칙적인 소리는 한동안 더 계속되다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판을…… 더 키우는 게 좋겠는데.”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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