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3) >
“지, 진짜요? 괜찮은 거 맞아요?”
당사자인 이송하보다 임서영이 더 긴장했다. 아니, 이태희와 엘제이도 언제 축제 분위기에 젖었었냐는 듯 염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빠, 지금 우리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말 아니에요?”
“아니야. 난 진짜로 크게 걱정 안 되는데. 이런 논란들은 송하가 연기로 증명하면 다 사라질 거야. 노이즈 마케팅 했다고 생각하면 돼. 고양이 수호령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 많아지면 첫방 시청률 잘 나오고 좋지.”
어깨를 으쓱이자 임서영이 입술을 몇 번 벙긋거린다.
“그, 그거야 그런데…….”
“너무 낙관적인 생각 아니에요? 만약에…….”
엘제이가 힐끔 이송하의 눈치를 살피고 말끝을 흐린다.
만약 이송하가 논란을 잠재울 만큼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을 때를 걱정하는 거겠지. 얘들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걱정을 할 거다.
당찬 포부를 밝히고 드라마 판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발연기 논란만 일으키고 실패한 아이돌이 수없이 많으니까.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던 이송하와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다. ‘큰일 난 거예요?’ 하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지난 몇 주 동안 함께 대본을 보고 연습했다. 홍주미 작가와 신태균 감독과도 여러 차례 만나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새로운 레슨 선생은 송하의 연기를 볼 때마다 혀를 내둘렀다.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미래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백 프로 확신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이송하가 연기를 못해서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는 미래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상처받을 거 없어. 신경 쓰지 마, 송하야. 넌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면 돼.”
“네.”
이송하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할게요.”
그때 김현조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짐들 챙겨. 박팀장님 아직 회사에 있다니까, 우리도 가서 추이를 좀 보자.”
“네.”
겉옷과 노트북,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복잡한 얼굴로 따라 나오는 애들한테 김현조가 당부를 남긴다.
“뭐, 송하 합류한 드라마에 서지준이 확정됐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야. 금방 잠잠해질 테니까, 니들은 좋은 것만 생각해. 어쨌든 오늘 방송에서 넵튠 이름 확실히 알렸잖아. 이대로만 가면 내일부터는 하루하루가 달라질 거야. 다들 잘했어, 어? 내일 스케줄 없으니까 얼른 쉬어.”
“오빠들은? 오빠들은 못 쉬어서 어떡해.”
“우리도 회사 가서 얘기만 좀 하다가 바로 퇴근할 거야. 태희야, 니가 애들 좀 챙겨라. 서영이 쟤는 인터넷 못하게 하고.”
“알았어.”
이태희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일 커지면 연락해. 나는 안 자고 있을 테니까.”
김현조가 혀를 찬다.
“너도…….”
“연락해.”
“알았어, 알았어. 연락할게.”
애들의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며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바로 퇴근할 거라던 김현조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는 회의실에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했다.
내가 입사한 이래로 가장 길고, 구역질나는 밤이었다.
산삼주의 술기운이 뒤늦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울어대는 핸드폰 진동소리가 골을 때렸으며, 몇 시간 동안 노트북 화면의 깨알 같은 글자들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진짜 헛구역질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렇다고 집에 들어가서 쉬자니 이송하에 대한 여론이 불안불안하고.
결국, 박팀장과 홍보팀 직원들에게 뒤를 맡기고 우리 셋만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김현조와 배신자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수면실 1층 침대에서 눈을 감았던 게 새벽 3시경.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김현조가 저승사자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깜짝이야.”
“살아있냐?”
“방금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어요.”
눈을 반쯤 뜨고 둘러보다가 또 한 번 심장이 덜컥했다. 어두컴컴한 수면실 건너편에 배신자의 얼굴이 둥둥 떠 있다. 놀래라.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보니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넋이 빠진 것 같은 얼굴로.
쟨 또 왜 저래?
고개를 갸우뚱하며 쭉 기지개를 켰다. 어깨와 등 쪽에서 우드득 하고 무슨 뼈 맞추는 소리가 난다. 으아, 진짜 죽겠다. 원래 오늘은 축적된 피로도 털어낼 겸 느지막이 출근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젠장. 속으로 고준태 피디를 욕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실장님, 여론은요? 어떻게 됐어요?”
“글쎄다. 한편으론 잘됐고, 한편으론 좆됐고.”
“네?”
김현조가 베개 옆에 굴러다니는 내 핸드폰을 주워주더니 말한다.
“포털 실검 확인해 봐. 역사적인 순간이니까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역사적인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며 핸드폰을 켰다가 식겁했다.
부재중 통화가 48개다.
살펴보니 대부분이 모르는 번호고, 드물게 저장이 된 번호들은 술자리에서 만난 적 있는 기자들이다. 서너 번 반복해서 전화한 사람도 있고, 확인하면 답신 좀 달라는 문자도 엄청 들어와 있다.
내가 반나절쯤 잔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시계를 보니 겨우 3시간 잤다. 지금은 해도 안 떴을 6시다.
매니저는 잠도 안 자는 줄 아나, 이 시간에 무슨 예의 없는 짓이야?
잠깐, 설마 여론이 더 안 좋아진 건가?
급히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김현조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리고 배신자가 넋을 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도.
8위, 넵튠.
6위, 넥스트 K-스타.
5위, 고양이 수호령.
그리고…… 이송하.
그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랐다.
넵튠 애들 이름이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가는 날. 포털 연예기사 페이지로 들어가면 애들의 이름이 메인에 걸려 있고, 수많은 기자가 그 애들에 대한 기사를 써 올리는 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포털 메인에 걸린 헤드라인에도, 그 밑에 새끼 치듯 달라붙은 기사들의 헤드라인에도 넵튠과 이송하의 이름이 박혀있다.
일단 내가 잠들고 난 이후에 올라온 기사들부터 쭉 확인했다.
[넵튠 멤버 이송하, 신작 드라마에서 소속사 선배 서지준과 호흡]
[‘고양이 수호령’에 넵튠 이송하 합류, 연예계 고질적인 패키지 캐스팅?]
[“노래 혹평받으니 연기?” 걸그룹 넵튠 멤버 이송하 행보에 네티즌 눈총]
「넥스트 K스타에 출연한 걸그룹 넵튠이 신인답지 않은 실력으로 극찬을 받으며 화제로 떠오른 가운데, 멤버 이송하가 논란에 휩싸였다.
이송하가 합류한 TVL의 1월 신작 드라마에 소속사 선배인 서지준이 함께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끼워팔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1차 오디션만으로 낙점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거의 없는 신인이라는 점 등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더구나 이송하는 넥스트 K스타의 미션 공연에서 멤버들에 비해 부족한 실력으로 혹평을 받은 뒤 이틀 만에 오디션을 본 것으로 밝혀졌다. 네티즌들은 “노래로 혹평을 받으니까 준비도 없이 연기로 갈아탄 거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환장하겠네.
댓글 창을 열었다가 3초 만에 꺼버렸다.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수위 높은 욕설과 비아냥들이 베스트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기사를 뒤졌다.
회사에서 1차로 해명 보도자료가 나간 후로 헤드라인에 변화가 보였다.
[이송하 측, “고양이 수호령은 전부터 내부에서 논의 중이던 작품”]
[‘고양이 수호령’ 제작사, “끼워팔기 아냐, 오디션 보고 만장일치 캐스팅”]
보도자료를 참고로 작성된 기사 내용에는 이송하가 원래 연기 레슨을 받았던 멤버고, 고양이 수호령은 넥스트 K스타 미션 녹화가 있기 전부터 내부에서 논의 중이던 작품이라는 사실이 적혀있다.
시놉을 보고 이송하 본인이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그리고 서지준에 작품에 합류한 것은 이송하가 오디션에 통과해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라는 것도.
우리 쪽에 이어 판 프로덕션의 김판석 대표도 오디션에 대해 언급했다.
덕분에 이송하를 향한 비난이 압도적이던 상황에서 옹호론이 일어나며 얼추 균형이 잡혔다. 하지만 논란은 꺼질 생각을 않고 계속 과열되고 있다.
포털 기사란만이 아니라 SNS,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이 사건을 놓고 치고받는 글들로 페이지가 쭉쭉 넘어간다.
-언플 쩌네요. 그냥 서지준한테 업혀서 들어갔다, 인정하고 욕먹고 말지. 누가 봐도 끼워팔기 한 건데 아니라고 잡아떼니까 더 까이는 거구만. 밉상.
-아니라는데 뭘 인정합니까? 오디션 보고 만장일치로 뽑았다잖아요.
-연기로 뽑았다고 언플하면 뒷감당 못 할 텐데ㅋ 연기 넘 만만히 보는 듯. 저래놓고 발연기 인증하면 그때 가선 뭐라고 하려고ㅋ
-연기 본 적도 없으면서 당연히 못 할 거라고 까는 사람들, 대단하다 진짜.
혀를 차며 창을 내려버렸다.
어떤 글들은 한 글자 한 글자에 악의가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이송하한테 원수진 일이라도 있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제삼자인 내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이송하가 이런 글들을 보면…….
김현조가 다른 애들한테 연락해서 이송하가 인터넷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해놓긴 했지만, 그래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어떻게 해야 이 논란이 가라앉을까.
연기력 논란은 연기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드라마 첫방까지는 아직 한 달 이상 남았다.
대본 연습하는 장면이라도 찍어서 올려야 하나? 그럼 끼워팔기로 합류한 게 아니라, 오디션을 보고 붙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을까?
“이게 갑자기 웬 난리야?”
3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출근하자마자 바로 이리로 왔는지 손에 가방을 들고 있다.
“갑자기는 무슨, 새벽부터 난리였어.”
김현조가 퀭한 얼굴로 말했다. 3팀장이 그 얼굴을 보고 혀를 찬다.
“계속 실검에 떠있던데? 송하가 1위고, 고양이 수호령이 5위고.”
“아, 고양이 수호령 방금 4위로 올라갔어요.”
전쟁이라도 하듯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배신자가 정정했다.
포털 화면을 새로고침해보니 과연 4위에 고양이 수호령이 보인다. 1위는 여전히 이송하고, 밑으로 넥스트 K스타, 넵튠, 서지준까지 줄줄이 보인다. 어젯밤 방송의 여파가 실검 순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3팀장이 배신자의 등 뒤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린다.
“거참, 욕 조금 먹고 지나갈 줄 알았더니. 여차하면 일 크게 번지겠는데?”
“이미 사방에서 난리예요.”
박팀장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박팀장은 목소리가 왜 그렇게 쉬었어?”
“넥스트 K스타 쪽이랑 전화로 한판 해서 그래요.”
그 말에 3팀장의 눈에 쌍심지가 켜진다.
“망할 놈들, 그쪽에선 뭐래는데?”
“말로는 미안하다고 저자세로 나오죠. 고양이 수호령이 같은 계열사 드라마라 홍보차원에서 좀 빨아주려던 건데 이렇게 과열될 줄 몰랐다고.”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쌍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했죠. 근데 걔들이야 프로그램 대박 났는데 우리한테 욕 좀 먹는 게 대수겠어요? 방송 중반부터는 실시간 시청률이 계속 2프로 대에서 놀았다는데. 이 정도로 화제가 됐으니 다운로드나 재방으로 보는 사람들도 엄청날 거고, 2화 시청률은 더 올라갈 거고. 그쪽은 지금쯤 노났을 거예요.”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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