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46화 (46/218)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2) >

꺼내보니 문자와 톡들이 미친 듯이 들어오고 있다. 나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1시간 동안 참고 있던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인터넷 창을 새로고침 했다.

-오, 드디어 넵튠 등판하네요ㅋ 슈가캣보다 더한 웃음 기대해 봅니다ㅋ

-오늘의 하이라이트ㅋㅋㅋㅋㅋ

-헐?

-헐.

-대박. 뭐야, 저거ㅋㅋㅋㅋ

-쟤들 쩌네요. 제 기준으론 다른 걸그룹 압살하는 실력인데요.

-이거 피디가 통수칠라고 첨부터 노리고 편집했네요ㅋㅋㅋㅋ 어쩐지 너무 몰아가더라.

-비주얼도 제일 눈에 띄고, 무대도 하드캐리. 이번 편 최대 수혜자네요.

-계속 원샷 잡힌 긴 생머리 멤버 아시는 분? 더럽게 예쁘네ㄷㄷㄷㄷ

-실력도 없는데 여기 왜 나오냐고 극딜하던 사람들 다 어디 갔음? 방금까지도 욕하더니 조용하네ㅋㅋㅋㅋㅋ

-진심 궁금한데 쟤들 왜 지금까지 무명이었어요? 소속사가 무능해서?

-그 소속사가 W&U. 안 뜨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님. 그냥 죽어라고 안 뜨는 애들도 있어요.

-지금 넵튠 관뚜껑 열었음. 이걸로 확 뜨지 않을까요?

-그건 두고 봐야죠. 프로그램이 묻히면 다 소용없어요.

-K스타 얘기로만 벌써 두 페이지 넘어갔음. 내일 돼봐야 알겠지만, 첫방인 거 감안하면 화제성 면에선 이미 성공한 거 아닌가?

김현조의 말대로다. 그리고 박우정 기자가 한 말도 맞았다.

넥스트 K스타의 1화는 넵튠을 중심으로 한, 한 편의 반전 드라마였다.

거실은 흥분과 긴장의 도가니였다.

무대가 끝난 다음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편집은 여전히 넵튠의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이 감탄하는 리액션, 서로 수군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리액션 컷. 그리고 회사 연습실에서 찍어간 인서트 컷을 보여주며 넵튠의 무대가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BGM이 뚝 끊기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송하 한 명에게 혹평이 쏟아진다.

‘팀 평균을 혼자 깎아 먹어요. 연습은 제대로 하고 있어요?’

‘눈에 확 띄니까 시선은 자꾸 그쪽으로 가는데, 보면 그 이상 뭐가 없어. 연기나 예능 쪽 이력이 있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이송하의 반응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기대하는 기색을 다 숨기지 못하고 심사위원석을 쳐다보던 표정이 설핏 무너진다. 그러나 잠깐뿐이었다. 이송하는 기대도 흥분도 사그라진 묵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다음 순간, 무대를 내려오는 이송하의 인터뷰가 따라 붙는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곧장 인터넷의 반응을 살폈다.

-이송하 심사위원들한테 필요 이상으로 까이네요. 저만 괜찮게 봤나요?

-솔직히 다른 멤버들에 비해 좀 못하긴 했음.

-넵튠 멤버들이 잘하는 거지, 쟤가 저렇게 욕먹을 만큼 못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넵튠이 아니라 슈가캣 멤버였으면 칭찬받았을 듯.

-저 정도면 전체 걸그룹 놓고 봤을 때 평균 이상은 가죠.

-혼자 다른 걸그룹들 비주얼 씹어먹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메리트 있는 거 아닌가? 실력도 아직 신인이니까 계속 노력하면 늘 거고.

-넵튠이 아니라 슈가캣 멤버였으면 칭찬받았을 듯222

-다른 애들처럼 울 줄 알았는데 겁나 무덤덤. 멘탈이 강철이네요.

혹평을 받긴 했지만, 편집으로 이상한 장난질을 친 건 아니라서 이송하에 대한 여론은 전체적으로 괜찮다.

“커뮤니티는 반응 괜찮은데. SNS는 어때?”

“여기도 괜찮아. 포털도 걱정했던 것보다 얌전하고.”

배신자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대답한다. 그 옆에서 김현조가 무아지경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오케이, 좋았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보면 한시름 놔도 괜찮을 것 같다.

“오빠, 사람들이 뭐래요? 우리 괜찮은 거예요?”

“송하보고 뭐라고 하진 않아요?”

애들이 모조리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힐끔 배신자 쪽을 돌아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웃어버렸다.

“반응 좋구나!”

임서영이 한 마리 도둑고양이처럼 잽싸게 배신자의 노트북을 가로챈다.

“같이 봐.”

곧바로 엘제이가 모니터 앞에 달라붙는다. 앙상한 치킨 뼈를 발라 먹고 있던 이송하까지 슬금슬금 고개를 들이민다. 이태희는 그 사이에 끼지는 않았지만, 이미 느긋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검색하는 중이고.

삼십 초쯤 지난 후, 거실은 그야말로 들뜬 축제 현장으로 변했다.

“이것 봐, 장난 아냐. 우리 이름 아는 사람들 엄청 많아!”

“방송에서 계속 자막 나갔으니까 알지, 멍청아. 빨리빨리 좀 넘겨봐.”

“나한테 덕통사고 당한 거 같대!”

“안됐네. 아, 빨리 좀 넘겨보라니까.”

“으아, 어떡해. 제목에 내 이름 있는데 못 누르겠어! 송하야, 대신 좀…!”

“에이씨, 답답해 죽겠네! 내놔, 노트북 내놔.”

“넌 핸드폰 있잖아!”

“아. 나 핸드폰 있지, 참.”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는지 임서영은 노트북을 들고 온 거실을 돌아다녔고, 엘제이도 한 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태희는 평소처럼 소파를 서식처 삼아 늘어져 있길래 역시 리더라 침착한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한 손에는 핸드폰을, 다른 손에는 산삼주 술잔을 들고 있다. 쟤는 대체 저 독한 담금주를 몇 잔이나 마시는 거야?

그리고 이송하는 구석에 앉아서 핸드폰을 찔러대고 있다. 마침 내 노트북 화면에 관련 글들이 있어서 건네줬다.

“송하야, 자.”

“아. 감사합니다.”

답삭 받고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눈동자만 분주하게 움직인다. 노래나 춤으로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게 신기한 듯, 눈이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나 참, 고준태 피디, 이 양반…….”

한쪽에선 김현조가 마침내 노트북을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이런 구성이었으면 미리 언질이나 좀 줄 것이지…… 괜히 욕만 바가지로 했네. 건영아, 넌 제작진 연락처 다 알지?”

“네.”

기지개를 켜고 있던 배신자가 바로 대답했다.

“고준태 피디한테 오늘 방송 잘 봤고, 편집 잘 해줘서 고맙다고 문자 보내고 제작진한테 기프티콘도 하나씩 돌리자. 커피나 뭐 그런 걸로. 그리고 날 밝으면 간식 사 들고 편집실 한번 찾아가겠다고 해.”

“네, 괜찮은 걸로 골라서 보낼게요.”

“아이고, 하도 긴장하고 있었더니 삭신이 다 쑤시네.”

김현조가 앓는 소리를 하며 소파에 축 늘어진다.

나는 아직도 진동을 멈추지 않는 핸드폰을 들고 내용을 확인했다. 형과 형수님한테서도 장문의 톡이 왔고, 오랫동안 연락도 없던 사람들이 보낸 문자도 몇 개 보인다.

방송 얘기는 가족이랑 단톡방 친구놈들한테만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확인해보니 넵튠 애들이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 나랑 같이 있는 장면이 화면에 꽤 길게 잡힌 모양이다.

친구놈들의 단톡방을 열자 글이 주르륵 뜬다.

-군대 재입대했다고 생각하라며. 거기가 군대냐, 개새끼야.

-넌 만나기만 해 봐, 뒤졌어. 천국에서 노느라 우린 생각도 안 났냐?

-선우야. 알바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강의 쨀 준비가 돼 있다.

그 밑으로 영상통화 한 번만 해보자느니, 또 소개팅이 어쩌니 하는 글들이 끝도 없이 달리길래 망설임 없이 알림을 무음으로 변경했다.

일단 엄마한테 전화부터 드리려고 전화번호부로 넘어갔을 때였다.

“어? 우리 얘기 또 나오는데?”

임서영이 TV를 가리킨다. 모두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션 무대와 평가가 모두 끝난 후, 녹화 이후에 이루어진 것 같은 심사위원들의 개인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프로듀서 송백진이 꺼칠한 턱을 쓰다듬으며 아쉬워한다.

‘이송하라는 친구는 녹화 때도 말했지만, 만약에 연기 쪽이나….’

‘안 그래도 그날 녹화하고 이틀 만에 드라마 합류 확정됐어요, 그 친구.’

고준태 피디의 목소리가 들리고, 송백진이 눈을 크게 뜬다.

‘어? 그래요? 이야, 행동력 좋은 친구네. 그럼 평가가 달라지죠. 만약 그 친구가 거기서 평균 이상의 연기력을 보여주면 팀에도, 개인한테도 윈윈이니까.’

그리고 인서트 자료화면이 나온다. 첫 미션 녹화 날로부터 이틀 뒤. 이송하가 TVL의 신규 미니시리즈 고양이 수호령에 오디션을 보고 합류, 성공적으로 연기돌을 향한 첫발을 뗐다는 내용이다.

“…….”

거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송하의 캐스팅 소식을 알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Knet과 TVL이 같은 계열사라 홍보차 한번 언급해 준 정도라면.

문제는 뉘앙스다.

저건 마치, 이송하가 녹화 때 춤과 노래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니까 준비도 없이 바로 연기에 손을 댄 것처럼 들리잖아. 이틀 만에 오디션, 캐스팅 확정. 거기다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같은 소속사인 서지준이라는 사실까지 놓고 생각해 보면, 지금 폭탄이 하나 떨어진 거나 마찬가지다.

“아니, 저거를…….”

김현조가 TV 화면을 쳐다보며 말을 더듬는다. 기가 막힌 표정이다.

“저거를 저런 식으로 까면 어쩌자는 거야, 이 인간이 진짜…… 우리도 지금 최대한 좋은 시기에 오해 없이 얘기하려고 여러 사람이 머리 쥐어뜯고 있구만…… 아, 뒷골. 아, 환장하겠네.”

곧바로 김현조의 핸드폰이 울린다. 김현조는 잠깐 사이에 십 년은 늙은 얼굴로 핸드폰을 들더니, 홱 배신자를 돌아본다.

“기프티콘 보냈냐?”

“아직요.”

“보내지 마. 기프티콘은 시발…… 박팀장님? 여기도 지금 봤어요.”

김현조가 박팀장과 통화하며 부엌 쪽으로 사라진다.

“송하야, 노트북 이리 줘봐.”

나는 이송하에게서 다시 노트북을 빼앗았다. 아마 지금부터 나올 얘기들은 조금 전처럼 이송하에게 너그럽지만은 않을 테니까.

배신자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임서영에게서 노트북을 돌려받고 다른 애들에게 인터넷을 검색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나는 커뮤니티를 새로고침하고 반응을 훑었다.

-넵튠 이송하 드라마 합류했다네요.

-헐? 기사 보니까 쟤가 들어간다는 드라마 남주가 서지준임. 같은 W&U소속. 빼박 업혀 들어갔네.

-난독증인가. 기사 다시 보세요. 제대로 오디션 보고 붙었다고 써있음.

-나참, 그걸 누가 믿어요ㅋㅋㅋ 그건 소속사 언플이죠ㅋㅋㅋㅋ

-드라마 처음이라는데 웹드라마도 아니고 미니시리즈, 단역도 아니고 바로 조연 발탁, 그것도 남주가 서지준인 드라마에. 딱 봐도 각 나오는구만ㅋ

-그럼 아예 공중파 조연으로 연기 시작하는 다른 아이돌들은? 얘 욕하려면 임수현, 장인범, 그런 애들도 다 까야 됨.

-걔들도 첨엔 까였어요. 연기로 인정받은 거지. 그리고 걔들은 이미 인지도가 있었으니까 화제성+해외판권 때문에 제작자들이 캐스팅한거죠. 이송하한테 그런 메리트가 있나요? 듣보잡이었는데?

-누가 봐도 소속사에서 끼워팔기 한 건데 쉴드 칠 게 따로 있지ㅋ

-근데 같은 시기에 손채영 PBS들어가는 거도 있는데 공중파 안 꽂고 TVL에 꽂은 거 보면 W&U도 눈치가 보였나봄ㅋㅋㅋㅋ 하긴 뭍나인에 꽂았으면 원작 팬들 들고 일어났지ㅋㅋㅋㅋㅋ

-아, 서지준 로코 처음이라 기대 중인데 발연기 아이돌 끼얹은 건가ㅜ

-까더라도 연기는 보고 까요. 넵튠 넥스트 K스타에 실력 없이 빽으로 들어왔다고 난리 치다가 무대 보고 싹 사그라지더니 또 시작이네. 지겹지도 않나.

-진짜 오디션 보고 실력으로 뽑혔을 수도 있지. 벌써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들 보이네.

-이러다 이송하가 연기 잘하면 비난 여론 쏙 들어감.

-얘가 연기를 잘했으면 진즉 했겠죠. 넵튠 2년간 무명이었는데.

-까더라도 연기는 보고 까요222

-쉴더들 등판하는 거 보니 넵튠이 오늘 흥하긴 흥했구나.

-얘가 연기를 잘했으면 진즉 했겠죠2222

-어쨌든 화제 몰이 성공했네요. 기사도 엄청 뜨고 있음. 넥스트 K스타랑 고양이 수호령 제작진은 지금 깨춤 추고 있을 듯.

고개를 들어보니 이송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겉은 고요해 보이지만, 저 속까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 만큼 안다.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일부러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2)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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