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39화 (39/218)

<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3) >

마치 전투에 나가는 뒷모습처럼 보인다. 나도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말을 한마디씩 건넸다.

이런 순간에는 언제나 믿음직한 이태희, 긴장한 티는 나지만 다행히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임서영, 말 붙이기도 미안할 만큼 집중하고 있는 엘제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리 없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송하에게도.

“송하야, 연습한 대로만 해.”

“네. 열심히 하고 올게요.”

이송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애들을 따라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넥스트 K스타, 첫 미션 녹화가 시작됐다.

녹화 현장을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게 있다.

그건 여러 번 끊어가면서 진행되는 녹화 시스템이 사람을 엄청 진 빠지게 한다는 것도,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매니저와 스탭들의 리액션을 촬영하는 VJ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존재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무반주 노래는 함부로 시킬 게 못 된다는 거다.

물론 관객석 여기저기서 감탄이 튀어나올 만큼 잘하는 팀이나 멤버들도 있다.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치고, 차세대 K스타가 될 재목이라며 치켜세워주었던 애들.

하지만 몇몇 팀의 무대는 정말 말 그대로 헉 소리가 났다. 아무리 신인들이라지만, 넥스트 K스타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가는 방송인데 저런 공연을 내보내도 되나 걱정스러울 정도로.

그리고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게 바로,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저 팀이다.

슈가캣.

“……음.”

결국, 참지 못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앞좌석의 사람들도 무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김현조도 아까부터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눈까지 가리고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무리 연습할 시간이 부족했대도 저건 너무 심하잖아.

충격의 3분 30초가 지나고 슈가캣 멤버들이 심사위원석 앞에 선다. 슈가캣 멤버들도 두근거리고 있겠지만, 나 역시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렸다.

지금 이 순간. 드라마 첫 회를 볼 때보다 더 기대되고,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볼 때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세 명의 심사위원 중에서도 독보적인 독설가 캐릭터. 앞서 몇 번이나 듣는 사람의 멘탈을 바스러뜨리는 혹평을 날렸던 차수지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는다. 멘트를 지나치게 세게 던지는 스타일이라 난 좀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지만…….

“팀명을 슈가캣이 아니라 떫캣이라고 하지 그랬어요? 떫어, 떫어. 노래 듣다가 오만상이 찌푸려지기는 처음이네.”

앞으로 저 여자 팬이 될지도 몰라.

슈가캣 애들이 당황해서 서로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버벅거린다. 하지만 심사위원은 아직 두 사람이나 남았다. 슈가캣이 한 마디 하기도 전에 혹평이 쏟아진다.

“반주 없이 부르니까 진짜 실력이 확 드러나네요. 지금까지 반주로 단점을 대충대충 덮고 있었다는 거죠.”

“음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고, 박자는 또 얼마나 놓치는지, 내가 세다가 포기했네.”

“칭찬할 게 없어요. 시청자들 사전 반응은 아주 좋은 팀인데…….”

“그건 예능에 많이 나가서 그렇죠.”

내 혈관에 톡톡 튀는 탄산이 흐른다.

아. 비로소 마음이 평온을 찾은 기분이다.

슈가캣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무대를 내려왔다. 관객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VJ 두 명이 붙어서 우는 모습을 찍자, 첫 미션이라 긴장해서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며 대성통곡을 한다.

인터뷰를 끝낸 슈가캣 멤버들은 다시 우리 뒷좌석으로 돌아왔다.

슈가캣 실장이 혀를 차며 말한다.

“심사위원들이 방송 초반에 자극적으로 몰고 가려고 일부러 막말한 거야.”

“그래도 저건 너무하잖아. 솔직히 우리도 연습 시간만 많았으면…….”

“우리보고 떫캣이래, 오빠. 그 정도로 못했어?”

“아냐. 너도 차수지 스타일 알잖아. 사람들이 쎈 언니니, 걸크러쉬니 하면서 떠받들어 주니까 캐릭터 다지려고 멘트 더 세게 던지는 거. 니들 그런 말 들을 정돈 아니었어. 다른 팀도 봐봐, 평가 비슷할 거야.”

마지막 말에 김현조가 뒤쪽을 홱 돌아본다. 슈가캣 실장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다음이 바로 넵튠 차례였으니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팀들과 함께 관객석 앞줄에 앉아있던 애들이 파이팅을 하고 일어선다. 그리고 침착한 걸음으로 심사위원석 앞에 섰다.

“넵튠…… 참여하는 팀 중에 인지도는 제일 낮아요.”

“뮤직비디오 보니까 실력은 괜찮던데요.”

“그걸로 평가하면 혹평할 팀이 없죠.”

미리 넵튠의 사전 영상을 보고 온 심사위원들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다. 툭툭 던져지는 질문들은 이태희와 임서영이 부드럽게 잘 받아넘겼다.

“좋아요. 그럼 무대 먼저 볼게요.”

“네!”

나는 의자의 팔걸이를 꽉 잡고 무대 위를 바라봤다.

적막을 깨고 이태희의 리드로 무반주 공연이 시작된다.

쌉싸름하고 깊은 울림을 품은 목소리가 공개홀을 깨운다. 무대 한쪽에 있는 모니터에 심사위원들이 자세를 바로 하는 모습이 잡힌다. 심사위원들뿐만이 아니라, 관객석이 있는 관계자들과 스탭들도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무대 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임서영의 발랄한 음색이 곡에 활기를 불어넣고, 엘제이의 랩 파트는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파워풀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건 이송하였다.

그동안 이송하가 연습하는 장면을 몇 번이나 지켜봤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좋다. 노력이라는 게 끝까지 사람을 배신하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저 정도로 뭘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나는 저 무대가 끊임없는 노력 끝에 나온 거라는 걸 아니까.

이송하뿐 아니라 네 명 모두, 미션이 공개된 그 순간부터 쉬지 않고 연습한 시간, 땀, 노력을 3분 40초 안에 모조리 쏟아 붓는다. 실수는커녕 무반주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무대였다.

“됐다. 이건 됐어.”

옆에서 김현조가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송하는 오전에 그게 진짜 액땜이었나봐요. 저렇게 잘할 줄 몰랐어요.”

“그래. 연습 때보다 더 잘하네.”

무대를 끝내고, 애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렸다. 애들이야 당연히 떨리겠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나도 만만치 않게 긴장된다.

차수지가 마이크를 든다.

“정말 좋았어요. 지금까지 왜 안 떴는지 궁금하네. 왜 안 떴어요?”

기대를 뛰어넘는 극찬에 무대 위에서 평가를 기다리던 애들 표정이 확 밝아진다. 우리 쪽도 축제 분위기다. 김현조가 흥분한 손바닥으로 나와 배신자의 어깨를 퍽퍽 때렸지만, 나도 흥분해서 아프지도 않았다. 뒤에서 슈가캣 멤버들이 구시렁거리는 것도 지금은 손톱만큼도 신경이 안 쓰인다.

“태희양은 정말 아까운 보컬이에요. 아니, 아이돌 하기 아깝다는 게 아니라, 3분 40초를 솔로로 다 부르는 걸 듣고 싶어서 그래.”

“서영양이 팀 균형을 딱 맞춰줘요. 음색도 그렇고, 이미지 면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체구가 큰 게 아닌데도 카메라 줌인 한 것처럼 눈에 확 들어와요. 안무를 120프로 소화하니까. 이력 보니까 예능프로그램도 했던데 예능감도 빨리 확인해 보고 싶네요.”

“언더에서는 넵튠은 몰라도 엘제이는 안다더라고. 그래서 내심 기대하는 게 있었는데, 무대 보니까 기대 이상이에요.”

사이먼 리와 프로듀서 송백진도 몇 차례 후한 평가를 주고받았다. 멘트가 끝날 때마다 애들이 뿌듯한 표정으로 감사인사를 전한다. 무대 위의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이송하의 상기된 뺨 위로 설핏 기대감이 스쳐 지나간다. 나도 침을 꿀꺽 삼키고 귀를 기울였다.

차수지가 마이크를 든다.

“이송하양.”

“네.”

“송하양이 팀 평균을 혼자 깎아 먹어요. 연습은 제대로 하고 있어요?”

나는 하마터면 벌떡 일어날 뻔했다.

실력에 대한 혹평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저 사람들은 적게는 십 년, 많게는 수십 년을 음악만 해 온 사람인데 당연히 저 사람들 말이 옳겠지.

하지만 연습은 제대로 하느냐는 말은 이송하한테는 너무 잔인하다.

다른 멤버들이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항상 혼자 연습실에 남아있는 앤데. 설상가상으로 사이먼 리와 송백진도 한마디씩 거든다.

“그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해요.”

“비주얼이 너무 아깝지. 눈에 확 띄니까 시선은 자꾸 그쪽으로 가는데, 보면 그 이상 뭐가 없어. 연기나 예능 쪽 이력이 있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기본은 잡혀 있으니까, 앞으로 좀 연습량을 늘리면…….”

이송하가 고개를 떨군다. 어떤 카메라가 그 표정을 잡고 있는지 무대 모니터에 이송하의 얼굴이 비친다. 카메라 감독은 흐르는 눈물을 예상했을 테지만, 이송하는 묵묵히 자기한테 쏟아지는 냉정한 평가를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어휴…….”

김현조가 얼굴을 쓸어내린다. 나도 착잡한 심정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서 한숨만 쉬었다. 문득 뒷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송하에게 저 밉살맞은 꼬락서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들이 무대를 내려온다. 결과적으로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분위기는 밝지 못하다. VJ 한 명이 이송하에게 집요하게 질문하다가, 눈물 흘릴 기미가 안 보이자 곧 떠나버린다.

이송하가 가까이 오자 김현조가 가느다란 어깨를 두드린다.

“송하야, 내가 아까 얘기했지? 심사위원들이 한 말은…….”

“알아. 괜찮아, 오빠.”

“그래. 초반이니까, 점점 더 좋아지는 모습 보여주면 돼.”

“응.”

이송하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그 얼굴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오늘 이송하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온 게 몇 번째지?

녹화는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마무리됐다.

“다음 녹화 일주일이나 남았으니까, 오늘은 연습하지 말고 푹 쉬어.”

김현조가 당부한다. 애들도 무거운 고개를 끄덕거리며 승합차에 올라탄다. 조수석에 탈까, 뒤에 탈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송하가 슬쩍 내 뒤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왜?”

“잠깐만요.”

잡아끄는 대로 몇 걸음 따라가자 이송하가 내 뒤쪽을 살피더니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빠.”

“어.”

“저 발이 조금 아파요.”

“뭐?”

재빨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프다고? 언제부터?”

“아까 넘어지고 난 다음부터요.”

넘어진 다음이라면…… 설마 빗속에서 리허설 했던 그때? 그게 언젠데, 그때부터 아팠던 걸 지금까지 말도 안 하고 있었단 말이야?

“너, 그걸……!”

“죄송해요. 언니들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이송하가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옷자락을 양손으로 꽉 붙잡고 버틴다. 기가 막혀서 쳐다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순간, 오전 스케줄을 허탕 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애들이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액땜한 거라는 얘길 하다가, 다쳐서 넥스트 K스타 녹화 일정에 지장 생기면 그게 더 큰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왔었지.

만약 이송하가 다친 걸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다른 애들이 자책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송하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부탁하는 걸지도.

“알겠어. 알겠는데, 실장님한테는 얘기해야지. 병원에도 가야 하는데. 실장님한테만 얘기하고 올 테니까 좀 놔봐. 옷 찢어지겠다.”

하얗게 핏기까지 빠져 있던 손가락이 그제야 느슨하게 풀어진다.

<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3)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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