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32화 (32/218)

< 언제나 반전이 있다 (2) >

“성도원이 자기 관리는 철저하던 사람이라 밖으로 안 새나가게 꽉 틀어막았던 거지, 퓨어스타 쪽에서 입 여니까 유부녀는 기본이고 진짜 별의별 섹스 취향이 다 나왔잖아.”

진짜 미치겠네…….

이건 또 뭐야.

그러니까 성도원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지? 그런 파티가 궁금해서 처음 참석했다는 것도 거짓말. 어쩌면 운 좋게 사진에만 안 찍혔지, 유부녀한테 손도 안 댔다며 억울해 하던 것도 거짓말일지도 모르고.

와…… 뒤통수가 다 얼얼하다.

난 대체 성도원 걱정은 왜 한 거야.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언젠가 인간불신에 시달리거나 냉소주의자가 될지도 몰라. 지금 내 영혼에 흠집이 나고 있다고.

그래도 넵튠이 눈에 밟혀서 길게 고민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성도원 매니저 하겠다고 바로 대답했으면 지금쯤 호흡곤란이 왔을 거다.

이걸 운이 나쁘다고 해야 돼, 아니면 운이 좋다고 해야 돼?

“그 뒤로 성도원이 어떻게 됐죠? 아예 중국으로 간 것까진 아는데.”

“중국에서 작품 몇 개 했는데 잘 안 됐을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성도원한테 귀책사유가 있었던 거라서, W&U는 사건 터지기 전에 계약 해지했었거든요.”

“참, 성도원이 그렇게 될 거라고는……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니까요.”

“도원이야, 넵튠이야?”

눈앞에서 2팀장이 묻고 있다.

“죄송합니다.”

“……뭐?”

“지금 자리에 있겠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앞을 보니 2팀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멈춰있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심지어 백한성 대표까지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 있다.

“저기, 복… 아니, 선우야.”

3팀장이 내 옆에 가까이 붙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너……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 봐. 니가 사회에 나와서 이렇게 중요한 선택을 하는 게 처음이고, 또 갑작스러운 일이라 좀 서투르게 판단하는 것 같은데. 의리나 정으로 선택하기에는 지금 걸린 게 크다.”

본부장도 한마디 거든다.

“그래. 이런 기회 자주 오는 거 아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이게 정말 기회라면 그렇겠지.

그럴듯한 거절의 말을 생각하며 입을 뗀 순간.

2팀장이 코웃음을 친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도원이가 직접 부탁했는데 그걸 걷어차? 이거 떠 먹여줘도 못 받아먹는 놈이구만?”

못 먹을 걸 떠먹이려는데 그럼 좋다고 입 벌리고 있을까?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정말 큰 기회라는 건 알지만, 제가 처음으로 맡은 그룹이라서 그런지 자꾸 넵튠이 눈에 밟힙니다. 이제 막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고 있는데…… 지금 그만두면 제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능한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확실하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올리자 성도원이 묘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다.

“정말로 그렇게 결정하신 거예요?”

“네. 죄송합니다.”

“……같이 일하고 싶었는데, 안타깝네요.”

나도 안타깝다.

성도원이라면 어쩌면, 할리우드에서도 먹힐만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배우의 지저분한 스캔들 때문에 뛰어난 연기력이 묻혀버리게 되다니…… 주인을 잘못 만난 재능이 안타깝다.

성도원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물러나니까 이제 아무도 나한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하지 않는다. 3팀장만이 정말 확실하게 마음을 정한 거냐고 두 번 더 확인했을 뿐이다. 2팀장은 아예 날 쳐다보지도 않고 있고.

나는 이송하 레슨 선생 얘기를 한번 꺼내보려다가 접었다. 내가 눈치가 엄청 빠른 편은 아니지만, 지금이 이 말을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이건 김현조랑 3팀장에게 따로 먼저 얘기하는 게 낫겠다.

그 상태로 잠깐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다가 이만 나가보라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3팀장이 복잡한 표정으로 속삭인다.

“오늘 고생했어. 일단 들어가서 쉬고, 이 일은 다시 얘기하자.”

“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문을 닫고, 거기 기대서 참고 있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참 다사다난하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더니 진이 다 빠졌다.

뭐, 이걸로 탑스타 매니저 자리는 완전 날아가 버렸구나. 힘들 때 그걸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됐었는데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될 줄이야.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좀 허탈하긴 하다.

“야, 이 미친놈아.”

코앞에서 김현조가 말한다.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진짜 미쳐가나?

“지금 웃음이 나와? 너 지금 무슨 생각으로 성도원을 까고……!”

김현조가 흥분한 목소리를 내뱉다 말고 옆을 힐끔거린다. 거기에는 성도원의 매니저, 장서문이 우두커니 서 있다. 김현조가 혀를 차며 내 팔을 잡아끈다.

“따라와 봐.”

나는 빠른 걸음을 따라가면서 말했다.

“실장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송하한테 개인 레슨 해줬다던 심경택 선생님이요. 송하가 레슨받을 때 안 좋은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뭔가 이상한 꿍꿍이가….”

“지금 니가 이상해, 임마!”

“이거 정말 중요한 문젠데요.”

“니 문제는 안 중요하냐? 니가 지금 뭘 걷어차고 나왔는지 알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떠들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저, 잠깐만요.”

돌아보니 장서문이 다가오고 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 네.”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김현조가 한숨을 쉬며 혼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하 연습실에 내려가 있을 테니까, 얘기 끝나면 거기로 와. 알았어?”

“네.”

나와 장서문은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흐릿한 주황색 전등 아래에서 장서문은 한참 동안 뜸을 들였다.

이 사람이랑은 딱 세 번 마주쳤다. 모두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 처음 화장실에서 성도원과 함께 만났을 때는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봤고, 두 번째에는 사색이 돼 있었고. 조금 전에는 내가 이 사람의 자리를 차지할 뻔했으니까,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다.

나도 마음이 복잡하다.

장서문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연다.

“왜 거절하신 거예요? 도원이 형 매니저.”

“아, 넵튠 때문에요.”

“그건 들었는데…… 정말이에요?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넵튠 때문인 게 제일 크고,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거절했어요.”

“아…….”

장서문이 입술을 축이고 다시 말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제가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거절한 거면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서 얘기하자고 한 거예요. 그쪽한테는 좋은 기회 맞으니까.”

“아니요, 그런 생각은…….”

“그리고 어차피 전 안 잘리더라도 제가 그만둘 거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라고. 하루아침에 성도원 매니저 자리에서 물러나게 생겼으니 지금은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을지도 모르지만, 얼마 후면 지금 그만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

장서문이 거칠게 뒷머리를 헝클고 중얼거린다.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했는데 이렇게 단칼에…… 하아, 시발.”

“사실 이번 일은 성도원 씨 과실이 큰 것 같은데…….”

장서문이 멈칫하더니 살짝 웃는다.

“안에서 저희 팀장님…… 아니, 2팀장 봤죠? 턱수염.”

“네.”

“그 사람이 매니저 출신이 아니라 그런지, 잘 되면 연예인 덕이고 잘 안되면 매니저 탓하는 사람이거든요. 뒤끝도 기니까 그쪽도 당분간 안 마주치는 게 좋을 거예요. 방금 제안, 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금 자존심 좀 상했을걸요?”

마지막 말에는 살짝 즐거움이 묻어있다.

“안 그래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내 대답에 장서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인다.

“그리고…… 밖에서 얘기했던 거 있잖아요. 심경택 레슨 선생. 그 사람한테 레슨 받은 애가 안 좋은 얘기 들었다는 거요.”

“아, 네.”

“제가 하나 짚이는 게 있긴 한데, 확실한 건 아니구요.”

눈이 번쩍 뜨인다.

지금까지 배우를 담당했던 사람이니까, 뭔가 알 수도 있겠구나.

“괜찮습니다. 얘기해주세요.”

“예전에 조실장님하고 술 먹다가 들은 얘긴데, 손채영이 좀 히스테리가 심한 편이잖아요. 아세요?”

“네.”

잘 알지.

그런데 갑자기 손채영 얘기는 왜 또 튀어나오는 거지?

“손채영이 가능성 있어 보이는 신인들 보면 그렇게 불안해하고 견제해서 조실장님이 달래느라 피곤해 죽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배우들 꽤 있거든요. 자기만 잘 나가야 회사에서 자기를 더 챙겨주고 밀어주니까. 나눠 먹기 싫은 거죠.”

“아아.”

“손채영하고 그 레슨 선생하고 친해요.”

그러고 보니 김현조가 그랬었지. 이 레슨 선생이 손채영도 가르쳤다고.

“손채영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되게 따르거든요. 뭐…… 이건 어디까지나 들은 얘기가 있어서 추측해 보는 거고, 진짜 뭐가 있는 건지는 모르니까 그냥 참고만 하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확실한 건 아니니까 알아봐야겠지만, 좀 찜찜하게 들리긴 한다.

김현조한테 얘기해서 제대로 한 번 알아봐야지.

“그럼 들어가세요.”

“네. 앞으로 넵튠 잘 됐으면 좋겠네요.”

서로 인사를 하고 장서문은 비상구 계단으로 사라지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깐 4층 사무실에 들러서 가방을 챙기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잡는데 핸드폰이 진동한다.

“여보세요?”

-매니저님, 박우정이에요. 통화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아까 기사 올리신 거 잘 봤습니다, 기자님.”

건너편에서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거 제 첫 단독기사예요.

“와, 진짜 축하드려요.”

-다 매니저님 덕분이에요. 제가 밥 사고 술도 살게요. 언제 시간되세요?

“음…….”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입맛을 다셨다.

“제가 미리 약속을 잡을 수 있을 만큼 규칙적인 스케줄이 아니라서요.”

입사한 이후로 친구들이랑도 만난 적이 없다.

-하하, 사실 저도 그래요. 휴일에도 긴장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일 터지면 약속이고 뭐고 취소하고 달려가야 해서, 사적인 약속은 잡기가 참 애매하더라구요.

아, 휴일. 문득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까 전 오늘이 휴일이었어요.”

-네? 그런데 지금 뭐 하세요. 오늘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러게요.”

우리는 동병상련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하하하.

타이밍을 잘 맞춰서 약속을 잡아보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을 때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하고 연습실로 들어가다가 멈칫했다. 넵튠 애들 네 명과 김현조까지. 다섯 명이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너 제정신이냐는 표정.

“오빠! 진짜로 성도원 까고 오신 거예요?”

임서영이 달려와 내 양팔을 잡고 묻는다.

그 옆에서 김현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얘들이 안 믿는다. 니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건지 좀 알겠냐?”

“진짜예요?”

“어.”

고개를 끄덕이자 임서영이 주춤주춤 물러난다.

“진짜라구요? 진짜, 탑스타를 까고 왔다구요? 한류스타를 까고?!”

“어… 그렇게 됐네.”

“그, 그렇게 됐다구요? 웬일이야! 미쳤어, 미쳤어!”

임서영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까지 놀라서 웅성거린다.

“내가 말했잖아. 쟤 미쳤어. 쉬는 날 출근한 것부터 이상하더니.”

김현조가 손짓까지 하며 말했다.

“내가 훔쳐봤는데, 그 성도원이, 그 탑스타가 고개까지 숙이면서 매니저가 돼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부탁했단 말이야. 그런데 쟤가 그 앞에서 저는 넵튠이 눈에 밟힙니다, 이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니까?”

< 언제나 반전이 있다 (2)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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