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나 반전이 있다 (1) >
들어가기 직전에 김현조가 내 어깨를 붙잡는다.
“한 달도 안 된 신입이 대표실에 몇 번씩 들락거리고. 나중에 출세하겠다, 너.”
그냥 웃자 김현조의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낮아진다.
“내가 알기론 지금 안에 대표님하고 성도원, 본부장님, 매니지먼트 2팀장님하고 3팀장… 영훈이 형이 같이 들어가 있거든. 혹시 안에서 무슨 문제 생기면 영훈이 형한테 얘기해.”
“네. 감사합니다.”
매니지먼트 3팀장은 같이 회의에 참석한 적이 몇 번 있어서 조금 안다.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었지.
“그럼 들어가 볼게요.”
김현조와 성도원 매니저를 뒤로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은 대로 대표실 안에는 다섯 명이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상석에는 대표인 백한성이 앉아있고, 왼쪽 소파에는 성도원과 매니지먼트 2팀장인 턱수염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본부장과 3팀장이 앉아 있다.
이번 위기를 잘 넘겼기 때문인지 다들 분위기가 밝은데 2팀장 혼자 표정이 별로다. 나를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저 사람은 대체 뭐가 문제야? 본 적도 없는데 왜 날 싫어하는 것 같지?
“어이구, 우리 팀 복덩이 왔네, 이리 와서 앉아.”
3팀장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옆자리를 두드린다. 나는 인사를 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편하게 앉아서 고개를 드니까 바로 정면에 성도원이 나를 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다.
어라. 그런데 이 구도 뭔가 익숙한데.
뭐지? 하다가 몇 초 만에 번쩍 떠올랐다.
아까 왔을 때는 워낙 정신이 없었던 데다가 서 있는 상태였고, 그리고 내 기억 속의 사무실이 노이즈가 심해서 못 알아봤는데… 이렇게 성도원과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까 확실히 알겠다.
여기, 처음 접속 불량 미래에서 봤던 그 사무실이다.
“이름이 정선우 맞지?”
백한성 대표가 불쑥 물었다.
“맞습니다.”
“사진 판독 결과, 얘기 들었어?”
“네. 박팀장님한테 들었습니다.”
“직원들이 매니지먼트 3팀 복덩이라고 부른다던데. 앞으로는 그냥 W&U 복덩이라고 해도 되겠어.”
웃는 얼굴로 칭찬하던 백한성 대표가 또다시 불쑥 묻는다.
“차는 있어?”
“네? 아뇨. 아직 없습니다.”
“살 생각은 있고?”
“네.”
당연히 생각은 있다. 돈이 없을 뿐.
“그럼 한 대 골라놔. 회사에서 뽑아줄 테니까.”
“……네?”
뭘 준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쳐다봤더니 본부장이 실실 웃으며 끼어든다.
“뭘 뜸 들이고 있어, 이런 건 준다고 할 때 얼른 받아야지.”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하는데, 아니, 너무 갑작스러워서 하려던 말이 혀 위에서 엉킨다.
“그런데 그냥 한 대 고르라고 했다가 얘가 롤스로이스 같은 거 뽑아달라고 하면 어쩌시려구요? 요즘 애들 무서워요.”
“그럼 내 거 주고 난 걸어 다니지, 뭐.”
백한성 대표의 농담에 가벼운 웃음이 퍼졌다.
성도원과 유부녀가 합성된 사진을 만지며, 백한성 대표가 나직이 말한다.
“사진이 조작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게 퓨어스타가 손을 쓴 게 맞았다는 거야. 미리 알아서 다행이지. 퓨어스타 장난질에 넘어가서 놀아났다는 걸 나중에 알았으면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겠어?”
역시 퓨어스타 수작이 맞았구나.
그것 때문에 나한테 차를…… 안 되겠다. 이건 좀 있다가 머릿속에 여유가 생기면 진지하게 생각하자.
그럼 이제 퓨어스타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사진 도촬, 위조, 협박이면 형사 고소감이긴 한데. 미래에서 박국장이 했던 말로 유추해보면 퓨어스타 엔터가 앞으로 승승장구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럼 퓨어스타 엔터는….”
“오늘 밤에 도원이랑 같이 그쪽 대표랑 만나기로 했어. 그건 이제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고.”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갈지 궁금하네.
단순히 얘기만 오갈 것 같진 않은데.
“어쨌든 내 선물은 그렇고, 도원이도 할 말이 있다면서.”
백한성 대표가 뒤로 빠지자 이번엔 성도원이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한다.
“선우 씨라고 했죠? 이번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는 은인이에요.”
“뭘 또 은인씩이나…….”
2팀장이 중얼거리자 성도원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은인이죠. 선우 씨 아니었으면 그쪽 수작에 말려들어서 제 연기자 인생이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외워버렸을 정도로 많이 생각했던 그 대사가 들린 순간.
불확실한 미래였던 것이 내 현재가 됐다.
“난 선우 씨가 내 매니저가 돼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복잡한 감정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3팀장이 혀를 차며 말한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일 잘하고 있는 신입을 왜 뺏어가려고 하냐고 한마디 했을 텐데, 우리 탑스타 배우님이 부탁하니까 뭐라고 항의도 못 하겠네.”
“죄송해요, 팀장님.”
“아이고…… 별수 있나, 뭐.”
3팀장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당사자 생각은 어때? 도원 씨랑 같이 일해볼래?”
“나참, 답답하네. 그걸 꼭 물어봐야 알아?”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2팀장이 끼어든다.
“솔직히 도원이랑 넵튠 애들이 비교할 급이 돼? 장서문이 걔도 경쟁자 여러 명 제치고 도원이 매니저 된 거였어. 그런 자리에 대신 경력 한 달도 안 된 놈을 꽂아주는 건데, 미친 게 아니면 이런 기회를 마다하겠어?”
“넌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내년에 넵튠이 확 뜰지 누가 알아. 넵튠도 지금 흐름 탔어.”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같은 팀장급인데도 이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안 좋구나.
둘이 삿대질만 안 했지 점점 분위기가 따끔따끔해지고 있다. 그런데 중재하는 사람이 없다. 백한성 대표도 그렇고 본부장도 그렇고, 이 정도 말다툼이야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고상하게 커피나 마시는 중이다.
“흐름을 탔는지 어쨌는지는 두고 봐야 알지.”
2팀장이 흘리듯이 말하며 불을 지른다. 이번엔 나까지 울컥했다.
“허, 이건 또 무슨 개매너야, 왜 남의 집 일에 초를 쳐?”
“어디서 개매너를 찾아? 니 옆에 있는 걔도 얼마 전에 우리 채영이 차기작에 초 치고 갔어. 채영이 안 그래도 예민한 앤데, 쟤랑 만나고 난 이후로 감정 기복이 더 심해졌다고.”
난데없이 손채영 이름이 쑥 튀어나온다.
왜 본 적도 없는 2팀장한테 미운털이 박혔나 했는데 그 의문은 풀렸네.
“이번 일은 잘 풀려서 다행이지만, 처음부터 저렇게 설치는 놈치고 사고 안 치는 놈을 못 봤어. 도원이 옆에 붙여놓는 것도 좀 불안한데… 어차피 장서문이 내보내면 새 매니저 구해야 되고, 도원이가 저놈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한 번 두고 보는 거지.”
“아이고, 저러니까 별명이 시어머니지.”
나는 둘의 말을 듣다가 멈칫했다.
장서문이라는 사람이 지금 밖에 있는 성도원 매니저를 말하는 것 같은데. 내보내고 그 자리에 나를 꽂아준다는 건, 그 사람을 자른다는 소린가? 이번 사건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이번 일은 매니저보다는 성도원 과실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매니저에게 거짓말을 해서 떼어놓은 건 성도원이니까. 그런데 욕먹고 물러나는 건 매니저구나.
물론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가족적이고 끈끈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결국은 비즈니스로 묶인 사이니까.
연예인이 매니저를 막대하는 경우도, 그 반대의 경우도 많고 최악에는 법적 공방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는 거, 잘 안다.
잘 알지만…… 그래도 이 상황이 조금 씁쓸하게 다가온다.
나도 언젠가 장서문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당히 하고 이제 본인 생각도 좀 들어보자. 팀장 둘이 말씨름을 하니까 애가 나서질 못하잖아.”
본부장이 상황을 진정시킨다.
금방 사무실 안이 조용해진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제안을 승낙하면 내가 성도원의 유일한 매니저가 되는 건데, 그렇게 되면 넵튠과 성도원을 같이 담당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테니까.
내 고민을 3팀장에게 말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3팀장이 마치 내 속을 읽은 듯 먼저 말한다.
“왜. 넵튠 애들이 마음에 걸려?”
“네. 지금 중요한 시긴데… 혹시 넵튠하고 같이 담당할 수는 없을까요?”
3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목을 긁적인다.
“책임감 있는 건 좋은데 그건 힘들지. 도원 씨는 해외 스케줄이 많잖아. 중국도 밥 먹듯이 가고, 내년에는 할리우드도 진출할 계획인데. 거기서는 신인이니까 너도 계속 촬영장에 붙어 있어야 될 거거든. 그 와중에 넵튠 일까지 감당을 못하지.”
“아아.”
“니가 실장급 경력에 노하우가 있으면 모를까, 이제 막 배우는 상황이잖아. 너한테도 안 좋고 도원 씨나 넵튠한테도 안 좋아.”
나와 3팀장의 대화에 2팀장이 불쑥 끼어든다.
“어차피 넵튠에는 신입 한 명 더 있다며. 걔한테 인수인계하고 오면 될 거 아냐. 들어보니까 원래 배우 담당하고 싶다고 했었다던데. 도원이 우리 회사 배우 중에서도 탑 급이야. 로또 맞은 줄도 모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2팀장 말이 맞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선택이다.
뛰어난 연기력과 흥행성을 겸비한 탑배우. 성도원같은 배우를 담당하는 건 내가 W&U에 들어오면서 가장 기대하고 원했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왕 현재를 바꿔야 한다면 더 좋은 미래를 개척하자고 마음먹었고.
가능성은 있지만 이제 막 크기 시작한 신인 걸그룹인 넵튠.
국내에서는 이미 탑 급의 위치에 오른, 이제 해외로 뻗어 나가려는 성도원.
열 명한테 물어보면 아홉 명이 바로 성도원을 선택할 거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미친놈 소리를 듣을 거고.
지금 이것저것 마음에 걸리는 것들, 그런 걸 다 떠나서… 성도원의 매니저가 되는 순간 내가 얻게 될 인맥. 해외시장, 특히 할리우드를 직접 밟으며 쌓을 경험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면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그런데…… 난 왜 바로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거지?
마치 뭔가가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기분이다.
“하하.”
본부장이 재밌다는 듯이 웃는다.
“도원이랑 넵튠을 놓고 이렇게 고민할 줄 몰랐네. 짧은 시간에 넵튠 애들이랑 정이 많이 들었나 봐. 생각할 시간을 좀 더 줄까?”
“나참, 기가 막혀서.”
2팀장이 테이블을 탁 치며 말한다.
“무슨 생각을 더 해요? 아니, 우리도 할 마음 없는 놈은 억지로 안 시켜. 도원이 매니저 하라고 하면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우고 올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더 고민할 것 없이 지금, 여기서 결정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성도원의 얼굴 위로 넵튠 애들, 특히 오늘 겨우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송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뒤집히며 눈앞의 광경이 바뀐다.
“뭐…… 그런 셈이긴 하지.”
박국장이 혀를 차며 말하고 있다.
“원래 성도원이랑 퓨어스타랑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같이 죽을 거 아니면 마지막 선은 지켰어야 했는데…… 퓨어스타가 먼저 수작질을 하고 들키는 바람에 아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야. 그게 점점 악화되다가 결국에는 터진 거지.”
지금 박국장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성도원하고 퓨어스타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결국 터졌다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집중하면서 박국장의 말을 해석하려고 애쓰는데 박국장이 툭, 폭탄을 던진다.
“성도원이랑 퓨어스타랑 서로 막장 폭로전에 기자회견에, 결국 서로 형사 소송, 민사 소송, 다 걸어서 법정까지 갔거든.”
“폭로전이요?”
“퓨어스타도 더러운 일 많이 했지만, 알고 보니 성도원도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더라고.”
맙소사.
< 언제나 반전이 있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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