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30화 (30/218)

< 폭풍전야 (5) >

아.

안도감이 퍼지면서 굳어있던 몸이 스르르 풀어진다.

“저는 방금 기사 뜬 거 보고 큰일 났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판독 결과가 조금 전에 나왔어. 타이밍 진짜 아슬아슬했네. 기사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빨리 터지는 바람에 위에도 다 멘붕이었거든. 결과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밤새 전화기 붙잡고 기자들하고 싸울 뻔했어.”

“이제 이 일은 해결된 거예요? 완전히?”

“그렇지. 사진이 조작이라고 밝혀졌는데 어떤 기자가 그쪽 말을 믿고, 그쪽 편을 들겠어?”

그건 그렇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거, 퓨어스타가 완전히 제 꾀에 빠진 꼴이잖아.

계획대로 뒷거래를 하고 그걸 언론에 터뜨렸다면 W&U가 아무리 사진이 조작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해명해도 대중과 기자들은 진실을 의심했겠지.

하지만 이젠 반대다.

거래도 무산됐고, 사진이 조작이라는 사실도 발각됐으니까.

퓨어스타에서 성도원이 섹스파티에 참가했고, 또 그 자리에 정말 유부녀가 있었다고 떠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의심부터 할 거다. 그리고 신빙성 없는 소문 따위는 얼마든지 다른 악질 루머처럼 덮어버릴 수 있고.

퓨어스타 엔터 사람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으려나?

아, 그렇지.

“팀장님. 퓨어스타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그건 대표님하고 도원 씨가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아직 조용하시네.”

“아아.”

“어쨌든 오늘 일은 그냥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정도로 넘어가게 될 거야. 어차피 도원 씨가 그런 파티에 참가한 건 사실이니까 잘못 들쑤셔서 화제 키우면 우리도 좋을 게 없잖아.”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아는 기자가 있는데 이 얘기 전해줘도 될까요?”

“응?”

“어쩌면 지금 성도원 씨 기사 쓰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수습이라서.”

미래에서 박국장이 그랬지.

자기가 성도원 기사 썼다가 성도원 팬들한테 항의 전화 엄청 받았다고.

사건이 크게 번진 상황이 아니라서 아직 기사 쓰기 전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다. 박국장의 말이 아니었으면 일이 이렇게 잘 풀렸을 리가 없으니까. 일등공신이나 마찬가지지.

뭐,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 어차피 곧 보도자료 보겠지만, 친한 기자한테는 직접 말해주는 게 더 좋지. 수습이라고?”

“네.”

“둘다 파릇파릇하네. 자기 편으로 만들어봐. 계속 이 일 할거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연예부 기자 한 명쯤은 필요하니까.”

박우정 기자 전화번호는 명함 받은 날 바로 저장했다. 박국장으로 할까 하다가 오해받을 것 같아서 그냥 이름으로 했지.

연결음이 끊어지고 피곤한 목소리가 들린다.

-박우정입니다.

“박우정 기자님?”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 정선운데요. 지난번에 뵀던 넵튠 매니저요.”

-어어…… 네! 안녕하세요.

“혹시 기자 그만두셨어요?”

기자 때려치울 거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물어봤는데 대답이 없다.

역시 안 그만뒀구나.

-하하, 그 구구절절한 얘길 다 하려면 세 시간은 떠들어야 되는데 시작할까요? 아니면 용건부터 말씀하실래요?

“그럼 용건부터 얘기할게요. 기자님이 성도원 씨 기사 쓰고 계실까 봐 걱정돼서 전화했어요.”

또 대답이 없다. 대신 당황한 숨소리만 전해진다.

뭐야, 진짜 쓰고 있었던 거야?

“기자님. 그거 쓰지 마세요.”

-네?

“성도원 씨 기사요. 이미 다 쓰신 거면 내보내지 마세요.”

-저… 하아. 성도원 씨가 W&U 소속인 건 아는데요. 매니저님도 아시잖아요. 저 수습이라서 위에서 시키면 써야 돼요. 저도 정확한 취재도 없이 이런 추측성 기사 쓰기 싫은데….

“한 언론사가 가지고 있다는 증거사진. 그거 조작된 사진이에요. 당연히 거래도 없었구요.”

-네?!

“전문가 사진판독 맡겨서 방금 결과 나왔어요. 보도자료도 바로 발송될 거구요. 인터넷에 올라가 있는 기사들도 다 내려갈 거예요. 기자님도 기사 잘못 올리셨다가 고소당하실 수도 있어요.”

-보, 보도자료 보내신다구요?

“네. 지금쯤이면 이미 발송됐을지도 모르겠네요”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바로 박우정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진다.

-매니저님, 아직 보도자료 안 들어왔고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W&U 입장 기사 뜬 거 없거든요? 제가 지금 첫 번째로, 단독 붙여서 내도 괜찮을까요?

“단독 기사요?”

-제발, 제발요!

괜찮을까? 어차피 곧 다른 언론사에서도 기사들이 나오긴 할 텐데.

박팀장을 바라보자 박우정 기자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자세하게 이름은 까지 말고 소속사 관계자라고 내보내라고 해. 그래야 나도 둘러댈 말이 생기지. 우리 회사랑 친한 기자들도 있는데 다른 데서 인터뷰 들어간 단독 기사 나오면 다들 투덜거릴 테니까.”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박우정 기자에게 말했다.

“제 이름은 노출되면 안 되니까 소속사 관계자라고 해 주시고, 이 사건은 그냥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고 써 주세요. 좋은 일도 아닌데 화제 키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당연하죠!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따가 다시 연락, 제가 술 살게요!

뚝. 전화가 끊어진다.

정신없이 기사를 쓰고 있겠지?

통화까지 하고 나니 모든 일이 잘 끝났다는 게 좀 실감 난다.

책상에 기대서 한숨을 쉬었더니 박팀장이 피식 웃는다.

“고맙다는 말도 했으니까 다시 기자들 상대하러 올라가 봐야겠다. 보도자료 보고 또 전화 엄청 올 테니까. 참. 자기는 바로 퇴근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봐.”

박팀장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위에서 다시 부를지도 모르잖아. 이번 일은 진짜 자기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으니까. 나야 고맙다는 말뿐이지만 위에서는 뭔가 더 좋은 게 있지 않겠어? 기대해 봐.”

박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더 좋은 거라…….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새로고침 버튼을 클릭했다. 홍보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내가 봤던 기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박우정 기자가 있는 지투데이의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 ‘탑스타 A’ 초대형 스캔들? 유명세가 부른 해프닝

W&U의 보도자료가 언론사에 깔렸는지, 이 기사가 뜨고 정말 몇십 초도 안 지나서 단독 타이틀을 붙인 기사가 세 개나 더 올라왔다. 그리고 곧 박우정 기자의 기사 이외에 다른 기사들에는 단독 타이틀이 사라진다. 진짜 간발의 차였구나.

박우정 기자의 기사를 읽어보니 급하게 써서 올리느라 내용은 몇 줄 안 되는데, 들어가야 할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한 언론사에서 확인되지도 않은 기사를 써서 논란을 키울 뻔했으나, 사실은 조작 사진으로 인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내용. W&U 측에서 전문가 3인에게 판독을 의뢰해 진실을 밝혀냈다는 내용. 그리고 거액이 오갔다는 뒷거래는 사실무근이라는 내용까지.

나도 소속사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한 줄 차지하고 있다.

제일 아랫줄에는 보도자료의 내용인지 W&U의 공식 입장도 추가돼 있다.

악질적인 루머를 유포, 재생산할 경우 수사기관에 협조를 요청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

포털에서 다시 새로고침을 해보니 탑스타 A에 대한 해프닝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와 있다. 벌써 한 페이지를 넘어갈 정도다. SNS나 연예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 네티즌들의 반응도 속속 올라온다.

-[오피셜] 성도원 스캔들 증거사진이라는 거 조작이랍니다. 아까 성도원 사생활 어쩌고 아는 척했던 분 어디 숨었나요? 다시 나와보시죠.

-이미 글 지우고 튀었음.

-이때다 싶어서 논란 키우고 즐기는 놈들 싹 다 고소미 먹일 수 없나?

-이래서 이런 건 양쪽 입장 다 듣고 나서 까야 함.

-성도원 불쌍… 내년에 대박 나려고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길ㅜㅜ

-와씨, 조작사진ㄷㄷㄷ 진짜 할 짓 없네.

“진짜 끝났네.”

거대한 폭풍 하나가 휘몰아치고 간 기분이다. 지나간 자리를 초토화하는 폭풍이 아니라, 나한테 이득을 안겨줄 고마운 폭풍이지만.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봤다.

더 좋은 거라…… 그게 뭘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접속 불량 미래에서 성도원이 했던 말이다.

나한테 매니저가 되어달라고 했던 말.

일이 잘 해결되긴 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 정도면 성도원한테 은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그럼 내가 봤던 접속 불량 미래가 이제는 내 현재가 될 수도 있는 건가?

나는 성도원이 매니저가 되고?

“흐음…….”

나는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도원이 나한테 매니저가 돼 달라고 부탁하면 바로 오케이 할 거라고 생각했다. 꿈에 그리던 탑배우이기도 했고, 걸그룹 매니저 스케줄이 어지간히 빡셌어야지.

그런데 막상 그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썩 개운치가 않다.

넵튠 때문에.

이대로 성도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넵튠 애들과는 떨어지게 되는 건가?

물론 같은 회사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보고 얘기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담당을 바꾼다는 건, 어쨌든 내 손을 떠나게 되는 거잖아.

그렇게 되면 애들이 음악방송 1위를 하고 쑥쑥 인지도를 쌓아가는 것도, 이송하에게 고양이 수호령 오디션을 보게 하고 동시통역사 배역을 따내는 것도,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을 밟도록 판을 까는 것도.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라 배신자, 최건영의 일이 되겠지.

그건 좀…… 별론데.

아주 별로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박팀장 말에 의하면 위에서 나한테 뭔가 주긴 줄 모양인데, 그때 넵튠과 성도원을 같이 담당하게 해달라고 말해 볼까?

매니저 한 명이 여러 연예인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가능할 것 같은데. 어차피 성도원한테도 다른 매니저가 한 명 있고. 넵튠한테도 김현조가 있으니까. 뭐 신뢰할 순 없지만, 배신자도 있고.

좋아. 그렇게 하자.

이왕 말하는 김에 이송하 문제도 해결하고. 분명 그 레슨 선생 뭔가 있을 거야. 그것부터 처리해야지.

그리고 이송하가 트라우마를 툭툭 털어버리고 연기 판에 뛰어들 준비가 되면 오디션을 볼 수 있게 좀 밀어달라고 하자.

아, 이건 김현조랑 먼저 상의해 봐야겠지만.

어차피 고양이 수호령은 섭외 난항을 겪었다고 했고, 섭외 때문에 W&U 홍보팀에도 연락했다고 했으니까 이송하가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중요한 건 거기서 확실하게 배역을 따내는 거지.

드르륵.

머릿속에서 쭉쭉 생각을 이어가는데 핸드폰이 진동한다.

확인해보니 발신자가 김현조였다.

“실장님?”

-너 아직 4층에 있어?

“네. 사무실인데요.”

-그럼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로 와!

뭐지?

갸우뚱하며 나가보니까 엘리베이터가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다.

김현조인가? 왜 지하에서 오지?

설마 넵튠 애들 아직도 연습실에 있나?

곧 4층까지 올라온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안에는 조금 흥분한 기색의 김현조가 타고 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현조가 내 팔을 잡아끌어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그리고 6층 버튼을 누른다.

“대표님이 너 찾으신다.”

“아.”

김현조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기사 올라온 거 보니까 증거사진이 진짜 조작인 거 같던데. 너 믿는 게 있긴 했던 거지? 난 또 신입사원의 패기로 갖다 박은 건 줄 알고 완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네.”

“꽤 확신한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야, 그럼 아까 손모가지도 걸지 그랬냐?”

아니, 역시 그건 좀.

“참, 퓨어스타 그건 어떻게 됐는지 알아? 그것까지 들어맞은 거면 진짜로 너한테 뭐 있는 건데.”

“그 일은 아직 몰라요.”

거의 백 프로 확신하고 있긴 하지만.

스르륵.

6층에 내려보니 성도원 매니저 혼자서 서성이고 있다. 아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들고 있는 핸드폰을 한 번, 굳게 닫힌 대표실 문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던 성도원 매니저가 우리를 발견했다. 나를 보는 표정이 언뜻 굳어진다. 읽을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그 위를 스쳐 지나간다.

꾸벅.

인사가 오갔지만,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성도원 매니저는 다시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본다. 나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대표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 폭풍전야 (5)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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