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풍전야 (2)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뚝.
나는 전화를 끊고 의자 위에 축 늘어졌다.
벌써 네 번째. 이송하에게 막말을 퍼부은 레슨 선생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전화를 안 받는다.
사실은 한참 전부터,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저 위에서는 지금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을까?
성도원은 도착했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마음은 당장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가 아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편적인 정보들은 많은데 확실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다.
“……최대한 끼워 맞춰 보자.”
일단 거의 확실한 것.
성도원이 유부녀를 포함한 변태적인 섹스파티에 참여했고, 그 증거사진을 가지고 있는 익명의 남자가 한 언론사를 통해 W&U와 성도원에게 접촉했다.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덮으려면 대가를 달라고 요구했고, W&U는 익명의 남자에게 돈을 주고 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결국 기사가 터졌다고 했지?
사실관계도 입증되지 않은 추잡한 루머들이 퍼졌고, W&U에서 돈거래를 덮었다는 것과 증거사진이 있었다는 것까지 알려지면서 성도원 이미지가 바닥을 쳤고.
그리고 얼마 후 상황이 확 뒤집혔다. 이게 포인트지.
여기까진 확실하다고 해도 되겠지. 박국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정보니까.
두 번째는 접속 불량 미래에서 성도원에게 얻은 정보.
‘그쪽 수작’에 말려들어서 연기자 인생이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한 것.
이것도 일단 확실한 쪽으로 넣자. 내가 이 미래를 바꿀만한 짓을 하진 않은 것 같으니까.
저 ‘수작’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와 상황이 뒤집혔다는 박국장의 말. 그것 때문에 성도원의 전 소속사였던 퓨어스타가 뭔가 함정을 판 게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다. 확실한 게 아니고.
이 부분이 답답하단 말이야.
익명의 남자가 누군지 그 정체만 확실히 알면 당장 나서보겠는데.
사건이 터질 때쯤 다시 미래를 보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별의별 시도를 다 해봐도 예지 능력은 튀어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누군가 성도원 씨를 고의적으로 물 먹이려고 수작 부린 것 같은데요. 미친 소리로 들리시겠지만, 상황을 보이는 대로 믿지 마시고 배후를 의심해 보세요. 증거사진 있죠? 그것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안 되겠다. 너무 미친 소리야.
무엇보다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야 정상인 상황인데, 사진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잖아. 거짓말로 어떻게 둘러댄다고 해도 내가 수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해야지. 이건 거짓말이 또 거짓말을 낳고 또 낳아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단 말이야.
그럼 방향을 좀 바꿔 보자.
‘당장은 지금이 최악의 상황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지나고 보면 소나기일 뿐입니다. 곧 상황이 뒤집힐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야! 이건 그냥 미친놈이지! 꼭 부적 쓰라는 얘기도 해야 될 것 같잖아!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차라리 신기가 있다고 할까? 이것도 뒷감당이 걱정되긴 하지만 제일 편한 변명이긴 한데 말이야.
나쁜 카드는 아니야. 당장은 미친놈 또라이 취급받겠지만 앞으로 상황이 내 말대로 진행되면 재평가받게 되겠지.
박수무당 매니저로. 하하.
“아아…….”
“너 뭐하냐?”
깜짝 놀라 돌아보니 김현조가 퀭한 얼굴로 서 있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쉬라니까 왜 나와 있어? 오늘 아니면 언제 또 쉴지 모르는데.”
“애들한테 할 말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 그런데 실장님은 왜…….”
“난 실장 회의 때문에 왔는데 미뤄졌어. 너도 볼일 끝났으면 빨리 들어가라. 오늘 회사 분위기 뒤숭숭하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혹시 성도원 씨 때문에요?”
깜짝 놀란 김현조가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 되묻는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혹시 기사 뜬 거 있어?!”
“아뇨.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분들 얘기하시는 거 들었어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기다리던 예지 능력이 발동했다.
“그 증거사진 말이야.”
나는 적응할 새도 없이 박국장의 말에 귀를 활짝 열었다.
증거사진 얘기부터 시작하는 걸 보면 지난번하고 바로 이어지는 건가?
“그게 조작된 사진이었거든.”
조작?
역시 증거사진에 뭔가 수작을 부린 거였구나!
“성도원이 파티에 참석한 건 맞는데, 제대로 된 사진을 못 건진 거야. 그래서 교묘하게 합성을 한 건데 파티에 간 건 사실이니까 성도원 측도 조작 사실을 늦게 안 거지. 그 뒤로 W&U가 언론사들 고소하겠다고 해서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어뷰징한 언론사들 발칵 뒤집어졌어. 줄줄이 기사 삭제하고 정정보도 내보내고 난리 났었잖아. 나도 그때 성도원 팬들한테 항의전화 엄청 받았지.”
거의 다 됐다. 이제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만 확실히 알 수 있으면……!
“누가 위조 사진까지 만들어서 그런 짓을 했던 거예요?”
송기자한테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뭐, 사기꾼 파파라치 하나가 합성 사진 만들어서 성도원하고 W&U한테 돈 좀 뜯어내려다가 딱 걸렸다…… 그렇게 결론 났었죠?”
“그때는 그걸로 결론 났었죠.”
미래의 내가 동의하자 송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럼 진실은 따로 있었다… 는 건가요?”
“기막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
“그게 뭔데요?”
“그 사건 배후가 사실은….”
사실은?
“성도원 전 소속사였거든.”
그렇지!
내가 그럴 것 같았어. 그럴 것 같았다니까?
예상했던 대로 얘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니 짜릿한 쾌감까지 느껴진다. 마치 영화에서 한참 뒤에 나올 반전을 미리 맞춘 기분이랄까?
나 이 정도면 미래 예지 능력을 빼도 꽤 감이 좋은 거 아닌가?
“거기가 퓨어스타였죠?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잘 안 나네.”
박국장이 미래의 나에게 물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퓨어스타 엔터가 망했나?
“맞아요. 퓨어스타.”
“그 회사가 성도원이랑 W&U한테 악감정이 있었거든. 그래서 이미지 실추시키려고 수작 부렸던 거야.”
“아무리 그래도 사진 조작까지….”
“그 사진은 처음부터 언론에 노출할 생각도 없었을걸?”
응?
“성도원이랑 W&U가 그걸 믿고 거래하면 그걸로 충분했던 거지. 성도원이 유부녀와 섹스파티를 열었다? 이건 찌라시라고 덮어 버릴 수 있지만, 증거사진 유출을 막기 위해 은밀하게 뒷거래까지 했다? 이건 안 좋지. 기사 깔리면 의혹이 진짜가 돼서 퍼지는 건 순식간이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했어. 실제로 조작사진이라는 게 밝혀졌어도 그때 성도원 청정 이미지에는 흠집이 남았으니까.”
“아…… 그럼 해명이 났어도 그 일이 성도원 씨한테 영향을 끼쳤나 보네요. 탑스타였다고 하셨으니까 인기가 오래갔으면 제가 알 텐데, 저는 그 이름이 낯설거든요.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야.”
전구가 켜지듯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데 뭐?”
“그게…….”
그래, 맞아.
연예인의 사생활 폭로성 기사에는 모두 큰 관심을 보이지만 해명기사에는 관심도가 뚝 떨어지지. 안 좋은 루머를 가진 연예인들은 언론 플레이를 해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하고 다니지만, 루머를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그렇게 흠집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거다.
그럼 이번 사건을 최선의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무조건 기사가 터지기 전에, 사건이 확대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말인데.
기사는 언제 터지는 거지?
며칠 후? 내일? 아니면… 설마 오늘?
“피곤하면 얼른 집에 가서 쉬어. 나도 일 있어서 간다.”
“실장님!”
나는 황급히 김현조를 붙잡았다.
“왜?”
“저, 성도원 씨 일이요.”
김현조가 주위를 살피고 말한다.
“뭘 들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못들은 걸로 해. 괜히 관심 두지 말고.”
“제가 좀 찜찜한 게 있어서요.”
“응?”
“레몬걸즈 매니저요. 퓨어스타 엔터, 성도원 씨 전 소속사에서 일하는….”
“저번에 그놈? 그놈이 왜. 또 만났어?”
변명거리로 써먹어서 그 사람한텐 미안하지만…… 아니, 생각해보니까 별로 미안하지는 않다. 넥스트 K스타 첫 녹화 때 찾아와서 시비 걸더니 그 이후에 방송국 주변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도 엄청 노려봤었지.
“그 사람이 저한테 시비 걸었을 때 꼭 두고 보자는 것처럼 말했는데, 넵튠 애들한테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어요. W&U에서 그딴 식으로 일 가르치냐, 상도덕도 없는 놈들, 한번 당해봐야 정신이 들지….”
“뭐? 그놈이 그랬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분명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낌새였어요.”
진짜 사기꾼은 90프로의 진실에 10프로의 거짓말을 섞는다고 들었다.
뭐, 시비 붙은 당사자가 그렇게 느꼈다는데 어쩔 거야. 내 머리를 열어서 확인할 거야?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지만,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우리만 알고 있을 건 아닌 거 같다. 따라와 봐.”
김현조 몰래 주먹을 한 번 불끈 쥐고 일어났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6층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앞으로 할 얘기를 정리했다.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간다.
스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 폭풍전야 (2) > 끝
ⓒ 장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