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드라마가 대박 날 드라마인가 (2) >
“시놉시스는 두 개 다 정말 재밌는데요.”
조실장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너 보는 눈 있네. 차라리 하나가 확 좋으면 그걸로 결정하면 되는데, 둘 다 비슷비슷하게 좋아서 고민이란 말이야.”
둘 다 비슷비슷하게 망할 텐데요.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러운데…….”
침을 꿀꺽 삼켰다.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을 빼면 나는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입이고, 저쪽은 오랫동안 드라마와 영화판을 누비며 경력을 쌓아온 전문가들이니까. 정말 조심스럽게 전달해야 한다.
좋아.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보자.
“두 작품 다 시놉시스는 정말 좋은데,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
“오빠. 이 사람 누군데?”
손채영이 내 말을 뚝 자르고 들어오며 조실장에게 묻는다.
“어?”
“걸리는 게 있다잖아.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인데 내가 작품 시작하기도 전에 초 치는 얘길 들어야 되냐고. 누구 매니저야?”
“넵튠 매니저야.”
“넵튠?”
손채영의 표정이 확 나빠진다.
“걔들은 배우가 아니라 가수잖아. 아이돌. 그리고 내가 걔들 매니저 얼굴 아는데, 이 사람 아닌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이라서 그래.”
“신입?!”
손채영이 팔짱을 끼며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는다.
“신입이 뭘 안다고 불러 앉혔어? 오빠 감 떨어졌어? 저 사람 지금 떠드는 것 좀 봐.”
“그게 사실은….”
입을 떼자마자 이번엔 조실장이 내 말을 가로막는다.
“얘가 입사하자마자 대박을 물어와서 지금 매니지먼트 3팀 복덩이라고 소문난 애야. 그래서 비기너스 럭이라는 게 진짜 있을까 싶어서 한번 물어본 거지. 다 너 잘되라고…….”
“됐으니까 내 작품에 초 치지 말고 꺼지라고 해. 짜증 나, 진짜.”
아…….
청순의 대명사가 먼지가 되어 흩어진다.
배우들의 이미지라는 게 만들어진 부분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볼 만큼 좋게 생각했던 배우한테서 꺼지라는 말을 듣는 건…… 좀 많이 충격적이다.
“야, 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조실장이 내 팔을 툭툭 친다.
“둘 중에 뭐가 잘 될 것 같은지 그것만 찍으라니까 왜 주제넘은 말은 하려고 해서 애를 짜증 나게 만들어?”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더 말해보려던 것을 접고 일어났다.
그냥 원하는 거 해라.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그거 찍고 말아먹든지 말든지.
꺼지라는 소리에 주제넘다는 말까지 들은 마당에 더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의리도 없다.
나는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회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커피를 포장해 회사 5층으로 올라갔다.
그동안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이미 쏟아진 물이지만, 내 능력이 사라지지 않은 한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길 테니까.
내가 말을 잘못 꺼낸 건가? 내 방법이 틀렸나? 그렇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련된 인테리어의 복도가 나타난다. 양쪽 벽에는 액자가 줄줄이 걸려있다. W&U에 소속된 연예인들의 화보 사진들이다.
맑은 미소를 띠는 손채영, 물속에서 물끄러미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성도원, 그 외의 W&U를 이루는 수많은 남녀 배우들.
넵튠의 액자도 있다. 이제는 얼굴이 익숙해진 네 명이 달라붙어서 웃고 있는 앨범 커버. 나는 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복도 끝에 있는 홍보팀 사무실로.
안을 들여다보자 파티션 사이로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나와 미래에서 칼국수를 함께 먹으며 얘기하던 두 사람. 여직원과 남직원이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다. 그 뒤에 뭐가 안 풀리는지 머리를 헝클고 있는 박팀장님도 있고.
나는 조용히 그들 옆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커피 좀 드세요.”
“어?! 뭐예요? 갑자기 웬 커피?”
“안 그래도 카페인 땡겼는데 이게 웬 떡이야?”
예상했던 대로 반응이 아주 뜨겁다.
“부탁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가져왔어요.”
박팀장이 자기 몫의 커피를 챙기며 내 등허리를 찌른다.
“좀 전에 손채영이 자기한테 한소리 했다며? 그것 때문에 온 거야?”
“그걸 어떻게…… 아, 여기 홍보팀이었죠.”
“그렇지.”
“일단 여기 앉아요.”
남직원이 의자 하나를 빼주고 나를 앉히더니, 위로하듯이 내 어깨를 주무른다.
“놀랐죠? 손채영이 아역배우 출신이잖아요.”
주위를 의식한 듯 목소리가 낮아진다.
“무명시절도 아예 없었고,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는 다들 오냐오냐하는 사람들뿐이었고. 그래서 성격이 좀 그래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고 자기 말이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여직원도 툴툴거리며 합세한다.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인지 두 직원이 말이 많아지자, 박팀장이 손을 저으면서 상황을 정리한다.
“그만 떠들어, 여기 회사야.”
내게도 당부한다.
“자기도 화난다고 어디 가서 손채영 인성 어쩌고 그런 얘기 하지 말고. 그래도 우리 배우니까.”
“네.”
그럴 생각 없다. 곧 드라마도 말아먹을 텐데.
그것보다 나는 다른 게 더 관심 있다.
“박팀장님. 혹시 시놉시스 하나 구할 수 있을까요?”
“응? 그게 부탁이야?”
“네.”
“어떤 작품인데? 제목이 뭐야?”
“제목은 모르겠는데 신인인 홍주미 작가님 작품이에요. 케이블 편성이구요.”
“케이블?”
박팀장이 희한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손채영한테 간 좋은 시놉들은 뭐가 걸린다고 했다더니, 케이블 시놉은 갑자기 왜 찾아?”
그게 국내에서도 대박을 치고, 중국에서는 초대박을 쳐서 주조연 모두 계 탔다고까지 표현한 드라마니까.
손채영한테 있는 건 빛 좋은 개살구고.
“먼저 좀 물어보자. 그 시놉들 어디가 걸렸어? 나도 봤는데 둘 다 좋던데.”
나는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숨 반, 목소리 반.
여기서는 중간에 꺼지란 소리는 안 듣겠지.
“시놉은 좋은데…… 타임슬립은 제가 작가랑 감독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좀 들었어요. 둘이 뭐 있다고.”
“뭐? 뭔데? 난 들은 게 없는데? 찌라시 도는 거 있어?”
박팀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묻자 두 직원이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한다. 작가, 감독, 이것저것 검색해봐도 당연히 나오는 건 없다.
그렇겠지. 촬영 중에 터졌다고 했으니까.
“누구한테 들은 거야?”
“그건 말씀드리기 어려운데 믿을 수 있는 정보예요. 그게 다음 작품에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럽더라구요.”
“그래. 그럼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는?”
“그 작품이 원작 팬들이 워낙 많고 극성이잖아요. 그 등쌀에 드라마가 방향을 잃을까 봐 걱정돼서요. 원작 팬들이 원하는 캐스팅이 워낙 확고해서, 손채영 씨 연기력은 제쳐놓고 무조건 캐릭터 싱크로율이 안 맞는다, 우리가 원하는 주인공 이미지가 아니다, 그렇게 욕먹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구요.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많았잖아요. 원작 팬들이 등 돌려서 캐스팅이 불발된 적도 있었고.”
박팀장과 직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줄줄 설명했다.
미래에서 다 보고 왔다는, 정신병자 취급받을 만한 이야기는 빼고.
박팀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웃는다.
“자기 걱정 사서 하는 스타일이구나?”
“제가요?”
“걱정은 할 수 있지. 정말 타임슬립 작감이 뭔가 있어서 작품에 영향을 끼치면 어떡하지,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원작 팬들이 들고일어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 순 없잖아. 타임슬립은 우리가 알아볼게. 그런데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 그건 대체 왜 걱정하고 있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내가 이러다 죽으면 사인은 답답사다.
정선우. 27세. 답답해서 죽다.
“원작 팬들이 많은 만큼 홍보 효과도 클 거고, 오히려 원작 팬들이 시청률 견인차가 될 수도 있잖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던 미용사는 이런 심정이었을까?
처음에는 한숨이 나왔지만, 마음을 비우고 생각해보니 박팀장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내가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지 못했다면,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 나도 똑같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넌 왜 해보기도 전에 안 된다는 걱정부터 해? 잘해 볼 생각을 해야지…… 라고.
나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는, 어쩌면 유일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내가 오히려 한계에 갇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 수는 없다.
어쨌든 아무도 원하지 않는 걱정은 그만두자.
나는 박팀장을 이해시키려는 생각을 버리고 그냥 폭탄을 던졌다.
“사실 타임슬립이랑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는 감이 안 좋았어요. 제가 감이 되게 잘 맞는 편이거든요.”
박팀장도, 두 직원도 배를 잡고 웃는다.
“하하하! 그럼 홍주미 작가 작품은 감이 좋아?”
“네. 엄청나게 좋아요. 그 작품 잘될 것 같아요.”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사람들이 아예 웃다 넘어간다. 그래, 마음껏 웃어라. 내가 기쁨조라도 됐다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시놉시스 꼭 읽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와, 오랜만에 진짜 크게 웃었네. 시놉이야 구할 수 있지. 외부유출만 조심하면 자기가 보는 것도 문제없고. 그런데 자기는 넵튠 매니저잖아. 그중에는 연기할 애가 없는데 그 시놉은 봐서 뭐에 쓰게?”
나도 고민 중이다.
그걸 어떻게 쓰면 좋을까?
*
W&U 대표실.
백한성 대표와 매니지먼트 사업본부장, 매니지먼트 2팀장. 그리고 손채영과 그녀의 매니저인 조실장이 시놉시스 두 개를 놓고 둘러앉아 있다.
W&U의 간판 배우 중 한 명, 손채영의 차기작을 최종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2팀장이 턱수염을 만지며 물었다.
“나는 타임슬립 형사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데. 채영이는 어때?”
“전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가 좋아요.”
“그래? 왜?”
“타임슬립은 IBC잖아요. 내년에 IBC 라인업 대작 많다면서요. 그럼 연기대상 후보들도 쟁쟁할 거 아니에요. 인어공주는 제가 원탑이고, PBS는 IBC보다 라인업이 약하니까 시청률만 높으면 대상도 기대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손채영의 말을 듣고 있던 백한성 대표가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가 상만 보고 작품을 고르면 어떡해.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신중하게 고른 거예요. 저 W&U랑 계약한 게 지금 몇 년짼데 아직도 연기대상을 못 받았잖아요. 내년엔 받아야죠.”
2팀장이 하하하 웃으며 손채영을 달랬다.
“그래, 받아야지. 우리 채영이 연기대상 한번 받을 때도 됐어. 이번 드라마는 분명 대박 터질 거니까 채영이 너는 걱정하지 말고 연기에만 집중해.”
커피를 마시며 고민하던 백한성 대표도 그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손채영이 말도 안 되는 시놉시스를 가져와서 억지를 부렸다면 강경하게 설득했겠지만, 뭍으로 나온 인어공주의 시놉시스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지금 돌아다니는 시놉시스 중에서는 타임슬립과 더불어 가장 좋은 편이다.
“알았다. 시놉은 두 개 다 괜찮고 어떤 작품을 선택해도 장단점은 있으니까, 니가 더 하고 싶은 걸로 해. 후회 없게.”
“네. 병환 오빠, 인어공주 쪽에 연락해서 내가 도장 찍는다고 해.”
“그래. 계약조건은 니가 원하는 대로 다 맞춰놓을게.”
간섭없이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앉아있던 본부장이 말했다.
“잘됐네. 홍보팀 박팀장이 타임슬립 작감이 뭐 있을지도 모른다고 급하게 알아보고 있다고 하던데. 3팀 복덩이가 얘기해줬다고. 진짠지 아닌지는 몰라도 좀 걸렸는데 인어공주로 결정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되겠다.”
기분 좋게 일어나던 손채영이 정색을 했다.
“누구요?”
“3팀 복덩이. 넵튠 매니전데, 왜? 알아?”
조실장이 손채영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아까 라운지에서 봤어요. 걔한테 운이 좀 따르는 것 같아서 시놉 보여주고 뭐가 잘 될 것 같냐고 찍어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글쎄, 두 개 보고 나더니 대뜸 시놉은 좋은데 뭐가 걸린다는 거예요.”
“아이구야, 너랑 채영이 앞에서 그랬어? 그거 맹랑한 놈이네.”
“그렇다니까요. 걔 좀 문제 있어요.”
“그런데 뭐가 걸린데?”
“네? 그, 글쎄요. 그것까진 안 물어봐서…….”
조실장이 당황하며 말끝을 흐렸다.
“물어보지 그랬어. 궁금하네.”
“본부장님. 그 얘기 꺼내지 마세요. 안 그래도 찝찝한데.”
손채영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손채영의 기분을 살피던 2팀장이 들으란 듯이 호통을 쳤다.
“막 일 시작한 햇병아리가 주위에서 복덩이 복덩이 해주니까 이젠 회사가 만만한가 보네. 그 새끼 위에 실장이 누구야? 내가 한마디 해야겠다.”
“그…….”
“됐어, 됐어.”
조실장이 대답하려고 하자 본부장이 손을 저으며 말린다.
“애 잡지 말고 일단 내버려둬 봐. 지금 그 팀에서는 일 잘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 놈이 나중에 대형사고 쳐요.”
“문제 일으키면 그땐 내가 처리할게. 자, 이만 일어나자.”
상황을 진정시킨 본부장이 먼저 엉덩이를 들었다.
손채영과 조실장, 2팀장이 줄줄이 대표실을 빠져나가고 본부장까지 문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백한성 대표의 목소리가 본부장을 붙잡았다.
“그 신입. 이름이 뭐라고 했지?”
“네?”
“그 3팀 복덩이라는 신입.”
“걔 이름 뭐더라? 정…… 아, 정선우요.”
“정선우…….”
백한성 대표가 그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 어떤 드라마가 대박 날 드라마인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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