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9화 (19/218)

<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2) >

과로로 쓰러져서 입원하는 거나, 맞고 어디 부러져서 입원하는 거나 그게 그거잖아. 오히려 맞아서 입원하면 눈치 안 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으니까 더 좋을 것 같은데. 위자료도 받고.

“시발, 너 이딴 식으로 해서 앞으로 계속 일할 수 있을 거 같아?!”

“어.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속 시원하긴 한데, 내가 한 말은 아니다.

뒤를 돌아보니 김현조가 다가오고 있다.

“걔는 앞으로도 멀쩡히 일 잘 할 거니까 니 앞길이나 챙겨. 니가 관리를 좆같이 해서 어그러진 일을 왜 쟤한테 와서 따지고 있어? 쟤가 레몬걸즈 사고친 애한테 일부러 술 먹이고 경찰 불렀어?”

“아니…… 시발, 그래도 솔직히 너무하잖아요.”

“이거 웃기는 놈이네. 뭐가 너무해? 눈앞에 기회가 있는데 놓쳐? 그럼 그놈이 병신인 거지. 일 잘하고 있는 애한테 시비 걸지 말고 가, 임마.”

와……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박력이 나오지?

김현조의 덩치는 레몬걸즈 매니저의 딱 반이다. 한 대 맞으면 전신골절로 실려가게 될 것 같은데, 그런데도 오히려 레몬걸즈 매니저가 김현조의 기세에 눌린다.

레몬걸즈 매니저는 화를 못 참아 씩씩거리면서도 진짜 주먹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기자 운운했던 게 먹힌 건가?

아무튼, 우리는 다시 인터뷰룸으로 돌아갔다. 뒤에서는 여전히 레몬걸즈 매니저가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나…… 이대로 안 끝날 것 같은 느낌인데.

“뒤통수 뚫리겠네요.”

“무시해.”

“혹시 집에 가는 길에 덮치고 그러진 않겠죠?”

“걱정하지 마. 너 어차피 요즘 집에 잘 안 가잖아.”

고오맙다.

“그런데 너 싸움 잘하냐?”

김현조가 불쑥 묻는다.

“아니면 운동했어? 격투기 같은 거?”

“아니요. 전 운동이랑은 별로 안 친해요.”

“그럼 집이 엄청나게 부자야? 너 한 대 치면 변호사 열 명쯤 몰려오냐?”

“네? 전혀 아닌데요.”

“근데 뭘 믿고 쟤 성질을 긁고 있냐? 덩치도 멧돼지만 하던데.”

“그렇다고 당하고만 있을수는 없잖아요. 쪽팔리게.”

“생각보다 배짱 있네. 그래도 앞으로는 상대를 봐 가면서 뻗대. 쪽팔린 거 따지다가 진짜 어디 부러지지 말고.”

한참 동안 잔소리를 하더니 덧붙인다.

“너 입원하면 안 된다. 우리 바쁜 거 알지?”

“네…… 알죠.”

조금 전까지 이미지 참 좋았는데. 역시 악마야.

뒤를 한 번 힐끔 본 김현조가 계속 말한다.

“특히 방금 걔랑은 엮이지 마. 질이 안 좋아.”

“저도 들었어요. 소문 안 좋다고…….”

“쟤만 그런 게 아니라 재 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그래. 퓨어스타 엔터 자체가 지저분한 소문이 많은 회사야. 괜히 부딪치면 더러운 일만 생기니까 아예 안 엮이는 게 좋아.”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멈칫했다.

퓨어스타 엔터?

“방금 그 매니저가 퓨어스타 엔터 소속이에요?”

“어. 몰랐어? 레몬걸즈가 퓨어스타 애들이잖아.”

“성도원씨 전 소속사였던, 그 퓨어스타 엔터요?”

“맞아. 성도원도 그 회사에서 너무 시달려서 계약기간 끝나자마자 나온 거야. 그때까지 성도원이 퓨어스타를 먹여 살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거기서는 재계약하자고 매달렸다는데…… 그래서 우리 회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좀 있었지.”

뭐야, 이거?

예상도 못 한 데서 선이 이어지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앞이 깜깜해졌다.

드디어!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만세삼창을 불렀을 거다.

이젠 눈 감고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미래의 사무실. 이십 년쯤 후의 내 사무실이다.

지난번에 성도원과 마주 앉아있는 미래를 봤을 때는 노이즈가 가득해서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깨끗하다. 상황도 익숙하다. 나는 여전히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고, 앞에는 박국장과 송기자가 나를 보고 있고.

와, 박국장…… 이렇게 다시 보니까 박우정 기자가 확실하다.

나이를 먹고 스타일이 변했지만 이목구비가 똑같다. 그런데 신기한 게, 분명히 얼굴은 박우정 기자 그대로인데 분위기는 딴 사람 같다.

연륜 때문인가?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구나.

“그런데 대표님은 원래 배우를 담당하길 원하셨잖아요.”

송기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내용은 물론 목소리와 표정까지, 내가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걸 최대한 집중해서 살폈다.

“넵튠 일을 맡으셨을 때, 배우팀으로 가고 싶다고 요청하진 않으셨어요?”

“그때는 그런 요청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제가 입사한 후에 배우팀에 대형사고가 하나 터졌었거든요.”

조금만, 조금만 더 자세히…….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귀를 기울였다.

“사건이요?”

“성도원 섹스스캔들이요.”

그렇지!

성도원 이름이 나오자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성도원 연기자 인생이 끝날 뻔한 게 섹스스캔들 때문이었구나!

잠깐, 그런데 저게 연기자 인생까지 왔다 갔다 할 정도의 사건인가? 마약이나 도박을 했다든가, 술 먹고 음주운전을 했다면 이해하겠는데, 섹스는 범죄가 아니잖아. 팬들이 좀 떨어져 나갈 정도의 해프닝이지.

그 얼굴에, 그 몸에, 돈도 많은 사람이 금욕하고 살면 그게 비정상 아냐?

보통의 섹스스캔들이 아닌가? 혹시 동영상이 유포되나?

“아, 그거 진짜 난리 났었죠.”

박국장이 불쑥 끼어든다.

“잘나가는 이십 대 한류스타가, 그것도 열애설 한 번 없던 청정 스타가 변태적인 섹스파티를 벌였다. 그중에는 유부녀도 있었다… 이런 폭탄이 터졌으니까. 당시엔 정말 어마어마한 스캔들이었죠.”

맙소사.

“그 유부녀가 성도원이 신인이었을 때부터 스폰서 해 준 모 기업 사모님이라더라, 성도원이 변태성욕자에 섹스중독이라더라, 사실인지 루먼지 구분도 안 되는 기사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확대 재생산돼서 쏟아져 나오고. 뭐, 저도 그때는 그거 가지고 기사 엄청나게 썼으니까 할 말이 없지만요.”

“그럼 박국장님도 역풍 맞으셨겠네요.”

미래의 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휴우…… 전쟁이었어요.”

역풍은 뭐고, 전쟁은 또 뭐야?

답답해서 피가 거꾸로 솟을 뻔했는데 다행히 송기자가 대신 묻는다.

“역풍이라니요?”

“그 스캔들이 말이야. 어떤 익명의 남자가 한 언론사를 통해서 W&U랑 성도원한테 거액을 요구하면서 시작됐거든. 유부녀와의 불륜, 변태 섹스, 언론이 환장하고 달려들 얘깃거리였으니까 조용히 덮고 싶으면 돈 달라고.”

“아…….”

“그 남자가 사진을 갖고 있었어.”

사진?

“사진이요?”

“증거사진. 그래서 W&U에서는 그 남자한테 돈을 주고 입을 막았는데, 결국에 기사가 터진 거야. W&U에서 돈거래로 덮었다, 증거사진도 있었다는 얘기까지 전부. 그래서 성도원 이미지가 순식간에 바닥을 쳤단 말이야.”

“하긴 이십 년 전에 그런 스캔들이면 타격이 컸겠네요.”

“그랬지.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상황이 확 뒤집혔어.”

“네?”

“역풍이 불었다고.”

“정선우!”

정신이 번쩍 든다.

몇 걸음 앞에서 김현조가 나를 부르고 있다.

이게 뭐야? 끝난 거야?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진짜 이렇게 끝난 거야?

막장드라마도 다음 편이 언제 방송 되는지는 아는데, 이건 언제 또 보일지 예측도 안 되잖아.

답답해 죽으라는 거야?!

“안 와?”

“……죄송합니다. 잠깐 현기증이 나서요.”

“뭐? 괜찮아?”

“네. 조금만 있다가 들어갈게요.”

“그래. 쉬다가 괜찮아지면 들어와.”

나는 멍한 표정으로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한참 동안 스튜디오 앞을 서성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미래 예지 능력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머지않아 성도원이 최악의 섹스스캔들에 휘말린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지. 그리고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다시 뒤집힌다는 것도 알고.

역풍이 불었다는 건 다른 정황이 드러났다는 뜻일 텐데, 성도원의 섹스스캔들을 뒤집을 만한 뭔가가 있다는 거겠지.

그리고 W&U와 성도원에게 거래를 요구한 익명의 남자…….

왜 자꾸 퓨어스타 엔터가 찜찜하지?

분명 성도원이 ‘그쪽 수작에 말려들어서’라고 했단 말이야.

심증뿐이지만 한 번 생각해보자.

성도원이 퓨어스타 엔터를 먹여 살리다시피 했다면, 재계약을 안 하고 나온 걸로 그쪽은 아주 기분이 나빴겠지. 성도원이랑 W&U를 상대로 이를 갈던 중에 소속 걸그룹인 레몬걸즈가 사고를 쳐서 큰 기회를 날렸어.

그런데 하필이면 그걸 W&U 소속인 넵튠이 바로 주워 먹었고, 퓨어스타 엔터는 기분이 더 나빠졌겠지.

그래서 엿 먹어보라는 심정으로 성도원한테 수작을…….

그럴 듯한데?

성도원은 신인 때부터 쭉 퓨어스타 소속이었으니까 그쪽 사람들은 성도원의 사생활, 좀 더 깊숙한 성생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성도원의 섹스스캔들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몰래 약점이 될만 한 사진 한 장쯤 찍어놨을수도 있고.

익명으로 접근한 건 W&U에게 대놓고 싸움을 걸기가 좀 그래서?

아니면 성도원이 혼자서는 안 죽는다는 식으로 나올까 봐 걱정돼서?

돈 주고 입막음 한 것까지 언론에 까발려졌다고 했지. 이런 뒷공작이 이미지에는 더 안 좋으니까 W&U랑 성도원은 얼굴에 먹칠하는 거고, 퓨어스타는 손해보는 거 없이 익명 뒤에 숨어서 마음껏 즐기면 되고.

뭐,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2)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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