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5화 (15/218)

< 시작은 예능, 넥스트 K-스타 (5) >

김종훈 매니저는 떠버리 스타일이었다. 입이 쉬지를 않는다. 거의 한 시간째 매니저 7년차의 고충을 떠들고 있다.

너무 허리를 굽실거리고 다녀서 일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디스크가 생겼다거나, 주량이 소주 다섯 잔이었는데 매일 밤 연예부 기자에 피디들이랑 술을 퍼마시다 보니 지금은 다섯 병으로 늘었다거나. 그런 얘기들을 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처음에는 열심히 추임새도 넣었지만 이제 지친다.

“정말요? 저희도…….”

반면에 배신자는 시종일관 웃으면서 맞장구를 치고 있다.

둘 중 하나다. 정말 저 얘기가 재밌거나, 사회생활을 엄청나게 잘하는 놈이거나. 당연히 후자겠지. 정상이라면 저 얘기가 재밌을 리가 없어.

“선우야.”

“어?”

배신자가 손목시계를 본다.

“슬슬 애들 밥 먹여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가서 사올게.”

벌떡 일어났다. 배신자가 카드를 넘겨준다.

“아침에 실장님한테 받았어. 쓰고 나서 영수증 꼭 받으래.”

“알았어, 갖다 올게.”

코트를 들고 막 나가려는 참에 붙들렸다.

“야, 가는 김에 우리 것도 좀 사와. 자.”

김종훈 매니저가 만원을 꺼내 내민다. 털이 숭숭 난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만 원짜리가 까딱까딱 흔들린다.

저 손가락을 확…… 더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뭐 사올까요?”

“음료수나 과자 같은 거 있잖아. 아, 종훈이 형 감자칩 좋아해.”

표정관리, 표정관리.

코트 단추를 꽁꽁 채우고 샵 밖으로 나왔다. 춥긴 해도 이제 좀 살것 같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몇 발짝 걷는데 샵의 문이 다시 열린다.

“저도 같이 가요.”

이송하다. 급하게 쫓아 나왔는지 겉옷도 안 입고 있다.

“왜? 편의점에 볼일 있어?”

“제가 먹을 건 직접 고르려고요.”

“그래. 근데 얼마나 급했길래 옷도 안 입고 나왔어?”

“아…… 추울까요?”

“당연히 춥지. 그렇게 가면 뼈에 바람 들어. 기다릴 테니까 옷 입고 나와.”

잠시 후 점퍼에 파묻힌 이송하가 다시 나왔다.

우린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래도 걷다보면 가끔씩 옷이 스치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옆을 보게 된다. 무릎반사라니까.

오늘은 인터뷰 촬영이라서 그런지 어제 한 무대화장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예쁘다. 피부는 맑고 촉촉해 보이고, 길고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사라락 흩날린다.

샵 입구에서 편의점으로 가는 몇 분 동안 이송하에게 행인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몇 미터 앞에서 이송하를 본 사람들은 일단 발걸음이 느려진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처언처어언히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감탄한다. 지나친 후에도 꼭 다시 한 번 돌아본다.

걸그룹 멤버인 이송하를 알아본 게 아니다. 그냥 얘가 너무 예쁜 거다.

덩달아 나까지 얼굴이 따갑다. 나한테 생긴 초능력은 미래 예지지만 지금이라면 독심술도 하겠다. 뭐 나랑 이송하가 무슨 사인지 궁금해 하고 있겠지.

친구, 남매, 친척,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다 나오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설마 애인은 아니겠지?’라는 질문을 던질 거고. 나와 이송하 사이에 흐르는 서먹함이나, 나란히 걸으면서도 어깨가 맞닿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을 보고 흡족해하고 있을 거다.

근데 이렇게 시선을 끌고 다니면 얘도 참 피곤하겠다. 괜찮나?

옆을 봤더니 이송하는 태연히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멘탈이 강한 걸까 둔한 걸까. 임서영처럼 기사를 찾아보나 했는데 아니다.

통화기록이나 문자, 톡 대화창…… 누구 연락을 기다리나?

딸랑.

“어서 오세요!”

편의점에 들어가자 알바생이 친절하게 인사한다.

이송하한테.

입구에 있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편의점을 돌았다. 내가 하나를 골라 담을 때마다 이송하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두 개, 세 개씩 들고 와 담는다. 벌써 바구니가 묵직하다.

임서영이 먹을 저칼로리 푸딩까지 담고 계산대로 가는데 옆이 허전하다. 이송하가 안 보인다. 얘가 또 어딜 갔나…… 둘러보니 벌써 계산대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 아니, 계산대 옆에서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뜨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게 보이는 꼬치 어묵이다. 요즘 편의점엔 별게 다 들어오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건데. 얘가 먹는 걸 좋아하더니 먹을 복도 있나.

“어묵 하나 먹고 갈래?”

“두 개 먹어도 돼요?”

“너 먹고 싶은 만큼 먹어.”

내 돈도 아닌데 뭐.

“이거 꼬치 어묵 먹을게요. 계산 먼저 해야 돼요?”

알바생에게 물었더니 질문한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이송하에게 설명한다.

적당히 해, 이 자식아.

“먼저 드시고 나중에 한꺼번에 계산하시면 돼요.”

“네.”

“저기…… 그런데 혹시 연예인이세요?”

“네. 넵튠 이송하예요.”

“와, 우와, 어쩐지! 이따가 사진 한 장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 돼요? 팬 할게요.”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혹시 두 장…….”

먹다 체하겠네.

“이것들 먼저 계산해주세요.”

잘 먹는 애 옆에 붙어서 귀찮게 하길래 묵직한 바구니를 내밀었다. 알바생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바코드를 찍는다.

이송하는 선 자리에서 어묵을 일곱 개나 먹었다. 엄청 복스럽게 먹어서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래서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구나…… 그렇게 맛있나 궁금해서 나도 세 개나 먹었다. 그냥 보통 어묵 맛인데.

어쨌든 이송하가 추천해서 어묵도 한 그릇 포장했다. 짐이 산더미다.

사진 찍어달라고 핸드폰을 내밀길래 내가 직접 찍어줬다. 호들갑을 떨면서 핸드폰을 확인한 알바생의 표정이 굳어진다.

너 임마 뭘 기대한 건데. 니가 오징어처럼 나온 건 내 탓이 아냐.

샵으로 돌아가는 길도 아까랑 똑같다. 우리는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석처럼 끌어 모으고 있다. 이송하는 감탄의 시선을, 나는 호기심과 부러움, 그리고 질투의 시선을.

아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이송하와 내 어깨가 조금씩 부딪치고 있다는 거다. 둘이 같이 어묵을 먹어서 그런가. 서먹서먹한 거리감이 좀 줄어든 것 같다. 아주 조금. 반걸음 정도?

걸어가는 중에 이송하가 또 핸드폰을 확인한다. 통화기록. 문자. 톡…… 아까는 별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홍보팀 박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애들이 연애하는 건 아닌지 잘 살펴보라던.

혹시…….

“누구 연락 기다려?”

“엄마 아빠요.”

아니구나.

“감사합니다.”

이송하가 느닷없이 인사한다.

“뭐가?”

설마 어묵 사준 거?

“아까 그거 내 돈으로 산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K스타 잡아주신 거요. 실장님한테 들었어요.”

아, 그거.

티만 안 냈지 K스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당연한 건데 뭘. 그게 내 일이잖아.”

나는 내 목소리나 표정에 뿌듯한 티가 안 나도록 애썼지만, 실패한 것 같다. 내 일이잖아? 내 일이잖아? 출근한 지 이틀 된 신입사원이 자랑스럽게 할 말이야? 게다가 쟤는 사회인으로서는 나보다 선배잖아.

“오빠 덕분에 저도 일하겠네요.”

“응?”

“그동안 엄청 일하고 싶었는데…….”

“넌 계속 일하고 있었잖아.”

“지금까지는 일하는 날보다 일 없는 날이 훨씬 더 많았는데, 앞으로는 고정 스케줄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좋아요. 넥스트 K스타 안 망하고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 엄청 잘 될 거야.”

시청률 대박 나서 시즌제로 쭉쭉 이어질 테니까.

“정말이요?”

“어. 내가 감이 되게 좋거든.”

정확히 말하면 좋아질 예정인 거지만.

미래 예지능력 생각을 하니 갑자기 이송하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누가 봐도 얘는 연예인을 해야 할 것 같은 앤데.

과연 이십년 쯤 후의 미래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넵튠이 운이 좋아 장수한다고 해도 그때는 은퇴했을 거고.

지난날 한 시대를 이끌었던 걸그룹 멤버들이 지금은 뭘 하고 있더라.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돼서 육아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 뮤지컬 배우나 솔로 가수로 계속 활동하는 사람. 연기자로 전향한 사람…… 이송하는 어떤 라인을 타게 될까?

궁금하지만 능력이 도와주질 않으니 알 수가 없다.

“그럼 저희 몇 등 할까요?”

“걸그룹은 시청자 투표에서 화력이 딸리니까 상위권은 힘들 거라던데… 근데 순위가 뭐 중요해?”

“순위가 안 중요해요?”

“높으면 당연히 좋지만…….”

인지도가 바닥인 넵튠의 경우에는 이 프로그램으로 이름만 알려도 대성공이니까. 운이 좋으면 묻혔던 지난 앨범이 다시 발굴될지도 모르고.

음원차트 역주행까지는 너무 지나친 욕심이고, 이런 노래를 부른 넵튠이라는 걸그룹, 이렇게 인식만 되어도 어디야.

만약 네 명 중에 누군가가 시청자들 입맛에 맞아서 빵 뜨기라도 하면 정말 로또 터지는 거고.

“그것보다 다른 팀 멤버들이랑 계속 부대끼면서 방송하는 거. 그게 더 걱정이겠던데.”

“그게 왜요?”

“힘들지 않겠어? 신경전이나 눈치나 그런 거…… 지난번에 서영이도 그랬잖아. 다른 팀엔 성격 나쁜 애들 많아서, 네가 다른 팀이었으면 울다가 못 버티고 그만뒀을 거라고.”

아니 뭐, 다른 애도 아니고 얘가 그런 일로 우는 모습은 상상이 안 가긴 하지만…… 그래도 어제 임서영이랑 슈가캣 일도 그렇고. 그거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던데.

아참, 뒤늦게 안 사실인데 슈가캣도 넥스트 K스타에 참가하는 걸그룹이었다. 현장에서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닌지 불안불안하다.

“오빠 조카가 넷이라고 하셨죠?”

“맞아.”

“저도 그래요. 언니 둘에 여동생 하나, 저까지 넷인데 다 연년생이에요.”

그 집도 부모님이 고생 좀 하셨겠다.

“거기서 버텼는데 어디 가서 못 버티겠어요.”

그건 동감. 내 조카들도 전투력 만렙이라 밖에서 맞고 오는 일이 없지.

“집에서도 넷, 숙소에서도 넷이네. 숙소 생활하는 건 적응 잘했겠다.”

“집에 비하면 숙소는 천국이에요.”

“그 정도야?”

“숙소에서는 제 아이스크림에 이름 써 놓으면 아무도 안 먹잖아요.”

이송하와 제대로 된 첫 대화는 기승전먹는 얘기로 끝났다.

< 시작은 예능, 넥스트 K-스타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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