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매니지먼트-10화 (10/218)

< 꿈이 아니라 미래 예지 (3) >

“여보세요?!”

김현조가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나도 작게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 후우우, 현조냐?

3팀장이다.

“형! 지금까지 뭐한 거야? 술 마시고 길에서 뻗은 줄 알았잖아!”

-야야, 지금 끝났어. 나도 죽겠다. 젊지도 않은 양반들이 술을 무슨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들이붓더라. 간이 나보다 더 쌩쌩해.

“일은? 일은 어떻게 됐어?”

침 삼키는 소리가 난다. 난가?

-하기로 했어.

“……진짜야?!”

-내일… 오늘이지. 바로 기사 나갈 거야.

무릎 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안 그랬으면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길래 이렇게 바로 성사가 된 거지?

-대표님이 엄청 밀어줬어. 그리고 운도 좋았고. 제작진이 섭외 마지막에 떨어뜨린 걸그룹이 있었는데, 걔들이 그새 해외 스케줄을 잡아버렸더라고. 거기 이사가 여기까지 찾아오고 난리였다. 타이밍이 조금만 안 맞았어도 뺏기는 거였어. 걔 누구냐, 이거 잡아온 복덩이. 걔가 진짜 큰일 했다.

“진짜 확정된 거라고?”

-아직 도장만 안 찍었지 확정이라고 보면 돼.

“하하하! 애들 엄청 좋아하겠다.”

-그래, 그동안 애들도 마음고생 많았을 텐데 좋은 소식 얼른 전해주고. 기회는 잡았는데 그걸 살리느냐 날리느냐는 이제 니들 손에 달린 거다.

“알지.”

-잘 해라. 잘 해.

김현조는 한동안 3팀장과 더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만지다가 내게 건넨다.

“자. 받아요.”

“예?”

엉겁결에 핸드폰을 받아보자 이태희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

이걸 왜 나한테?

“선우 씨가 잡아온 일이니까 직접 얘기해 줘요. 기사 뜨기 전에.”

신호가 끊어지고,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 생겼어? 오늘은 스케줄 없잖아.

이태희다.

“큼, 나 정선운데, 말해줄 게 있어서.”

고개를 들어보니 김현조와 배신자가 기대하는 얼굴로 보고 있다. 김현조가 얼른 말하라는 듯 손짓을 한다.

“Knet에서 새로 시작하는 넥스트 K스타라는 프로그램. 혹시 알아?”

-네. 알아요.

“그거 넵튠이 출연하게 됐어.”

-……네?

“Knet에서….”

-아니, 제대로 듣긴 들었는데… 정말이에요? 그거 섭외 다 끝나고 포스터 촬영까지 한 걸로 아는데…….

“정말이야. 걸그룹 한 팀이 빠지게 돼서 넵튠이 대신 들어가기로 했어. 실장님이 기사 나가기 전에 말해주라고…….”

전화기 너머가 소란스러워진다. 이태희가 멤버들을 다 깨워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같다. 꺅꺅대는 비명이 들린다. 이건 임서영이고.

“잠깐 줘 봐요.”

김현조가 손을 뻗어 핸드폰의 녹음버튼을 누른다.

시끌시끌한 여자아이들의 말소리. 울먹임, 흥분한 비명. 다양한 소리가 녹음된다. 영상통화도 아닌데 저쪽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녹음은 왜…?”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와중에 나중을 생각하다니. 배워야지.

울먹이면서 진짜냐고 묻는 임서영에게 진짜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주고 김현조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그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선우 씨, 기분이 어때요?”

어떠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넵튠 멤버들이 기뻐하고 울먹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순간의 기분은…….

“뿌듯하고… 뭔가, 되게 흐뭇하네요.”

“신인을 키우는 건 그래요. 애들 고정프로 늘어가는 맛. 점점 알아보는 사람들이나 팬이 많아지고, 인기가 올라가고. 그걸 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쾌감. 그거 중독되면 이 일 못 그만둬요.”

“아…….”

“이제 우리도 일어날까요? 쉬어야 또 일하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났다.

김현조가 계산을 하는 동안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밤바람도 그렇게 춥지 않다. 딸랑, 종소리가 들리고 김현조가 문을 열고 나온다.

그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또다.

나는 또 미래의 사무실에 와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눈과 귀에 집중했다. 지금 여기서 보고 듣는 것들이 앞으로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데, 작은 거 하나라도 허투루 볼 수 없다.

“넥스트 K스타로 처음 방송을 시작하셨고,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의 대표님이 되셨는데요.”

“하하. 아직 갈 길이 더 멀죠.”

“넵튠, 그리고 넥스트 K스타와 함께한 첫 경험이 대표님의 행보에 영향을 끼쳤나요?”

송기자가 묻는다. 미래의 나는 고민하고 있다. 한참 내 목 아래의 몸만 보인다.

“그렇죠. 그때 중독됐으니까요.”

“중독이요……?”

“제 손으로 누군가를 키워내는 쾌감에요. 그때가 워낙에 땅 파던 시기라 제가 직접 한 건 별로 없었는데도 그랬어요. 넵튠이 거의 무명이었는데, 넥스트 K스타를 하면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거든요. 욕도 먹었지만…….”

뭐?

“그건 지금 생각하면 지나가는 소나기 같은 거였으니까.”

뭐 때문에 욕을 먹었는지, 그 이야길 좀 더 자세히 해 주길 바랐는데 화제가 금방 넘어가버린다. 젠장.

“그리고 그 다음 앨범이 정말 잘돼서 음악방송 1위까지 했었죠. 그런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꼈던 쾌감이 정말 컸어요. 그때 그걸 맛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모르죠”

좋아. 넵튠 다음 앨범이 잘되는구나. 욕먹었다는 부분은 걱정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나보다.

“저도 그때 그 곡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잠자코 듣고 있던 박국장이 이야기를 보탠다.

“넵튠의 첫 히트곡이기도 하고, 지금도 넵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이예요.”

“좋은 곡이었나봐요?”

“안 들어봤어? 아… 송기자한테는 옛날 노래지. 곡이 정말 좋았어. 넵튠하고도 잘 어울렸고. 그립네.”

“그럼 들으면서 할까요? 저도 오랜만인데.”

미래의 내가 말하자 갑자기 선명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선우 씨, 취했어요?”

음악에 빠져있다가 화들짝 깨어났다.

“바닥을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요? 토할 거 같아요?”

김현조가 내 등을 두드린다.

“술이 약한가 보네.”

“아뇨, 안 취했어요. 생각 좀 하느라고…….”

재빨리 내 멀쩡한 눈을 보여줬다.

“다행이네요, 앞으로 술 마실 일 많을 거예요.”

“네. 괜찮습니다.”

“어쨌든 둘 다 오늘 고생했어요.”

“실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나와 배신자가 택시를 잡았다. 김현조가 가장 먼저 택시에 타며 말했다.

“지금이 5시니까 들어가서 푹 쉬고. 아침 맛있는 거 먹고. 8시까지 출근해요.”

잘못 들었나?

“몇 시까지요?”

“8시요. 우리도 보도자료 내고 준비하려면 홍보팀하고 미팅해야죠.”

“아…….”

“고정 생겼으니까 내일부턴 훨씬 더 바빠질 거예요. 그래도 둘 다 일이 익숙해지면 서로 나누고 도와가면서 하면 되니까 너무 겁먹지는 마세요. 하하하.”

악마다. 악마가 여기 있다.

“그럼 내일 봐요. 잠수 타지 말고.”

김현조가 웃는 얼굴로 사라진다. 나와 배신자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만약 배신자가 겉과 속이 다르고 내 뒤통수를 칠 것 같은 놈이 아니었다면, 지금 아마 동지애가 훨씬 깊어졌겠지.

“조심해서 들어가라.”

“너도. 내일 보자.”

헤어져서 빈 택시를 탔다. 취객을 태우고 왔는지 누군가의 토사물 냄새가 난다. 창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마무리까지 완벽하네.

택시는 금방 내 원룸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영수증을 챙겼다. 회사에 청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비좁은 원룸 방으로 올라간다. 시간은 어느덧 아침 6시를 넘어가고 있다. 출근 시간은 8시. 30분 정도는 자도 괜찮겠지…….

그런데 막상 씻고 침대에 누우니 잠이 안 온다. 몸은 축축 늘어지는데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하다.

결국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 포털에 접속해서 잠시 고민했다. 뭐라고 검색해야 되나…… 그래.

[초능력이 생겼어요]

초능력자가 나오는 영화, 드라마와 관련된 글들이 쭉 뜨다가 드디어 내가 찾는 종류의 질문 글이 보인다. 초능력이 생겼다는 사람의 질문. 반신반의하며 읽어보니 나랑 비슷하다.

어느 날 꿈을 꾼 이후로 염력을 갖게 됐는데 이 능력으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할까, 아니면 계속 숨겨야 할까 고민이라는.

이거 설마 진짠가?

기대하며 살펴봤더니 질문 카테고리가 유머다. 젠장. 게다가 답변도 비웃음과 조롱, 그리고 병원을 소개시켜주는 것들뿐이다.

[미래가 보이는 능력]

[진짜 초능력자]

몇 개 더 검색해보다가 때려치웠다. 정신병 걸리겠다.

좁은 원룸 방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여긴 내 방이다. 나밖에 없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자, 그럼…….

어떻게 해야 그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사용설명서 같은 것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다. 물어보면 나도 정신과나 추천받겠지. 직접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일단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봤다. 내가 보았던 미래를 다시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미간을 찌푸리고 이상한 소리까지 튀어나올 정도로 집중했지만 뭔가 보일 것 같은 기미는 없다.

나는 수없이 시도하다가 중단했다. 이건 둘 중 하나다.

내가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못 찾고 헤매고 있거나, 그 능력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랜덤처럼 튀어나오는 거거나.

예지 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장 다음번 당첨 복권부터 확인하려고 했는데…….

메모장을 열고 잊어버리기 전에 미래에서 보고 들은 정보들을 기록했다.

먼 미래의 나는 매니지먼트 회사의 대표다. 그것도 상당히 성공한. 나를 인터뷰하러 온 박국장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 같았지. 송기자의 말에 의하면 나는 칠전팔기의 노력 끝에 메이저 매니지먼트사의 대표 자리까지 올라갔다.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느니 했던 걸로 봐선 쉽게 성공한 건 아닐 거고.

처음에는 원하던 배우 대신 넵튠을 담당하게 됐고. 넵튠이 넥스트 K스타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프로그램은 대박을 쳐서 시즌이 줄줄이 나오고.

넵튠은 넥스트 K스타를 찍으면서 욕도 먹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지도를 높였고. 그 다음 앨범이 빵 떠서 음방 1위를 달성했고.

넵튠과 내 인연이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한 걸 보면 앞으로도 넵튠과는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이어지는 것 같고…….

그리고 최건영은 내 뒤통수를 친 놈이고.

또 있나? 아, 하나 더. 미래의 내 왼손 약지에 반지가 없었던 걸 보면 나는 싱글이다. 마흔이 한참 넘도록 노총각이거나 아니면 돌싱이거나. 뭐가 더 안 좋은 건지 모르겠네.

세 번의 미래를 보고 정리한 정보는 이게 전부다.

그런데 잠깐…….

나는 현재를 바꿨다. 배신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대신 고준태 피디와 넵튠을 연결하고 오히려 내가 복덩이가 됐다.

혹시 미래가 바뀌는 거 아냐?

나비효과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을 기억해 보면,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을 불러온다. 어제 내가 한 짓이 그 날갯짓이었다면?

나 나중에 대표 못 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런데 첫 번째와 두 번째 미래를 보고 나서도 현재를 바꿨잖아. 미래에서는 김현조에게 첫인상을 안 좋게 찍혀서 고생문이 열렸다고 했지만, 난 네쌍둥이를 팔면서까지 바로 잡았다고. 배신자에게 뒤통수 맞고 뺏겼다고 했던 복덩이 타이틀도 내가 찾아왔고. 그렇게 현재를 바꿔나갔는데도 두 번째, 세 번째로 본 미래는 나비효과가 일어난 기미가 전혀 없었지.

그럼 평행세계…… 뭐 그런 건가?

내가 보는 미래와 내가 살아가는 현재는 이미 둘로 갈라져 나온 거지.

다시 인터넷에 평행세계를 검색했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뜬다. 나는 아예 각잡고 앉아서 읽었다.

그런데 부작용인지 얼마 안 가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정신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곧 출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인데.

출근 이틀째에 지각하는 신입사원이라니, 안 되지…….

안 돼…….

< 꿈이 아니라 미래 예지 (3) > 끝

ⓒ 장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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