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방송이라는 건 (1) >
“아침인데 방송국 앞에 사람들 되게 많네요.”
방송사 건물에 도착하자 뒷좌석에서 최건영이 고개를 내민다. 아까와 반대로 지금은 내가 조수석, 최건영이 뒤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옆자리에는 풀 메이크업을 한 엘제이가 다리를 꼬고 발을 까딱거리고 있다.
좀 억울하다.
“아… 거의 다 BYG 보러 온 거예요. 걔들 오늘 컴백이라서.”
“생방 저녁에 하는데 지금부터 기다리는 거예요?”
“BYG 걔들도 리허설 때문에 일찍 올 테니까. 출근하는 거 보고 사진 찍으려고 저러는 거죠.”
방송사 앞에는 캠코더나 커다란 카메라를 든 팬들이 우르르 모여 있다. 저런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대부분 성인이었다. 출근길인 것처럼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도 있다.
“트위터에 ‘누구누구 출근길 프리뷰’라고 도는 사진들 다 저런 찍덕들이 올리는 거예요.”
“찍덕이요?”
출근길 프리뷰는 뭐고 찍덕은 또 뭐야.
“사진 찍는 덕후요. 잘 찍는 애들은 기사 사진보다 퀄리티가 더 좋아요. 저렇게 찍어서 공유하는 애들도 있고, 포토북 만들어서 다른 팬들한테 파는 애들도 있고.”
승합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걸어가는 도중에 우리도 사진이 찍혔다. 혹시 펜스를 넘어와서 사인해 달라거나 악수해 달라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긴장했는데, 민망할 정도로 무반응이다.
쳐다보긴 하는데 누군지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는 애들이 없다. 오히려 넵튠 멤버들이 다른 그룹 팬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넵튠이에요!”
“넵튠입니다!”
넷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드니까 사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몇 명은 인사를 돌려주기도 한다.
“뭐 하고 있어요. 웃어요, 둘 다.”
김현조가 나랑 최건영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는 이미 환하게 웃고 있다.
“쟤들이 트위터에 오늘 넵튠이라는 걸그룹 봤는데 괜찮았다고 한 줄 언급해주는 게 웬만한 홍보기사보다 나으니까.”
나는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인사했다.
“아, 참. 그리고….”
로비로 들어가자마자 김현조가 당부한다.
“공방 보러 온 팬들 앞에서 욕하면 안 되요.”
“네?”
“아직 연예인 매니저는 양아치나 조폭들이 한다는 인식이 있어서 조심해야된다구요. 아예 논란거리를 만들지 마세요. 닿지도 말고. ‘오늘 넵튠인지 뭔지 하는 듣보잡 매니저가 나 밀쳤음. 재수 없어.’ 이런 후기 돌면 애들 이미지 나빠져요.”
“아…… 네.”
“인사도 계속 하세요.”
“네.”
“누구한테 인사해야 하는지 알아요?”
말문이 막힌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죠?”
“네. 모릅니다.”
“모르니까 마주치는 사람한테는 다 인사하세요. 특히 사원증 걸고 있는 사람들, 방송사 직원들 발견하면 토씨 하나 빼먹지 말고 이렇게 말해요. ‘안녕하세요, W&U 누구누굽니다. 지금 넵튠이라는 걸그룹 데리고 활동 중인데 잘 부탁드립니다.’ 쉽죠? 외워요.”
최건영은 벌써 중얼중얼 외우고 있다. 나도 대기실로 가는 동안 계속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W&U…… 안녕하세요, W&U…….
그게 재밌는지 뒤따라오던 임서영이 웃는다.
“정선우 오빠라고 하셨죠?”
정선우 오빠가 누구지? 아, 나구나.
“어.”
“정장을 입으셔서 오빠가 인사하면 다들 팀장님 급인 줄 알 걸요. 현조 오빠보다 더 높은 사람 같아요.”
“아… 그래요? 그래?”
“넥타이도 하지 그러셨어요.”
“넥타이는 가방에 있어.”
임서영이 더 크게 웃는다. 귀를 간질이는 것 같다. 멤버들한테 잔소리하는 것만 듣다가 이렇게 웃으며 말하는 걸 보니까 색다르다. 솜사탕 같은 목소리도, 반달모양으로 접히는 눈도 정말 귀여웠다.
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싶…… 흠흠.
K팝콘 대기실은 지하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벌써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눈으로 봐서는 누가 매니저고 누가 방송 스텝인지 모르겠다. 누가 가수고 누가 댄서인지도.
확실한 건 어딜 봐도 넵튠 멤버들, 특히 이송하보다 예쁜 애는 없다. 같은 팀으로 묶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우리 분장실 어디지?”
“저기 있네, 끝에서 두 번째.”
좁은 통로를 두고 양옆에 문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넵튠의 대기실은 오른쪽 복도 끝에서 두 번째였다. 문 앞에 넵튠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다.
방송국 대기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대하며 문을 열었는데…….
닭장이다. 내 원룸 방보다 작다.
잠깐만. 넵튠 멤버가 네 명, 매니저가 나까지 세 명, 이따가 스타일리스트들하고 메이크업 수정할 아티스트들도 온다는데 그때는 끼어 앉을 자리도 없겠다.
우리가 이 정도면 멤버가 열 몇 명씩 되는 그룹이나 백댄서 있는 그룹은 어떻게 하는 거야?
“어색하게 다른 팀이랑 같이 쓰는 것보단 좁아도 독방이 나아요. 그리고 나중에 지방 촬영이나 행사 잡히면 차 안에서 먹고 자고 할 때도 많은데, 그때 되면 이 대기실도 그리워질걸요.”
김현조가 하는 말에 임서영이 입술을 삐죽거린다.
“안 먹고 안 자도 되니까 지방 촬영이든 행사든 좀 잡혔으면 좋겠다.”
“조금만 참아, 금방 좋은 날 올 테니까. 너희는 뜰 거라니까.”
“진짜로?”
“진짜. 피곤할 텐데 잠깐 눈 좀 붙여.”
“선배들 다 도착하면 인사해야지.”
“그때 깨워 줄 테니까 자 둬.”
넵튠 멤버들은 겉옷이랑 담요를 덮고 서로서로 어깨와 머리에 기대 눈을 감는다. 풀 메이크업을 한 얼굴은 누가 봐도 연예인인데, 잠든 얼굴은 꼭 애들 같다. 하긴 애가 맞긴 하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은 애가 스물두 살이니까.
“두 사람도 멀뚱히 있지 말고 자리 잡고 쉬어요. 지금부터 본방 끝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하니까.”
의자 하나를 차지한 김현조가 눈을 감는다.
시계를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K팝콘 생방송은 저녁 7시. 열 시간이나 남았다. 이 창문도 없는 닭장에서 그 긴 시간을 뭘 하면서 보내지? 나도 눈 좀 붙일까? 아냐, 눈 감으면 다시 못 일어날 거 같은데…… 믿을 건 핸드폰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충전기나 보조배터리 좀 챙겨올걸.
애초에 방송은 7신데 왜 이렇게 일찍부터 부르는 거야?
“생방송 전까지 뭐 하는지 알아?”
최건영이 턱을 긁적이며 대답한다.
“글쎄… 나도 음방 온 적은 없어서 확실한 건 몰라.”
“블랙아웃은 음악방송 안 했어?”
“내가 알바 했을 때는 활동 끝나고 행사랑 사인회만 할 때였어. 내가 듣기로는 드라이 리허설하고 대기, 카메라 리허설하고 대기, 다른 팀 사전 녹화하는 동안 대기. 본방 무대 올라가고 1위 발표할 때까지 대기… 그럴걸?”
뭐야, 그건? 방치플레이도 아니고.
최건영이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춘다.
“급 높은 애들은 사이사이 뜨는 시간에 다른 스케줄도 한다는데, 우린 안 될 거야. 밥도 아마 대기실에서 먹어야 될걸.”
숨이 턱 막힌다. 아무리 생방송이라도 그렇지, 한 시간짜리 방송하는데 열 시간 동안 대기만 하고 있어야 한다고? 이거 너무 비효율적인 거 아닌가?
“그렇게 하면 출연료는 얼마 받는데?”
“모르지, 그건.”
작은 목소리로 물었는데 그걸 들었는지 김현조가 고개를 든다.
“10만 원 받아요.”
“네?”
“10만 원이요.”
“…그럼 합쳐서 40만 원이요?”
공중파는 아니어도 메이저 케이블 방송산데 생각보다 짜다. 미용실 값이 더 나오겠다.
“다 합쳐서 10만원이라구요. 나누면 인당 2만 5천 원.”
“…….”
처음엔 잘못들은 줄 알았다. 저 돈이면 하루 세끼 밥값 내면 끝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저녁 8시에 끝나는, 하루를 통으로 빼는 스케줄인데 수입은 인당 2만 5천 원이라고?
“인간적으로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여기서 누가 인간적인 걸 찾아요. 그리고 음방을 누가 돈 보고 해요. 손해 보는 거 감수하고 홍보 때문에 하는 거죠. 우리는 회사빨도 있고 블랙아웃이라는 비빌 언덕이라도 있으니까 피디가 이렇게 선심 써서 끼워주지, 컴백해도 음방 한번 못 나오는 애들 지천에 널렸어요.”
“아…….”
김현조가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몇 가지를 더 알려준다. 음악방송 출연료는 방송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말 많이 받아봐야 50만 원 선이라는 것. 멤버가 몇 명이든, 백댄서가 몇 명이든 받는 돈은 똑같다는 것.
헤어, 메이크업료도 그렇고 방송사마다 다른 무대의상을 요구해서 음방 출연에 투자하는 비용만 수백만 원씩 깨지는데, 그래도 신인들은 방송에서 노래를 들려주고 얼굴을 비추는 홍보 효과 때문에 줄을 서서 출연할 수밖에 없다는 것까지.
“이제 좀 쉬어둬요. 오늘 하루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나와 최건영을 충격에 빠뜨리고, 김현조는 모자로 얼굴을 덮어버린다.
곧 최건영도 눈을 감는다. 여기서 충격 받은 사람은 나뿐인가 보다.
인터넷 뉴스를 좀 검색해보니 현실은 김현조의 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행사로만 하루에 억 단위를 버는 탑급 아이돌이나, 매출액이 수백억대인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있는 반면, 돈이 없어서 음방에 입고나갈 무대의상을 직접 만들었다는 걸그룹도 있고, 사채까지 써가며 걸그룹을 데뷔시킨 영세 회사 대표도 있다.
이번 앨범도 망하면 한강 가야 한다는 구구절절한 인터뷰…… 이 대표 결국 망한 것 같은데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훗날 매니지먼트사의 대표를 꿈꾸는 입장으로서 마음이 심란하다. 다른건 몰라도 난 절대 사채는 쓰지 말아야지.
보던 기사창을 끄고 다시 넵튠을 검색했다. 아까 봤던 것들은 쭉쭉 넘기고 내가 못 본 연예기사나 웹페이지의 반응들을 탈탈 털었다.
기사들은 누가 봐도 회사에서 뿌린 홍보성 기사다. 일일이 댓글란을 확인했지만 달린 건 없다. 악플도 없다. 홍보성 기사를 빼면 넵튠의 이름은 음악방송이나 가뭄에 콩 나듯 출연한 케이블 예능의 출연자 명단에서밖에 안 보인다.
30분쯤 뒤져서 겨우 하나 건졌다. 자동차 커뮤니티 사이트의 자유게시판에 ‘얘들 예쁘네요. 누군가요?’라는 제목으로 멤버들 사진이 올라가 있다. 댓글도 달려있다.
-넵튠인가 냅킨인가 폭망한 걸그룹.
-비주얼은 요즘 나오는 애들 중에 탑급인데요? 인생 사진인가?
-보정 안 한 거면 인정.
보정 안 한 거면 인정? 인정 같은 소리 하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
이런 글을 보니까 안타깝다. 나라가 들썩거릴 만큼 대박이 터지는 건 천운이 있어야 한다고 치더라도 인지도는 좀 있어야지.
내가 넵튠의 제작자라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띄울 수 있을까?
노래나 컨셉은 지금도 크게 나쁘건 아니고. 무엇보다 다들 개성 있어 보이는데…… 하긴, 그런 부분은 예능에 출연하는 게 아니면 어필할 수가 없지. 이래서 방송 출연에 그렇게 목들을 매는구나.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아까부터 눈을 감았다 떴다 하던 최건영이 부스스 일어난다.
“넵튠이 어떻게 해야 뜰까 고민 중.”
“하하하. 방법 있으면 나도 좀 알고 싶다. 연예인 뜨고 안 뜨는 건 타이밍이나 운빨이 크게 작용하니까. 어느 구름에서 비 올 줄 모르는 게 연예계라잖아. BYG 봐, 쟤들 저렇게 뜰 줄 누가 알았겠어.”
“난 지금도 걔네가 왜 인기 있는지 모르겠던데. 애들 취향 못따라가겠다.”
멤버들이 깰까 봐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고 있는데 최건영이 옆구리를 찌른다. 고개를 돌리니 김현조가 또 빤히 쳐다보고 있다.
“평론가들 나셨네. 안 피곤하면 여기서 떠들지 말고 커피나 사와요.”
“예? 예. 커피요?”
“간식거리도 같이 사오세요. 센스 있게.”
우리는 카드를 받고 쫓겨나듯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대기실에 있는 사이 몇 팀이 더 도착했는지 통로가 시장바닥이다. 인파를 헤치며 겨우겨우 이동하는데 불쑥, 노트북 가방을 멘 여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어? 실장님!”
실장님?
“블랙아웃 실장님 맞으시죠? 저 연예브릿지 김수영 기자예요. 지난번에 팬 사인회 때 잠깐 인사드렸었는데 기억 안나시죠?”
기자가 최건영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인다.
얘는 기자랑도 친하구나. 갑자기 최건영의 3개월 경력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당연히 기억하죠.”
“어머머.”
“그런데 저 실장 아니고 그냥 매니저예요.”
“매니저님이셨구나. 근데 여기 어쩐 일이세요? 블랙아웃 오늘 Knet에서 뭐 있어요? 라디오? 잠깐 같이 가서 인터뷰 좀 하면 안 될까요? 정말 잠깐이면 되는데.”
“저 지금은 넵튠이라고, W&U 걸그룹 보고 있어요.”
괜히 말 걸었네.
기자의 얼굴에 진짜 그렇게 써 있다. 아 씨, 괜히 말 걸었네.
“그러시구나.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네. 안녕히 가세요.”
최건영은 여전히 친절했지만 기자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금방 또 다른 남자를 붙잡는다.
“……커피나 사러 가자.”
“그래.”
이게 바로 무명그룹 매니저의 서러움인가 보다.
< 음악방송이라는 건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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