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니지먼트사업부 3팀, 신입 매니저 (2) >
빌딩에는 이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는 창문들이 많다. 길에도 차가 꽤 보이고, 거리에도 사람들이 있다.
출근길인지, 퇴근길인지, 다들 바쁘게 새벽 거리를 걷는다.
편의점 벤치에서 캔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느슨하게 풀어진 넥타이. 헝클어진 머리와 옆자리의 서류가방. 당사자에게는 일상일지 몰라도 사회초년생인 내게는 왠지 멋있어 보이는 것들이다.
내가 지금 긴장한 건지 들뜬 건지 헷갈린다. 아무튼, 기분이 좋다. 학생, 군인, 알바생, 취업준비생, 지금까지 거쳐온 반쪽짜리 직업들이 아닌, 진짜 직장인이 된 거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쉬는 시간엔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동료들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좀 하고 그러는 직장인. 사회인. 일하는 남자.
돈 모으면 차부터 사야지.
비슷비슷한 건물들 사이에서 개성적인 외관의 W&U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유리문 앞에서 차림새를 점검한다. 형이 대학교 졸업선물로 사줬던 정장과 엄마가 사줬던 땡땡이 넥타이와 구두. 형수님과 조카들에게 검증까지 받은 단정하고 호감 가는 신입사원 스타일이다.
꿈에서 스치듯 본 중년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비교하면 지금은 아무래도 어설프다. 꿈속의 나는 훨씬 여유롭고 관록 있어 보였는데.
성공한 매니지먼트사 대표. 능력 있는 남자.
그 모습은 내 이상 그 자체다. 뭐, 꿈이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있는 배우를 사랑했다. 중학교 시절엔 국내와 국외의 배우들 브로마이드와 엽서로 방을 채웠고, 고등학교와 대학 때는 핸드폰 갤러리를 가득 채웠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내 관물대는 걸그룹 대신 여배우들이 차지했다.
나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세계를 동경했다.
연예계 말이다.
그 바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내겐 당연한 일이었다.
연예인이 아니라 매니저를 목표로 한 건 내 성향 때문이다. 대중 앞에 서서 주목받는 것보다는 주목받는 사람을 만드는 게 더 흥미롭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전면에 드러난 주인공보다는 배후세력, 드러나지 않은 채 판을 짜고 움직이는 캐릭터에 더 감정 이입하는 편이고.
내 손으로, 한국땅을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그런 톱스타들을 키워내고 싶다.
W&U의 매니지먼트팀에서 실무경험을 쌓으며 배우고, 나이 들면 내 배우들과 독립해서 매니지먼트사의 대표가 되는 것. 꿈에서 봤던 나처럼 되는 것.
그게 내 야망이다.
오늘 드디어 그 첫걸음을 떼는 거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심지어 깜깜하다. 내가 움직이는 쪽으로만 잠깐씩 불이 들어왔다가 금방 꺼져버린다.
몇 층으로 가야 되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여자의 허밍소리가 들린다.
깜짝이야. 심장마비 올 뻔했네. 젠장, 내 벨소리다. 여름에 감명 깊게 봤던 공포영화 삽입곡. 이렇게 무서운 노랜지 줄 몰랐는데. 대체 어떤 매너 없는 놈이 새벽 3시 반에 전화질이야?
핸드폰을 꺼냈는데 모르는 번호다.
“여보세요?”
-오늘 출근하기로 한 정선우씨 맞아요?
“네. 맞습니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니지먼트 3팀 김현조 실장인데, 오고 있죠?
“지금 도착했는데 몇 층으로 갈까요?”
-지하 2층에 주차장 있으니까 거기로 오세요. 바로 출발해야 돼요.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잡아탔다. 문에 붙은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친다. 긴장으로 굳은 얼굴. 첫인상이 좋아야 할 텐데.
거울을 보면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웃는 얼굴에 침은 안 뱉겠지.
지하 2층에 도착하자마자 클랙슨이 울렸다. 검은 승합차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몇 가지 특징이 확 눈에 띈다.
일단 말랐고, 키가 작다. 왜소해서 멀리서 보면 학생처럼 보일 것 같다.
반면에 인상은 까칠하다. 면도를 대충 한 건지, 아예 안 한 건지 턱이 거칠거칠하다.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매니저 같기는 한데······.
천사표 사수를 바란 건 아니지만, 솔직히 성격 나빠 보인다.
내가 김현조를 살피는 동안 그도 나를 스캔하듯 쭉 훑었다.
“정선우씨 맞아요?”
“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실장님.”
“지금은 이게 편해요.”
불편해 보이는데.
게다가 지금은, 이라는 말이 좀 묘하게 들린다.
“그런데······ 수트를 입고 왔네요? 현장에 바로 투입될 거니까 옷 편하게 입으란 얘기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내가 전달받은 건 몇 시까지 어디로 출근하라는 말뿐이었다.
옷은 뭘 입을까 고민하다가 첫날이라 신경 쓴 건데. 보니 김현조는 청바지에 두꺼운 맨투맨 차림이다. 머리에는 모자까지 쓰고 있다. 나랑은 극과 극이다.
재빨리 넥타이를 풀어서 가방에 쑤셔 넣었다.
김현조가 뒤통수를 벅벅 긁는다.
“수트에 구두··· 애들 데리고 일하다 보면 온종일 뒤치다꺼리하느라 뛰어다녀야 하고, 밤새도록 차 안에서 대기해야 할 때도 많은데 수트입고 불편해서 일 못 해요. 내일부턴 편하게 입고 오세요. 아, 편하게 입으란다고 무릎 늘어난 추리닝에 쓰레빠 찍찍 끌고 오면 죽인다.”
망했다. 내 첫인상 대체 얼마나 안 좋은 거야.
“편하되, 후줄근하진 않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네, 알겠습······.”
“저기 저 친구는 제대로 입고 왔네요.”
김현조가 내 뒤를 쳐다보며 손짓한다. 돌아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길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줄 것 같은 착한 인상. 안 웃어도 웃는 것처럼 보일 얼굴. 보조개도 있다. 젠장.
옷차림은 두꺼운 셔츠에 가디건. 청바지. 젠장, 젠장.
“처음 뵙겠습니다, 최건영입니다.”
“정선웁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손 인사를 한 김현조가 나와 최건영을 번갈아 본다.
“둘 중에 경력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건영씨죠?”
최건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편하게 부르세요, 실장님. 경력이라고 하긴 좀 민망하구요. 블랙아웃 매니저 형 밑에서 3개월 알바 했습니다. 대신 운전하고, 심부름하고, 밖에서 사람들 사진 못 찍게 막고, 그 정도요.”
“그게 어디에요. 아, 그럼 호준이 형도 알겠네요? 이호준 실장.”
“몇 번 뵀어요.”
김현조의 태도가 친근하다.
블랙아웃. 듣자마자 생각났다. W&U의 효자 보이그룹, 초통령 아이돌. 걔들 이름이 블랙아웃이었다. 3개월 알바한 회사가 여기구나.
젠장. 시작부터 영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고민 끝에 차려입은 옷은 까이고, 같은 날 첫 출근해서 사사건건 비교당할 게 분명한 동기는 3개월 경력자고.
까닥 잘못하면 저쪽은 빠릿빠릿하고 센스있는 신입. 나는 어리바리하고 눈치 없는 신입 이미지로 낙인찍힐 위기다.
“일단 둘 다 차에 타세요. 애들 픽업해서 샵에 들렀다가 7시까지 음악방송 리허설하러 이동해야 하니까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죠.”
그 말에서 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엔, 나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운전석엔 당연히 김현조가 타고 조수석엔 최건영이 탔다. 나는 뒷좌석에 올라가자마자 재빨리 움직였다. 자켓을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 셔츠 단추를 풀고 소매도 팔꿈치 아래까지 걷었다. 그러고 나서야 좀 편한 복장이 됐다.
승합차가 도로로 진입하자 김현조가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귀가 번쩍 뜨일 이야기를.
“건영씨랑 선우씨가 오늘부터 담당할 애들은 넵튠이에요. 작년 초에 데뷔한 4인조 걸그룹인데,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네. 얼마 전에 싱글 나온 거 들었어요.”
최건영이 바로 대답한다.
“반응 나쁘지 않은 거 같던데요.”
“나쁘지 않긴요. 차트에서 바로 광탈해서 보이지도 않는구만.”
“멤버들 비주얼이 좋아서 제가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에서는 한 번씩 언급되더라구요.”
“그래요? 애들이 이쁘긴 하죠. 우리가 원래 배우만 담당하던 회사라 걸그룹 기획할 때도 배우 비주얼로 뽑았거든요. 그렇다고 애들 실력이 딸리는 것도 아니에요. 대부분 다른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도 오래 했던 애들이에요. 해외시장까지 보고 기획한 애들이라 외국어도 유창하고. 기본이 있으니까 한 방 터지기만 하면 롱런할 텐데 그 한방이 2년째 안 터지네. 운이 없는 건지, 우리 기획력이 부족한 건지······.”
나는 앞좌석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못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2년 차 걸그룹 넵튠. 내가 담당할 애들이 배우가 아니라 걸그룹이라니.
꿈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실제로,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 이럴 수가 있나? 이게 말로만 듣던 예지몽이라는 건가?
“선우씨는 어때요. 처음 들어요?”
백미러로 김현조와 눈이 마주쳤다.
“아··· 예.”
한발 늦게 대답하자 김현조가 혀를 찬다.
“거기 뒤에 인덱스 파일 뒤져보면 애들 프로필 있어요. 한 부 가져요. 숙소까지 15분 정도 걸리니까 쭉 훑어보고. 아니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던가. 애들 이름이랑 얼굴은 알고 만나야 할 거 아니에요.”
“네. 알겠습니다.”
인덱스 파일을 들추자 두툼한 프로필이 여러 부 보인다. 한 부 꺼냈다. 아직 어안이 벙벙하지만,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건영씨는 형제 관계가 어떻게 돼요?”
“위에 형 있고, 밑으로 남동생 있어요. 둘쨉니다.”
“아아, 나도 둘째예요. 둘째들이 주로 생활력도 강하고 눈치도 빠르죠. 이 일 하면서 제일 필요한 게 생활력이랑 눈치예요. 어린 여자애들 넷이랑 온종일 붙어 다니는 거 만만한 일 아니거든요. 선우씨는 형제 있어요?”
“네. 형 한 명 있습니다.”
“막내예요? 어쩐지.”
어쩐지?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예지몽이고 뭐고, 꿈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현조가 점점 나를 쓸모없는 물건처럼 보고 있다. 지금 당장 첫인상을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 고달플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첫날부터 찍혀서 고생문이 활짝 열릴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 매니지먼트사업부 3팀, 신입 매니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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