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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184화 (184/184)

184. 인지를 넘어선 거대함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한계를 일깨운다(완결)

184. 인지를 넘어선 거대함에서 느끼는 초라함은 한계를 일깨운다

경지를 높인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도현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정도, 그것도 곧 어느 경지에 있느냐 하는 것을 가름한다.

“수 천 개의 차원을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더 높은 것을 보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멈추지 못하는 관성과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도현은 자신의 의식을 룰의 인지 능력과 최대로 동화시키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룰은 최대한 도현에게 전해지는 정보를 제한하여 도현이 받을 부담을 줄여준다.

지금 도현에게 필요한 것은 방대한 지식이 아니었다.

“하나의 세상이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위기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문명은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에 자원 고갈은 문명 성장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위기지.”

도현의 혼잣말은 그의 깨달음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지금 도현의 의식 속에서는 기원 기록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태초에 존재했던 단 하나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구성해서 유지하던 근원.

도현은 지금 그 근원에 새겨져 있던 기록의 원형에 가까운 기록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이렇게, 자원 고갈의 위기를 맞이한 세상은 그 해결책을 찾기 마련인데, 가장 쉬운 방법은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그 자원을 찾아오는 것이지.”

태초에 존재한 하나의 근원에도 다양한 단계의 기록이 존재했다.

당연히 지금 도현이 들여다보는 기록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그것.

기원.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었다.

“어떤 것이든 고갈의 문제를 해결할 수단은, 인지 범위와 가능성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인지 할 수 없거나 이용 불가능한 것은 해결 수단이 되지 못한다.”

도현은 기원 기록을 들여다보던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현의 아크 차원이 아닌 밖에 있는 차원들의 근원이 사실은 피라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

하나의 차원을 소유한 초인과 여러 개의 근원을 링크시킨 초인, 몇 개의 근원을 하나로 묶어 낸 융합 경지의 초인, 수 백에서 수 천에 이르는 차원을 하나로 묶어낸 합일 경지의 초인.

그 모두가 피라미드처럼 단계를 이루며,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근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합일 경지의 상위 격.

도현이 인식하고 해석해서 이해하기 시작한 기원 기록이 그 보이지 않던 근원의 연결을 드러내주었다.

“결국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도현은 근원들의 연결이 만드는 피라미드의 정점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상위 격의 존재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이 항상 개인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다.”

도현은 상위 격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한 순간,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상위 격은.

“아무리 위대한 정신이라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는 에고였기 때문이다.

도현의 의식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수많은 차원들의 근원을 묶어서 조율하고 있는 에고들이 보였다.

그 에고들은 누군가 정해준 법칙에 따라서 근원들을 조율하고 있었다.

물론 때때로 그 조율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서 작게는 차원의 문명과 그 문명을 이루는 종족이 멸망하기도 하고, 크게는 차원 자체가 소멸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차원들 중 하나에서 일어난 사소한 문제일 뿐.

소멸된 차원은 근원의 조각을 흩뿌리고, 그 근원의 조각들은 우주 공간을 떠돌았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결국 우주에 흩어진 차원들에 다양한 변수를 만든다.

“반복 되는군.”

한참을 지켜보던 도현은 중얼거렸다.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지만 결국 세상은 돌고 돌아 반복되었다.

“그러다가 나같은 놈이 나오면.”

새로운 에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현의 의식이 근원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들 사이에 홀로 존재하는 거대한 차원들을 발견했다.

피라미드를 이루는 근원의 군집에 비해서는 비율이 적긴 하지만, 홀로 존재하는 거대한 차원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도대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차원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이 의문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표현일 뿐이다.

도현이 발견한 독립적인 거대 차원들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도현의 아크 차원과 유사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아크 마스터가 지금 도현과 같은 경지에 이른 후에, 저렇게 거대한 차원을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도현은 모든 근원 피라미드와 거대 차원을 살필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많은 근원 피라미드와 거대 차원을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것들을 관리하는 에고의 주인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딘가엔 있겠지. 나처럼 새로운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혹은 더 높은 경지를 꿈꾸는 위대한 정신이거나.”

하지만 도현은 그 어느 쪽도 궁금하지 않았고, 만나고 싶은 욕망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식의 문제야. 많은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만은 아닌 거지.”

도현은 지금의 경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 보았다.

좀 더 많은 차원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주인 없이 존재하는 근원 피라미드나 거대 차원의 에고들을 상대로 근원을 빼앗아 올 수도 있을 것이고, 여차하면 그 에고들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미가 없겠지.”

도현은 정신을 추슬렀다.

자연스럽게 공유하던 룰의 인지 능력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도현이 인식하고 이해한 기록은 남았다.

합일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무얼 하라는 거지?”

도현은 좌절했다.

심심풀이로 수 백 개의 차원을 충돌시켜 근원 대폭발을 만들어 낼까?

그래봐야 지금 도현이 볼 수 있는 수많은 근원 피라미드와 거대 차원들에 약간의 변수를 만들어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도 거대했다.

지금의 도현도 세상의 극히 일부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천문학자들 중에 자살자가 많은 이유가 이런 거겠지.”

더 넓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때마다 느끼는 초라함.

확장되는 세계 앞에서 도현의 정신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엄청난 것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별 감흥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면 할 이유가 있나?”

- 로드.

도현의 정신이 무너지려 할 때, 에포르가 도현을 불렀다.

“아.”

에포르의 부름에 도현의 정신이 돌아왔다.

“에포르.”

- 네, 로드.

“너도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있지?”

- 그렇습니다. 로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대충은 알 수 있고?”

- 네.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지? 더 높은 경지를 향해서 노력해야 할까?”

- 로드.

에포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현의 말은 질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위에 뭐가 더 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내 정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거 같다.”

도현은 자신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

- 역시 그렇습니까?

도현의 말에 에포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대꾸였다.

도현은 에포르가 자신과 영혼이 이어져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반응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도현은 뭔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지금까지 도현이 보고 있던 세상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근원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피라미드와 거대 차원이 도현의 인식 범위에서 사라지고, 아크 차원만이 남았다.

“에포르.”

- 네, 로드.

“조금 전에 봤지? 피라미드나 거대 차원들을 관리하는 에고들.”

- 네, 로드.

“너와 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할 수 있을까?”

- 물론입니다 로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음?”

큰 결심으로 물어본 말이지만 에포르의 대답은 짧고 간결해서 도현이 도리어 의아할 정도였다.

- 로드께서 새로운 경지에 오르셨으니 저 역시 이전보다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그런 도현의 의구심에 에포르가 이해 가능한 대답을 내 놓았다.

도현과 함께 성장하는 에포르.

도현이 합일 이상의 경지가 되었으니 에포르 역시 성장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를 따라서 성장했다고?”

도현이 지금껏 가지지 못했던 의문을 문득 떠올리며 물었다.

- 그렇습니다 로드.

“에포르, 이전에 네가 그랬었지? 너의 성장은 봉인이 풀리는 것과 같다고.”

도현이 물었다.

- 네, 로드.

“그럼 이번 성장도 그런 건가?”

- 물론입니다 로드.

도현이 묻고 에포르가 대답했다.

봉인이 풀리며 한 단계 더 성장했다는 에포르의 말.

그것은 이전에도 몇 번 반복된 것이었다.

하지만.

“에포르.”

- 네, 로드.

“너에게 아직 풀지 못한 봉인이 남아 있나?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서 풀리게 될 봉인 말이야.”

- 답변 드릴 수 없는 질문입니다.

“왜?”

-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군. 그런데 어쨌거나 지금까지는 모두 봉인이 풀리면서 성장한 거였지?”

- 그렇습니다.

“그럼 도대체 널 만든 것은 누구였다는 거지? 이번에 새로 진화했다는 너. 그런 너를 만든 건 누구였느냔 말이지.”

도현이 에포르를 추궁하듯 물었다.

그러자 에포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 특이점이 인정되어 새로운 봉인이 풀렸습니다.

잠시 후, 에포르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보고를 했다.

“어떤 특이점? 그리고 어떤 봉인?”

도현이 물었다.

- 로드께서 지금과 같은 경지에 지금과 같은 의문을 가지시는 것이 특이점이고, 그에 따라서 한 가지 정보가 풀렸습니다.

“음. 그 정보가 뭔데?”

- 로드께서 물어보신, 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러니까 내용이 뭐냐고.”

- 저를 만든 것은 로드이십니다.

“뭐? 이건 또 무슨?!”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에포르의 대답.

에포르를 만든 것이 도현이라니.

- 로드께서는 지금 합일 경지의 상위 격에 도달하셨습니다.

“그래.”

- 하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뭐?”

- 로드께서는 오래 전에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합일의 상위 격보다 높은 경지?”

- 맞습니다.

“그럼 내가 왜 지금 이러고 있는 거지?”

- 수련의 과정입니다.

“수련? 그러니까 지금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던 내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수련을 하고 있다고?”

- 맞습니다.

“미쳤군.”

도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봉인이 풀린 정보에 따르면 로드께서는 지금 다양한 삶을 체험하며 정신을 단련하는 중입니다.

“다양한 삶? 그러니까 내가 이런 삶을 여러 번 살았다고?”

- 정확히 어떤 삶을 얼마나 많이 살았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삶의 동반자였을 뿐입니다.

“와, 미치겠네.”

도현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조금 전에 수많은 근원 피라미드와 거대 차원, 그리고 그것들을 관리하는 에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 대충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냥 깔끔하게 윤회를 하자는 거였어.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거든.”

- 네, 그렇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너무나 거대한 세계 앞에서 로드의 정신이 버티지 못한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그게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이쯤 되면 결국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뭐 그런.”

- 그렇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내가 윤회가 아니라 소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 그런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하아, 물론 아니지. 자살도 아니고 영혼 소멸을 누가 원하겠냐?”

- 그럼 의미 없는 가정이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기분이 좀 더럽다는 거지. 뭔가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조차 계획서 안에 들어 있다면······.”

- 그것조차 따지고 보면 로드의 선택입니다. 물론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삶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래, 지금의 나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던 또 다른 내가 했던 선택이란 거겠지. 그런데 목적이 정신의 단련이라고?”

- 봉인이 풀린 정보에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 뭐, 고난과 역경, 이런 게 많은 삶이 수련에 도움이 되는 걸까?”

- 그래서 다음 삶은 그런 삶을 살아보실 생각이십니까?

“야, 이번 삶은 아니었던 것처럼 말한다? 응? 내가 응? 그 빌어먹을 골드 헌터들의 사냥개로 살다가 과거 회귀까지 했거든? 그 정도면 정말 팍팍한 삶이었는데, 다음 삶을 뭐 어떻게 해?”

- 그게 아니시면.

“무조건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

- 그것도 나쁘진 않겠습니다만.

“음, 가능해. 충분히 가능하겠어. 지금의 내 수준이면 영혼에 적당한 유산 정도는 남겨줄 수 있을 거야. 에포르 가능하겠지?”

- 로드의 영혼은 무척 강대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로드의 인생은 평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좀 더 쉽게? 응? 지금 내 경지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건데, 특전 몇 개는 쥐어 줘야지.”

- 물론 가능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그거나 하자. 일단 내가 사라진 후에 이곳 아크 차원을 관리할 에고를 제대로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뮤하고 세이안에게 자유를 주고. 마지막으로 내 새로운 삶을 위한 특전을 만드는 거지.”

- 특전이 마지막입니까?

“그래야 끝나자마자 떠날 거 아냐. 그거 다 해 놓고 다른 일을 하려면 손에 잡히기나 하겠냐? 의욕도 안 생기겠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과거의 나. 그러니까 어마무시한 경지에 올랐던 놈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자아가 사라지는 일입니다. 두렵거나 아쉽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살하는 놈이 그런 걸 걱정하는 거 봤냐?”

- 로드께선 자살을 하시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르지 않아. 하지만 다른 놈들과 달리 불안감은 없지. 왜냐하면 나는 다음 생을 확신할 수 있으니까.”

- 아, 불안감. 그렇군요.

“어차피 내가 언젠가 과거의 경지를 되찾게 되면, 그 때는 이런 모든 기억들까지 되찾게 되지 않겠어? 그러니까 아쉬울 것도 없지. 도리어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더 클 걸?”

- 그렇습니까?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일단 정리부터 하자. 떠나기 전에.”

- 알겠습니다 로드.

* * *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도현은 아크 차원을 관리할 에고를 완성했고, 뮤-지하와 세이안에게 자유를 주었다.

뮤-지하와 세이안은 도현의 배려로 합일의 경지에 올라 수 백 개의 차원을 하나로 묶어 냈다.

도현은 그들이 묶은 합일 차원이 거대한 근원 피라미드의 상층에 위치한 것을 알았지만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었다.

영혼의 금제까지 풀어주자 뮤-지하와 세이안은 크게 감격했지만, 도현은 그들을 자신의 차원에서 추방했다.

단일 차원에선 그들이 머물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끝났군.”

- 네. 로드.

“너는······.”

- 함께 갈 수 없습니다.

“그래.”

- 하지만 또다른 에포르가 로드와 함께 할 것입니다. 로드의 영혼에는 저의 원본 카피가 묶여 있으니까요.

“깡통이겠지. 이름도 없을 거고. 일곱 성이란 특전도 없겠지. 이번엔 새로운 특전을 부여했으니까.”

- 따지고 보면 이번 생에 로드께서 받으신 아크 마스터라는 특전은 꽤나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고작 그거 하나 가지고 뭘.”

- 하지만 거기에 회귀 특전이 있었지 않습니까.

“운이 좋아서 발동한 거? 그 반지가 내 손에 들어온 건 특전 덕분이 아닌데? 그건 정말 운이었지.”

- 전생의 로드는 그게 최선이었던 모양이지요.

“아니면 그냥 대충대충 던져준 걸수도 있고.”

- 로드의 성격을 보면 그럴 수도······.

“뭐?”

- 아닙니다.

“가는 마당에까지 그러기냐?”

- 저는 이제부터 영원에 가깝도록 이곳에서 차원을 관리하고 있어야합니다만.

“그게 네 탄생과 존재의 이유잖아. 따지자면 그걸 좋아하는 거 아니냐?”

- 기쁘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어서 가시라는 거지요.

“하아. 그래. 그 동안 고마웠다.”

- 저도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로드.

“다음에 혹시 내가 너를 기억하지 못해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좀 도와주고 그래라.”

- 알겠습니다 로드.

“잘 있어.”

- 안녕히 가십시오.

“그래.”

스스스스슷!

인사 후의 여운은 없었다.

도현과 에포르의 작별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현.

그리고 남은 것은 초거대 차원을 관리하는 에포르‧룰 밖에 없었다.

지이이이이잉!

- 네, 에포르‧룰입니다. 무한 차원 관리 시스템에 등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도현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에포르‧룰은 세계를 움직이는 상위의 시스템에 스스로를 등록하고 그 일부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삶의 여정인데, 재미는 없었군. 다음 생에선 좀 더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어. 그럴 수 있도록 탄생을 좀 비틀어 볼까? 으음.”

[마스터, 마스터의 영혼인데 너무 괴롭히진 마시지요?]

“누가 괴롭힌다고? 그냥 역동적인 삶을 설계해 주려는 것 뿐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알고 싶으십니까?]

“계산은 되고?”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계산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한 차원 우주를 조율하는 네가 시간이 걸려서 계산해야 할 숫자를 내가 듣고 싶겠냐?”

[저도 계산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아주 오래 남았겠지. 정말 많은 삶을 겪으며 정신을 단련해야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겠지. 위대한 정신이란 그런 거니까.”

[네, 마스터.]

“그래. 그럼 또 기대를 해 보자고.”

- END

작가의 말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지금껏 제가 썼던 글들 중에 가장 힘들었던 글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는 사라지고 줄거리와 설정만 남발한 것 같습니다.

원래 쓰려고 했던 디테일은 모두 털어 버리고, 글의 마무리를 위해 달려가며 줄이고 줄이고.

그러다보니 결국 점점 아픈 손가락이 되어 볼 때마다 속상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글을 시작하면서 그려 놓았던 글의 마무리까진 가고 싶었습니다.

그것조차 욕심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끝을 보긴 했네요.

독자님들께 송구하기 짝이 없습니다.

끝까지 잃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정말 더 나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늘, 항상.

이번만큼 글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고, 그 때문에 모자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린 것 같아 다시 한 번 송구스럽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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