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에포르에 대한 새로운 평가
171. 에포르에 대한 새로운 평가
“그거 참, 고집하고는.”
= 융통성이나 타협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지. 관리법인지 뭔지, 숨기고 있는 것을 내어 놓으라는데 말이 통하질 않으니.”
= 그래도 제압이 가능했던 것은 괜찮은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리테라 에고 피스의 저항 능력이 부족했으니까.”
= 리테라의 에고 파편이라면서 실질적인 무력은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마스터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초인들의 아바타나, 나하고 다를 게 없는 거지. 빙의의 형태로 대사부의 몸을 얻었지만 결국 그 몸으로 경지를 올려야 하는 입장인 건 동일한 조건이었으니까.”
=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대사부의 경지는 저와 같은 수준이었으니까요.
뮤-지하의 경지는 링크 직전.
정확하게 말하자면 링크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상태이고, 대사부 역시 같은 수준이었다.
그러니 도현이 작정하고 제압하려 했을 때,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 그런데 괜찮습니까? 리테라 에고 피스를 의식 공간에 넣어 둬도?
뮤-지하는 벌써 비슷한 질문을 서너 번은 반복하고 있었다.
도현은 이번에도 피식 웃으며 뮤-지하의 걱정을 털어주었다.
“걱정하지 마. 에고만 따로 떼어낸 것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 하지만 의식이 있다는 것은 곧 의지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뭔가를 이루려는 의지는 곧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거야 자율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 이 리테라 에고 피스는 리테라의 관리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야. 그래서 그 이외에는 관심이 없지.”
= 관심이 없다면 어떤 식인 것입니까?
“지금 내 의식 공간에 갇혀 있는 상태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어. 그저 리테라 복원해서 관리할 방법만 찾고 있는 중이지.”
= 그럼 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마스터께 해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뮤-지하가 파악한 리테라 에고 피스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목적을 위한 행위에서 나름의 행동 설계가 가능한 존재였다.
그런 리테라 에고 피스가 자신을 구금한 도현이 리테라 관리라는 자신의 임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이었다.
“의지만 있다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하물며 내 의식 공간에 잡혀 있는 상황에서 그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의지의 힘만을 따져도 내가 훨씬 강하니까.”
= 그런 것입니까?
“그래, 그러니 괜한 걱정은 그만하고, 이번에 얻은 정보를 가지고 리테라 피스의 복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자고.”
도현은 이번에 무척 큰 것을 얻었다.
초인들이 아크 시험장을 만들고 리테라를 생성시킨 이유는 그것이 융합 이상의 경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리테라에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에고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거 같지?”
= 그렇습니다. 혼자서 근원의 기록을 모두 조율하는 것보다는 조율을 담당할 에고를 배치하는 것이 정답이었습니다.
“뭐, 우리는 에고라기보다는 소환체를 이용했지.”
= 하지만 결국 그 소환체의 사고 능력을 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소환체의 사고 능력을 다르게 말하면 에고라고 할 수 있고 말입니다.
“그건 좀 과장이지. 소환체의 사고 능력은 에고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
= 모든 에고가 고등한 수준인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엔 마스터의 소환체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 능력도 뛰어난 에고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부를 해 봐야, 소환체의 사고 능력이나 판단력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야. 아무튼. 뮤!”
= 네, 마스터.
“우리가 잡은 방향은 제대로 된 것 같으니까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뭘까?”
= 그야 당연히 리테라 피스를 모두 융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최고의 에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그 에고는 어떻게 만들지?”
=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
“오호? 방법이 세 가지나? 뭔데?”
도현은 뮤-지하가 뛰어난 에고를 만들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는 말에 눈빛을 반짝거렸다.
= 우선은 마스터께서 확보하신 대사부에서 나온 에고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 에고를 뜯고 씹고 맛보고?”
= 표현이 좀 그렇긴 합니다만, 원래 리테라를 관리하기 위해서 태어난 에고이니······.
“맞아. 그만한 연구 재료가 없겠지. 하지만 귀한 재료이니 또 그만큼 조심스럽게 써야 할 거야. 일단 킵.”
뮤-지하의 제안은 조심스러웠지만 그에 대한 도현의 반응은 시원했다.
어쨌거나 필요하다면 그 에고를 연구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 그럼 다음은 당연히 다른 차원에 있을 리테라 에고 피스를 찾는 것입니다.
“찾아서 해체를 하든, 모두 합쳐서 온전한 에고를 만들든?”
= 그렇습니다.
“좋아. 그게 두 번째면, 그럼 세 번째 방법은 뭐지? 리테라 에고 피스는 더 나올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도현은 뮤-지하의 세 번째 방법을 물으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낼 장난을 앞둔 개구쟁이처럼.
그리고 그런 도현의 물음에 대한 뮤-지하의 대답은.
“에포르입니다.”
도현이 기대하고 있던 바로 그 대답이었다.
- 로드! 이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랍니까아!
그리고 에포르는 그런 뮤-지하의 말에 깜짝 놀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렇지. 에포르가 묘하게 리테라 에고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지?”
= 그렇습니다 마스터.
- 로드,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 에포르는 로드의 충신으로서 진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물론 저렇게 격한 감정 반응을 보이는 것은 리테라 에고와는 전혀 다르긴 합니다만.
- 보십시오. 뮤-지하도 차이를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 에포르를 그 모자란 에고와 비교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로드으!
에포르의 어조는 절절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에포르가 리테라 에고 피스와는 많이 다르지. 결정적으로 감정표현을 한다는 점이.”
도현은 곧바로 뮤-지하의 말에 동조했다.
이에 에포르도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휴유우. 감사합니다 로드.
하지만 에포르가 안심하기엔 아직 이른 면이 있었다.
“그런데 에포르가 에고인 것은 또 맞거든.”
- 로드, 그게 무슨······.
“일단 인정할 건 인정을 해야지. 에포르, 너는 아크 시스템에 의해서 탄생된 에고가 분명해. 그 이유는 너 역시 리테라 에고와 마찬가지로 영혼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야.”
- 아, 영혼. 그렇군요. 그렇게 따지면 저도 로드의 의식 공간에 갇혀 있는 그 놈과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결국 에포르는 도현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포르.”
도현은 에포르로부터 뭔가 크게 상처받은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일곱 성의 주인으로 각성할 때에 각성 아이템이었던 반지를 통해 만났던 에포르.
그 만남의 순간부터 에포르는 도현의 영혼에 종속된 존재였다.
결국 일곱 성의 주인은 초인이 된 후에 아크 마스터로 바뀌었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에포르는 여전히 군왕성의 관리자로서 도현의 동반자였다.
- 네, 로드.
도현의 부름에 에포르가 맥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네가 군왕성에 속해 있는 에고임을?”
도현은 조금은 냉정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확인하듯 말했다.
- 네, 로드. 이 에포르는 군왕성에서 로드를 모시는 시종이며, 왕성의 관리자이며, 로드의 재정 담당관이며······.
“일곱 성의 차원을 관리하는 에고이지.”
- ······. 그렇습니다.
“결국 에포르 네가 일곱 성 차원의 근원을 관리하는 에고인 것이지. 그리고 그 말은 네가 내 아크의 관리자라는 것이고. 아니냐?”
- 맞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은 제약 때문이겠지. 상위 시스템으로부터 받고 있는 제약.”
- 네, 로드.
= 와,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에포르가 리테라 에고 피스와 같은 존재란 말입니까?
- 그렇게 비교하지 마라. 나는 리테라 에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등한 존재이니.
= 고등한?
- 그렇다.
= 그런데 왜 너는 마스터의 아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거지?
- 뭐? 뭐라고?
= 이전에 마스터의 아크에는 열세 개의 차원이 들어와 있었지. 마스터가 링크하는데 성공한 차원들.
- 그런데?
= 문제는 그 열세 개의 차원은 일곱 성 차원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지. 일곱 성 차원도 다른 차원들처럼 독립적인 상태였다고.
- 하려는 말이 뭐지?
= 뭐긴, 에포르 너의 능력이 너무 미약했다는 거지. 비록 폭발하기는 했지만 리테라는 삼백육십 개의 차원이 합쳐진 거였는데, 너는 고작 일곱 성 차원 하나를 관리했을 뿐이니까.
- 으음. 틀린 말은 아니다만, 거기엔 또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뮤-지하의 지적에 에포르는 그렇게 말을 아꼈다.
그리고 도현은 에포르가 아낀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문제였던 거겠지.”
= 마스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 수준이 낮아서 에포르가 제 능력을 모두 쓰지 못했다는 거지. 시험장을 만들기 전에 내 수준이 융합 경지에 올랐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했지. 내가 이 히자르의 몸으로 끌려 들어왔으니까.”
= 그럼 마스터께서 융합의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저 에포르가 이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을 거란 말씀입니까?
뮤-지하의 목소리에는 ‘설마’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높은 확률로 그럴 거 같은데? 아니, 내가 내 아크 안에서 차원들을 융합시켰다면 그 모두를 에포르가 관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 그럼 아크 시험장 전부를 에포르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결론이 아닙니까. 에포르가 아크를 관리하기 위한 에고라고 한다면.
“그렇지.”
= 어이, 에포르. 가능하냐?
- 가능하겠냐? 가능했으면 지금 왜 이러고 있겠느냐고! 머리는 장식이냐?
= 장식이 아니니까 이러는 거지. 네가 못할 걸 알고 물어본 거니까.
- 일부러 놀린 거란 소리지?!
뮤-지하와 에포르가 투닥거리기 시작한다.
도현은 그것이 일종의 긴장 해소를 위한 놀이임을 알기에 잠시 기다려주었다.
= 왜 못 하는 건데? 네가 아크의 관리 에고라면서?
- 리테라 에고가 어째서 실패했는지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오지 않냐?
= 아, 아크가 갑자기 너무 커져서?
- 그것 보다는······.
“내 경지가 낮아서 그런 거라니까? 에포르는 군왕성으로 대표되는 일곱 성 차원의 관리 에고지. 그리고 그 일곱 성 차원이 원래 내 아크였던 거고.”
- 맞습니다 로드.
= 그런데 그 아크가 마스터의 능력 이상이 되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래서 에포르도 관리 권한을 얻지 못한 거고.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거지.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긴 하겠지만.”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잠시 후.
“뭐, 결론은 내가 문제란 거지. 에포르는 아크의 관리 에고라고 봐야 하는데, 그 능력이 나에게 묶여 있는 거니까. 더구나 지식이나 정보도 수준에 맞춰서 풀리는 거 같고.”
- 로드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다시 원점이나 마찬가지지. 에포르의 정체성이 좀 더 명확해 지기는 했지만, 그게 나를 성장시켜주는 것은 아니니까.”
= 마스터의 성장을 위해서 리테라 피스와 리테라 에고 피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지. 그리고 리테라 피스나 에고에 대한 연구만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결국은 내가 그 에고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거지.”
= 마스터께선 이미 최고의 에고인 에포르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그 에포르가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에포르를 성장시킨다는 함정만 아니면 좋겠지.”
- 죄송합니다 로드.
“묘하게 뒤죽박죽이 되기는 했지만, 일단 이 아크 시험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을 하자고. 어차피 내 아크였지만.”
= 네, 마스터.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 로드, 이 에포르, 로드의 충실한 종복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항상 로드 곁에는 이 에포르가 있습니다.
“그래, 그래. 너희들이 최고다. 하하하하.”
도현은 이 순간, 뭔가 한 걸음 더 크게 나아간 느낌을 받으며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