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원흉은 테트로의 아바타 자카트?
167. 원흉은 테트로의 아바타 자카트?
“카이테, 마지막이다. 어찌 하겠느냐?”
“도둑놈이 내 물건을 내어 달라는데 그러마 할 수는 없지.”
“하긴 나 또한 네 입장이었다면 절대로 그냥 내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가 내 진옥을 욕심낸 순간부터 우리의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 카이테 네 말이 옳다.”
패엽은 고개를 끄덕여 카이테의 말을 수긍했다.
자신이 카이테 소유의 진옥을 탐낸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너와 나 사이의 일을 이리 번잡하게 만든 것도 패엽 너였지. 혼자서는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테니까.”
“그 역시 틀리지 않다. 그것 역시 내가 떳떳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뻔뻔하구나.”
“하하하하. 그 뻔뻔함 덕분에 네 진옥을 내가 얻게 되지 않겠느냐. 그것이면 이런 몰염치의 부끄러움도 감수할 만 하지.”
“패엽!”
거침없는 패엽의 말에 카이테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패엽과 함께 있는 초인들을 향해 이글거리는 눈빛을 쏘아냈다.
가네이야. 곰비토, 라바바.
패엽과 함께 서 있는 초인은 그렇게 셋이나 되었다.
그에 비해서 카이테에겐 좌우에 한 명씩, 수쿠와 하수운, 두 초인이 있을 뿐이었다.
삼 대 사의 수적인 열세.
그나마 믿을 것은 가네이야, 곰비토, 라바바가 모두 초인 서열이 카이테나 수쿠보다 낮다는 것.
서열로만 따져보면 카이테, 수쿠, 패엽, 라바바, 하수운, 가네이야, 곰비토의 순이다.
하지만 그런 서열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다들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미 대부분의 초인들은 여섯 번째 진옥을 흡수할 준비를 마친 상태일 것이다.
패엽만 하더라도 이미 초인이 된 후에 두 개의 진옥을 흡수하고 세 번째 단계를 준비하느라 이 사단이 나지 않았나.
그 초인의 세 번째 단계는 오직 대사부만 이룬 경지.
그 아래의 초인들은 다들 고만고만하여 차이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렇게 초인들의 성장은 어느 때부터 정체되어 고이고 있었다.
카이테도 오래 전에 세 번째 단계에 오를 준비를 마쳤지만 자신에게 맞는 진옥을 찾지 못해 성장이 멈춰 있었다.
그런 중에 수련장 부근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진옥을 주웠고, 그것이 하필 패엽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으니, 일이 참 공교로운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분명 자연스럽지 않은 뭔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 백 년을 찾아 헤매던 진옥을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이렇게 다수의 초인들이 나서는 진옥 혈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어쩌겠나. 언제 다시 나에게 맞는 진옥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카이테 너도 내 입장이면.”
“그래, 맞다. 나도 너처럼 낯짝 두꺼운 짓을 했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지금 너와 너의 편에 선 놈들이 도적임을 부인하지 못할 터인데. 그저 도적을 맞아 내 것을 지키려는 자와, 도둑질을 하려는 너희가 있을 따름이지.”
“쯧,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계속 듣고 있기가 거북하네요. 패엽, 말을 섞을 이유가 더 있습니까?”
“어차피 도적이 된 상황이니 망설이지 말고 끝장을 보자고!”
패엽의 좌우에 있던 가네이야와 곰비토가 불콰한 얼굴로 패엽을 재촉했다.
그리고 패엽 역시 지금의 말싸움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알았소. 시작합시다.”
패엽은 도움을 주는 초인들의 뜻을 내치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패엽의 뒤쪽에 있던 2만5천의 수련자들이 카이테의 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엽이 1만, 다른 초인들이 각 5천씩 모아온 수련자들이었다.
“끝까지 지저분하구나!”
그 모습에 카이테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패엽이 노리는 것은 카이테가 성에 깔아놓은 방어 결계와 진법들이었다.
초인의 능력을 보조할 수 있는 그러한 진법과 결계는 단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이테 역시 수 백 년을 보완하며 만들어 온 것들이었다.
그래서 패엽 일행도 막무가내로 카이테를 공격할 수가 없었다.
결계와 진법의 보조를 받는 상황이면 카이테와 수쿠, 하수운이 패엽 쪽의 네 초인보다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근차근 공성전을 벌이듯 부하들을 이용해서 카이테의 성을 점령하고 결계와 진법을 조금씩 파괴하고 약화시켜야 했다.
“어딜! 너희는 움직일 수 없다!”
“하나라도 자리를 비우면 우리 넷을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그걸 알면서 허튼 짓을 하려 하나요?”
“일이 이렇게 된 상황이면, 이제 너희 셋은 죽은 목숨이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너희를 놓아줄 수가 없게 되었으니.”
“후환을 남길 수는 없는 일이지.”
하수운이 슬쩍 힘을 써서 수성하는 수련자들을 도우려 했지만, 그 즉시 패엽과 가네이야 등이 나서서 그것을 막았다.
패엽은 거대한 곡도를 휘둘러 근원 에너지를 쏟아냈고, 가네이야는 검은 구름에서 번개를 불렀다.
곰비토와 라바바도 각기 근원 에너지를 응축해서 만든 창과 도끼를 카이테 일행을 향해 내던졌다.
카이테와 수쿠, 하수운은 성에 설치된 진법과 결계의 힘을 빌려서 패엽 등의 공격을 허공으로 튕겨냈다.
콰르르르릉! 쩌저저저정! 콰릉!
단 한 번의 충돌로 카이테의 성 주변은 엄청난 충격파가 뿌려졌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수련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으음.”
쓰러진 이들은 모두가 성 밖에 있는 공성측 수련자들.
패엽도 그 모습을 보고는 공격을 멈추었다.
이미 한 번의 공격으로 카이테와 수쿠, 하수운의 발목을 잡아 뒀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저들 셋 중에 누구도 수성을 돕기 위해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하나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 빈틈으로 패엽 등의 공격이 찌르고 들어갈 것이니.
“시간문제일 뿐이다 카이테. 어차피 너희에겐 승산이 없어.”
공성이 이어질수록 카이테의 성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곧 결계와 진법의 약화로 이어진다.
하위 수련자들의 피해만 감수하면 결국 카이테의 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패엽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 *
“카이테는 진옥을 어디에 뒀지?”
- 품에서 떼어 놓지 않았습니다.
“진옥을 얻자마자 흡수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쯧.”
- 대사부가 사백 년 전에 여섯 번째 진옥을 흡수할 때에 꼬박 33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카이테도 그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끌었던 거고요.
“한 사나흘이면 될 걸.”
도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그건 마스터께서 이미 융합의 경지를 바라볼 정도로 수련을 쌓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저는 마스터의 도움을 받고서도 꼬박 두 달이 걸렸습니다.
도현의 말에 곁에 있던 뮤-지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리윰 차원으로 넘어오고 고작 십여 년이 지났을 뿐인데, 뮤-지하는 벌써 대사부의 수련법으로 대사부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도현이 가진 근원과 기록에 대한 깨달음 덕분이었다.
근원과 거기에 새겨진 기록에 대한 이해가 대사부의 수련법을 익히는데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초인들의 싸움이라 뭐라도 배울 것이 있을까 했더니, 그냥 꽝인 거 같은데?”
- 대사부의 수련법을 얻은 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그 이상은 모두 고만고만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말이지.”
도현이 말끝을 흐리며 카이테의 성에서 시선을 돌려 한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이어진 산봉우리가 있는 쪽.
그곳에 초인 테트로의 아바타가 있었다.
리윰 차원에서는 자카트라고 불리는 초인이 그곳에 있었다.
“이번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저 놈이 의심스럽단 말이지.”
- 그런 말씀은 없으셨잖습니까 로드.
= 무슨 이유로 테트로의 아바타가 의심스럽다는 말씀이십니까?
에포르와 뮤-지하가 갑작스런 도현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내가 대사부의 수련법을 파헤치고 재정립하는데 걸린 시간이 고작 십여 년이었지.”
- 네, 로드.
“그런데 저 놈은 왜 저러고 있었을까? 테트로도 근원이나 기록에 대해서 나만큼은 알 텐데? 융합의 경지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니까.”
= 그야 그렇겠지만 테트로의 아바타인 자카트에겐 리테라 피스가 없지 않습니까.
“리테라 피스가 없어서 여전히 링크 경지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 리윰 차원에 떨어진 리테라 피스 중에서 자카트가 수련한 계열에 적합한 것이 없다면, 수련이 막힐 수밖에 없지요.
“그럼 이번 일을 벌인 것이 자카트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 아크 밖에 있는 테트로는 대사부의 수련법을 얻은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했을 수도 있습니다. 밖에서 대사부의 수련법을 연구하느라 이쪽에 신경을 덜 쓸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음, 하지만 밖에는 리테라 피스가 없는데?”
= 대신에 테트로는 융합 경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고, 그 경지라면 리테라 피스 대신에 쓸 근원이나 기록 따위는 어떻게든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긴 하네. 에포르.”
- 네, 로드.
“테트로가 아바타인 자카트와 의식 연결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
- 그렇습니다.
“그럼, 그 연결의 강도는 어때? 다른 초인들이 아바타와 연결하는 정도와 비슷해?”
- 제가 판단하기론 그렇습니다. 뮤-지하의 추측과 달리 테트로는 여전히 아바타인 자카트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내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군.
에포르의 말에 뮤-지하는 곧바로 그것을 인정했다.
에포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 놈이 더 의심스러운 거네?”
도현이 다시 멀리 산맥 쪽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 밖에서 수련법을 연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데, 리윰 차원에 집중하고 있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단순히 아바타를 통해서 대사부의 수련법을 익히는 정도는 의미가 없단 말이지. 그건 차라리 융합 경지를 활용할 수 있는 테트로가 직접 해 보는 것이 효율적이니까.”
- 그럼 자카트를 통해서 테트로가 노리는 것이 뭘까요 로드.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 진옥 혈사에 자카트가 관계되어 있다면 곧 이유가 드러나겠지.”
도현은 다시 시선을 돌려서 카이테의 성을 바라보았다.
서로 대치하고 있는 일곱 초인들은 여전했고, 성을 공격하는 쪽과 지키는 쪽의 하위 수련자들은 무수히 죽어 나가고 있었다.
“으음, 저거?”
그런데 도현의 눈에 뭔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 마스터, 무슨 일입니까?
뮤-지하가 도현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물었다.
“고작 저런 거였나?”
도현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카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마스터?
“전장을 잘 봐. 죽는 숫자에 비해서 사후세계로 들어가는 영혼이 부족해.”
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뻗어서 전장에서 산맥 쪽으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진 선은 지면을 따라서 산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아! 지하로 끌려들어간 영혼들이 있군요. 그리고 그게 저쪽 자카트가 있는 곳으로 흐르고 있고.
도현의 도움으로 뮤-지하도 영혼의 이동을 알아차렸는지 탄성을 질렀다.
“고작 이런 거였다니. 한심하군.”
도현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영혼을 얻기 위해서 일을 벌였다는 겁니까?
- 단순한 영혼이 아니겠지요?
뮤-지하와 에포르가 도현에게 물었다.
“리테라 피스를 흡수한 영혼들이야. 원래는 죽음과 동시에 리테라 피스가 생성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영혼이 리테라 피스를 품은 상태로 끌려가고 있으니까.”
= 원래는 리테라 피스를 흡수한 수련자가 죽게 되면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리테라 피스가 돋아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죽은 영혼이 품은 상태로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리테라 피스가 영혼에 녹아 있는 것이 맞긴 하지. 그런데 보통은 죽음 이후에 영혼이 그 몸에 잠시 머물다가 사후 세계로 끌려간단 말이지. 그리고 사후 세계는 이쪽 세상의 기록을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 리테라 피스가 죽은 이의 몸에서 돋아나게 되는 거군요? 그리고 간혹 리테라 피스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죽음 이후에 영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경우지.”
= 죽은 이와 가까운 사람 근처나, 미련이 남은 물건, 건물, 장소 등에서 리테라 피스가 나타나는 일이 그렇게 된 거군요?
“그런데 지금은 죽자마자 영혼을 끌고 가니까 리테라 피스도 함께 끌려가는 거지. 결국.”
= 이번 일은 리테라 피스를 수확하기 위해서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군요?
“맞아. 자카트가 지금까지 부족했던 리테라 피스를 이번에 긁어 모으기로 한 모양이야.”
뮤-지하의 추측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한 번 가 볼까? 갑자기 리테라 피스를 모으려는 이유도 궁금하고.”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훌쩍 허공을 찢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