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리윰 차원 대사부의 새로운 수련법
165. 리윰 차원 대사부의 새로운 수련법
“아주 간단한 제약만 걸어도 이렇게 상황이 좋아지는군.”
= 그러게 말입니다. 기록의 발현을 경우에 따라서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기록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니, 놀라운 성과입니다.
“정말 중요한 건, 링크를 이용해서 소환체를 서로 연결하는 방법으로 근원을 흉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근원을 창조한 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가?”
= 소환체를 링크로 연결해서 근원에 동화시킨 것처럼 만든 것이지, 새로 근원을 만든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게 제대로만 된다면 근원에 담을 수 있는 기록의 숫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된 거잖아. 그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 물론입니다. 이제 마스터께서는 리테라 피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모두 수습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다만 이게 카피만 아니라면 좋겠는데 말이지. 휴우.”
뮤-지하와 대화를 하며 한창 흥을 내던 도현이 갑자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은 소환체에 리테라 피스의 기록을 복사하여 담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기록의 충돌이나 반발을 조율하는 실험도 그 복사된 기록과 소환체를 이용했다.
그 말은 아직 리테라 피스에 담긴 원본 기록은 소환체에 담지도 않았고, 그것의 조율도 실험해보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 마스터께서 마음의 결정만 하시면 지금이라도 원본 기록을 이용한 실험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뮤-지하가 조심스럽게 도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도현의 결단을 바라는 기색이 은은하게 담겨 있었다.
“감이 안 좋아. 지금은 해 봐야 실패할 거라는 감이 오거든.”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소환체들이 기록을 조율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의식 공간까지야. 현실에 불러내면 곧바로 문제를 일으키지.”
= 하지만 마스터 그건 실험의 본질과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의 근원 기록과 충돌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록을 담은 소환체는 현실에 소환되면 현실 차원의 근원 기록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도현은 그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그건 기록의 조율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어차피 하나의 근원에 기록들을 조율해서 담는 경우, 그것은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것이 된다.
그러니 굳이 그걸 다른 차원에 꺼내서 근원들의 충돌을 일으킬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기록을 담은 소환체가 현실에 소환되어 일으킨 것이 실험의 본질과는 상관없다는 뮤-지하의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다.
“아, 나는 그냥 전에 차원 이동을 하다가 소멸된 아바타가 떠올라서 한 말이야. 솔직히 많이 놀랐잖아.”
= 차원 이동과 동시에 소멸해버린 그 아바타 말씀입니까?
뮤-지하도 그 일을 알고 있었다.
도현이 사고 능력을 지닌 소환체에 기록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 연구하는 동안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그 사이에 초인들의 아바타들도 나름 성장을 거듭했고, 결국 차원을 넘는 단계에 이른 아바타도 나왔다.
그리고 그런 성과를 이룩한 초인은 자신의 아바타가 이룬 성과를 자랑했다.
그 결과 그 아바타가 차원 이동을 할 때에 대부분의 초인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그 아바타가 차원을 넘는 순간 그대로 소멸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에포르 역시 그 일을 도현에게 보고하고, 아바타의 차원 이동까지 지켜보며 상황을 중계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차원 이동과 동시에 아바타가 폭죽처럼 터지며 소멸했으니 그 일이 한동안 초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 아바타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소멸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추측이나 설명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물론 도현은 그 소멸의 이유를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도현이 보기에 적어도 아바타의 주인은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차원을 이동하는 순간 그 아바타가 흡수했던 리테라 피스의 기록들 중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이 그쪽 차원의 근원 기록과 충돌을 일으켰고, 그것이 소멸로 이어졌다.
도현은 당시에 에포르의 상황 중계를 듣는 순간 그렇게 소멸의 이유를 짐작했다.
이미 자신도 소환체를 통해서 경험을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 차원의 근원에 담긴 기록과 충돌하는 기록을 가진 소환체는 현실에 소환되는 순간 소멸을 맞이한다.
만약 소환체가 가진 기록의 힘이 더 강했다면 차원의 근원에 문제가 생겼겠지만, 소환체는 카피된 기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건 그런 경험을 토대로 아크 시험장에서 리테라 피스를 흡수해서 강해진 이들은 차원 이동을 극히 조심해야 한다는 제약이 드러났다.
도현으로선 정말 횡재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차원 이동을 쉽게 할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이렇게 차원 이동을 못하고 막혀 있는 사이에 뭔가 훌쩍 앞서 가야 하는데 말이지.”
= 마스터께서는 차원 이동에 제약이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리테라 피스는 흡수하지 않으셨으니.
“그 선택, 그건 정말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은 일이긴 해. 하지만 나도 지금 당장은 다른 차원들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리테라 피스를 얻어 봐야 별 소용이 없단 말이지.”
= 그래도 소환체로 기록을 조율하게 하는 실험을 하느라 너무 오래 한 곳에 머물지 않았나 싶습니다. 리테라 피스를 더 얻어도 쓸모가 없다고 하시지만, 쉽게 얻을 수 있을 때에 부지런을 떨 필요는 있을 거 같습니다.
뮤-지하는 다른 아바타들의 성장에 쫓기는 심정이 생긴 듯 했다.
소멸하기는 했지만 아바타가 차원 이동에 성공한 후로는 차원 이동을 통해서 리테라 피스를 더 많이 확보하라고 권하고 있었다.
“그래, 소환체를 이용한 기록 조율도 어느 정도는 성과가 있긴 했지. 소환체를 링크로 묶어서 근원화 하는 발상도 나왔고.”
= ······.
“문제는 그 근원화를 위해서 원본 기록들을 써야 하는데, 그게 막혔단 말이지.”
= ······.
“알았다. 당장 무슨 수가 날 것 같지는 않으니 당분간은 또 리테라 피스 확보에 힘을 써 보자. 이제 됐냐?”
= 저야 항상 마스터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하하하.
“네가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해 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근원의 기록을 해석하거나 설계하는 네 능력도 많은 도움이 되는데, 너는 그걸 가볍게 여기더군.”
= 아크 시험장에 들어온 이후로는 왠지 활동적이 된 것 같긴 합니다.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성격이 조금 바뀐 모양입니다. 하하하.
다시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도현의 결정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뮤-지하가 밝은 표정으로 웃었다.
* * *
“여긴······.”
- 로드, 이곳은 테트로의 아바타가 있는 차원입니다.
도현이 탐사일지를 이용해 차원 회랑을 열고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왔다.
이동 직후 차원의 모습을 살피는데 곧바로 에포르의 조언이 전해졌다.
테트로.
과거 아크에 삼백육십 차원을 넣고 시험장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서 도현을 괴롭혔던 초인.
물론 그 시도는 도리어 테트로의 손해로 끝이 났지만, 분명 테트로는 도현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내가 이곳에 온 걸 테트로의 아바타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도현이 에포르에게 물었다.
- 로드, 테트로의 아바타는 아직 그 정도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음? 수준이 안 된다고?”
- 테트로의 아바타는 이제 겨우 초인의 경지에 오른 정도입니다. 아직 리테라 피스도 몇 개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도현은 테트로의 아바타가 생각보다 성장이 늦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초인들의 아바타는 대부분 초인의 경지 중에서도 링크의 경지에 가깝거나 링크의 경지를 앞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차원 이동으로 아바타가 소멸되는 상황을 거의 생중계나 다름없이 지켜본 후로는 차원 이동에 조심스러워서 링크에 성공한 아바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쨌건 그런 상황을 고려해도 테트로의 아바타는 성장이 너무 더뎠다.
- 이곳 차원에는 테트로의 아바타보다 더 높은 경지의 원주민이 여섯이나 있습니다.
“뭐라고? 초인이 여섯?”
도현은 에포르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차원에 아바타까지 포함하면 초인이 일곱이나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 아닙니다. 테트로의 아바타와 비슷하거나 조금 처지는 경지의 원주민이 넷이나 더 있습니다. 그러니 초인으로만 따지자면 열한 명이 있는 셈입니다.
에포르는 도현의 추측을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도현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그 열 한 명의 모습과 특징을 전송해 주었다.
“이 차원에 특별한 수련법이 있었군. 그게 리테라 피스의 흡수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어.”
도현은 에포르가 전해준 정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리테라 피스의 흡수에 맞춤한 수련법이라니.
= 마스터, 어떤 수련법입니까?
도현과 함께 차원을 넘은 뮤-지하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에 도현은 에포르에게 받은 정보를 그대로 뮤-지하의 머릿속으로 전해주었다.
= 리테라 피스에 담긴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와 동시에 그 안에 담긴 기록을 해석해 내는 수련법이라니, 어떻게 이런 것이?
뮤-지하도 도현이 전한 내용을 확인하고는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군, 이 수련법이 만들어진 것은 아크 시험장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야. 리테라 피스가 이곳 차원에 뿌려진 후에 그것을 흡수할 방법을 찾다가 수련법이 만들어졌군.”
도현이 머릿속의 정보를 차근차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 맞습니다. 그래서 그 수련법을 만들어 낸 사람이 지금 이곳 차원에서 가장 경지가 높습니다. 대사부라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래, 대사부.”
도현은 머릿속에 대사부의 정보를 떠올렸다.
아크 시험장이 만들어지고 벌써 천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대사부는 리테라 피스를 흡수할 수 있는 수련법을 만들기 전에도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경지에서 리테라 피스를 접하고 그 힘을 흡수하며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지고한 이치를 파악할 방법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 수련법을 제일 먼저 익혔고, 동시에 초인의 경지에 발을 디뎠다.
초인의 경지에 올랐으니 천 년 넘는 시간을 살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수련법을 대사부가 만들었다면 나머지는 모두 대사부의 제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랍니까?
도현이 대사부에 대해서 떠올리고 있는데 뮤-지하가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도현을 보며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도현이 들어온 이곳 차원의 상황이 함축되어 있었다.
대사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신이 창안한 수련법을 이곳 리윰 차원 전체에 퍼트렸다.
그리고 그 후로 리윰 차원에서는 리테라 피스에 대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아니 천 년의 세월동안 리테라 피스는 진옥(眞玉)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의 대상이 되어왔다.
=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 열한 명의 초인들 말입니다.
“그들이 왜?”
= 마음만 먹으면 리테라 피스를 모두 거둬들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럴 기미가 없으니까요.
“뮤는 감각적으로 핵심을 찌르는 재주가 있어. 하하하.”
뮤-지하의 질문에 도현은 크게 웃었다.
그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 대사부의 수련법에 의하면 진옥은 아무렇게나 흡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에포르가 끼어들었다.
“응? 에포르, 여기 수련법 알고 있어?”
- 물론입니다. 혹시 몰라서 수련법을 찾아 뒀습니다.
에포르가 시원하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