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렉아베트 차원을 떠나 새로운 차원으로
163. 렉아베트 차원을 떠나 새로운 차원으로
톨로미티를 처치한 후, 도현이 렉아베트 차원의 리테라 피스를 모두 모으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 뿐이었다.
마수들이나 아베트의 전사들은 리테라 피스를 모으려는 도현의 행동을 막을 힘이 없었다.
도현은 마수 전선을 계속 유지하며 마수와 아베트 종족으로부터 리테라 피스를 회수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도현의 걱정은 깊어졌다.
‘확실히 리테라 피스는 규격 외의 보물이야. 리테라 피스를 통해서 초인의 경지를 너무 쉽게 엿보는 것 같단 말이지.’
도현이 걱정하는 것은 리테라 피스가 그 소유자를 빠르게 성장시킨다는 점이었다.
재능만 있다면 리테라 피스를 통해서 차원 에너지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도현이나 다른 이들이 초인의 경지에 닿기 위해서 감수해야 했던 고된 시간들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마수의 왕, 톨로미티 이후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리테라 피스의 기록을 이용하는 단계에 오른 마수나 전사가 여럿 나왔다.
물론 그런 존재들도 모두 도현이나 뮤-지하에게 리테라 피스를 빼앗겼지만, 중요한 것은 리테라 피스를 통한 성장이 과하게 빠르다는 것.
‘렉아베트에는 이제 리테라 피스가 남아 있지 않겠지. 누군가 숨어서 수련을 하고 있는데 나나 에포르가 찾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것도 어쩔 수 없고.’
한두 개의 리테라 피스 때문에 렉아베트 차원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제는 다른 차원으로 리테라 피스 수집의 범위를 넓혀야 할 때.
‘그러기 위해서는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회랑을 열어야겠지. 이곳에도 차원 회랑의 시스템이 적용될지 모르지만.’
원래 아크 영역의 시험장 안에 있는 삼백육십 개의 차원은 모두 다른 초인들이 링크로 묶었던 곳이었다.
그런 차원을 아크 영역에 넣어 시험장을 만들면서 링크가 모두 끊긴 상태.
이런 상황에서 시험 참가자들은 어떻게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차원 회랑을 여는 거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차원 회랑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는 자격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게 뭐든.’
무작위로 차원 회랑을 열어주는 탐사일지 같은 것도 차원 회랑 시스템이 존재할 때에나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지금으로선 차원 회랑 시스템이 이곳 아크 영역의 시험장 안에서도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시험 참가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차원 이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야 근원 에너지를 느끼고 근원의 기록을 살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력으로 차원 이동 통로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그나마 링크, 혹은 융합의 경지는 되어야 시도해 볼 방법들이 있을 것이다.
도현은 지금 경지로는 자력으로 차원을 넘을 방법이 없었다.
‘믿을 건 너 뿐이다.’
도현은 흑영 하나를 소환하고 그 흑영을 통해서 의식 공간을 열었다.
네임드 마수 호르니어에게 얻은 리테라 피스를 보관하고 있는 바로 그 의식 공간.
아크 영역의 시험장과 외부에 있는 본체를 연결하는 바로 그 공간이었다.
- 로드.
도현이 흑영을 통해서 의식 공간을 열자, 곧바로 에포르가 반응했다.
흑영이 여는 의식 공간은 아크 밖에 있는 도현의 의식 공간과 연결된다.
그러니 도현의 의식 공간에 살고 있는 에포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당연했다.
‘탐사일지 준비 됐지?’
도현이 에포르에게 물었다.
- 네, 로드. 준비해 뒀습니다.
‘그럼 곧바로 흑영이 연 의식 공간에 넣어 줘.’
- 네, 로드.
에포르는 대답과 동시에 흑영이 연 의식 공간으로 도현의 탐사일지를 옮겼다.
그것을 확인한 도현은 곧바로 히자르의 몸으로 흑영에게서 탐사 일지를 건네받고 공간을 닫았다.
아크 영역의 시험장과 외부가 연결되는 것을 다른 초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한 것이다.
“후우, 이게 되어야 할 텐데.”
히자르, 도현은 흑영에게 받은 탐사일지를 손에 들고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탐사일지는 과거 엠파로의 학술원에서 받았던 아이템이었다.
교류가 진행되지 않은 하위 차원으로 차원 회랑을 열어줄 수 있으며, 원할 때에는 언제든 엠파로 차원과 연결되는 차원 회랑을 열 수 있었다.
물론 도현이 엠파로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먼 차원까지 유랑을 한 후로는 엠파로와 연결된 차원 회랑은 열 수 없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차원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하급 차원으로 회랑을 여는 기능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도현이 차원을 떠돌면서도 때때로 등록되지 않은 하급 차원으로 들어가 근원을 연구하거나 혹은 차원 자체를 링크해서 아크에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 시험장에 차원 회랑 시스템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도현이 지금까지 여러 차원을 여행하며 경험한 차원 회랑 시스템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도현은 차원 회랑 시스템에 대한 기록을 극히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도 차원 회랑 자체에서 파악한 것도 아니고, 차원 회랑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여러 도구들을 통해서 겉핥기만 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차원 회랑 시스템의 격이 높다는 뜻.
그러니 아크 마스터의 아크 영역으로 만든 시험장이라고 차원 시스템을 피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이제 확인할 수 있겠지.’
도현은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탐사일지를 펼쳐서 무작위로 차원 회랑을 열었다.
그리고!
지이이이잉!
“역시!”
도현이 바짝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탐사일지를 사용하는 순간, 차원 회랑의 입구가 생겨났다.
- 축하드립니다. 로드.
에포르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곧바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 마스터, 혼자 가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리고 뮤-지하 역시 차원 회랑이 열린 것을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도현을 찾았다.
‘당연히 뮤도 함께 가야지. 그런데 에포르.’
- 네, 로드.
‘설마 지금 이곳 렉아베트를 지켜보고 있는 초인은 없겠지?’
- 죄송합니다 로드. 그건 저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아크 시험장에 아바타를 들여보낸 초인들은 아바타를 통해서 뭔가를 하는 것 이외에는 시험장에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관찰.
문제는 그 관찰을 아바타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에포르처럼 원하는 곳을 골라서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자신의 아바타를 움직이려면 함부로 다른 곳에 정신을 팔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차원을 살피는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혹시라도 히자르가 도현의 분신인 것을 알아차리고 감시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외부에서 가지고 온 탐사일지로 차원 회랑을 열었다.
그 모습을 들키기라도 했으면 도현에 대한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 그래도 로드께서 차원 회랑 안으로 들어가시면 어떤 차원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으니 운이 나쁘지 않다면 얼마간 시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 마스터, 지금 마스터를 감시하는 초인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있다 해도 에포르의 말처럼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면 마스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말입니다.
에포르와 뮤-지하가 번갈아가며 도현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자, 일단 차원을 넘어가보자. 가서 수련을 좀 더 하기로 하고, 그 사이에 뮤와 에포르는 그쪽 차원의 정보를 파악하면 되겠지.’
- 맡겨 주십시오 로드.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스터.
‘자, 그럼 가 보자.’
- 로드, 곧바로 가시는 겁니까? 아베트 종족들에게 인사는······.
‘해 줄 만큼 해 줬으니 따로 인사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 맞습니다. 지금 마수들의 전력은 과거 마스터께서 오시기 전에 비해서 1할도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아베트 종족이 마수를 몰아내고 차원의 주력이 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마수의 왕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정예 마수나 네임드 마수도 별로 없으니 아베트 종족이 위험할 일은 없겠지.’
= 아베트 종족의 전사 전력도 줄어들긴 했지만 마수들이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약소한 정도지요.
뮤-지하가 아베트의 전사들로부터 리테라 피스를 빼앗을 때, 굳이 목숨을 취하려 하지 않은 덕분이다.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페라 피스를 빼앗기고도 목숨을 부지한 전사들도 제법 있었다.
그에 비해서 마수 쪽은 도현이 아무런 배려 없이 쓸고 다녔고, 리테라 피스를 지닌 경우도 많아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다.
‘이제 내가 사라지고 마수들의 세력이 크게 약화된 것이 알려지면 그것이 내가 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되겠지. 그리고 결국 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마수들과 싸우다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 위대한 전사 히자르의 이름이 아베트 종족의 영웅으로 기록 되겠군요.
=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곧바로 마스터께 달려가겠습니다.
‘그래, 와서 함께 한바탕 연극이라도 하면 좋겠네. 서로 싸우는 척 하다가 한순간 사라지면.’
= 크하하. 재미있겠습니다 마스터. 제가 금방 가겠습니다.
* * *
도현의 계획대로 위대한 대전사 히자르는 아베트 종족의 영웅으로 남았다.
그 날, 도현은 뮤-지하와 엄청난 전투를 치렀고, 그 모습을 마수 전선의 많은 이들이 지켜봤다.
그리고 마지막은 히자르가 뮤-지하와 공멸하며 갈라진 공간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끝났다.
이후 아베트 종족은 마수들을 밀어내고 렉아베트 차원의 절반 이상을 확보했다.
마음 같아서야 마수를 모두 전멸시키고 싶었지만 넓어진 땅만큼 아베트 종족의 인구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부족 단위의 생활 문화에서 오는 마찰도 늘어나, 종족의 화합도 느슨해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히자르가 사라진 렉아베트 차원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마수와 아베트 종족이 대치하는 형태가 고착되었다.
“쯧, 좀 잘 하지. 결국 화근을 뿌리 뽑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났군.”
에포르에게 렉아베트의 상황을 전해들은 도현은 혀를 차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떠나온 차원이고 히자르의 몸을 빌린 값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치른 도현이라 크게 마음을 쓰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쪽 차원에서 리테라 피스를 확보하는 것이 더 급했다.
= 마스터!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서른 개의 리테라 피스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뮤-지하가 허공을 찢고 모습을 드러냈다.
뮤-지하는 렉아베트로 들어와 성장시킨 4미터 체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
- 리테라 피스의 공명을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대충 열에 여덟은 회수한 것 같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참 운이 좋았지.”
도현은 뮤-지하가 내미는 상자를 받아들며 웃었다.
지금 도현이 있는 곳은 과거 도현이 링크했던 차원이었다.
이곳 아크 영역 시험장에는 도현이 링크했던 차원이 열세 개나 포함되어 있는데, 렉아베트에서 연 차원 회랑이 그 중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도현이 링크한 차원들은 등급이 낮은 하급이기도 했지만, 특별한 곳들이기도 했다.
도현은 될 수 있으면 근원의 기록이 무척 간단한 차원을 링크했었다.
그 말은 도현이 링크한 차원에는 생명체가 없거나 있더라도 지성체는 탄생하지 않은 차원이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하필 도현이 차원 회랑으로 도착한 차원은 생명체가 없는 차원이었다.
생명체가 없으니 당연히 곳곳에 흩어져 있는 리테라 피스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상태.
그것을 알게 된 후, 도현은 수련을 하고, 뮤-지하는 흩어져 있는 리테라 피스를 수집하는 역할 분담이 시작되었다.
뮤-지하 혼자서 리테라 피스를 수집해 와도, 도현이 그것을 파악하고 분류하는 것이 늦을 정도니 굳이 도현까지 수집에 나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한 차원의 리테라 피스를 이렇게 쉽게 독차지 할 수 있다니 말이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