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뮤-지하를 찾다
161. 뮤-지하를 찾다
헤카싸림의 전사 히자르.
마수 전선에 파견한 전사가 하나뿐인 소수 부족인 헤카싸림.
그곳에서 온 전사가 아파카 협곡의 네임드 마수인 호르니어를 잡았다.
그리고 그 공을 욕심내던 수타림 부족의 대전사 헥카몰이 그를 따르는 부족 전사들과 함께 몰락했다.
이 이야기가 렉아베트 차원의 아베트 종족 전체를 뒤흔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베트 종족은 마수들의 공세에 풍전등화 같은 신세.
언제든 마수들이 일거에 들이치면 아베트 종족 전체가 멸족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중에 출신 부족을 위해서 다른 부족의 전사들을 배척하거나 위험에 빠트린 행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었다.
지금은 부족이 아니라 아베트 종족 전체가 하나가 되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때.
그런 흐름을 거역한 헥카몰과 그 휘하 전사들의 죄는 무거웠다.
그리고 속속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대 부족들의 횡포와 갑질.
아베트 종족 전체가 한동안 뒤숭숭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중에 슬그머니 헤카싸림의 전사 히자르의 이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가 싶었다.
그런데 히자르의 이름은 그 위업과 더불어서 수시로 아베트 종족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중급 전사 히자르가 새로운 소환 투체를 선보이며 최상급 마수를 사냥했다.”
“히자르의 소환 투제 대지의 전사 부대가 네임드 마수를 사냥했다.”
“히자르가 대지의 전사 이후로 궁수 투체를 소환했다. 그는 그의 소환 투체들과 함께 마수 전선을 순회하며 네임드 마수를 사냥하고 있다.”
“히자르가 두 달 동안 마수들의 영역에서 사냥하고 돌아왔다.”
“전사 히자르가 대전사로 인정받았다. 모든 대전사들이 그를 인정했다.”
“대전사 히자르가 소환 투체 부대를 마수 전선 곳곳으로 파견보냈다. 그 수가 수백에 이른다.”
“대전사 히자르의 소환 투체 부대는 다른 도움 없이 네임드 마수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런데 그런 소환 투체 부대를 수백 개나 소환했다.”
“히자르에게는 대전사가 아닌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다. 어떤 대전사도 히자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히자르의 명성은 높아졌다.
반대급부로 아베트 종족 사회에서 헤카싸림 부족의 위상이 더없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아베트 종족의 그 누구도 히자르를 앞을 막아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극적인 변화 속에서도 도현은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 이유는 도현이 찾지 못한 리테라 피스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수들이 흡수에 성공한 경우도 문제지만, 아베트 종족이 소유하고 있는 것도 문제야.’
- 단순히 소유만이라면 회수하면 될 테지만, 리테라 피스에 새겨진 기록을 조금이라도 활용하고 있는 경우는 더 문제입니다.
‘그러게, 영력을 이용해서 리테라 피스의 기록을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그래봐야 기록의 극히 일부를 읽어낸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마수와 아베트 종족 양쪽에서 리테라 피스를 사용하는 이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수는 잡아 죽이면 되지만 아베트 종족 중에서 리테라 피스를 사용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차피 모든 리테라 피스를 로드께 집중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아베트 종족이 가진 것도 회수를 해야지요.
‘그건 그렇다만.’
- 그와 관련해서 마침 로드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음 좋은 소식? 그게 뭐지?’
근래에 좀처럼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자연스럽게 의외란 표정이 지어졌다.
- 드디어 뮤-지하를 찾았습니다.
‘음? 뮤?’
- 그렇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마수들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그래?’
아베트 종족의 영역은 이미 거의 탐색이 끝난 상황이었다.
에포르는 물론이고 도현의 소환체들이 아베트 종족 영역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런데도 뮤-지하의 흔적을 찾지 못했기에 도현과 에포르는 뮤-지하가 마수들의 영역에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포르가 결국 뮤-지하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뮤는 지금 뭘 하고 있는데?’
- 마수 영역에서 고생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고생?’
- 렉아베트 차원으로 들어오면서 본래의 능력을 거의 모두 잃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 초인의 능력을 가진 상태로는 시험장에 들어올 수 없었던 거잖아.’
- 원래 예상 하기로 뮤-지하는 초인의 경지에서 한 발 물러난 정도로 렉아베트 차원에 들어올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하급 마수의 새끼 정도 수준까지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그런 정도나?!’
도현은 뮤-지하의 출발이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뮤-지하의 생존부터 걱정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
- 거기다가 하필 아베트 종족의 영역과는 정 반대쪽에 떨어졌고, 그곳은 고위 마수들이 많은 곳이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을 겁니다.
‘고생을 많이 했겠군.’
- 그래도 초인의 경지에 올랐던 경험과 지식이 있어서 어떻게든 상황을 극복해 내긴 한 모양입니다. 이번에 마수의 왕들 중에 하나를 제압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습니다.
‘마수들의 왕이 되었다고?’
마수들의 왕은 아베트 종족이 마수들에게 붙인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 그렇게 큰 변화가 없었다면 저도 아직 뮤-지하를 찾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의 뮤-지하입니다.
에포르는 도현의 의식에 뮤-지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래 용인족이었던 기본 바탕은 그대로였지만 덩치가 두 배 이상 커졌다.
신장이 4미터에 가깝고 피부의 비늘이나 머리의 뿔도 이전보다 크고 사나운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징을 박은 것처럼 변한 검은 비늘들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음, 리테라 피스도 제법 흡수를 한 모양이지?’
도현은 뮤-지하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확신했다.
지금 에포르가 보여주는 뮤-지하의 모습에 기록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 다수의 리테라 피스를 흡수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저 뿔이나 비늘에 근원의 기록이 가득 새겨져 있는데?’
- 그렇습니까?
‘그래. 아마도 리테라 피스를 흡수해서 몸에 적용하면서 생긴 부작용인 모양이야. 기록이 피부와 뿔에 문양처럼 새겨진 건.’
- 그렇군요. 저는 봐도 모르겠습니다만.
‘너는 기록의 원형만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 저건 몸에 적용되면서 변형된 거라서 그래.’
에포르도 기록을 읽을 수 있고, 그 중에서 저장된 것과 같은 패턴의 기록은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은 근원에 새겨진 기록 자체일 때에만 가능할 뿐,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는 기록들은 아직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뮤-지하의 경우처럼 기록을 몸에 적용해서 변형시킨 경우엔 더더욱 에포르가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에포르 네가 뮤에게 연락을 할 수는 없나?’
- 죄송합니다. 아크 실험장 안쪽에 간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관찰 밖에 없습니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니까 기죽을 거 없다.’
- 감사합니다 로드.
‘어쨌거나 뮤를 찾았으니 소환체를 보내서 소통을 좀 해야겠군.’
-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어차피 내가 필요한 것은 리테라 피스잖아. 마수들 쪽의 정보도 좀 얻고, 아베트 종족의 전사들이 가진 것도 빼앗아야지.’
- 그럼······.
‘역할을 바꾸는 거야. 마수들은 내가 공략하고, 아베트 종족의 전사들은 뮤에게 맡기는 거지.’
- 뮤-지하에게 아베트 종족 전사들이 가진 리테라 피스를 모으게 하시겠다는 거군요?
‘아무래도 내가 아베트 종족을 공격하는 것은 모양새가 안 좋잖아.’
- 네, 알겠습니다. 그럼 뮤-지하가 있는 곳까지 이동 경로를 표시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 동안 렉아베트 차원의 지도가 거의 완성되어 이제는 제대로 된 길안내가 가능한 에포르였다.
도현은 그런 에포르에게 렉아베트 차원에서 소환체들을 움직이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었다.
* * *
도현이 처음으로 얻었던 리테라 피스는 아크 실험장 밖과 연결되는 공간에 그대로 들어 있다.
그리고 그 후에 수타림 부족의 라페올에게 얻은 리테라 피스가 도현이 처음으로 활용한 리테라 피스였다.
그때 얻었던 리테라 피스 기록의 효과는 견고함.
도현은 대상의 내구성을 높여주는 그 기록을 일곱 성을 구현중이던 의식 공간에 적용했고, 그 후로 도현이 소환하는 소환체들은 엄청난 내구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렉아베트 차원의 마수들 중에서 도현을 상대할 수 있는 마수는 거의 없게 되었었다.
리테라 피스의 기록이 가진 힘은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그 뒤로 도현이 히자르의 몸으로 명성을 쌓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 마스터!
뮤-지하는 흑영이 자신의 눈앞에 등장하자 감격한 목소리로 도현을 불렀다.
“오랜만이다. 에포르 말로는 그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고?”
이전보다 일취월장한 덕분에 이제는 흑영을 통해서 의사 소통도 가능해진 도현이 뮤-지하를 치하했다.
=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마스터를 찾아갔어야 하는데,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괜찮아. 이곳은 마수의 영역에서도 고등급의 마수들이 제일 많은 곳이잖아. 마수의 왕들도 여럿 있는 곳이고.”
그런 곳이다보니 뮤-지하가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은 이해해 줘야 했다.
= 먼저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도현이 뮤-지하의 고생을 짐작하며 달래주자, 뮤-지하가 허공에서 공간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음? 설마 리테라 피스?”
도현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얻은 리테라 피스 전부입니다.
“전부라고?”
= 저는 리테라 피스를 흡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리테라 피스의 기록을 카피해서 제 몸에 적용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만약 리테라 피스를 흡수했다면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굳이 그걸 모아두기만 했다는 거냐?”
= 리테라 피스는 마스터의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취하게 되면 나중에 마스터께 돌려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이미 수천, 수만 개의 조각으로 흩어진 리테라 피스다. 그 중에 몇 개를 네가 취한다고 문제될 것이 있을까?”
= 그렇다고 해도 마스터의 종복인 저로선 마땅히 삼가야 할 일이었습니다.
“으음. 하하하. 기분이 묘하구나.”
= 마스터께서 저를 어찌 생각하시든, 제 영혼을 마스터께 맡긴 후로, 저는 마스터께 충실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일이야.”
영혼의 금제를 걸어 수하로 받아들인 뮤-지하였지만 지금처럼 그 의미가 깊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도현은 뮤-지하를 보며 묘한 감격을 떨치지 못했다.
= 사실 굳이 리테라 피스를 직접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때, 뮤-지하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음? 그건 무슨 소리냐?”
= 기록을 카피해서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러 기록들 중에서 쓸모가 있는 것들만 골라서 몸에 새겨 넣었지만 말입니다.
“물론 근원의 기록이라는 것이 그만한 효과가 있기는 하다만.”
도현도 리테라 피스에 새겨진 기록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초기에 견고함이란 하나의 기록만 적용한 흑영으로 고위 마수들을 거침없이 사냥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음?”
= 리테라 피스가 얼마나 많은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수라······.”
= 저는 아크 실험장에 들어온 아바타들만 경계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인들의 아바타 외에도 경계해야 할 존재들이 생길 거라는 말이구나?”
=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곳 렉아베트 차원에도 이미 그런 존재가 태어난 것 같습니다.
“뭐? 아니 어디에? 누가?”
= 마수의 왕들 중에 하나가 리테라 피스를 흡수하고, 그 기록까지 어느 정도 깨우친 듯 보입니다.
“그런 놈이 있다고?”
=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의 저로서는 승산이 없는 상대입니다.
“으음.”
= 마스터의 생각보다 리테라 피스는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차이가 크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건 좀 곤란한데? 나도 아직은 리테리 피스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도현은 리테라 피스를 흡수하고 그 기록까지 깨우친 마수의 왕이 있다는 말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나가야 할 과정일 뿐.
이곳 렉아베트는 아크 시험장의 삼백육십 분의 일에 불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