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그럼 아예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것은 어떨까?
157. 그럼 아예 실시간 방송을 하는 것은 어떨까?
“호르니어를 잡았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호르니어를 잡다니?”
하세르는 인지부조화를 느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분명 듣기는 했는데 이해는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둥지에서 쉬고 있던 호르니어를 잡았다는 말입니다.”
“누가? 히자르 자네가?”
“그렇습니다.”
“설마 호르니어의 둥지에 소환 투체를 보내서 사냥했다는 이야긴가?”
“확인해 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호르니어의 둥지는 이미 알려져 있으니.”
“허허,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세르는 갑자기 찾아와 호르니어를 사냥했다고 말하는 히자르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히자르의 말대로 호르니어의 둥지에서 확인을 해 보면 될 일이긴 하다.
하지만 확인을 위해서 호르니어의 둥지까지 사람을 보내는 것이 문제였다.
그곳까지 무사히 다녀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하세르보다 상급자여야 했다.
실제로 하세르는 호르니어의 둥지까지 무사히 다녀올 실력이 되지 못했다.
“호르니어에 대해서 묻더니 결국 뭔가 하긴 한 모양이군.”
하세르는 잘못을 탓하는 눈빛으로 히자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환 투체의 유지 범위가 늘어서 시험삼아 호르니어의 둥지로 보내 봤습니다. 원래는 그냥 살펴만 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호르니어가 각성의 최후 단계에 있었습니다.”
“뭐라? 각성?”
“그렇습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며 피부의 투명한 붉은 색이 정점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공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관통 효과를 극대화 한 창으로 기습을 가하고, 그 후 각성 실패로 타격을 입은 호르니어를 오랜 시간 공격해서 결국 쓰러뜨렸습니다.”
“으음. 그게 정말이라면······.”
“호르니어의 사체에서 부산물을 취할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호르니어의 죽음을 알지 못하니 마수들도 그 사체를 탐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확인만 하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으니······.”
“상급 지휘부에 보고를 해서 지휘 명령을 받아 주십시오.”
히자르는 강한 어조로 하세르에게 요구했다.
어차피 호르니어에 대한 문제를 하세르가 혼자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하세르가 지휘 계통을 따라서 상급 지휘관에게 보고를 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끄응, 알았다. 그렇게 하지.”
각 전사와 그 전사의 부대가 담당하고 있는 구역에 대한 일이라면 어느 정도 독립적인 작전권이 있지만, 지금처럼 여러 부대의 구역과 관련된 일이라면 보고를 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잘못된 보고를 한다면 그 책임이 무겁겠지만, 하세르는 히자르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히자르가 거짓을 말한 것을 보고한 것과, 사실을 말했는데 보고하지 않은 것의 파급력 차이가 워낙 컸으니까.
* * *
“이게 무슨 소리야? 호르니어가 죽었어?”
“그렇다고 합니다.”
“정말 죽었다고? 얼마 전부터 기운이 줄어들어서 무슨 일있가 했는데 죽었다고? 그게 이틀 전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거야?”
“하급 전사 하나가 소환 투체를 이용해서 호르니어의 둥지를 정탐하던 중에 기습을 했다고 합니다.”
“기습?”
“호르니어가 뭔가 엄청난 각성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각성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기습을 했다고 합니다.”
“각성의 정점에 기습.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단번에 죽이지 못했다면 하급 전사가 호르니어를 상대할 수는 없었을 텐데?”
“정확한 것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첫 타격 이후에 오랜시간 접전을 벌여서 끝내 주살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확인은?”
“지금 투입할 임시 부대를 꾸리는 중입니다.”
“그 놈도 불러!”
“호르니어를 잡았다는 하급 전사 말입니까?”
“그 놈이야 당연히 불러야지.”
“그럼······.”
“라페올, 그 놈도 부르라고!”
“아, 알겠습니다.”
대전사이며 아파카 협곡 전선의 사령관인 헥카몰의 명령을 이해한 부관이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며 대답했다.
라페올은 헥카몰의 조카였다.
헥카몰은 마수 사냥에 라페올을 데리고 다니며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곤 했다.
이틀 전에도 상급 마수 토벌에 라페올을 데리고 가서 마지막으로 숨통을 끊게 해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묘한 기운을 담고 있는 비늘을 라페올에게 전리품으로 분배해 주기도 했었다.
‘같은 부족, 거기에 조카라고 너무 챙기네.’
은근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전사가 대놓고 후계자로 키우겠다고 챙기는 경우라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대전사 정도 되면 그만한 월권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을 권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틀 전이면 상급 마수 사냥을 갔을 때로군?”
문득 헥카몰이 뭔가 알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부관이 눈치껏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그랬던 거군. 마침 내가 호르니어에 대한 감시를 늦추고 있던 때라서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거였어.”
“······.”
호르니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헥카몰의 부실이 드러나게 된다.
아파카 협곡의 가장 큰 위협인 호르니어를 감시하고 유사시 호르니어의 진출을 막아야 할 책임이 헥카몰에게 있었다.
그것이 아파카 협곡 사령관인 헥카몰이 이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그 호르니어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헥카몰은 자신의 임무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지금 헥카몰은 은근슬쩍 면죄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부대를 편성하고, 그 지휘는 내가 맡는다.”
“사령관께서 직접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호르니어와 관련된 문젠데, 내가 아니면 누가?”
“그, 그건······.”
“만약 호르니어가 살아 있다면 확인을 위해 들어가는 부대가 전멸할 수도 있어. 안 그래?”
“하지만 대전사님께서 호르니어의 기척을 살펴보시면······.”
“후우, 그게 안 되니까 하는 말이잖아!”
부관의 말에 헥카몰이 고함을 질렀다.
상급 마수를 토벌하고 돌아온 후로 호르니어의 기척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헥카몰의 큰 실책이지만 지금껏 그걸 숨기고 있었던 것인데, 생각지도 못한 호르니어의 토벌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헥카몰로선 많이 꼬여버린 상황이었다.
“호르니어의 토벌이 사실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거짓이면 이번에 들어가는 부대가 위험할 거야. 그러니 내가 직접 부대를 이끌겠다는 거고.”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아파카 협곡 전선에서 헥카몰 사령관의 결정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부관 역시 헥카몰의 결정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알았다는 대답 이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 *
“뭐라? 히자르란 놈이 참가를 하지 않아?”
헥카몰은 호르니어 사살을 확인하기 위한 부대를 점검하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렇습니다. 대신에 호르니어를 사냥할 때 쓴 투체를 부대에 참가시킨다고 했습니다.”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하겠다는 거냐!”
헥카몰은 하급 전사 따위가 자신의 명령을 거역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사령관 각하. 사역 가능한 소환 투체의 경우 그 소환자인 전사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소환 투체에 비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소환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헥카몰 앞에 나선 것은 히자르 대신 참가한 하세르였다.
“뭐?”
“굳이 히자르 전사가 위험한 곳에 동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령관 각하께서는 지금 당연한 일에 노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이놈이!”
돌려가는 것 없이 직접적으로 찌르는 하세르의 지적에 헥카몰은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다.
하지만 헥카몰은 끝내 하세르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지 못했다.
비록 중급 전사에 겨우 발을 디딘 하세르였지만 그의 출신 부족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네 말이 맞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히자르라는 놈이 호르니어를 사살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다. 그 주장이 옳다면 무엇이 두려워서 꽁꽁 숨는단 말이냐? 설마 여기 있는 전사들이 호르니어도 없는 상황에서 제 놈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냐?”
“그 속이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관례적으로 사역 가능한 소환체를 운용하는 경우 투체를 소환자 대역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끄응.”
하세르는 원론적인 주장만 내세웠고, 헥카몰은 그 말에 허점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헥카몰은 하세르 뒤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흑영을 노려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투체 뒤에만 숨어 있어서 어찌 제대로 된 전사라고 할 수 있을까. 쯧.”
히자르에게 하는 말이지만, 그 말에 몇몇 전사들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사역 가능한 소환 투체는 활용도가 높아서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헥카몰이 그런 보편적인 인식을 깨트리며 엉뚱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령관각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어차피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놈이 아닙니까.”
그런 중에 헥카몰과 닮은 젊은 전사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헥카몰을 달랬다.
“크음. 알았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출발하자.”
헥카몰은 조카인 라페올이 나서자 못이기는 척 헛기침을 하며 부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부대의 제일 뒤에 흑영이 조용히 뒤따라 갔다.
‘감이 안 좋아. 쎄하단 말이지.’
그리고 흑영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도현은 헥카몰의 행동이 뭔가 틀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헥카몰이 자신의 실책을 덮을 생각인 모양입니다.
에포르도 헥카몰의 수작을 짐작한 듯이 그렇게 말했다.
‘부대원 절반이 수타림 부족의 놈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런데 내가 흑영을 통해서 상황을 지켜볼 텐데, 어쩌려는 걸까?’
- 로드께서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사령관과 그 수족들의 주장을 이기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증거가 없을 때의 일이지. 아, 여긴 블박 같은 개념이 없는 곳이지?’
영력을 이용해서 도구를 만들거나 신체를 강화하거나, 소환체를 불러내는 등의 비기가 발달한 아베트 종족이지만 전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비기는 거의 사장된 상태였다.
그래서 영상과 음성을 저장하는 따위의 비기는 전해지지 않았다.
‘사물이나 장소에서 벌어진 일을 되살리는 비기는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도 흔하진 않지. 그러니 결국 수가 많은 쪽이 입을 맞추면 그게 사실이 될 가능성이 높지.’
- 분명히 호르니어가 살아 있었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수타림 부족 이외엔 생존자가 없겠지요.
‘다 죽이고 그 책임을 호르니어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리고 결국 호르니어는 헥카몰이 잡았다고 하고? 겸사겸사 나 역시 허위 보고로 사망자가 나오게 한 책임을 묻겠지?’
- 너무 빤히 보이는 수작입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또 그대로 인정될 수밖에 없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의심이 되더라도 대전사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고, 수타림이라는 거대 부족이 연관된 일이니 그렇게 되겠지. 하여간 이런 부조리는 어딜 가나 존재한단 말이지.’
- 그래서 간혹 로드같은 분이 나서서 시원하게 사이다 한 병 터트려 주면 또 그게 사람들의 속을 트여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런 의미에서 증거 수집을 확실하게 해 볼까? 아니, 이참에 호르니어 사살을 확인하는 과정을 병사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흑영을 통해서 상황을 영상으로 남길 생각을 하던 도현은 문득, 작전 전체를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즉시 부대의 연병장 단상 위에 호르니어 사살 확인 작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화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렉아베트에서 역사 이래 최초로 마법을 활용한 실시간 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