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마수 전선의 전사를 뽑기 위한 시험
153. 마수 전선의 전사를 뽑기 위한 시험
“사부님!”
“벌써 이렇게 나와도 되는 거냐?”
“괜찮습니다. 이제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시험을 받을 정도는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시험.”
도현의 말에 바트란의 얼굴은 썩은 사과를 씹은 듯이 일그러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시험을 통과할 겁니다.”
“그게······. 가능하겠느냐?”
아직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제자에게 물어볼 말은 아니었다.
대안이 있었다면 히자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마수 전선으로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헤카싸림 부족에는 히자르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지금 새로 키우고 있는 후보들은 고작해야 훈련 기간이 몇 년 되지도 않는다.
그런 아이들로는 절대 시험을 통과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헤카싸림은 무조건 노예 부족이 될 수밖에 없다.
“히자르, 내가 가르친 것은 강건한 육체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을 잃고 3년을 누워 있었던 히자르의 육체는 일반인만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다.
그런 몸으로는 바트란의 비기를 쓸 수 없었다.
후우우우웅!
“대신에 영력이 있지 않습니까. 3년의 시간을 잃은 대신에 제법 강대한 영력을 얻었습니다.”
걱정하는 바트란에 히자르가 영력을 끌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히자르의 몸을 감싸며 일렁이는 영력은 제법 강건했다.
그것만은 바트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투체를 만든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바트란의 비기는 영력으로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방식.
그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히자르의 육체 또한 강건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걱정하기 마십시오. 이걸 보십시오.”
도현이 다시 바트란의 눈앞에 영력으로 이용한 투체를 만들어 보였다.
도현이 만들어낸 투체는 바트란의 비기를 따라 만든 단검 한 쌍.
바트란은 도현이 단검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살짝 실망했다가, 구현된 단검의 수준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영력이 강하게 깃들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은 단검이 사용자에게 특별한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힘을 늘려주고 반사신경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도현이 바트란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이 그렇게 설명했다.
“그, 그럼 네 약해진 몸을 어느 정도는 보완해 줄 수 있겠구나.”
바트란의 눈빛에 파견 전사 시험을 통과할 수 있으리란 희망이 깃들었다.
도현은 그런 바트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음?”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놀라는 바트란의 눈앞에 검은색의 그림자 인간을 만들어냈다.
아직은 외형이 두루뭉술한 상태지만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덩어리였다.
“허엇? 이, 이게 뭐냐? 이것 역시 투체란 말이냐?”
바트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흑영과 히자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소환형 투체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비기를 어디에서 배웠단 말이냐?!”
소환형 투체란 말에 바트란은 당장이라도 히자르를 잡아먹을 듯이 흥분하며 물었다.
“3년 만에 깨어나서 부족의 미래와 제 미래를 생각하니 암울하기만 했습니다. 모두들 저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습니까.”
“그래, 그랬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부족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아니 거기에 더해서 이 히자르가 비참한 신세가 될 수는 없다는 간절함이 더해졌습니다.”
“그, 그래서?”
“그런 중에 소환형 투체가 의식 공간에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되었습니다.”
“간절함이 만든 기적이라는 것이냐?”
“그것 이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그렇다면 부족의 비기로 남길 수는 있느냐? 부족의 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느냔 말이다!”
바트란은 제발 그럴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표정으로 히자르를 보며 말했다.
히자르는 그런 바트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그 전에 이것을 보십시오.”
히자르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앞서 만들었던 바트란 비기의 단검을 새로 소환한 소환형 투체인 흑영에게 쥐어 주었다.
그러자 바트란 비기의 단검 한 쌍에서 영기가 흘러나와 흑영을 휘감았다.
“어엇?”
“보셨습니까? 사부님의 비기로 만든 단검의 효과가 소환 투체에게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오오오. 대단하다. 이런 것은 상급 전사나 되어야 가능할 텐데?”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저는 마수 전선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헤카싸림은 렉아베트에서 당당한 대부족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오오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헤카싸림의 희망, 저 히자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 말겠습니다. 저에겐 사부의 비기가 있고, 제가 깨달은 소환 투체의 비기가 함께 있습니다.”
“흐흐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히자르, 잘 되었다. 잘 되었어. 하하하하.”
“그리고 소환 투체의 비기도 정리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비기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네가······ 네가 헤카싸림을 살리는구나. 히자르, 내 자랑스런 제자.”
“자랑이라 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죽어서 땅에 묻혔을 것입니다.”
바트란으로서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히자르를 붙들고 있었던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 덕에 도현이 히자르의 몸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인사는 당연했다.
그리고 흑영의 소환에 대한 비기 따위야 어둠의 성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대로 익히기만 한다면 아베트 종족 내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영력 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차후에 히자르가 사라지더라도 헤카싸림 부족의 영광을 유지해 줄 근간이 될 것이다.
* * *
열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도현은 그 시간 동안 몸을 회복하는 한편, 소환 투체의 비기를 정리해서 바트란에게 넘겼다.
그리고 오늘, 헤카싸림 부족에서 마수 전선으로 전사를 보내야 하는 날이 되었다.
“준비는 되었나?”
전사의 수준을 시험하기 위해서 마수 전선의 시험관이 도착했다.
시험관은 최전선에서 마수를 막고 있는 전사들 중에서 선발되기에, 함께 싸우며 등을 맡길 동료를 맞이하는 일이라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일정 기준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부적합 판정을 내리며, 통과하는 전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 부족에 불이익을 주었다.
보통은 불이익 한두 번에 부족 전체가 노예가 되는 일은 없지만, 헤카싸림은 바트란 이후로 전사를 배출하지 못한 상황.
그나마 바트란이 부상으로 돌아온 후에야 겨우 후대 전사를 교육할 수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히자르가 전장에 나설 전사로 인정받지 못하면 헤카싸림 부족의 앞날엔 치욕적인 노예 생활만이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헤카싸림은 대전사의 재목을 길러내었소. 그러니 걱정할 것 없소.”
바트란은 시험관을 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전사의 재목을 운운했다.
그러자 시험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전사는 마수 전선에서도 몇 되지 않는 고위 전사.
그런데 그런 대전사가 될 재목이라고?
시험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트란 뒤쪽에 있는 히자르에게로 향했다.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질 좋은 가죽 갑옷을 입은 히자르. 하지만 딱 보아도 병색이 짙은 모습이었다.
시험관은 히자르가 오랜 시간 앓았던 몸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런 몸으로 대전사라니.
“히자르, 나오너라.”
바트란이 히자르를 불렀다.
히자르는 담담한 표정으로 바트란의 옆으로 나갔다.
“시험을 시작하시오.”
바르란이 시험관을 보며 말했다.
“끄응. 좋다. 시험은 나와 겨루는 것이다. 알겠지만 수준이 너무 떨어지면 때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시험관은 시험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언급했다.
그가 말하는 사고는 시험 중에 시험 대상자가 죽는 것을 말했다.
전사의 기준에 통과하려면 마수들 중에서도 중급 수준은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에 시험관은 거기에 맞춰서 대상을 공격한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고 있소.”
시험관의 말에 바트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히자르를 바라보았다.
바트란의 시선을 받은 히자르는 곧바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스스스슷!
영력이 움직이고 히자르 앞에 두 개의 단검이 떠올랐다.
그 모습에 시험관의 얼굴에 제법이란 표정이 떠올랐다.
만들어진 단검 한 쌍에 무시하기 어려운 영력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본 것이다.
시험관은 히자르가 그 한쌍의 단검을 손에 쥐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런 시험관의 예상을 깨트리며 다시 히자르가 영력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단검을 만들 때보다 훨씬 강한 영력이 히자르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영력은 검은 연기를 만들고, 그 검은 영기는 두루뭉술한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으음? 소환체?”
시험관이 그 검은 사람 형상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 사이 흑영은 두 손을 뻗어 히자르의 앞에 떠 있던 단검 한쌍을 취했다.
후우우우우웅!
흑영이 한 쌍의 단검을 손에 쥐자, 흑영의 모습이 이전보다 한층 뚜렷해졌다.
이목구비가 조금 더 선명해지고, 팔다리의 관절이 명확하게 드러난 정도.
그런 흑영이 단검을 쥐고 시험관을 향해 전투 태세를 갖췄다.
단검 하나는 살짝 앞으로 내밀어 상대를 견제하고, 다른 하나는 머리 옆에서 상대를 겨눈 모습이었다.
“호오? 무기와 소환체? 두 가지 투체를 동시에 쓴다고? 게다가 소환체가 무기에 깃든 효과를 받을 수 있고?”
시험관은 자신을 겨냥한 소환체의 단검을 무시하며 히자르를 보았다.
그런데 히자르는 이미 바트란의 뒤쪽으로 몸을 숨긴 상태였다.
자신은 시험관을 직접 상대할 생각이 없다는 듯.
“제대로군. 소환체를 부리는 전사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되지. 아무렴.”
시험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히자르의 태도를 칭찬했다.
어차피 싸움은 소환체가 하는 것.
그래서 사역할 수 있는 소환체를 다루는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디 어느 정도 위력인지 한 번 볼까?”
이제 남은 것은 히자르의 투체가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시험관은 살짝 전투력이 부족해도 히자르를 전사로 인정하고 데리고 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사역 가능한 소환 투체는 그만큼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환 투체는 죽더라도 소환자가 영력만 회복하면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소환 투체는 부활 가능한 전사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타앗!”
번쩍!
시험관의 공격은 예고 없이 시작되었고,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기합 소리가 들린 순간 거의 십여 미터 떨어져 있던 시험관이 흑영의 머리를 메이스로 때리고 있었다.
카가각! 카드드득!
휘익! 츠리릿!
하지만 시험관의 공격은 흑영의 머리에 닿지 않았다.
흑영이 앞으로 뻗었던 단검으로 시험관의 메이스를 비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니 단검으로 그 무거운 둔기를 비껴내는 것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비틀어 메이스를 피하면서 다른 손의 단검으로 시험관의 옆구리를 찔렀다.
시험관은 자신의 메이스가 흑영의 단검에 미끄러지고 몸의 균형이 쏠리는 순간, 옆구리로 들어오는 단검을 느꼈다.
이 때, 시험관은 영력을 옆구리의 갑옷에 집중시켰다.
그의 갑옷 역시 영력으로 만들어진 투체였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영력을 받은 갑옷은 상급 마수의 가죽보다 단단해지며 흑영의 단검을 흘려냈다.
하지만.
샤가가각!
“허엇!?”
시험관은 흑영의 단검을 완전히 흘리지 못하고, 갑옷의 일부가 저며지는 것을 느꼈다.
“차아앗!”
그는 기합소리를 내며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흑영과 거리를 벌리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시험관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며 여유를 가지려 했다.
스스스슥!
하지만 흑영은 그런 시험관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흑영의 모습이 허공에서 흩어지더니, 뒤로 몸을 피한 시험관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파팟!
“어엇? 하, 항복!”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흑영의 단검이 턱 아래와 옆구리에 닿는 순간, 시험관이 다급하게 항복을 외쳤다.
이러다가 시험 대상자가 아니라 시험관이 죽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