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아크, 삼백육십 링크 실험의 시작
151. 아크, 삼백육십 링크 실험의 시작
“따지고 보면 아크 내에 있는 모든 지성족들이 실험 참가자라고 할 수 있잖아. 실험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니까.”
= 그런데 저는 이미 아크에 있으니 실험이 시작되면 저도······.
“그렇지. 물론 너도 근원 에너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제약이 되겠지만.”
= 괜찮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마스터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서 너에게 기대가 크다.”
도현에게 도움이 되겠다며 의욕을 불태우는 뮤-지하의 모습에 도현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집중해서 삼백육십 개의 차원이 어우러져 있는 아크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근원에서 차원을 다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차원 하나를 통째로 압축해서 가지고 올 수 있다니, 근원 융합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
- 덕분에 아크를 실험장으로 만드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지 않았습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몇 천 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상대적으로 내가 링크한 근원들이 많이 부족한 게 마음에 걸리네.”
- 근원만 아크로 옮긴 후에 차원을 다시 복구한 것이라 부족한 부분들이 있기도 하고, 애초에 격이 낮은 근원들을 링크했던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지요.
= 대신에 마스터의 링크 근원이 수가 많지 않습니까. 다른 참가자들은 평균 아홉 개 정도인 것에 비해서 마스터는 열세 개의 링크 근원이 있으니 말입니다.
“수는 많지만, 에너지 총량에선 밀리지. 뭐, 그건 시험 후반에나 따져볼 문제긴 하지만.”
=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빠르게 성장해서 다른 초인들의 근원을 빼앗아오겠습니다.
“하하하. 그러면 좋지.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주인이 없는 근원들이니까.”
그 말대로 지금 아크에 있는 삼백육십 개의 근원들은 하나의 링크로 묶인 상태였다.
그렇게 하나로 묶으면서 링크의 주인들은 당연히 소유권을 잃게 된 상황.
다만 자신이 링크했던 근원을 다른 이들보다 잘 알고 있으니 이후에 다시 근원을 손에 넣기에 유리한 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초인들도 될 수 있으면 자신이 링크에 성공한 근원을 아크에 많이 넣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삼백육십 개의 근원 모두가 주인이 없는 상태임은 분명했다.
“그나저나 내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크게 불리한 점이 있단 말이지.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해결을 할 수가 없네.”
다른 참가자들은 이미 두 번이나 비슷한 실험을 했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근원들의 링크를 한 점에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기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경험자들은 그 기록에 대해서 절대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도현은 라세이안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나마 이번 실험의 참가자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이가 라세이안인데, 그조차도 이 문제를 꺼내면 슬슬 도현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 어차피 경쟁자란 말이지. 나를 융합의 경지까지 끌어 올려 준 것도, 그만한 경지가 아니면 아크가 실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고.’
어차피 거래였다.
그리고 도현은 그 거래가 자신에게 그리 불리한 것은 아니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실험이 실패하면 결국 아크의 소유자인 도현이 소멸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링크 경지를 넘어서 융합의 경지에 올랐고, 이번 실험에서는 그 융합의 경지 위로 올라갈 단서를 얻게 될 것이다.
‘그거면 나쁘지 않아. 남은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뿐이지.’
* * *
아크를 이루는 법칙이 삼백육십 개의 근원 링크를 에워싼 견고한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삼백육십 개의 근원에서 링크 통로가 뻗어나와 아크의 중앙, 텅 비어 있는 공간의 한 점으로 치달았다.
각기 다른 거리에서 뻗어간 링크 통로였지만 중앙의 한 점에는 같은 순간에 도달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정!
파스스스스슷!
“크으윽!”
아크의 중앙에서 링크 통로가 만나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도현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버텨라!”
도현이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자 콜로세움에 있던 초인들 중 테트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몇 명의 초인을 끌어들여 파벌을 만들고 그 수장을 자처하는 초인이었다.
“이게 뭐지? 이런 이야긴 없었는데?”
도현은 콜로세움의 중앙.
투기장의 중앙에 서 있었다.
그곳이 다른 초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크를 안정시키기에 가장 적당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링크의 연결은 도현이 들었던 것보다 충격이 훨씬 강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실험에 참가하지도 못하고 아크 밖에 남겨지게 될 테니까.”
도현의 반발에 테트로가 비웃음이 담긴 음성으로 놀리듯 말했다.
“뭐라고?!”
“우리가 아예 돕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네가 버틸 수 있을 정도만 도우면 되는 거지. 굳이 너를 편하게 해 줄 이유가 없으니까.”
“크으윽. 모두가 같은 생각인 거냐?”
“그건 아닌데, 내가 그렇게 하겠다니, 다른 놈들도 눈치를 보는 거지. 너를 돕겠다고 힘을 쓰면 힘을 아낀 우리가 유리해 질 테니까.”
“끄으응. 그렇단 말이지?”
도현은 테트로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와 그의 파벌이 나서지 않으면 다른 참가자들도 도현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을 것이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아크 시험장이 무사히 완성되는 것.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도현이야 어찌 되건 상관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너같은 소인배 놈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니까.”
도현이 어금니를 깨물며 테트로를 향해 이죽거렸다.
“그래, 패배한 개새끼가 짖는 것이야 너그럽게 들어주지. 하하하.”
하지만 그런 도현의 반응에 테토로는 도리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떠들어봐야 비루한 패배자의 넋두리에 불과하니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
쿠구구구구구궁! 콰드드드득!
“어어엇!?”
“뭐냐? 이게 왜?”
“아크의 방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럴 수는 없는데? 설마?”
“저 미친 놈이 스스로 아크의 방벽을 허물고 있어!”
“멈춰! 캐슬 멈춰라. 계약을 잊은 거냐!?”
도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실험 참가자들이 너나없이 당황해서 고함을 질렀다.
“지랄들 한다! 멈추고 싶으면 니들이 해! 니들도 아크에 간섭할 수 있을 텐데?!”
도현이 그런 참가자들을 보며 이죽거렸다.
“캐슬!”
라세이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런 도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나만 피해를 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다들 함께 죽어보자고.”
“일이 잘못되면 너는 소멸을 면치 못하지만 우린 고작해야 투자한 시간과 근원들만 손해 볼 뿐이다!”
함께 죽자는 도현의 말에 라세이안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럼 나는 죽고 니들은 손해 좀 보고 말면 되겠네. 그리고 다음 아크 마스터를 기다리기도 하고!”
라세이안의 말에 도현은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전히 이죽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삼백육십 근원의 링크 연결은 완성되지 않고, 실험장을 감싸고 있는 아크의 벽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테트로! 이 일을 어쩔 거냐!”
그런 중에 초인들 중에 또 다른 파벌을 이끄는 바트라코가 테트로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에 다른 참가자들 모두가 테트로와 그의 파벌을 노려봤다.
“이, 이런 개 같은 캐슬! 네 놈이!”
상황이 의도와 달리 흘러가자 테트로가 도현을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도현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테트로를 노려볼 뿐이었다.
“테트로! 책임을 져라!”
“테트로!”
“테트로!”
이제는 참가자들 모두가 테트로를 부르며 기세를 뿜어내는 지경이 되었다.
“테트로,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너와 너의 파벌을 실험에서 제외하겠다.”
그 때, 항상 혼자 있으며 의견을 내는 일이 없던 레옹 카스티안이 묵직한 음성으로 테트로를 향해 최후 통첩을 했다.
레옹 카스티안은 실험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경지가 높은 초인으로 어쩌면 실험이 없어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 이였다.
평소에는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묵직하게 던진 한 마디는 강력했다.
테트로의 파벌 이외의 다른 참가자들 모두가 다시 한 번 테트로와 그 파벌에게 압박을 보냈다.
“젠장!”
결국 테트로는 파벌의 초인들과 함께 도현의 아크에 힘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융합 경지에 오른 이들은 아크 마스터의 아크에도 간섭할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이용해서 위태로운 아크의 방벽을 바로잡는 것이다.
“캐슬, 너도 방해는 그만하도록.”
레옹 카스티안은 테트로와 그 일행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도현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도현이 아크의 방벽을 의도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입은 손해는?”
하지만 도현은 레옹 카스티안의 명령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이 레옹 카스티안의 명령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손해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고?”
레옹 카스티안은 도현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로브 밑에서 푸른 섬광같은 눈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도현은 그런 레옹 카스티안의 모습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아바타였다.
오직 도현만이 본체로 콜로세움에 서 있는 상황인 것이다.
본체도 아닌 아바타들 따위에게 밀릴 자신이 아니었다.
물론 아바타라고 해도 몇이 뭉치면 도현도 감당할 수 없겠지만.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레옹 네가 아니라 테트로가 책임질 일이고.”
“흐음. 테트로!”
도현의 말에 레옹 카스티안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뭔가 많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빌어먹을!”
레옹 카스티안의 고함에 테트로가 입 속에서 뭐라뭐라 구시렁거리더니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 손짓에 콜로세움 중앙에 있는 도현 앞에 공간이 갈라지며 정육면체의 큐브 하나가 나왔다.
“가져라! 그리고 더는 말하지 마라!”
테트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파벌과 함께 아크의 방벽을 진정시켰다.
이후 아크의 벽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들은 다른 참가자들도 나설 것을 요구했다.
그렇게 참가자들 모두가 나서서 아크의 실험실을 완성하는 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도현은 테트로가 내어준 큐브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기록과 그 기록들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확인하고 실험실의 완성을 방해하지 않고 물러섰다.
큐브는 이전에 아크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나왔던 기록의 일부를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하면 나쁘지 않은 보상이었다.
파츠츠츠츠츠츠츳! 차자자장!
“오오오! 나왔다!”
“저것이!”
푸화화확! 쿠구구구궁!
결국 아크 내부에서 삼백육십 개의 근원이 하나의 점에서 링크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하얀색의 불투명한 크리스탈 기둥 같은 것이 만들어졌는데, 그 기둥에는 엄청난 기록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 기둥이 산산조각 나며 파괴되었고, 동시에 삼백육십 개의 근원을 연결하던 링크도 끊어지고 말았다.
“아아, 링크가!”
“저 무수히 많은 파편들이 아크 내부를 떠돌며 삼백육십 개의 차원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서 하나로 만들어야 하고.”
“모두들 기억해라. 결국에는 모든 파편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러니 될 수 있으면 서로 돕는 것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이만 입장하지?”
“크하하하. 이번에야말로 융합을 넘어선 경지를 이루고 말겠다.”
“다들 알아서 하라고!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쯧, 어차피 경쟁인 것들.”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러니 신중해야 할 것이다.”
“······.”
링크가 완성되고, 화이트 크리스탈이 깨지며 링크가 끊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후 실험의 참가자들은 저마다 아바타를 아크 방벽 너머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의식을 나눠서 만든 아바타들은 아크 방벽 너머로 들어가는 순간, 알수 없는 힘에 의해서 무작위로 삼백육십 차원 중에 하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 아바타가 아닌 도현의 의식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