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아크를 이용한 대규모 실험, WinWin협상
150. 아크를 이용한 대규모 실험, WinWin협상
“그러니까 링크를 넘어선 존재들이라고?”
도현이 놀란 표정으로 낯선 손님을 보며 물었다.
로브로 온 몸을 가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초인.
그는 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도현의 맞은 편 소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을 어떤 초인 집단의 전령이라고 소개했다.
그것도 링크 수준을 뛰어넘은 초인집단의 전령.
“맞아 링크에서 한 단계 더 나갔다고 할 수 있겠지.”
도현은 하위 차원들을 떠돌며 근원의 기원 기록들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물론 연구만 한 것은 아니고, 지성족이 없는 차원의 경우엔 근원을 뽑아서 아크 차원에서 링크 시키는 작업도 병행했다.
그렇게 지금 도현의 아크에는 열 개가 넘는 차원이 존재했다.
차원의 근원 하나를 아크로 옮기려면 그 근원에서 차원이 만들어질 만큼의 근원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근원은 에너지를 이용해서 하나의 차원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근원에 새겨진 기록에 따라서 차원의 크기나 적용되는 법칙이 달라진다.
그렇게 차원을 형성시키고 그 근원을 자신의 링크에 연결하는 작업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지구를 떠난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도 도현은 하급 차원에서 적당하다 싶은 근원 하나를 취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크에 안착시키고 링크를 완성하기 위해서 적당한 차원을 찾아왔다.
이곳은 다른 여러 차원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요충지 같은 차원으로, 떠도는 정보를 얻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선택한 곳이었다.
그런데 적당히 자리를 잡고 이번에 얻은 근원을 이용해서 아크에 새로운 차원을 만들고 있을 때, 눈앞의 라세이안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 그 몸은 허상인 것 같은데?”
도현이 어느 정도 혼란을 추스르고 로브를 뒤집어 쓴 라세이안을 보며 말했다.
“알아본 모양이네?”
“품고 있는 근원 에너지가 너무 작으니까.”
“그런가? 하지만 근원 에너지야 원하면 얼마든 끌어 쓸 수 있는데?”
“이곳의 근원은 다른 초인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상관없지. 처음에 말했잖아. 우리들은 링크 단계를 뛰어 넘었다고.”
자신이 링크한 차원이 아니어도 차원 에너지를 끌어 쓰는데 제약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라세이안.
도현은 그런 라세이안의 말에 속으로 경계심을 더욱 높였다.
“으음.”
“그러니까 바짝 긴장하고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 거야.”
그런 도현을 향해 라세이안은 대놓고 협박 비슷한 말을 했다.
“그 제안이라는 거?”
“그래.”
“말로는 제안이라고 하지만 강요인 것 같은데? 이미 결론은 정해 놓은.”
“아니지, 네 태도에 따라서 방식이 달라질 거니까. 강압적으로 할 거냐, 아니면 상호 협조적으로 할 거냐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
그 이외는 없다는 말이다.
“강압이라······. 나 그거 정말로 싫어하는데.”
“그러니까 서로 협조를 하자는 거지. 그걸 위해서 내가 온 거고.”
협조를 위해서 왔다지만 도현은 이미 억지스러운 판 위에 끌어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느꼈다.
만약 도현이 이 판에서 내려가려고 한다면, 라세이안이 말했던 강제적인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링크 차원이 아니어도 얼마든 차원 에너지를 끌어 쓸 수 있다고 말했던 힘을 이용해서.
그것도 아니면 링크를 뛰어넘은 경지의 무리가 힘을 합쳐서.
“기분이 좋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군.”
도현은 일단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저 쪽의 말을 들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좋아 이해한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 설명을 해 주지.”
“나도 들어 보겠다.”
“뻣뻣하기는. 뭐, 일단 그건 넘어가지. 그러니까 우리들은 링크 단계를 넘어선 이후로 더 이상의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 그리고 끝도 여기지.”
시작과 끝이 같다는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링크 단계 이후로 성장이 멈췄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는 말일 테니까.
그것도 여럿이 모여서.
“아까부터 우리라고 하는데, 수가 많은가?”
“이번 실험을 함께 할 동료들은 서른여섯 명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그들이 모두 링크 단계를 넘어선 이들이라고?”
예상했던 것을 과하게 넘어선 숫자에 도현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그 중에도 경지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링크 단계는 벗어났지. 그것도 안 되면 이번 실험에 참가할 자격이 없으니까.”
라세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링크 이상의 경지에 있는 이들이 서른여섯이나 모여서 하는 실험이란 말이지? 그 목적은 당연히 더 높은 경지에 오르려는 것일 테고?”
“그래. 링크를 했으면 알겠지만, 우리의 경지 상승이라고 하는 것은 근원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지.”
“그래서 링크보다 나은 방법을 찾았는데, 그 이상은 찾지 못했다?”
이미 링크 이상 단계를 개척한 이들.
도현은 그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이들에게 그 단계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맞아.”
“그래서 어떤 실험을 하려는데 내가 필요하다?”
“그렇지.”
“결국 아크가 필요한 거겠군.”
고작 링크 단계에 머문 도현을 찾은 이유는 그것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하하. 맞아. 뻔한 이야기지.”
“왜 아크가 필요한지 말해 줄 수 있나?”
“실험에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그 후폭풍이 엄청날 테니까.”
후폭풍 때문이란 말.
그렇다면 아크를 이용해서 그 후폭풍을 막으려는 것이다.
“으음. 아크에서 문제가 생겨도 결국 나 하나만 사라지면 끝난다는 건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
“내 아크를 실험장으로 제공하라는 거군. 그래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지?”
아크만 빌려주는 것이면 도현이 얻을 것이 뭐가 있을까?
“단순히 그런 거라면 네 동의는 필요하지 않지. 이미 그 방법은 실패했고.”
“음? 아크 마스터의 아크를 강제로 쓴 일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다.”
“실패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 동의를 얻기로 했고?”
“동의를 얻지 못하면 이전과 같은 방식의 실험을 하게 되겠지?”
“실패한 실험을?”
“성공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실험 과정에서 얻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고.”
“무슨 말인지 알겠군. 그럼 내가 동의하면 나도 뭔가 할 일이 있겠군?”
“맞다. 아크에 실험장을 만들려면 너의 도움이 필요하지.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게 내가 얻을 이익인가?”
“이익의 일부지, 진짜는 실험이 시작된 후에 얻게 될 것이고, 성공한다면 더 없이 큰 것을 얻게 되겠지.”
“내게도 역할이 있긴 한 모양이군.”
“그냥 장소만 빌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네 역할도 작은 것이 아니고. 도리어 아주 중요한 역할이지. 핵심적인.”
“그건 마음에 드네.”
도현은 라세이안의 말을 모두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크를 그냥 빼앗기는 것이 아니란 점이나, 새로운 경지에 대해서 배울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는데, 당연히 협조해야겠지. 좋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지?”
도현의 결정은 빨랐다.
이미 저들이 만든 판 위에 올라선 상황에서 다른 선택도 없었고.
“그야 당연히 격을 맞춰야지. 지금의 네 수준이 너무 낮으니까.”
“링크 수준을 뛰어넘게 해 준다는 말인가?”
“일단 선불이라고 생각해라. 원래 아크만 이용할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이번 실험에는 링크 수준 이상의 아크 마스터가 필요하니까.”
“좋군.”
이번에는 도현도 전혀 거부감 없이 지금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처음부터 링크 이상의 단계로 올려줄 테니, 함께 실험을 해 보자고 했으면 이야기가 더 부드럽지 않았을까?’
도현은 라세이안의 부족한 대화 스킬을 탓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웃으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무조건 퍼 주는 경우는 없지. 분명히 숨겨 놓은 함정이 있을 거다.’
마음속에선 날을 세운 경각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 * *
“삼백육십 개의 차원 근원을 하나의 점에 링크시키면 나타나는 기록이 있단 말이지.”
- 그 기록을 새겨 넣을 근원을 만드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고요.
= 사실상 삼백육십 개의 근원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작업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현은 에포르, 뮤-지하와 함께 아크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사이에 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도현의 아크에 실험장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삼백육십 개의 근원을 배치하는 작업.
도현이 링크해 놓은 차원은 고작해야 열세 개에 불과한데, 그 수를 삼백육십 개로 늘리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 작업을 하는 것은 이번 실험에 참가하기로 한 초인들이 경쟁하듯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의 입김이 닿은 차원을 하나라도 더 많이 아크에 들여보내기 위한 경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링크가 완성된 후, 중앙에 나타나는 기록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란 말이지.”
- 기록은 곧바로 깨어져서 삼백육십 개의 차원으로 흩어지고, 그것을 모두 모아서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요.
원래는 삼백육십 개가 아니었다.
고작 일흔두 개의 근원을 한 점에 링크시키는 실험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삼백육십 개를 링크시켰을 때, 더 대단한 기록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던가?
그래서 부랴부랴 근원의 수를 늘리고, 거기에 따라서 참가자의 수도 늘렸다고 했다.
하지만 삼백육십 이상은 아무리 참가자가 많아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라 거기서 멈춘 것이라고.
어쨌건 그렇게 링크를 시키고 기록을 이끌어 내는 것이 1차 작업이다.
이후에 그 기록이 삼백육십 개의 차원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경쟁이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록을 차지하기 위해서 초인들의 아바타가 각각의 차원에서 활동을 할 거란 말이지.”
- 그런데 그 아바타들이 일반인 수준에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실험장이 된 아크에 초인은 진입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하더군. 나조차도 내 아크에 마음대로 간섭할 수 없게 되었고. 삼백육십 개의 차원을 하나로 묶으면서 아크 시스템까지 함께 묶었으니까. 내 아크가 시험장의 알껍질처럼 쓰였지.”
말은 쉽게 했지만, 이번 실험을 위해서 엄청난 수고가 들어갔다.
그것도 근원 융합 수준에 오른 초인들 수십 명이 힘을 모으고 긴 시간을 투자했다.
- 삼백육십 개의 차원을 품고 있는 알이란 거죠.
= 아크가 마스터의 통제를 벗어난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거야 뭐. 융합 경지가 되면 어떻게든 남의 아크에 간섭할 수 있는데 어쩌겠어? 차라리 이렇게 누구도 손댈 수 없도록 만든 것이 다행이지.”
- 로드께서도 근원의 융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들에게 밀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음, 1:1이라면야 나도 어찌 해 보겠지만, 저 쪽은 마흔이 넘어. 그 사이에 시험에 참가하겠다는 놈들이 더 늘어서. 게다가 아크가 저렇게 변한 것은 내가 융합 경지에 오르기 전에 벌어진 일이고.”
= 로드께서 융합 경지에 오른 후에 반발할 것을 염려해서 먼저 틀을 잡았던 거지요.
“그건 이미 이야기가 되었던 거잖아. 지금 다시 이야기할 건 아니지.”
- 결국 아크에서 실험은 시작될 것이고, 로드께서도 그 실험에 참가하실 것이 아닙니까.
“나 뿐만이 아니지. 이번에는 뮤도 참가해.”
= 네? 저까지 말입니까?
- 뮤도 참가를 한다는 것입니까?
도현의 말에 뮤-지하는 물론이고 에포르도 깜짝 놀라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