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봉인된 기록과 가족 재회
148. 봉인된 기록과 가족 재회
근원 에너지를 흡수해서 근원과 차원의 결속을 약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근원을 분리해 내는 작업.
당연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마냥 근원 에너지만 흡수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 근원에 새겨진 기록들을 해석하며 연구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찾아낸 봉인되어 있는 기록.
근원에 새겨져 있지만, 근원 에너지가 유입될 통로가 막혀 있는 기록의 덩어리가 있었다.
“이건 흙과 대지에 대한 것인데, 지금껏 보지 못했던 형태의 기록이 있어. 그런데 눈에 익은 부분도 있단 말이지. 에포르 이거 어때?”
도현이 근원에 봉인되어 있던 기록의 한 부분을 에포르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에포르가 그 기록을 황금의 성으로 보내서 이전에 저장해 둔 기록들과 비교했다.
그리고 흥분해서 도현을 찾았다.
- 로드!
“왜? 진정하고 천천히 말을 해 봐.”
- 이 기록. 이건 산성 병사들에 관한 기록과 상당부분 일치합니다.
“응? 산성병사?”
- 그렇습니다 로드.
“어디 보자. 무슨 내용인지.”
도현은 그 기록이 산성병사와 관계가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뮤, 이거 어때? 어떤 내용인지 알겠어?”
그리고 그것을 뮤-지하와 공유하며 기록 해석에 나섰다.
= 마스터, 제가 알고 있는 기록 중에서 그런 패턴을 지니고 있는 것은 생명 탄생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래? 어떤 건데?”
= 이런 식으로 된 것입니다.
“음, 이건 좀 많이 다른데?”
= 하지만 이렇게 보면, 비슷한 패턴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탄생이 아니라 조형? 형상을 만드는 것에 가깝겠는데?”
= 그렇긴 합니다만 거기에 이런 형식이 더해지면······.
“아, 그래. 산성 병사에서 흙과 관련된 부분을 떼어 내면 비슷하네. 그리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다른 성들의 소환체들의 생성에도 같은 것이 쓰이고 있었어.”
도현은 드디어 거대바위 차원의 근원에 봉인된 기록 일부를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머지 부분을 하나씩 풀어나갔는데.
그 결과.
- 로드! 이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종족에 대한 기록인 것 같습니다. 마법이나 연금술로 만드는 골렘과 유사한 종족이라니요.
= 마스터 제가 알기로도 골렘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하나의 종족으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획기적인 발견입니다.
“그건 모르는 거지. 우리가 아는 차원은 전체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에포르과 뮤-지하가 새로운 종족과 관련된 기록에 흥분했지만 도현은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번의 발견이 새롭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차원이 얼마나 많은가.
이 알지 못할 세상 어딘가에 지금 자신이 발견한 기록에 근거한 종족이 없으란 법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이거 쓸모가 있을 거 같지?”
있을지 없을지 모를 미지의 차원과 종족 따위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기록의 활용에 더 관심이 간다.
- 로드, 산성에 대한 기록에 이번에 새로 발견한 기록을 이식할 수 있다면, 산성에 새로운 종족이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골렘과 유사한 종족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록.
에포르는 그 기록을 산성에 적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하지만 뮤-지하는 곧바로 반대 의견을 내 놓았다.
= 마스터, 이지를 가지고, 개성을 지닌 지성족은 분명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 있는 종족은 마스터의 수족이 될 수 없습니다. 아크 마스터의 차원에 그러한 종족이 있다는 것이 무슨 득이 되겠습니까?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소환체들만큼 쓸모가 있지는 않을 거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것은 도현도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렇지. 내가 차원의 주인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충성이나 복종을 기대하긴 어렵지. 분명 산성병사에 비할 수는 없을 거야.”
- 하지만 로드, 아크 차원에도 스스로 번성할 수 있는 종족이 있다면, 근원의 기록도 시간에 따라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지성족의 존재는 차원의 성장이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 그게 꼭 좋은 것은 아니지.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 뿐, 항상 좋은 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뮤-지하가 에포르의 말을 반박했다.
이에 도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성족의 존재가 차원의 빠른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 아크에 그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차원 교류나 회랑 시스템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 하지만 근원의 성장을 위해서는······.
“차라리 진화된 기록을 추출해서 이식하는 편이 훨씬 빠르지 않겠어?”
에포르가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도현은 간단한 방법을 제시해서 그 입을 막았다.
도현의 방법이 차원을 성장시키기에는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분명했기에 에포르도 입을 닫고 말았다.
= 마스터, 이곳의 근원을 아크에 안착시킨 후, 봉인 풀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 때, 뮤-지하가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산성의 기록에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근원을 아크로 옮긴 후에 봉인을 풀어보자는 것.
“이 거대바위 차원을 아크에서 되살리고, 거기에 봉인된 기록의 종족을 탄생시켜 보자고?”
= 그렇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활성화시켜서 변화를 지켜보면, 나중에 산성에 적용할 부분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로드, 그건 일단 링크를 완벽하게 성공시킨 후에나 시도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 그거야 당연하지. 근원을 아크에 안착시키려면 완전한 링크를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
- 그러니까 일의 선후를 따지는 거잖아. 우선 링크가 먼저라고.
“그만! 일단 근원 에너지를 줄이고, 근원을 뽑아낼 때까지 이대로 봉인된 기록을 좀 더 연구해 보자.”
도현은 다툼을 말리고, 둘과 함께 봉인된 기록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 * *
푸화홧!
“커어억! 쿨럭! 쿨럭! 크윽! 아주 죽을 뻔 했네.”
천으로 된 막을 찢듯이 공간을 찢으며 도현이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런 도현의 모습이 꽤나 볼썽사나웠다.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뜯겨 나갔고, 머리카락도 일부는 불에 타고 일부는 얼어붙었다.
게다가 몸 곳곳에 찢기고 뜯긴 상처가 가득했다.
그나마 근원 에너지의 힘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처음 공간을 찢고 나왔을 때에는 피부의 대부분이 벗겨져 있었다.
그만큼 좋지 않은 상태로 공간을 뚫고 나온 것이다.
- 무모했습니다.
= 그렇습니다. 저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버티시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 차원이 소멸된 후에 무엇이 남는지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셨습니까?
= 완전한 소멸,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는 곳이라 알려져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래 이젠 나도 아니까 야단은 그만! 솔직히 너희도, 내가 차원을 품고 있는 몸이니까 괜찮을 수도 있다고 했었잖아.”
- 그래도 위험하니까 확인은 하지 말자고 그렇게 말렸지 않습니까. 저나 뮤-지하 모두.
= 그건 에포르 시종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은 정말 무모했습니다.
“그래, 무모했지. 나도 다시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하하하하.”
도현은 멋쩍은 듯이 크게 웃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도현이 있는 곳은 지구.
정말 오랜만에 지구로 돌아온 도현이었다.
“으음. 늦지는 않았네.”
잠시 근원 에너지를 풀어서 주위를 살피던 도현이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현의 몸은 허공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 * *
유성 종합병원.
VVIP 병실에 최성수가 누워 있었다.
그룹의 운영에선 이미 오래 전에 손을 놓고 여유 있는 은퇴 생활을 즐기다 노환으로 입원하게 된 그였다.
“그것 참,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갈 때가 된 모양이군.”
상체를 살짝 일으킨 상태로 기대 있던 최성수가 갑자기 눈을 뜨고 옆에 있던 아내를 보며 말했다.
“아이고, 이 양반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허허허. 예전 같으면 죽어도 몇 번은 죽었어야 할 나이지. 지금까지 산 것도 도에 넘치는 일이야.”
“무슨 말을 그렇게 흉하게······.”
“영원히 살 수는 없잖소.”
“왜요? 도현이라면 방법이 있지 않겠어요?”
“음. 모르겠소. 더 살고 싶은지 어떤지.”
“그야 몸이 고되니까 그런 거죠. 건강만 좋아지면 당연히 더 살고 싶지 않겠어요?”
“허허. 그런가? 몸이 힘드니까 이젠 죽어도 되겠다 싶은 걸까?”
“그럼요. 그리고 나는 당신과 함께라면 좀 더 오래 살아도 좋겠다 싶어요.”
“그래?”
“네, 그러니 죽느니 마느니 그런 소릴랑 하지 말아요.”
“끄응, 그럼 도현이 녀석이 오면 더 살게 해 달라고 해 볼까? 건강하게? 당신하고 나하고.”
“그래요.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해 달라 하세요. 나도 덩달아 젊어지면 오죽 좋겠어요?”
“허허허. 거 참, 당신이 나보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군?”
최성수는 아내의 말에 허허 웃을 뿐이었다.
어차피 아들과는 연락이 끊어진지 수십 년이 지났다.
지금 죽음이 다가온 이 순간에 때맞춰 아들이 나타나 줄 거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건 아내 역시 마찬가지 일 터.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애정의 표현일 것이다.
“다시 젊어지면 앞으로 또 평생을 나하고 살아야 하는데? 지겹지 않겠소?”
“흐흐흥,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각자 갈 길을 가면 그만이죠. 하지만 아직은 아니네요.”
“허허허.”
지구가 차원 전장에서 승리하고 다른 차원들과 교류를 시작한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중에 특히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차원 교류 이후로 마력 사용이 보편화 되면서 자연스럽게 수명이 길어진 것도 있고, 과학과 마법, 신비, 이능이 어우러진 의료 시스템의 혜택도 있었다.
글로벌 기업인 유성 그룹의 수장인 최성수는 당연히 그러한 혜택을 제일 먼저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런데 둘만 있는 병실에 갑자기 끼어드는 새로운 목소리.
“녀석! 왔느냐?”
“어머, 얘는 올 때마다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까.”
말로는 그래도 최성수는 물론이고 어머니도 별로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아버지.”
도현이 침대에 기대 누운 최성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고?”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반신에 가까운데요 뭐.”
“반신? 허허허. 그거 멋지구나.”
“그런데 아버지, 젊어져서 좀 더 사시고 싶으시다고요?”
“허허. 전에는 안 그랬는데,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아쉽기는 하구나. 네 엄마도 좀 더 함께 하고 싶다고 하고.”
“네.”
“그래서 어떠니? 니 아버지, 되겠니?”
어머니가 가늘게 떨리는 눈빛으로 도현을 보며 물었다.
도현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활짝 웃었다.
“하하. 제가 반신에 가깝다니까요? 그 정도야 뭐 어렵지 않습니다.”
“그, 그래?”
“어머나, 정말?”
“두 분 모두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됐다. 그렇게 되면 그냥 새로운 신분으로 살아야지. 새파랗게 젊은 모습으로 도혜나 외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는 것도 내키지 않고.”
“그럼. 그만큼 키웠으면 이젠 알아서 해야지. 호호호.”
“그래도 되겠습니까? ”
“허허. 이참에 아주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살기 좋은 차원으로 옮겨가는 것도 괜찮다.”
나이가 들면 세월만큼 현명해지는 이들이 있는데, 최성수 부부가 그런 모양이었다.
그들은 젊어진 자신들의 모습이 주위에 끼칠 영향을 짐작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참에 두 분께 젊음에 더해서 마력에 대한 재능을 더해 드리죠. 그 후에 차원 여행을 하시거나 말거나 하는 건 알아서 하시구요.”
“허허. 그래. 이참에 우리는 죽었다 생각해라. 인생 새출발을 하는 마당에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으니.”
“당신도 그렇죠? 뭐, 나중에 보고 싶으면 그 때는 그 때, 알아서 해요. 지금은 우리만.”
“허허. 그래. 우리만.”
무슨 마음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도현은 두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자신이 가족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미지의 차원들을 생각하면 다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이 어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