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오르츠로부터 링크의 비법을 전수받다
143. 오르츠로부터 링크의 비법을 전수받다
“좀, 가라.”
“손님 대접이 영 시원찮네. 섭섭하게.”
“손님? 누가?”
“어허, 사해가 동도라는 말을 못 들어 봤어?”
“그건 뭔······?”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메노로카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 뿐인데,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 마라.”
“하아. 내가 너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있잖아!”
오르츠는 깊은 한숨을 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응? 일을 못 해? 왜? 설마 내가 너를 훔쳐보고 뭘 배워 갈까봐서?”
“그럼 아니란 말이냐?”
“에이, 그런 정도로 훔쳐 배울 수 있는 거면, 뭐 그냥 뺏겨도 할 말이 없는 거지. 보안이 그 정도면.”
“뻔뻔하기가 아주 그냥!”
“너도 알잖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거.”
“대놓고 훔쳐보고 배워 가겠다고 떠들어대고 있구나?!”
“서로 빤히 아는 처지에 뭐, 아니라고 해 봐야 믿지도 않을 거잖아.”
“하아아아.”
오늘도 오르츠의 한숨은 깊어졌다.
‘처음부터 대응을 잘못했어. 절대 곁을 내어줘서는 안 되는 놈이었어.’
지금이라도 생사를 다투고 싶은 생각이 수시로 치밀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오르츠는 도현의 수준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단숨에 제압하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갔을 때, 후환이 두렵다는 것이다.
특히 도현이 프에베자로 들어가서 난동을 부리면 정말 곤란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프에베자와 메노로카의 링크가 완성된다.
그렇게 되면 프에베자나 메노로카나 모두 오르츠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당연히 어느 쪽에서든 완전한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그 때는 양쪽 차원의 근원 에너지를 통합해서 쓸 수 있다.
그렇게 다수의 차원에서 근원 에너지를 끌어 쓸 수 있어야 상위 격의 초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위에도 상위 격의 초인이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지금은 일단 프에베자를 손에 넣어야 지금의 어정쩡한 상태에서 완전히 한 걸음 내디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아크 마스터와 싸우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양보를 한다고 한 것인데, 이렇게 거머리처럼 들러붙을 줄은 또 몰랐다.
“자꾸 이러면 결국 나는 너를 원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오르츠는 결국 도현에게 최후의 통첩처럼 단호한 기세를 담아 말했다.
“으음. 끝을 보자는 거야?”
그런 오르츠의 태도에 도현도 지금까지의 장난스러운 모습을 버리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문제지. 너는 선을 넘고 있다.”
“그건 오르츠 네가 나를 너의 밑으로 보기 때문이지. 그냥 나를 동격으로 봐 주면 간단한 문제 아닌가?”
“동격? 네가?”
“씁, 링크, 그거 좀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솔직히 이제 겨우 링크를 시작한 네 수준이라고 해 봐야, 나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하잖아.”
“그 조금 나은 것이······.”
“그래봐야 하급 초인에서 중급 초인 정도 되는 거 아닌가? 그 위로 상급, 최상급이 있는데, 고작 중급 수준 가지고 너무 아끼지 말란 소리지.”
“끄응.”
고작 중급.
오르츠는 그 말에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이었다.
그게 어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준인가?
링크를 제대로 이뤄내야 오를 수 있는 경지다.
그리고 그 경지면, 하급이라고 말하는 하위 초인들은 손가락으로 눌러 죽일 수도 있을 텐데, 그걸 고작?
“너만 가려고 하지 말고, 함께 가자니까? 네가 경지를 높인다고 너와 비슷한 놈들이 없겠어? 아니 한 둘이 아니겠지. 내가 아는 경지만 하더라도 네 위로 상급과 최상급이 있다는데.”
“그건 어디서 들었지?”
“뮤-지하. 뮤-자하를 초인으로 키워 낸 존재가 최상급이라고 하더군. 뭐 원래 그런 분류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 그런 느낌이라고 하더라.”
“끄응.”
“내가 너와 같은 경지로 오른다고 오르츠 네가 손해를 볼 일도 없잖아. 도리어 우군 하나를 얻을 수 있으면 득이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잖아.”
“너만 좋은 거겠지.”
“나야 물론 좋은 거고. 너도 나쁠 거 없고. 그러니까 굳이 그렇게 까칠하게 굴 거 없다는 말이지.”
“뻔뻔한 거머리 같은 놈.”
핀잔을 주는 오르츠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졌다.
“그래도 내가 은혜를 원수로 갚고 뭐 그런 놈은 아니야. 그러니까 믿어. 믿어서 남 주나?”
“하아.”
다시 돌아오는 도현의 뻔뻔한 반응에 오르츠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한숨에는 포기, 혹은 항복의 의미도 짙게 담겨 있었다.
* * *
“링크의 가장 기초는 근원과 근원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지.”
결국 오르츠는 도현에게 링크의 비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도현은 몰랐지만 지금 오르츠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메노로카와 프에베자의 링크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멈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링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작한 후에 멈추는 것은 무척 위험했다.
양쪽의 근원이 서로 연결된 상태인데, 프에베자 쪽의 근원이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선 자칫하면 프에베자의 기록이 메노로카로 역류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재앙.
두 차원이 동시에 붕괴되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르츠는 힘의 바탕이 되는 메노로카의 근원까지 잃고, 새로운 근원을 찾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동기화를 해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도현이 끝까지 들러붙어 링크 작업을 방해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도현에게 링크를 가르치며 프에베자에 대한 링크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근원과 근원을 연결하는 통로?”
“그 시작은 차원 회랑이지. 차원 회랑이 없다면 근원의 링크도 불가능해.”
“아, 그래서 메노로카와 프에베자 사이에 차원 회랑이 존재하는 거군?”
“그렇다. 링크할 차원을 숨겨 놓은 상태에서 링크를 진행하고 싶지만, 차원 회랑을 유지해야 링크도 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럼 링크가 끝난 후에도 차원 회랑을 유지해야 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 링크가 끝나면 회랑은 필요 없어. 링크에 쓰이는 통로만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군.”
“처음에는 차원 회랑에 기대서 근원과 근원을 연결하는 거야. 그러면서 양쪽 근원의 기록이 서로 역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그 근원 에너지만 소통시키고, 기록은 거르는 건가?”
“처음에는 그렇지. 하지만 이후에는 자기 편할 대로 기록을 조정하면 되지.”
“아, 양쪽 근원의 기록을 동일하게 만들 수도 있겠군?”
“그럴 수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겠지. 하지만 안 될 거야.”
“응? 왜?”
“근원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기록은 바꿀 수 없으니까. 그 근원에 새겨진 기원 기록 말이야.”
“기원 기록이라고?”
“뭐야? 설마 기원 기록이란 말도 몰라?”
오르츠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도현을 바라보았다.
“대충 뭔지는 알겠네. 차원의 근원 가장 안쪽에 새겨진 기록. 그래서 그 근원의 모든 기록에 영향을 주는 기록. 그걸 말하는 거지?”
“그래도 개념은 알고 있네. 맞다. 그거다 원래 우주엔 하나의 세상이 있었고, 그 세상의 근원도 하나였지. 그런데 그 근원이 폭발하여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조각으로 나뉘었고, 그것들이 모두 하나씩 차원을 만들었지.”
“그래. 그래서 그것을 차원의 근원이라고 하는 거고.”
“알겠지만 그 차원의 근원에는 여러 기록들이 새겨진다. 차원의 진화든 변화든, 아무튼 세월의 흐름만큼 기록이 쌓이게 되는 거지.”
“거기에 우리 같은 초인들이 기록에 간섭하기도 하고.”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근원의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기원 기록엔 손을 댈 수 없지. 그래서 링크한 근원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완전히 같은 꼴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거고.”
“기원 기록이 동일한 차원을 찾지 못하면 그렇다는 거지?”
“그래.”
“그래도 대충이라도 비슷한 기록을 가진 근원을 링크하는 것이 좋겠지?”
“그거야 생각하기 나름이지. 더 많은 기록을 자유롭게 쓰고 싶으면 다른 기록을 가진 근원을 링크하는 것이 좋을 테지만, 같은 기록을 더 강하게 쓰고 싶으면 같은 기록이 있는 근원을 링크하는 것이 좋겠지.”
“다양성이냐 전문성이냐의 문제인가?”
“말은 잘 만드는군.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기엔 딱 맞는 표현이긴 하다.”
오르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근원의 링크 통로를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겠군.”
“그것까지 시범을 보여줄 수는 없다. 이미 메노로카와 프에베자 사이의 링크 통로는 열려 있으니까. 지금 네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링크 통로를 이용해서 두 근원을 안정시키는 것 뿐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 놈이 링크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할지 기대가 되거든.”
“심보 고약하네.”
“키하하하하. 내가 링크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안다면 그런 소리는 못 할 거다.”
“뭐,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해야지.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퇴장을 해 줘야겠고.”
“응? 퇴장?”
“조페라쿰에게 돌아가서 의뢰 실패를 알려줘야지.”
“정말 이대로 간다고?”
오르츠는 갑작스러운 도현의 통보에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이래? 니가 두 근원의 동조를 완벽하게 만들면 그 뒤에 나를 어쩔 줄 알고?”
“설마 내가 너를 해칠 거 같아서 도망간다는 거냐?”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또 모를 일이잖아. 그러니까 눈앞에서 없어져 줘야지.”
“하아, 하여간 밉상스런 짓은 골라서 하네.”
“그것도 그렇지만, 너도 부담이 될 거잖아. 프에베자와 메노로카의 근원을 완전히 동조시키는 작업에 내가 곁에 있으면.”
“뭐, 그건 그렇다만.”
“그러니까 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치워 버릴 생각이 들지도 모르니까 내가 먼저 사라져 준다는 거지.”
“······.”
“걱정하지 마. 너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 분명히 말하건데 나는 너에게 크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 그건 잊지 않겠다.”
“푸후후. 좋다. 보내주지.”
도현의 말에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짓던 오르츠가 격한 감정을 모두 지운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마워.”
“그 마음을 꼭 기억해라.”
“그러지.”
도현은 눈빛을 반짝이는 오르츠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차원 회랑을 타고 메노로카를 떠났다.
“묘한 놈이야. 운이 좋은 놈이기도 하고.”
얼마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오르츠는 도현을 도모해 볼 생각도 하고 있었다.
프에베자에 대한 안정화가 거의 끝나가는 상황이니, 두 차원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면 도현을 잡을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훌쩍 떠나 버린 것이다.
“프에베자 때문에 내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시기에 맞춰서 나타나더니, 그게 어느 정도 해소되니까 훌쩍 몸을 피하다니. 미리 계획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로 운이 좋은 놈인 거고, 저런 놈과는 될 수 있으면 싸우지 않는 것이 좋지.”
운을 타고 있는 놈을 건드려서 좋을 것은 없다.
오르츠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근원의 링크 통로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노로카를 떠난 도현은 몇 곳의 차원을 경유해서 조페라쿰이 있는 그란다르 차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