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힘이 결과를 만든다
139. 힘이 결과를 만든다
힘의 논리는 단순하지만 직접적이다.
“그래서 쿠소유차의 잘못을 따지겠다고?”
“그래.”
“우리가 그걸 허락할 수 없다면?”
“그럼 싸움이 벌어지겠지.”
“크하하하하. 싸움이라고? 너와 저 용인족 놈, 둘이서 우리 형제들과 싸우겠다는 거냐?”
“뮤-지하도 나와 싸우기 전에는 그렇게 여유가 있었지.”
“그래서 우리 바리바리오와 싸우겠다고?”
“너희가 몇 명이든 나하곤 상관없어. 하나씩 하나씩 발라먹으면 되니까.”
아크 마스터는 차원의 근원을 심상 세계에 담고 다니는 존재.
그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다른 초인들에 비해서 자유롭다.
“그 전에 네 고향 차원이 망가질 텐데?”
쿠소유차의 형제들 중에서 셋째라고 하는 갈색 피부의 오크가 도현을 향해 으르렁 거리는 음색으로 말했다.
지구를 망가뜨리겠다는 협박.
하지만 그것은 이미 도현도 각오한 바였다.
여기서 용병왕 쿠소유차와 하는 타협은 항복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렇게 되더라도 하는 수 없겠지. 하지만 그 복수는 확실하게 해 줄 거야.”
지구나 몰티가 저들 바리바리오 형제들에게 소멸을 당하더라도.
가족들이 지구를 떠나 다른 차원으로 가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한 번 내린 결정을 뒤집고 싶지는 않았다.
용병왕이 의뢰에 충실했건 어쨌건,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각오가 단단하군. 절대 양보하지 않겠어.”
“곤란하군.”
“하지만 형제를 버릴 수는 없지.”
“그건 명확하지.”
호위 하듯 쿠소유차를 에워싼 이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그들 모두 초인이다.
도현의 선전포고를 받은 쿠소유차가 자신의 형제들을 불러들인 결과다.
진짜 형제도 아니고 종족도 다양한 무리지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끈끈한 관계인 그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이익만을 따져서 뭉치고 흩어지는 이들보다는 조금 더 결속력이 좋다는 점.
지금도 아무 이득이 없을 것 같은 싸움에 쿠소유차를 돕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
“좋다. 그럼 협상은 틀어진 것으로 알겠다. 그럼.”
도현은 쿠소유차와 바리바리오 형제들의 뜻을 확인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차원 회랑을 열었다.
“잠깐!”
그런데 도현이 뮤-지하를 데리고 차원 회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지금껏 조용히 팔짱만 끼고 있던 오거 종족이 그를 불렀다.
“뭐지? 아직 할 말이 남았나?”
도현이 몸을 돌려 오거 종족을 바라보았다.
“이걸······. 주겠다.”
오거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뭔가를 도현에게 내던졌다.
휘익! 터덥!
“으음?”
도현은 오거가 손을 휘둘러 날려 보낸 가죽 덩어리를 허공에 멈춰 세우고 의아한 눈빛으로 오거를 보았다.
그런데 바르바리오의 다른 형제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오거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기록이다.”
“응?”
“그것을 쿠소유차의 잘못에 대한 배상으로 주겠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스테 대형(大兄)!”
“이게 무슨 짓입니까?”
“왜, 의논도 없이!”
“아무리 대형이라도 이건 아닌 것 같소!”
오거, 비스테의 말에 바리바리오의 형제들이 거칠게 반발했다.
그러자 비스테가 사나운 눈빛으로 형제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대형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불만이 있다면 다음 모임에서 대형을 다시 뽑으면 된다.”
“끄응.”
“아니, 그게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대형이니 형제들의 큰 일을 결정할 권리도 있지.”
“대형이니 당연히 그럴 권리는 있지만, 왜?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겁니까?”
쿠소유차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비스테를 향해 항의했다.
“아크 마스터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우리는 저 자와 싸워서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저 뮤-지하를 이겼다. 그것도 뮤-지하의 근거지에서.”
“하지만 뮤-지하는 혼자였고, 우리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옳다. 옳은데 쿠소유차.”
“네, 대형.”
“저 아크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 형제들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저 자가 나타났을 때, 형제들이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건 알겠지?”
“네, 대형.”
“매번,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얼마나 우리의 관계가 유지될까?”
“대, 대형.”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너에 대해서 불만을 터트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사이에 우리는 저 아크 마스터의 고향 차원과 소유 차원에서 분탕질을 치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얻는 것이 뭐가 있지?”
“우리 바리바리오 형제들의 이름이 차원 곳곳에 퍼질 것입니다.”
“쿠소유차.”
“네, 대형.”
“차원 곳곳에 우리 형제들의 이름이 어찌 알려질까? 아크 마스터와 싸우는 형제들? 아크 마스터 하나를 상대로 형제단 전체가 들고 일어난?”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형제들의 우애가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이들이 우리 형제들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될······.”
“우리가 저 아크 마스터를 압도할 수 있으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가능할까?”
쿠소유차를 향해 비스테는 그렇게 물었고, 비스테는 입을 다물었다.
“아크 마스터는 자유롭지. 우리는 그를 물리칠 수는 있겠지만 완전하게 제압하긴 어렵다. 그리되면 결국 아크 마스터 하나와 싸우는 어리석은 바리바리오 형제들만 남게 된다. 차원은 우리를 그렇게 어리석은 형제들로 부르게 되겠지.”
비스테의 말에 쿠소유차는 물론이고 다른 형제들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근거지 차원을 따로 두지 않는 아크 마스터는 자유로운 이동 때문에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까다로운 존재가 뮤-지하를 제압할 능력까지 갖췄다면?
바리바리오 형제들 중에 홀로 도현을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조차도 정말로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고.
“대형······.”
“끄응. 대형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저 놈도 끝까지 우리와 싸운다고 얻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싸우다보면 결국 흐지부지······.”
“내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너희와 저 아크 마스터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아크 마스터는 절대 흐지부지 하지 않을 것 같더군.”
“하긴······.”
“대형께서 그리 보셨다면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항복하는 것은 형제들의 체면이 너무 상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스테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는 이들과 그래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이들이 나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만! 우리 형제들의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어차피 내 결정은 내려졌고, 이젠 아크 마스터의 답변만 남은 상황이니까.”
비스테는 그렇게 형제들의 입을 닫게 만들고는 도현을 바라보았다.
도현에게 자신의 배상을 받아들일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음,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단 말이지?”
“우리 형제들이 제각각 연구한 것을 묶어 놓았다. 물론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 배상으로 적당할 정도, 딱 거기까지만 담겨 있다.”
“그래? 좀 더 후하게 쓰지 그랬어? 쿠소유차의 잘못에 대한 배상만이라면 나도 받아들이기가 곤란한데? 너희가 떼로 몰려와서 나를 핍박하려 한 것을 빼 놓으면 곤란하거든.”
“크륵, 그러니까 오늘 이곳에 온 우리 형제들에 대한 감정을 씻어낼 뭔가도 필요하다는 거군?”
비스테는 덩치나 외모에 비해서 영민한 데가 있었는지, 곧바로 도현의 말을 이해했다.
도현은 스윽 어깨를 들어 보였다.
“좋다!”
휘익!
그런 도현의 모습에 비스테가 다시 한 묶음의 가죽을 도현에게 던졌다.
이번에도 도현은 그것을 허공에 뜬 상태로 멈춰 세웠다.
아직 그 가죽에 담겨 있는 내용은 펼쳐 보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 말은 언제든 협상을 엎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앞에 준 것에 덧붙은 내용이다. 그것이면 충분한 사과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다. 저 뮤-지하가 차원의 구성에 매달렸다면 우리 형제들은 개개의 육체의 발전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지.”
“육체의 발전에 대한 성과라······.”
“사실 아크 마스터 네가 도망치지 않고 홀로 싸운다면 우리 형제들 중에 하나만 나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음?”
“하지만 네가 도망치는 것을 우리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배상을 하고 잘못된 관계를 마무리 하려는 것이다.”
“정식으로 붙으면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거네?”
도현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 로드! 참으십시오. 좋게 끝낼 수 있는 협상을 여기서 엎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마스터, 바리바리오 형제들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저들은 근원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엄청난 전투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에포르와 뮤-지하가 도현이 혹시라도 딴 생각을 할까 다급하게 만류했다.
도현은 그런 둘의 반응에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나도 괜한 분쟁을 길게 이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우리 형제단의 연구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근원 에너지를 이용해서 신체를 진화시키는 갖가지 방법들에서 우리는 큰 성과를 얻었다.”
“좋아. 그렇게 협박하지 않아도 너희 형제들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테니, 걱정하지 마라.”
“그렇다면 다행이군.”
“다만 한 가지만 더 얹어줬으면 좋겠군.”
“끄응. 뭘 더 해 달라는 거지?”
비스테는 도현의 조건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번 일의 발단이 된 놈, 포일로 종족의 코무니.”
“응?”
“그 놈이 숨은 차원을 같이 좀 찾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겠군.”
비스테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손해를 봤는데, 그 녀석만 이익을 본 거 같아서 짜증이 나거든.”
“무슨 소린지 알겠다.”
“꼭 찾아달라는 건 아니야. 그냥 혹시라도 소문을 듣게 되면 그 때는 반드시 알려달라는 거지.”
“우리가 나서서 찾는 것이 아니라, 혹시 알게 될 때는 반드시 알려달라는 거군.”
“그렇지. 너희 발이 좀 넓은 거 같으니까.”
“좋다. 그 정도는 덤으로 얹어 주지.”
“하하하. 좋아. 그럼 이걸로 쿠소유차나 너희 형제들과의 감정은 없는 걸로 하지.”
비스테의 약속에 도현은 기분 좋게 웃으며 허공에 띄워 놓았던 가죽 무더기를 일곱 성 차원으로 옮겼다.
이제 대가를 받았으니 바리바리오 형제들과의 분쟁은 해결된 것이다.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을 거 같네. 코무니 놈에 대한 정보가 들어올 때까지는 조용히 수련을 좀 해야겠어.”
“마스터, 저도······.”
“당연하지, 너에게도 바리바리오 형제들의 연구를 보여주마. 함께 하면 더 좋겠지.”
“감사합니다 마스터.”
- 로드, 황금의 성을 통하면 훨씬 더 빠르게 결과를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뮤-지하와 에포르의 경쟁이 은근히 보는 재미가 있는 도현은 피식 웃으며 바리바리오 형제단을 보았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안면을 텃으니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서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기도 하고.”
“크응!”
“쩝!”
“······.”
반응이 신통찮은 바리바리오 형제들.
하지만 비스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은 훌훌 털어 버리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이제는 악감정이 남지 않은 초인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서 나쁠 것도 없고.”
그렇게 도현은 바리바리오 형제들의 주머니를 털고, 또 관계 개선에도 성공했다.
‘역시 힘이 있어야 하는 거야.’
물론 내면을 들여다보면 폭력의 승리라 할 수밖에 없는 결과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