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뮤-지하의 복수겠지?
134. 뮤-지하의 복수겠지?
“사과와 배상을 했다고 모두 끝난 건 아니겠죠. 나는 여전히 아크 마스터 당신에게 부채 의식이 있어요. 그러니 언제든 찾아와요.”
티라헤티피는 도현에게 초인 인명록을 넘기며 그렇게 말하곤 차원 회랑을 열어 사라졌다.
“정말 갈 건 아니지?”
그러자 엉거주춤 뒤쪽으로 빠져 있던 코무니가 도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왜? 그녀가 나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없지.”
“그럼 한판 붙어 보는 거지.”
“워워, 이봐. 그건 아니지. 초인들이 자신의 근거지를 잘 벗어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건 그곳에선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나도 내 차원의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모양이군.”
“물론 아크 마스터는 자신의 차원과 그 근원을 품고 있다는 장점이 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른 초인이 소유한 차원으로 가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왜? 그들이 그 차원의 근원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군. 차원의 근원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그것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지.”
“무슨 말인지 알아. 하지만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야. 초대장을 쓸지 말지는.”
“뭐, 그건 그렇지.”
“자, 그러면 이제 우리 사이의 계산을 마무리 해 볼까?”
“응? 계산이라니?”
도현의 말에 코무니가 큰 눈을 뒤굴뒤굴 굴렸다.
“내가 너 때문에 다른 초인들과 싸우게 되었잖아. 그 중에서 뮤-지하는 나를 원수처럼 알게 되었고.”
“그게 왜? 그게 내 책임이라는 거야?!”
도현의 말에 코무니가 버럭하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란 거야?”
도현이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나는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이야. 그런데 그 놈들이 방해를 한 걸 두고 나에게 잘못을 따지면 안 되는 거지!”
코무니는 다시 한 번 억울하다는 항변을 했다.
“너는 그 거래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알리지 않았어.”
“그건 나도 몰랐기 때문이야!”
“정말 몰랐다고?!”
“알았으면 내가 이곳에서 그 놈들에게 잡히지 않았겠지.”
“아, 그러니까 너는 잘못이 없다는 거구나?”
“그, 그렇지.”
코무니도 자신이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살짝 말을 더듬었다.
“좋아, 그럼 내가 너를 구해 준 값만 치르고 가.”
“뭐?”
“내 덕분에 초인들의 위협에서 벗어났잖아. 그러니까 그 값만 치르고 가라고.”
“아, 아니······.”
“왜? 그것도 주고 싶지 않아? 그럼 그냥 가도 되고.”
“이, 이봐 형제.”
“지랄하지 말고.”
“응? 뭐?”
“우리 사이의 관계는 이미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살이 난 거 같지 않아? 너는 이제 포일로 차원을 버리고 그 미지의 차원으로 갈 테지? 그럼 나하고 다시 마주칠 일도 없을 거고.”
도현은 코무니가 지정해 줬던 그 차원의 좌표를 알지 못했다.
코무니가 그곳을 오갈 수 있게 해 주기는 했지만, 그 차원의 좌표를 알려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근원 에너지를 추출해서 옴파로로 돌아온 뒤로는 다시 그 차원으로 갈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곳은 코무니가 비밀스럽게 소유하려던 곳이니 그 정도 보안이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매몰차게······.”
“너하고 뮤-지하, 나는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네가 무척 자기중심적이란 사실은 실감이 나거든. 그래서 너하고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아.”
도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자신의 뜻을 분명히 했다.
코무니와의 거래 한 번으로 꽤나 얽힌 일이 많아졌지만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도현도 초인들 사회에 끼어들어야 할 입장이니, 이번 일을 데뷔 무대로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코무니의 마무리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차피 코무니는 당분간 칩거에 들어갈 듯 보였다.
그러니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을 긋고 손절하기로 한 것이다.
“이봐,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나도 이번에 무척 손해가 크다고. 포일로 차원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하위 차원으로 숨어야 하는 내 처지도 이해를 해 줘야지.”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 내가 왜 너를 이해해고 배려해야 하지? 네가 나보다 훨씬 먼저 초인이 된 존재인데?”
“아니······.”
“그리고 포일로 차원을 버리고 새로운 차원으로 가려는 건, 그곳이 훨씬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겠지. 근원의 에너지도 몇 배는 강력하고, 반면에 근원에 담긴 기록은 단순한 편이라 너의 것으로 만들기 쉽겠지. 아니, 기록을 추출하고 이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필요한 기록을 이식해서 원하는 형태의 근원을 만들기도 유리하겠지.”
“그······. 후우우.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아냈군.”
코무니는 뭔가 변명을 하려다가 깊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그 순간 코무니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래서?”
도현은 그런 코무니를 향해 무척 포괄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제 어쩔 거냐?’는 그 질문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후우. 미안하군.”
코무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더니 차원 회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 어엇, 뭐 저런 놈이 다 있습니까? 로드! 잡아서······.
그 모습에 에포르가 분노를 터트렸다.
하지만 도현을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둬! 어차피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거니까.”
- 고립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이제부터 한동안은 그 차원에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할 걸? 포일로 차원을 버렸으니 지금까지 쌓았던 것을 모두 잃은 것이 되잖아.”
-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포일로 차원으로 와서 근원에 간섭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코무니의 영향력과 간섭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근원은 스스로 복원하는 힘이 있으니까.”
- 복원이라니요?
“초인은 자신의 차원에 있는 근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그것을 동화라 하든, 점유라 하든 기본은 하나야.”
- 어떤 것입니까?
“근원의 기록을 자신의 뜻대로 쓸 수 있게 바꿔서 다른 초인이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거.”
- 자신만 그 근원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군요?
“그게 그 차원을 근거지로 두고 있는 초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니까.”
- 그런데 코무니가 포일로 차원을 떠나서 포일로 차원의 근원을 방치하면 그 동화 혹은 점유라는 것이 약해진다는 말씀이군요?
“맞아. 사실상 코무니는 새로운 차원의 근원을 확실히 손에 넣을 때까지는 두문불출하게 될 거야.”
- 그래도 그 차원의 근원은 매우 강력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게다가 그 근원에서 에너지를 일부 떼어 냈으니, 근원의 저항력도 많이 약해졌을 거고. 코무니는 그 약점을 노려서 근원을 공략하겠지.”
- 그리고 로드께 받은 근원 에너지를 다시 근원에 되돌려서 원래의 힘을 되찾게 하고 말이지요.
에포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투덜거리는 어투였다.
“뭘 그렇게 신경질을 내고 그래? 이번 일로 내가 손해 본 것도 없는데.”
하지만 도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에포르가 발끈했다.
- 로드! 차원 의회의 의장과 용병왕, 찬탈자가 모두 로드께 원한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일 아니라니요!?
“원래 후배는 선배들에게 시달리기 마련이지. 어차피 초인 사회는 대부분 경계와 대립 관계인 것 같은데 뭐.”
- 협조나 우호적 관계도 있을 거 아닙니까.
“원래 패거리는 어디에나 있는 거지. 하지만 그 패거리도 그리 결속력이 있어 보이진 않아.”
도현은 허공에 손을 뻗어 티라헤티피가 주고 간 초인 인명록을 불러내어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그곳에는 수 백 명의 초인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들 대부분은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의회나 학술원, 용병단, 사냥꾼 길드, 차원상회 따위의 소속은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기록에 의하면 소속은 있어도 단체 활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되어 있었다.
“소속이 있으면 같은 소속에서 도움을 청할 수는 있는데, 그게 절대 공짜는 아니란 거군. 그래서 이번에 코무니도 차원상회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 했던 거고.”
- 그래도 소속이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 기대볼 곳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딘가에 적을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아, 회비 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그게 아깝지 않다면.”
- 재미있습니다. 단체가 있고,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으려면 일정한 비용까지 지불을 해야 한다니.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군요.
“초인이든 범인이든, 사는 건 비슷하다는 거지.”
도현은 그렇게 말을 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파괴된 옴파로를 보며 인상을 쓰다가 포탈을열고 지구로 귀환해 버렸다.
어차피 옴파로의 복구에 도움을 줄 생각도 없었기에 자리를 피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구로 돌아온 도현은 한동안 가족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여유는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날, 몰티 차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 * *
“차원 침략이라고?”
도현은 몰티 차원에 도착하자마자 몰티 차원의 유력자들을 불러모았다.
“그렇습니다. 며칠 전부터 허가되지 않은 차원 회랑을 통해서 약탈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약탈자 따위에게 흔들릴 몰티가 아닐 텐데?”
몰티 차원에는 지구와 하이마 드리아드, 고브니 종족의 실력자가 있었고, 그에 더해서 수많은 타이탄과 기간트가 있었다.
실제 몰티 차원의 전력은 지구의 전력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약탈자 따위가 문제가 되다니.
“평범한 약탈자들이 아닙니다. 사실 몰티는 아직 차원 교류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허가되지 않은 차원 회랑이 열린 것만 봐도 문제가 간단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차원 회랑을 열고 왔으면서도 상황이 조금만 불리해지면 곧바로 다시 회랑을 열고 도망칩니다.”
“그런 식으로 회랑을 여닫는다면 절대 약탈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분명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놈들의 정체는 모른다는 거군?”
“분위기가 용병인 것 같은 놈들도 있고, 조금 더 정돈된 놈들도 있습니다.”
“한 무리가 아니라는 거고?”
그렇게 되묻는 도현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두 곳의 세력이 떠올랐다.
옴파로의 차원의회와 용병단.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뮤-지하의 복수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에포르 역시 도현의 추측에 한 표를 던졌다.
‘의회의 수호자와 용병단의 용병들을 이용해서 흔들기를 하는 건데, 이러면 내가 불리한 거 아닌가?’
- 로드께서는 그들의 차원을 직접 공격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초대장도 있고, 초인 인명록도 있으니까 그 놈들의 차원 좌표를 알아내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 설마 전에 받았던 초대장을 쓰시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차원 의회 의장이라는 뮤-지하 놈이나, 용병왕 놈이 준 초대장은 쓰기가 꺼려지지만, 학술원장이나 찬탈자의 것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 로드, 로드의 의전담당관으로선 그 방법은 절대 말리고 싶습니다.
‘그래?’
- 너무 위험합니다. 학술원장이라는 여자나, 찬탈자도 믿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으음, 하긴 그건 그렇지.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 하나?’
-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도현의 말에 에포르가 반가운 기색으로 물었다.
‘일단 뮤-지하 놈의 차원 좌표를 알아낸 다음에, 여차하면 차원 전장을 생성시키는 거지.’
- 차원 전장을 말입니까?
‘안 될 것도 없잖아. 우리 몰티 차원에서 뮤-지하의 차원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하면.’
- 초인이 있는 차원을 상대로 차원 전장 생성이 가능할까요?
‘안 되면 결국 차원 회랑을 통한 차원 침략을 벌여야지. 일곱 성 차원의 힘을 모두 끌어내서 싸워보고 불리하면 물러나고.’
- 하지만 자칫하면 몰티 차원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뮤-지하의 차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야 당연히 일을 벌이기 전에 정보 수집부터 해야지. 적을 파악도 못하면서 전쟁을 걸 수는 없잖아.’
- 네, 로드. 그럼.
‘일단 학술원 원장을 불러보고, 안 되면 찬탈자를 불러보자.’
- 그들을 불러낼 방법이 있습니까?
‘초대장을 사용해서 그들의 차원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그냥 옴파로에서 보자고 해야지. 초대장을 말을 전하는 용도로 바꾸는 것이 어렵진 않겠지.’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황금의 성을 통해서 초대장을 개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허가되지 않은 차원 회랑으로 넘어 오는 것들은!’
- 네, 로드!
‘다시 회랑을 열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어.’
- 결계로 막지 못하는 회랑들도 있겠지만 일단은 회랑 생성을 막는 결계를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몰티가 만만한 곳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제 멋대로 회랑을 열 마음을 못 먹겠지.’
도현은 그렇게 몰티 차원의 방어 계획을 세워두고, 며칠 후 학술원장과 찬탈자의 초대장을 이용해서 옴파로에서의 만남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