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티라헤티피의 사과와 배상
133. 티라헤티피의 사과와 배상
“그래요. 나만 남았네요.”
티라헤티피는 쓴웃음을 지으며 도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항복한다고 했지만, 조건이 붙었었지. 사과와 배상, 그런데 배상은 합당한 대가로 하겠다고.”
도현이 티라헤티피를 보며 말했다.
“맞아요. 그런 선도 없다면 절대 항복을 하진 않았겠죠. 그건 아크 마스터 당신도 알고 받아들인 거 아니었나요?”
“맞아.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 보상까지 당신이 정하도록 맡겨 놓을 생각은 없어.”
“합당한 대가를 스스로 원하는 쪽에서 찾아가겠다는 거군요?”
“그렇지. 아무리 가치가 큰 것이라고 해도, 그게 나에게도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어떤 것을 받아도 내가 당신과 저 차원상인 놈을 공격한 것에 합당한 대가일 거예요. 그건 확실하죠.”
“그렇겠지. 근원의 기록을 걸고 약속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대가는 내가 정하겠다. 거부할 건가?”
도현은 티라헤티피가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싸움을 벌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티라헤티피도 그런 도현의 의지를 읽었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반대하지 않겠어요. 원하는 것을 말해요. 그것이 합당하다면 나는 항복의 대가로 그것을 내어 줄 거예요.”
“좋군.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
“그래요. 나는 먼저 아크 마스터 당신에게 내가 벌였던 일에 대해서 사과해야죠.”
티라헤티피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두 손을 양쪽 어깨에 올려 교차한 모습으로 깊이 허리를 숙였다.
“나지하라 차원의 티라헤티피는 지구 차원의 아크 마스터 캐슬에게 강제와 억압의 수를 쓰려 했음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이에 다시 한 번 티라헤티피의 이름으로 합당한 배상을 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티라헤티피는 깊이 허리를 숙인 상태로 그렇게 사과했으며 직각에 가깝게 숙인 허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도현은 그것이 사과를 받아줄 것을 청하는 모습임을 알아차렸다.
“좋아. 항복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사과 또한 받아들인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 당신의 사과를 받겠다. 그리고 합당한 배상이 끝나는 순간 당신의 잘못을 용서하겠다.”
도현은 티라헤티피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동시에 배상이 끝나면 용서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티라헤티피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도현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허리를 굽힌 상태로 오래 있지 않았고, 허리를 펴는 것과 동시에 양 어깨에 올렸던 손도 풀어 내렸다.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받으면 좋을까, 그것이 남았군. 그에 대해서 당신이 해 줄 조언이 있을까?”
도현은 자신이 배상의 종류를 정하겠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티라헤티피에게 배상으로 받으면 좋을 것에 대해 물었다.
티라헤티피는 그런 도현의 말에 활짝 웃었다.
줄 수 있는 것을 여럿 제시하면 도현이 그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거나 유사한 것을 요구하겠다는 의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선 배상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네요. 유형의 것과 무형의 것.”
“유형의 것은 물질이겠고, 무형의 것은 지식이나 정보, 기술 같은 것들인가?”
“그렇죠.”
“그럼 당연히 무형의 것이 좋지 않나?”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리고 어차피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그 가치의 합은 비슷할 거예요.”
“아, 이번 일에 대한 합당한 배상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뭐죠?”
“초인이 넷이나 모여서 코무니를 공격한 이유, 그걸 알 수 있나?”
“정보도 배상에 들어가는데, 그것도 포함을 할 건가요?”
“아니, 덤으로 알려줄 수 있으면 알려달라는 거였어. 어차피 코무니에게도 물어볼 생각이니까, 당신에게 듣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
“코무니가 대답을 해 줄까요? 그리고 그 대답에 빠진 것은 없을까요?”
“그거야 코무니가 알아서 선택할 문제지. 어차피 그와 나의 거래는 끝난 상황이니까.”
“호호호. 그래도 저 차원상인은 당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할 테니, 대부분은 털어 놓겠군요.”
“그래서 코무니에게 들으란 건가?”
“아니에요. 그러니 제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죠. 저 포일로 종족의 차원 상인은 분명 제게 좋을 대로 이야기를 할 테니까요.”
티라헤티피는 도현의 뒤쪽에 조금 떨어져서 서 있는 코무니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빛에 코무니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문제의 발단은 저 차원상인 놈의 욕심이에요.”
“욕심?”
“포일로 차원이 저 놈의 근거지죠. 그곳의 근원이 저 놈의 힘이기도 하고.”
“그런가?”
“대부분의 초인들이 각자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죠?”
“그거야 뭐.”
“우리는 한 차원의 근원을 탐구하고 탐구하여 모든 것을 밝혀내고, 그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해요. 그 과정이 모두 이루어지면 그 차원에서는 절대자가 될 수 있죠.”
“그렇겠지. 차원의 모래 알 하나까지도 근원에 묶여 있으니까.”
“맞아요. 그래서 그 모래알에 대한 기록에 손을 대면, 그 모래알이 황금이나 수정이 될 수도 있고, 대형 괴수나 신수가 될 수도 있죠.”
“말 그대로 신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지.”
“맞아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코무니가 뭘 어쨌다는 거지?”
도현은 이야기가 겉도는 것을 느끼고 화제의 중심을 코무니에게로 옮겼다.
“저 차원상인은 근원의 기록을 추출하고 그것을 다시 이식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하더군. 굉장한 능력이지.”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죠. 저 차원 상인은 포일로 차원의 근원에서 몇 가지 기록을 추출하고 또 이식하는 실험을 했어요.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도 같은 짓을 했죠.”
“설마하니 초인들의 차원에 가서 그런 짓을 했나?”
“이번에 나선 네 초인들 중에 용병왕을 제외한 세 초인의 차원에서 수작을 부렸죠.”
티라헤티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한 번 코무니를 노려봤다.
“다른 초인의 차원에서 그런 짓을?”
도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코무니를 돌아왔다.
초인이 없는 차원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굳이 초인의 근거지에 가서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있었나?
“아, 그···. 초인이 가다듬은 근원에도 내 능력이 통하는지 시험을 해 봤을 뿐이야. 그리고 기록을 빼돌린 것도 아니었어. 그냥 추출을 했다가 다시 되돌려 놨다고.”
코무니는 억울하다는 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와 찬탈자의 근원엔 제대로 기록을 돌려놨지. 하지만 뮤-지하는? 그의 근원에는 왜 다른 기록을 끼워 넣었지?”
코무니의 변명에 티라헤티피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사나운 기세로 따졌다.
“그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기록을 되돌려 넣는 과정에서 변수가 생겨서 그렇게 된 거야.”
“변수? 그 때문에 뮤-지하의 차원에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고 있는데? 근원의 중심에 새겨진 기록일수록 변경하기가 어렵다는 걸 네가 모르진 않을 텐데?”
“그, 그건······.”
“그래서 뮤-지하가 너에게 같은 기록을 찾아 오라고 여유를 줬지. 그런데 너는 우리가 찾지 못할 곳으로 도망갈 생각을 했지.”
“일이 그렇게 된 건가?”
도현이 편치 않은 시선으로 코무니를 돌아봤다.
코무니가 차원 의회의 의장인 뮤-지하에게 잘못한 것은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결국 이번 일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차원 의회의 의장인 뮤-지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웃기지 마! 내가 뮤-지하 그 놈에게 가져다 준 기록만 수 십 개야. 그런데 놈은 매번 그것이 아니라고 했지. 분명 같은 기록인데도.”
코무니는 도현의 눈빛을 받자 억울하다는 듯이 티라헤티피에게 항변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아. 뮤-지하의 차원은 여전히 네가 만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그거야 뮤-지하 그 놈이 내가 준 기록을 근원에 옮겨 새기지 않기 때문이지. 그래 놓고, 내가 준 것이 원래의 것과 다르다며 매 번 새로운 것을 요구할 뿐이야.”
“흐응.”
티라헤티피도 그런 깊은 사정은 몰랐다는 듯이 생각이 많은 표정이 되었다.
“나도 내 잘못은 알아. 하지만 뮤-지하 그 놈의 요구를 계속 들어줄 수는 없다고. 지금 그 놈에게 줄 기록을 추출한 차원들은 뮤-지하의 차원과 같은 문제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단 말이야.”
“뭐? 같은 문제?”
티라헤티피는 다른 차원들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현도 이 부분에선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기록을 추출한 차원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면 코무니가 뮤-지하에게 제대로 된 기록을 추출해서 줬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숨겨야겠다는 결론을 내게 된 거지. 뮤-지하 놈의 욕구를 계속 들어주자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차원이 혼란에 빠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뭐가 또 남았다는 거야?”
“내가 그 놈의 근원에서 기록을 추출한 후에 다시 되돌려 놓을 때, 문제가 생긴 거.”
“그게 뭐?”
“그거 어쩌면 뮤-지하 그 놈이 중간에서 수작을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뭐라고?!”
“너나 찬탈자의 차원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그 놈의 차원에서만 문제가 생긴 것이 의심스럽다고. 그리고 솔직히 내가 그런 시험을 하겠다고 했을 때, 너희도 동의했던 거잖아. 나도 적잖은 대가를 지불했고.”
“그야 그렇지만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해결해 준다고 약속한 것은 차원상인 너였다.”
“맞아. 그래서 뮤-지하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주려고 애를 썼던 거지. 하지만 놈의 요구는 선을 넘었다!”
도현은 코무니와 티라헤티피의 말싸움을 들으며 이번 일의 원인에 대해서 대충 알게 되었다.
하지만 뮤-지하와 코무니, 어느 쪽이 잘못인지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심정적으로야.
- 로드! 분명 그 용인족 놈의 수작이 분명합니다.
라고 하는 에포르의 말에 무게가 실리긴 했지만.
“자, 이만하면 이번 일에 대해선 대충 알겠군. 이보다 더 깊은 내용이나,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나중에 하자고. 지금은 원장이 나에게 줄 보상을 정하는 것이 먼저니까.”
도현은 이쯤해서 둘의 언쟁을 끊기로 했다.
“그래요. 지금은 저 차원상인이 문제가 아니죠. 우선은 아크 마스터와 내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것이 우선이겠네요. 그래서 아크 마스터는 유형의 보상 보다는 무형의 보상을 원한다는 거죠?”
“맞아. 가치가 같다고 해도 아무래도 나는 무형의 것이 더 나아 보이거든.”
“좋아요. 그럼 아크 마스터, 당신이 관심이 있어 할 만한 정보와 지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죠.”
도현이 무형의 보상을 선택하자 티라헤티피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소매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도현은 그 책이 학술원에서 받은 탐사 일지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알아보았다.
파라라라락!
“자, 여길 보세요. 이것들 중에 원하는 것이 있거나, 비슷한 것이 있으면 말해 봐요.”
티라헤티피는 책을 허공에 띄웠고, 책은 스스로 책장을 넘기다가 한 부분에서 멈췄다.
도현은 그 페이지가 하나의 목차란 사실을 알아봤다.
티라헤티피는 도현에게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을 추려서 목차로 보여 준 것이었다.
“이거 재미있겠군.”
도현이 페이지에 적힌 목차들 중에 하나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초인 인명록(옴파로 학술원)]
“인명록 말인가요?”
“인명록이라고 정말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닐 거 아냐?”
“그렇죠. 옴파로 학술원에서 파악한 모든 초인들에 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죠.”
“나처럼 이제 겨우 초인이 된 경우엔 이런 정보가 무척 요긴하지. 쉽게 얻기도 어렵고.”
“그렇겠죠. 하지만 또 어쩌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저 차원 상인도 제법 많은 초인들을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런 정도라면 이번 일에 대한 합당한 배상으로 나오지 않았겠지. 아니면 이 이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럿 있을 테고. 그렇지 않나?”
“호호. 맞아요. 그리고 이건 이 하나로 합당한 배상이 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정보죠.”
티라헤티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목차를 손가락을 찍었다.
텁! 휘리릭! 파라라라락!
그러자 펼쳐졌던 책이 덮이더니 허공에서 회전하며 표지와 두께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뀐 책은 다시 책장이 빠르게 뒤로 넘어가며 하얀 백지에 마지막 장까지 내용이 새겨졌다.
“여기 있어요. 초인들에 대한 기록.”
책이 완성되자 티라헤티피가 그것을 손으로 잡아 도현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