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네 초인의 공격을 받다
131. 네 초인의 공격을 받다
겉으로 보면 근원 에너지를 덜어내어 코무니에게 전해 주는 간단한 거래.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코무니가 자신의 근거지를 옮기려는 비밀스러운 계획이 있다.
거기에 도현은 근원에서 기록을 추출하는 비법을 엿보고, 근원 에너지를 보관하는 그릇 제조법을 얻었다.
서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각자의 이익을 알아서 챙기는 거래.
하지만 그 거래가 완료되기 위해서는 코무니가 준 그릇에 근원 에너지를 가득 채워야 했다.
“이게 시간이 제법 걸리네.”
도현은 근원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차원 곳곳을 탐방했다.
그것은 몰티 차원에서 탐사 일지를 쓸 때와 비슷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식생과 생물과 광물과 환경을 살피고, 그것들이 차원에서 어떻게 어우러져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
거기에 차원의 근원에 새겨진 기록들을 살피며, 그것이 지금의 차원 형성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연관시켜 본다.
“이거 제법 공부가 되네.”
- 그렇습니까?
“근원의 기록이 차원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잖아. 아주 괜찮아.”
- 그렇게 의미가 있습니까?
“근원에 새겨진 기록이 시간에 따라서 조금씩 늘어난다는 거 알아?”
- 차원에 변화가 생기면 그것이 기록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과는 조금 달라. 원래 기록이 차원에 적용된 후, 시간을 비롯한 여러 변수에 의해서 변화를 겪게 되지. 그렇게 변한 것이 근원에 기록으로 남는 거야.”
- 그럼 그 전에 있던 기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당연히 새로운 기록이 그것을 덮게 되지.”
- 사라진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덧칠 되는 거야. 그러면서 끝까지 영향력을 잃지 않고 힘을 쓰기도 하지.”
- 새로운 기록은 이전 기록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하지만 그런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간혹 초기 기록과는 전혀 다르거나 혹은 정 반대의 모습이 나올 때도 있지. 이래서 근원의 기록이 재미있는 거고.”
- 이곳 차원에서 그런 것을 배우신 겁니까?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고 할까? 기록의 변화와 변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었고. 이런 식으로 접근할 기회를 얻은 것만도 코무니와의 거래는 많이 남는 장사야.”
-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근원 에너지는 다 모으신 겁니까?
코무니와의 거래로 이 이름 없는 차원에 들어온 것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에포르는 도현이 너무 이곳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났지. 하지만 그릇 복제 성공이 눈앞이니, 그게 만들어지면 실험도 해 봐야지.”
- 저, 로드. 지구에 한 번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도현이 황금의 성에서 복제할 그릇을 언급하자 에포르는 결국 미루고 있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 때문에?”
도현이 조심스러운 기색의 에포르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물었다.
- 그렇습니다. 로드께서 의도적으로 가족들과 거리를 두시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입니다.
에포르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보모님과 여동생에겐 흑영이 붙어 있어. 문제가 생기면 알겠지.”
- 그건 그렇지만, 로드께서 그 분들과 거리를 두시는 것은······.
“가족의 정이 없어진 건 아니야. 하지만 존재 자체가 달라졌잖아. 내가 부모님과 여동생을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는 것까진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선을 넘을 수는 없지.”
- 로드께서 원하시면 일곱 성 차원으로 모셔서 정착을 시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가족만? 아니면 그룹 전체를 옮길까?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 전체? 한계를 어디에 둘까?”
- 로드.
“그래서 가족들은 가족들의 뜻대로 살게 두는 거야. 더 크고 넓고 깊은 세상을 보여주고 억지로 끌고 나올까도 했지만, 그걸 감당하지 못할 걸 아니까.”
- 그렇습니까?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게 아니야. 가족의 정이 바뀐 것도 아니고. 다만 함께 하기엔 내가 많이 변했지.”
- 괜찮으십니까?
“뭐? 나름 좋은 쪽으로 변한 거잖아. 그걸 가족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서 함께 하기 곤란해진 부분이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도현도 그 동안 가족들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가족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해 주는 것.
그런데 부모님이나 여동생이나 지구 이상으로 삶의 범위를 넓힐 뜻이 없었다.
아버지가 사업적으로 다른 차원과의 교류에 욕심을 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룹 차원의 문제일 뿐.
모두들 더 큰 욕심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도현도 거기에 맞춰서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며 지켜볼 따름이었다.
“나중에 부모님이나 여동생이 바라는 것이 생기면, 그 때 나서도 되겠지.”
- 그런 생각이시라면 이 에포르도 거기에 맞추겠습니다.
“그리고 걱정할 거 없어. 근원 에너지의 그릇을 복제한다고 그 그릇을 여기서 채울 생각은 아니니까. 그냥 그릇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시험만 해 보고 끝낼 거야.”
- 알겠습니다 로드.
* * *
콰과광!
“크아악!”
“살려줘!”
“아아악!”
콰르르르르릉! 우르르릉!
쿠구구구궁!
옴파로의 일각이 무너지고 있다.
최대한 도시 외곽으로 나왔음에도 피해는 엄청났다.
“이게 무슨 짓이지?”
도현은 호위 기사들 사이에 서서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두 명의 초인이 나란히 서서 도현과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용병왕과 찬탈자!
“어서 그걸 내 놓아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 당연히 그것을 가지고 온 차원의 좌표도 함께!”
“웃기는 소리!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 줄까보냐!”
“코무니, 이미 승패의 저울은 기울었습니다. 포기하고 내 놓으세요.”
“해 봐! 어디 끝까지 가 보자고!”
도현과 수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코무니가 두 명의 초인의 공격을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차원 의회의 의장과 학술원의 원장이었다.
뜻밖인 것은 학술원의 원장이 인간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차원 의회의 의장은 용인족, 용병왕은 거인족, 찬탈자는 데몬족이었다.
이들은 도현과 코무니가 만나는 순간을 노려서 공격을 가해왔다.
그 때문에 옴파로의 곳곳이 파괴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다시 묻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도현이 용병왕과 찬탈자를 보며 물었다.
용병왕은 7미터 크기의 녹색피부 거인족이었고, 찬탈자는 붉은 피부에 검은 박쥐 날개를 가진 데몬족이었다.
이 둘은 도현을 공격하기 보다는 코무니를 돕지 못하게 막는 중이었다.
처음 도현과 코무니를 떼어놓기 위해서 강력한 공격을 했지만, 도현이 코무니와 떨어진 후에는 공격의 강도를 낮추다가, 지금은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도현은 지금의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들 네 명의 초인들이 자신의 일을 방해한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너는 손해 볼 것이 없을 텐데? 거래는 끝나지 않았나?”
도현의 말에 용병왕인 거인족이 말했다.
“그렇지. 근원의 그릇을 주고, 기록이 담긴 보석을 받았으면 거래는 끝난 거지. 그런데 뭐가 불만이지?”
용병왕의 말을 찬탈자가 받았다.
따지고 보면 거래가 끝났다는 둘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니들은 대가만 주고 받으면 그걸 거래 끝이라고 하는 모양이지? 용병이 호위 의뢰를 받았는데, 의뢰 완료라고 대금을 받는 순간 누가 그 호위 대상의 목을 쳤어. 그럼 너는 가만히 있을 건가?”
도현이 용병왕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용병왕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용병 계약은 끝났으니까 문제는 아닌데, 기분이 나쁘겠지.”
“기분?”
“감히 내 앞에서 그런 짓을 했으면 그걸 어떻게 참아?”
“그렇지? 너도 그런데 나는?”
“쩝.”
도현의 말에 용병왕은 입맛 다시는 소리만 낼 뿐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도현의 시선이 찬탈자를 향했다.
“너는 어때?”
도현이 물었다.
그러자 찬탈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톱날검에 근원 에너지를 실었다.
“그렇지? 씨발, 이제 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지?”
도현이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푸화화화화확!
도현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한 순간 흙먼지가 텨졌다.
카가가강! 까가강! 카드드드득!
퍼버버버벅! 퍼버벅!
“크롸롸롸롸롸롸!”
“쿠오오오오오!”
그 흙먼지는 도현과 용병왕, 찬탈자를 모두 휘감았고, 그 안에서 격렬한 타격음 소리가 들렸다.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 둔중한 타격음, 날카로운 것이 살을 찌르고 찢는 소리.
비명과 포효!
스스스슥! 스스스슥!
하지만 그 혼돈은 길지 않았다.
흙먼지들은 빠르게 산성병사의 모습으로 합쳐졌고, 그 안에서 용병왕과 찬탈자를 공격하는 산성의 장군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크으, 이거 우리가 생각을 잘못했군.”
“맞아. 오판이야. 그것도 아주 심각한.”
흙먼지가 걷히며 드러난 용병왕과 찬탈자의 모습은 심각했다.
몸 여기저기 날붙이에 베이고 찢긴 상처가 가득했고, 깃만 보일 정도로 깊이 박힌 화살들도 보였다.
“근원 에너지를 이렇게까지 능숙하게 쓴다고? 크르르륵!”
용병왕은 놀란 눈으로 도현을 보며 말하다가 목에 난 구멍에서 녹색 피가 꿀렁거리며 흘러나왔다.
“굉장하군. 소환체들이 근원 에너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니, 이건 승산이 없어!”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찬탈자의 몸에 난 상처에서는 묘한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찬탈자의 피는 옴파로의 대기에 섞이지 못하고 마찰을 일으키며 불탔다.
그 때마다 찬탈자는 인상을 찌푸렸는데 몸의 상처 보다는 피가 타오를 때에 느끼는 고통이 더 큰 것처럼 보였다.
“이건 도리어 내가 놀랄 일이군. 도데체 나를 얼마나 하찮게 봤으면 고작 이런 정도 밖에 안 되지?”
도현은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용병왕과 찬탈자를 보며 물었다.
용병왕과 찬탈자를 상대로 낙승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여기서 양보하는 것은 양보가 아니라 굴복이란 생각에 대차게 들이댄 것인데, 의외로 용병왕과 찬탈자가 약했다.
산성병사와 흑영, 레인저를 동시에 소환하며 기습을 했는데, 그게 이렇게 쉽게 통하다니.
“아크 마스터의 성장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너도 아직은 그리 대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네가 아크에서 병사들을 소환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그 소환체들이 이렇게 강력한 근원 에너지를 사용할 줄은 몰랐지.”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냥 얕잡아 본 거잖아. 그걸 뭐 그렇게 길게 이야기를 해?”
도현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 로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것들 죽일 수 있을까?’
- 초인을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렇게 약해 보이는 것도 자신들의 근거지를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궁지에 몰리면 도망을 갈 거란 말이지?’
-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궁지에 안 몰면?’
- 네?
‘이쯤에서 좋게좋게 끝내자, 뭐 그런 게 되겠냐고.’
- 그래도 일단 협상은······.
‘일단 기분이 풀릴만큼은 때린 후에 협상을 해도 하자. 아직 화가 안 풀렸어.’
- 로, 로드?
치이이이잉! 휘익!
카강! 카드드득!
카가가가강! 카가강!
“으읏!”
“이런!”
도현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바로 용병왕과 찬탈자를 공격했다.
도현의 의지를 받은 산성의 장수들과 흑영, 레인져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격의 일부는 코무니를 압박하고 있던 학술원장과 차원의회 의장에게로 향했다.
“아앗!”
“이런! 곤란하군!”
그런 도현의 움직임에 학술원장과 차원의회 의장이 훌쩍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다.
이에 코무니도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군.”
코무니는 곧바로 도현의 곁으로 달려왔다.
그렇게 도현과 코무니가 모여서 호위 기사단의 보호를 받기 시작했을 때, 산성병사들과 흑영, 레인져가 네 명의 초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중이었다.
콰과과광! 콰과광! 콰르르르릉!
그런데 그 때, 도현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탑의 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제일 아래쪽에서부터 붉은 색으로 충전을 시작했다.
“뭐? 뭐냐? 지금 어딜 겨누는 거냐!”
“이봐, 이건 아니지!”
“멈춰요. 학술원은······.”
“피하지 말라는 말이군! 젠장!”
탑이 충전되는 모습에 네 초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탑의 마법이 그들 초인이 아니라 학술원, 의회, 용병단, 사냥꾼길드를 겨누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랄, 니들 공격에 무너진 건물이며 죽은 사람은? 니들이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불륜이냐?!”
도현은 네 초인의 반응에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탑을 가리켰다.
우우우우우우우웅!
탑의 성은 아래쪽에서부터 빠르게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