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코무니와의 거래에서 위너는 누구일까?
130. 코무니와의 거래에서 위너는 누구일까?
“근원의 기록, 욕심나지 않나?”
“무슨 소리지?”
“근원 자체를 이식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지. 하지만 새로운 기록을 새겨 넣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 해.”
“근원 자체를 이식하는 것은 그 근원에 있는 많은 기록도 그대로 옮기는 거니까. 하지만 기록 대부분을 비활성화 시킨 상태로 이식하면 그 위험을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어.”
도현은 코무니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거론했다.
코무니의 제안에 무조건 끌려가진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였다.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잖아. 근원 자체를 이식한다는 것은 그 근원이 품고 있는 에너지까지 함께 옮기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근원 에너지가 넘치는 문제가 생겨. 너무 많은 에너지는 통제가 불가능하고, 그 에너지는 결국 잠재워 놓은 기록들로 흘러들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기록 충돌이 일어나고 차원 자체가 붕괴되거나 폭발하겠지.”
도현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코무니의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니 근원 자체의 이식은 위험하다는 거지. 그에 비해서 기록을 옮겨 새기는 것은 그나마 괜찮다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서 나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록을 주겠다는 건가? 그게 나에게 주는 보수?”
“맞아. 나는 의뢰를 하고, 자네는 그 보상으로 내게서 기록 몇 개를 받는 거지.”
“기록을 받는다?”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기록을 추출해서 보관하는 방법이 있어. 익히기 쉽지 않은 거고, 성공 확률도 무척 낮은 일이지만.”
“기록을 추출해서 보관하는 방법이라? 나는 기록 자체보다는 그 방법이 더 탐나는데?”
“워워워. 그건 곤란하지. 그건 거래 대상이 될 수 없어.”
“그런가?”
“그래.”
“아쉽군. 하지만 누가 그랬지, 상대가 거래를 거부하면 내가 주는 것이 부족하지 않은가 돌아보라고.”
“크하하하. 하긴, 내가 그것을 내어주고도 아깝지 않을 뭔가를 가지고 온다면. 그래, 세상에 절대란 없으니까.”
코무니는 넉넉한 뱃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좋아. 일단은 그 기록이란 것을 대가로 나에게 뭘 원하는지 들어볼까?”
도현은 코무니에게 거래의 내용을 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근원 에너지야.”
“근원 에너지?”
“아크 마스터는 여러 차원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 그리고 그 차원에서 근원 에너지를 취할 수도 있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부탁을 하려는 거야. 내가 지정한 차원에서 근원 에너지를 흡수한 다음에 그 에너지를 나에게 주는 거지.”
“당신에게 근원 에너지를? 그게 가능한가? 그리고 내가 근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지 않나?”
도현은 근원 에너지를 따로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양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무한정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다면, 차원의 근원을 일곱 성 차원에 이식하는 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근원 에너지 대부분을 흡수하여 기록들을 침묵 시킨 후에 이식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도현이 근원 에너지를 따로 저장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아, 그걱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하는 양의 근원 에너지를 저장할 그릇을 줄 테니까. 거기에 가득 채워 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음? 오늘 여러모로 놀라는군. 기록을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근원 에너지를 저장할 그릇도 있다고?”
“기록 추출은 내가 가진 재주고, 근원 에너지를 저장할 그릇은 또 다른 경로로 확보한 거지. 어때? 해 볼 생각이 있나?”
“음, 마다할 이유는 없는 거 같지만 중요한 내용이 빠졌군.”
도현은 신중한 표정으로 코무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코무니가 큰 입을 더 길게 찢으며 활짝 웃었다.
“거래에 긍정적이라니 다행이군. 그럼 이젠 내가 자네가 만족할 대가를 보여주면 되겠지?”
코무니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자신의 배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도현은 그것이 처음보는 유리질의 보석임을 파악했다.
검은 색의 보석은 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고, 제각각의 면들이 표면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 근원 에너지? 아니, 차원의 근원인가? 아니, 그것도 아니군. 근원이 아니야. 그런데 기록이 담겨 있군.”
도현은 빠르게 코무니의 손에 있는 보석을 분석했다.
“역시 보는 눈이 좋군. 맞아. 이게 내가 추출한 기록들을 담아 놓은 것이야. 어디 한 번 확인을 해 보겠나?”
“그래도 된다면.”
“자, 그럼 어디 한 번 살펴봐.”
도현의 대답에 코무니는 곧바로 보석을 던져 주었다.
도현은 날아오는 보석을 정신 에너지로 받아서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근원 에너지가 담겨 있는 보석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피하려는 행동이었다.
“음, 기록들이 제법 많이 들어 있군. 쓸모없는 것도 있고, 요긴한 것도 있고.”
“그렇겠지. 주문을 받아서 특별히 만든 것도 아닌데, 자네에게 필요한 것만 들어 있을 수는 없지. 그래서 어때? 그걸 대가로 줄 생각인데.”
“나쁘지 않아. 쓸모 있는 기록들도 제법 많이 있어.”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대가라면 코무니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많았다.
“좋아. 이거라면 거래를 시작해 볼 수 있겠어. 하지만 원하는 근원 에너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도 중요하겠지? 게다가 차원 자체를 지정해 준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떤 차원인지도 알아야 하고.”
“그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근원 에너지의 양은······. 그리고 그 근원 에너지를 흡수할 차원은······.”
코무니는 흥이 나서 거래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현과 코무니의 거래는 무르익어갔다.
* * *
“이런 곳도 있군.”
도현은 코무니의 의뢰로 하위 차원의 한 곳에 도착했다.
코무니가 의뢰한 차원은 차원 회랑의 시스템에도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차원이었다.
즉, 차원 교류가 허락되지 않은 곳으로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곳이었다.
- 하위 차원인데도 근원에너지가 풍부하다니 신기합니다.
“그러게. 보통 근원 에너지가 많은 차원은 진화가 빠른 편인데, 여긴 지성종이 없단 말이지.”
-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짐작되는 것도 있고.”
- 이유를 아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차원의 근원에 지성종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근원 에너지는 넘치는데 지성종은 없는 상태가 된 거겠지.”
- 이런 곳을 로드께서 먼저 아셨다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그럼 몰티 차원처럼 로드의 소유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에포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 차원은 그렇게 할 수가 없어.”
- 네?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엔 지성종이 살 수가 없다는 이야기야.”
- 아니, 어째서······.
“차원의 근원이 그것을 막고 있으니까. 여기는 문명의 태동 자체를 금지하는 기록이 활성화되어 있어.”
- 네? 그런 기록도 있습니까?
“자연주의라고 할까?”
- 그럼 하이마 드리아드 일족이라면······.
“아니, 그들도 여기선 살 수 없어. 지성종의 번식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야. 그래서 다른 차원의 지성종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도 오래 갈 수가 없지.”
- 그럼 이곳에선 지성종의 후대가 태어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래.”
- 무서운 곳이군요. 로드, 로드도 빨리 이곳을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찮아. 그 기록은 이곳 차원에만 적용되는 거니까. 그리고 꺼림칙하면 나도 근원 에너지를 이용해서 기록에 저항할 수도 있고.”
- 꼭 그렇게 하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런데 코무니 말이지.”
- 네, 로드.
“어쩌면 코무니가 나를 여기에 보낸 것은 근원 에너지를 얻고 싶어서가 아닐 수도 있겠어.”
-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쩌면 코무니가 이곳을 탐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 코무니가 여길 말입니까?
“음.”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코무니 그 자도 자신의 차원을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또 다른 차원을 탐내다니요? 그건 아크 마스터나 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지금까지 도현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근원 에너지를 사용하는 초인들은 자신의 근거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차원을 오랜 시간 동안 길들여, 결국에는 그 차원의 근원과 그 에너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다른 초인들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초인들끼리도 서로 다른 초인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도로 꺼린다고 했다.
그런 제약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것이 아크 마스터.
아크 마스터처럼 자신의 차원을 소유하고 다니거나,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는 이들만 차원 이동에서 자유로웠다.
일반적인 초인들은 자신의 차원에서나 제 힘을 모두 쓸 수 있을 뿐,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면 근원 에너지의 사용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초인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근원 에너지의 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코부니 역시 그러한 차원을 가지고 있고, 그 차원은 다름 아닌 포일로 종족의 본성인 포일로 차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에포르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포일로 차원을 버리고 이곳으로 근거지를 옮기려는 거지. 아울러서 포일로 종족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정착시키고.”
- 로드, 여기는 지성종이 살지 못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기록이······.
“그렇지, 그런데 코무니는 불필요한 기록을 추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 아까 말했던 자연주의 뭐 그런 조항의 기록들을 모두 추출하고, 지성종 번식에 대한 제약을 풀어버리면?”
- 그럼 포일로 종족이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겠군요.
“그렇지. 이미 포일로 차원이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을 얻게 된다고 손해볼 건 없잖아?”
- 코무니 초인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능력이군요. 그런데 그렇다면 굳이 로드에게 이런 일을 부탁할 필요가 있습니까?
에포르는 코무니가 도현에게 의뢰를 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도현은 그 이유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근원에서 기록을 추출하는데 근원 에너지의 양이 많은 것이 걸림돌이 될 거야. 그러니까 근원 에너지를 줄일 필요가 있지.”
- 그래서 그걸 로드께 부탁했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 후에 코무니가 여기로 와서 필요한 기록들을 지우고, 또 첨가한 후에 다시 근원 에너지를 보충하면 지금처럼 풍부한 근원 에너지를 지닌 차원이 되는 거지.”
- 로드께서 흡수해서 코무니에게 준 것을 코무니가 다시 여기에 되돌린다는 말씀이군요?
“반드시 그럴 거라는 건 아닌데, 가능성은 높아 보여. 그게 아니면 굳이 차원을 정해서 나에게 근원에너지 흡수를 부탁할 이유가 없겠지.”
- 직접 해도 될 거 같은데요?
“그러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 네? 기습이요?
“초인들 사이에도 분쟁은 있지 않겠어? 기습이 아니라도, 코무니가 포일로 차원을 오래 비우지 못할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코무니가 로드를 그렇게 이용하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거래는 나쁘지 않아. 합당한 대가를 주고 거래를 한 거잖아.”
- 하지만······.
“속이는 것과 숨기는 것은 조금 달라. 코무니는 숨긴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나에게 손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 자신이 얻을 큰 이익을 숨겼다고 그게 잘못은 아니야. 그리고 나도 이번 거래에서 크게 이익을 보는 것도 있고.”
- 큰 이익이라니요?
“초인들의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 것만도 큰 이익이지. 게다가 근원을 담는 그릇이나 기록의 추출과 이식에 대해서도 제법 배울 수 있게 되었잖아.”
- 그거야 로드의 능력으로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논외로 쳐야······.“하하하. 그럼 코무니의 일도 그렇게 봐 줘야지.”
도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너그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도현은 충분히 그럴 이유가 있었다.
코무니에게 거래의 이행 수단으로 받은 근원 에너지의 보관 그릇.
그것에 대한 비밀을 제법 많이 풀어낸 것은 물론이고, 코무니가 대가로 주기로 한 그 추출 기록이 담긴 보석까지, 황금의 성에서 어느 정도 분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근원 에너지를 담는 그릇은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완전히 분석해서 복제가 가능할 거야. 그리고 코무니에게 추출 기록 보석을 받으면 기록 추출에 대한 비밀도 어느 정도 풀어볼 수 있을 거고.”
일곱 성 중에서 황금의 성이 그것들까지 풀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번 거래의 승자는 코무니가 아니라 도현이었다.
“뭐 서로 윈윈 하는 거래이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코무니는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지만.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