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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는 회귀해서 군주가 되었다-121화 (121/184)

121. 와, 지배력의 정체가 영혼을 녹인 거였어?

121. 와, 지배력의 정체가 영혼을 녹인 거였어?

스슥!

황제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시종장이 마력을 움직여 마법을 펼쳤다.

간단한 소멸계 마법이었다.

마법이 적용된 것은 분해해서 이차원으로 날려버리는 마법.

마력에 대한 저항이 있다면 통하기 어려운 마법이지만 시체에 가까운 상태의 부상자라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끄응, 무슨 벌레 죽이듯이 죽이려 드네.”

그런데 시종장의 마법이 닿는 순간, 쓰러져 있던 바이디야 주코 나탄이 앓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쯧.”

그 모습에 황제가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시종장이 몸 둘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며 허리를 숙였다.

“아니, 아니다. 너?!”

그 때, 황제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이디야를 노려봤다.

이에 맞서 바이디야 역시 황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봤다.

뿔이 뽑혀 두피가 상한 바이디야의 모습은 알케이네스 종족이라 보기 어려운 기괴한 모습이었다.

“너, 나탄 백작이 아니로군. 네가 바로 이 일을 일으킨 원흉이렸다?!”

황제가 바이디야를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살짝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황제의 말에 뒤에 있던 시종장이 깜짝 놀라며 서둘러 황제의 앞으로 나섰다.

황제를 적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황제?”

도현이 시종장 뒤쪽의 황제를 확인하듯 불렀다.

“네 놈, 지구 차원에서 온 것이 맞겠지?”

그런 도현에게 황제가 물었다.

“그렇게 후손의 몸을 빼앗아도 되는 건가? 후손들이 모두 그런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진 않았을 텐데?”

“어찌 했지? 어떻게 제국의 차원 벽을 흔들었느냔 말이다!”

“도대체 무얼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거지? 자식, 손자, 후손의 몸을 빼앗아가면서?”

“말로 해서는 안 될 놈이구나! 이 노옴!”

도현과 황제는 서로 각자의 말만 할 뿐,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황제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숨겨뒀던 힘을 끌어 냈다.

“으음. 기괴하군.”

도현은 황제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은 오러도 아니고, 마력도 아니고, 순수한 마나의 기운도 아니었다.

“그거 정신의 힘과 비슷한데, 좀 이상하군.”

도현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수련중인 정신의 힘.

황제의 기운은 그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하고 또 지저분한 느낌이었다.

- 로드, 위험합니다.

그 때, 반지로 돌아가 있던 에포르가 도현에게 경고를 했다.

황제의 기운이 도현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배력? 이건 농축된 지배력인가?”

도현은 문득 황제의 기운이 지금껏 귀족들에게 빼앗아 왔던 지배력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현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황제의 힘에 대한 정답이 떠올랐다.

“너! 영혼이구나! 영혼을 흡수해서 그것을 지배력으로 쓰고 있었어!”

도현은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황제가 사용하는 힘의 정체는 영겨 붙은 영혼이었다.

엄청난 영혼을 끌어모아 하나로 녹여 놓은 것이 황제의 기운이었고, 그것을 희석시킨 것이 지배력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지배력이 상대의 영혼에 작용하여 완전한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굉장하군. 영혼을 흡수해서 녹였다는 건가?”

“제법이구나. 내 힘의 뿌리를 알아보다니.”

“아, 그래서 내가 죽은척 하고 있던 것도 들켰던 거군. 영혼에 민감해서?”

“그렇다. 다른 놈들의 영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유독 너의 영혼만 몸에 남아 있었지. 간혹 그런 경우가 있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만.”

“그런데 굳이 죽일 이유가 있었나?”

“뿔도 없는 것을 어디에 쓴단 말이냐? 더러운 버러지를 눈앞에서 치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 너희 알케이네스 놈들은 뿔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그 뿔이란 것도 인위적인 것 같던데? 네가 만든 거냐?”

“크하하하. 제법이구나. 그래, 오래 전에 내 지배력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정착시키기 위해서 뿔을 개조했지.”

“아주 없던 것은 아닌데, 네가 손을 댔다는 거네?”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네가 질문에 답을 해 보거라. 어떻게 차원의 벽에 영향을 주었는지.”

“아하, 그거?”

“그래, 말해 보거라!”

“그거야 니가 알아내야지. 나도 네 힘의 정체를 스스로 알아냈잖아.”

“뭐? 뭐라?”

그저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삶을,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살아온 황제였다.

그래서 도현처럼 말대꾸를 하며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경우는 기억에서조차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래선지 황제는 도현의 간단한 도발에 얼굴을 붉히며 분노를 드러냈다.

“으음. 이거 굉장한데?”

도현은 자신을 옥죄어 오는 황제의 지배력에 인상을 찌푸렸다.

자칫하면 그 기운에 잠식되어 황제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곤란하군.”

우우우우웅우우웅!

도현은 황제의 기운에 대항하기 위해 정신의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정신의 힘을 마력에 더하여 보호막을 만들었다.

물리적인 공격 보다는 비물질적인 접근을 차단하는 형태의 보호막이었다.

“으음.”

황제는 도현이 만든 보호막에 자신의 지배력이 막히는 것을 보고 낮게 신음했다.

“폐하!”

시종장이 그런 황제를 보며 눈빛으로 허락을 구했다.

자신이 나서서 눈앞의 적을 공격하겠다는 뜻이었다.

황제는 그런 시종장의 눈빛을 무시했다.

지금 상황에서 수족이 나서서 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오랜만에 마주한 적과의 대치가 주는 신선한 느낌이 싫지 않았다.

“놈, 이곳은 제국의 마법사와 술법가들에 의해서 봉인되었다. 네가 빠져나갈 길은 없다는 것이지. 차원 회랑조차 열지 못할 것이다.”

황제는 자신이 있었다.

지금 이곳을 봉인하고 있는 결계는 공간이동은 물론이고, 옴파로의 종자들이 간혹 사용하는 임시 차원 회랑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눈앞의 저 지구인 놈은 절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천천히 두고 즐겨도 좋을 것이 아닌가.

시종장이 나서면 그 재미가 떨어질 것이다.

“봉인?”

도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지금 황제는 도현이 도망갈 길을 막아 두었다고 자신만만한 것이다.

“웃기는 놈이네. 내가 왜 도망을 갈 거라고 생각하지?”

휘리리링! 화화홧! 스스슥! 슥!

도현은 도리어 황제를 비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호위 기사단장과 산성의 대장군, 숲의 성의 레인저 수장, 어둠의 성 흑영대장을 소환했다.

“으음?”

황제는 도현이 불러낸 소환체들의 모습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제국의 공작들과 비슷한 경지에 있는 소환체를 저렇게 쉽게 불러내다니!

황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능력이었다.

하지만.

터덕! 터덕! 터더더더덕!

“으응?”

검을 뽑아들고 황제를 향해 움직이던 산성 대장군이 부들부들 떨며 멈췄다.

그리고 호위 기사단장 역시 서너 걸음 더 나갔을 뿐, 대장군과 마찬가지로 몸을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흑영대장과 레인져 수장 역시 마찬가지.

“지배력이?”

도현은 소환체들의 이상이 황제의 지배력 때문임을 알아봤다.

보호막 밖으로 벗어난 소환제들이 황제의 지배력에 저항하느라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무섭군!”

도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의 지배력은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적으로 도현에게 속해 있는 일곱 성의 소환체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라니.

“크하하. 어떠냐? 더 해 볼 것이 남아 있느냐?”

황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었고, 도현은 살짝 어금니를 깨물었다.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자신은 괜찮았다.

하지만 혼자서 황제를 공격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았다.

‘수호신을 꺼내면 어떨까?’

- 추천하지 않습니다. 수호신과 로드의 정신 연결은 일곱 성 소환체들보다 약합니다. 어쩌면 수호신을 곧바로 황제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거 귀찮은 능력이네. 그럼 탑의 성을 불러서 한 방 날려볼까?’

- 회의장을 막고 있는 봉인 때문에 탑의 성을 구현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시도는 해 볼 수 있잖아.’

-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 시간을 저 황제가 기다려 줄지는 의문입니다.

‘하긴 탑의 성은 준비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도현.

‘그럼 빛의 성은? 영혼에 관한 거라면 빛의 성이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빛의 성은 묘하게 방어와 재생, 치유 따위를 담당하는 성이었다.

그래서 그 기운이 흔히 말하는 신성력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신성력은 아니지만 비슷한 기운.

그러니 황제의 일그러진 영혼력에 카운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역시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황제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심의 한 수가 될 수 있는 힘은 숨겨 두시길 권합니다.

‘그 말은 여기서 물러나자는 거잖아.’

도현은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에포르는 그런 도현을 설득하려 했다.

- 지금 당장은 황제를 상대하기 곤란합니다. 그리고 굳이 여기서 황제를 끝장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으음.’

- 시간을 두고 알케이네스 차원을 무너뜨리면 황제의 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황제의 지배력은 백성들의 신앙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의 힘은 영혼이야. 백성들의 신앙심이 아니지.’

- 아닙니다. 분명 백성들의 신앙심이 황제에게 중요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제국이 운영된 방식만 보더라도 확실한 것입니다.

‘그게 맞는 말처럼 보이긴 한다만.’

- 일단 물러나시지요. 알케이네스를 뒤흔들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여기서 황제와 위험한 대결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끄응. 상성이 안 좋긴 하네.’

도현은 결국 에포르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현은 산성의 대장군과 호위기사단장 등을 다시 보호막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다행히 황제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철회되자 소환체들은 빠르게 도현의 곁으로 복귀했다.

황제에게 지배를 당한 것이 아니라, 지배력에 저항하며 황제를 공격하려고 버티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복귀는 쉬웠다.

“으음? 뭐지?”

도현이 소환체를 다시 불러들이자 황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수가 또 있다는 거냐?”

그리고 황제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도현을 보았다.

어디 재롱을 한 번 보자는 눈빛이라 도현은 속에서 욱하는 것을 억지로 내리 눌러야 했다.

“솔직히 상성이 좋지 않아서 당장은 어렵겠어.”

도현은 살짝 아쉬운 표정으로 황제를 보며 말했다.

“그 말은 어째 도망가겠다는 뜻으로 들리는구나?”

황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는 표정으로 놀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대회의장의 허물어진 벽들 사이로 알케이네스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병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딱 봐도 정예병임을 알 수 있는 이들이었고, 기사와 마법사 중에는 고위 귀족들보다 높은 경지로 보이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준비를 제법 했나봐?”

전력으로만 따지자면 이곳에서 죽은 귀족들 전체와도 비교될 정도였다.

그런 전력에 황제의 지배력이 더해지면?

승산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할 것이었다.

“이거 곤란하네? 역시 다음 기회를 봐야겠어. 황제.”

“뭐냐?”

“다음에 보자고!”

“뭐라?!”

도현의 말에 황제가 깜짝 놀랄 때, 도현의 곁에 있던 소환체들은 모두 모습을 감췄고, 그 대신에 포탈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도현은 가볍게 그 포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황제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을 잊지 않고.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저것은 뭐란 말이냐!”

공간이동은 물론이고 차원 회랑의 생성까지 막는 봉인이었다.

그런 봉인이 대회의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그런데 저것은 뭐란 말인가.

황제가 잠시 그것을 노려보는 중에 포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회의장 무대 위에는 황제와 시종장만 귀족들의 시체들과 함께 남았다.

“감히!”

우르르르르릉!

그리고 뒤늦게 황제의 분노가 대회의장을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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