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대회의장 난입!
119. 대회의장 난입!
정화기간동안 황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황궁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선대 황제가 다음 황제에게 가르침을 내린다는 것이 백성들이 알고 있는 내막.
심지어 귀족들 중에도 그 역사가 깊지 않은 가문은 황제의 몸 갈아타기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담기를 꺼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체 귀족 회의에서는 어쩐지 그 이야기가 공론화 되다시피 하여 입에 오르내렸다.
이유는 제국 백성들 사이에 그와 같은 이야기가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
황제에 대한 광신적인 신앙심을 가진 백성들 사이에서 황제의 불사는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황제는 불사의 존재로 더욱 강력한 신앙심을 얻는 듯 했다.
하지만, 황제의 불사는 지금까지 제국에서 일어났던 여러 실정들의 책임을 황제에게로 돌렸다.
그리하여 황제에게 흠이 생기고 결점이 생기며, 완전성이 훼손되었다.
무너진 둑!
황제에 대한 이야기는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이전에는 있을 수 없었던 유언비어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 이야기가 전체 귀족회의에 참가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들려오는 중이었다.
그들 중 절반 가까이는 황제의 몸 갈아타기를 몰랐던 이들이니, 진실을 알게 된 그들의 충격은 작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폐하께서 진실로 불사의 존재라는 말씀입니까? 길튼자작?”
“끄응, 그건 사실입니다. 폐하께서는 건국제이시며 지금까지 제국을 다스려 오셨습니다.”
“오오오. 놀랍습니다. 역시 폐하이십니다.”
“그렇지요. 누가 있어 폐하께 불경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귀족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그들은 황제의 무결성에 흠이 있다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귀족이란 존재는 황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황제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에 실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백성들과는 그 기준선 자체가 다른 이들이었다.
“아, 그렇군요. 폐하께서 양위를 하시고 새로운 황제를 세우는 것이 다 백성들의 신앙심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군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리 소란이 일어났으니 당분간은 백성들의 마음을 잡는데 애를 좀 써야겠습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리야 뭐 달리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지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긴, 그도 그렇습니다. 어찌 더 해 보려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도 흔하니까 말이지요.”
“그나저나 제국에 분란을 일으키는 불손종자들은 어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기이하게 귀족들의 말도 잘 먹히지 않는다 했지요?”
“그렇다고 합니다. 심지어 지배력을 나눠서 복종하게 하려는 시도조차 들어먹지 않는다더군요.”
“그건 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폐하께서 대관을 마치시면 다시 지배력을 공고히 하실 것이니, 그 과정을 거치면 어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럴까요?”
“아무래도 정화된 지배력이 아니겠습니까.”
“으음. 그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실상 그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도현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귀족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차피 바이디야를 아는 귀족은 거의 없었다.
나탄 백작가의 주인이 되기는 했지만 대외 활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후계자 신분이었을 때에도 사교계에 제대로 나선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 도현은 겉으로 보기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회의장 외곽을 봉쇄할 준비는 거의 된 거 같군.’
- 그렇습니다 로드. 흑영들을 곳곳에 배치하여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바깥으로는 레인저를 깔았고, 일이 시작되면 탑의 성을 불러 공간 이동을 차단할 테니, 마법으로 빠져 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 네. 로드.
‘그런데 의외로 모아놓고 보니 별로 많지 않아 보이네.’
도현은 대회의장에 가득한 귀족들을 가볍게 훑어보며 말했다.
고작해야 천 명 남짓한 숫자.
여러 식민 차원을 거느린 제국임에도 남작 이상의 귀족 숫자는 그 정도 뿐이었다.
- 황제가 일일이 작위를 주고 지배력을 나눈 거잖아요. 혼자 관리해야 하는데, 이것도 많은 거 아닐까요?
‘하긴, 이 정식 귀족들이 필요에 따라서 가신을 들이는 방식이니까.’
- 그래도 작위를 주진 못하죠. 고작해야 기사나, 행정관, 준남작 따위지만, 정식 귀족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여기 있는 놈들만 처리하고 지배력을 빼앗으면 황제를 돌부리에 걸리게 하는 정도는 된다는 거지.’
- 언제 시작하실 거예요?
‘개회사를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 아, 시작과 동시에 찬물을 끼얹는 거군요?
‘그래, 마침 시작할 모양이다. 바깥쪽에서도 더는 입장하는 귀족들이 없다고 하고.’
흑영을 통해 대회의장의 입구를 살피는 중이었다.
한동안 북적이던 입구가 이제는 한산하게 비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과 기사들 몇이 오갈 뿐, 귀족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귀족이 입장을 마쳤다는 뜻이리라.
땅땅땅!
“모두 주목해주시오.”
그 생각이 맞았는지, 콩토올 공작이 다른 두 명의 공작과 함께 일어나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 세 공작의 좌우로는 일곱 명씩의 후작이 다른 귀족들을 마주보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도합 열일곱 명의 고위 귀족이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그 앞으로 층을 이룬 자리에 백작, 자작, 남작들이 뒤섞여 앉아 있었다.
도현은 이 자리 배치가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파벌에 따라서 자리를 정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알아서들 무리를 지어 자리를 잡고 앉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가끔 자리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거나 양보를 하고, 양보를 받으며 껄껄거리는 모습이 연출되곤 했었다.
“참석 대상자 모두가 입장한 것으로 확인이 되었으니 이제 제국 전체 귀족 회의를 시작하겠소.”
“이제 정화 기간이 사흘 남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황제를 모시고 제국의 발전을 위해 전심전력할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것이오.”
“제국은 이상 기후와 천재지변, 차원벽 붕괴 등으로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소.”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 귀족들이 황제 폐하께 충심을 다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오.”
세 공작은 돌아가며 개회 선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연설은 오래 가지 못했다.
회의장의 뒤쪽으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 위에 앉아 있던 몇몇 후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허공에서 무기와 갑옷을 꺼내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역시 그러한가?”
“나라고 해도 이런 기회를 버리진 않았겠지.”
“대단한 자신감이군. 제국의 귀족 모두가 모인 곳을 공격할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황도에서!”
공작들은 연설을 멈췄지만 그리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투였다.
쿠궁! 쿠구구궁! 콰르르르릉!
그 때, 대회의장의 벽들이 여기저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도현의 산성병사들이 밖에서 벽을 허물었던 것이다.
“흙으로 된 병사들.”
“역시 지구 차원의 놈이 맞는 모양이군.”
“으음. 생각보다 강력하군. 숫자는 얼마나 되는 거지?”
“그건 모르겠군. 하지만 몇몇은 확실히 우리와도 겨뤄볼 자격이 있어 보여!”
공작들 곁으로 후작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들은 앞에 있는 백작, 자작, 남작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모두 방어 태세를 갖춰라.”
“적의 난입에 멍청하게 서 있는 놈이 누구냐!”
“전투 태세를 갖춰라!”
이에 귀족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중앙 무대를 등지고 방어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진영의 형성은 정확하게 작위로 구별되었다.
최전방에 남작, 그 뒤를 자작이 받치고, 그 뒤에 백작이 섰다.
철저히 계급에 따른 방어선 형성.
이는 알케이네스 제국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신분이 낮은 쪽이 높은 쪽을 위해서 희생한다.]
평소에는 일반 백성과 귀족들 사이에 적용되는 규칙이지만, 이렇게 귀족들만 모였을 때에도 다를 것은 없었다.
덕분에 도현은 방어진형의 안쪽, 공후작들과 가까운 곳에 있게 되었다.
쿠궁 쿠구구궁!
카가가강! 카강! 콰과광!
“크악!”
“아아악!”
후두두둑! 퍼버버벙!
“커억!”
“제, 제엔장! 쿨럭!”
비명과 고함은 오로지 알케이네스 귀족들의 것.
흙인형들은 기합을 지르지도 않았고, 파괴되더라도 비명이나 신음을 내지도 않았다.
그저 여기저기서 산성병사들과 알케이네스 귀족들의 충돌만이 이어질 뿐.
그런데 유독 거침없이 귀족들을 베어내는 몇몇 산성병사들이 있었다.
대장군과 두 기의 5천인장들이었다.
그 외에 천인장들 역시 크게 활약을 하고 있었지만, 귀족들 중에 전투력이 뛰어난 이들이 나서서 천인장을 막아서면서 어느 정도 접전 양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허어, 대단하군. 함께 가야겠어.”
그런 중에 후작 하나가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서며 다른 후작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가지.”
“아니, 나까지 가야 할 것 같다. 셋이 가는 것으로 하지.”
의논은 짧았고, 다음 순간 세 명의 후작이 산성병사 대장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대회의장이라고 해 봐야 마스터급 무인들에겐 몇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콰과과광! 콰광! 카가강! 까강!
“크읏, 대단하군. 마스터 최상급의 끝자락이라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소환된 존재가 어찌 이런 경지를 능숙하게 펼친단 말이냐!”
“으윽, 오러만 따지자면 우리 셋 중 누구보다 강력하군.”
“하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오. 시간을 끌면 우리가 유리하오.”
“그건 그렇지. 다만 회의장이 견뎌줄까 그게 문제군.”
“하하하핫. 그것까지야 우리가 신경 쓸 수 있겠소? 그냥 호쾌하게 싸워 봅시다.”
“그럼, 그럼. 그래야지! 갑시다앗!”
콰과광 차자자장! 카가가강!
세 명의 후작이 대장군을 막아섰다.
그리고 다시 두 명씩의 후작이 나서서 5천인장을 몰아친다.
‘생각보다 강한데? 공작들은 나서지도 않았는데 대장군과 두 5천인장이 막혔어.’
- 그럼 이제 호위기사단을 부르시지요.
‘그래야겠어.’
지금도 죽어 나가는 것은 분명 알케이네스의 귀족들이었다.
산성병사들도 여럿 파괴되고 있었지만 귀족들의 피해에 비해서는 그리 큰 피해가 아니었다.
더구나 소환체가 아닌가.
다시 시간이 흐르면 복구되어 소환이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대장군과 5천인장들이 막히고, 천인장들도 수세에 몰린 모습은 좋지 않았다.
이건 도현이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도현은 주위를 살피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뭐냐?”
“이건 무슨?!”
“위다!”
파파파파팟!
공작들이 깜짝 놀라 대회의장의 천정 쪽을 보았을 때, 그곳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새하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떨어져 내렸다.
도현의 호위기사단이 등장한 것이다.
“뭐하는 놈들이냐!”
“죽어라!”
“감히!”
이번에는 공작, 후작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나서서 떨어져 내리는 호위 기사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제일 위쪽에서 깃털처럼 느린 속도로 내려오던 기사단장이 일검을 휘두르는 순간 모든 것이 막혀 버렸다.
콰과과과과광!
“허억!”
“소드실드란 말인가?”
“그런 종류지만 급이 다르군. 심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가까워.”
“그건 아니야. 오러의 양으로 경지를 흉내냈을 뿐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시무시하군. 우리 모두의 공격을 단번에 박살내다니!”
“젠장 이럴 때가 아니야! 공격! 공격하라고!”
나타난 호위 기사단의 수는 모두 1백.
그런데 그 호위 기사들이 떨어져 내린 곳은 공작과 후작이 있던 무대 위였다.
“허어어, 이런 일이······.”
“실전을 치른 것이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군.”
“몸이 제대로 움직일까 모르겠어.”
세 공작조차 각자의 무기를 뽑아들고 적들을 직접 상대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카라라라랑!
“크아아악!”
“아악!”
“커억!”
호위 기사단장의 이어진 일검에 후작 세 명이 허리가 잘리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무대 위의 살육전이 시작되었다.